네 줄기 빛
안토노프는 감청 부대가 제출한 보고서를 읽어 보았다.
[놈들 열병식 때까지만 참으라고!]
[사냥꾼 녀석들이 스탈린의 대가리를 날려버리면 좋겠군!]
그리고 결국 열병식이 취소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나가 말했다.
"아무리 사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열병식은 무리이긴 했어."
그런데 열병식이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류드밀라, 안나, 크세니야, 파블리첸코, 자이체프 등 정예 저격수들은 붉은 광장이 있는 곳으로 부대 이동을 하게 되었다. 안나가 말했다.
"열병식 취소되었는데 왜 붉은 광장으로 가는거지?"
류드밀라가 말했다.
"열병식은 취소되었더라도 파시스트들은 군사 작전을 취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붉은 광장에 이미 파시스트 특수 부대가 낙하산을 타고 강하해서 교란 작전을 벌인다는 말이 있잖아."
그렇게 류드밀라, 안나, 크세니야, 파블리첸코 등은 굼 백화점, 붉은 광장, 볼쇼이 극장 등이 있는 모스크바의 중심부로 오게 되었다. 안나는 엄청나게 화려한 베이지색 건물을 보고는 감탄했다.
"저게 굼 백화점이구나!"
러시아 건축의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바실리 사원, 까잔 성당, 부활의 문, 국립역사박물관 등을 보며 류드밀라 또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런게 있구나!"
안나가 말했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 같아."
이 아름다운 건물들이 폭격에 무너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안나, 류드밀라은 크렘린 궁과 황제의 종 또한 바라보았다. 비록 내부에 주요한 문화재들은 이송되었을테지만 이 건축물들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비록 글은 몰랐음에도 류드밀라와 안나는 러시아의 문학을 이야기로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문학 외에도 러시아의 건축물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서는 한 연주자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 손가락이 곱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다.
류드밀라가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것들은 지켜야 해.'
"우린 어디에 배치될까?"
안나가 수근거렸다.
"레닌의 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파시스트 특수 부대가 침투하여 레닌의 묘를 파헤치고 목을 잘라낼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안나는 기왕에 굼 백화점이나 볼쇼이 극장, 박물관처럼 화려한 곳에 배치되고 싶었던 것 이다. 그리고 류드밀라와 안나는 굼 백화점에 배치되었다. 둘 다 신이 나서 자리를 잡고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나타샤도 여기 왔다면 좋아했을텐데..."
모스크바 주민들이 와서 어린 여자 저격수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고, 류드밀라와 안나는 맛있는 간식을 실컷 먹으며 굼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나타샤는 식량을 훔치지 못해서 쫄쫄 굶고 있었다. 나타샤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식량을 바라보았다.
'좀만 참자...'
이렇게 저격수들이 모스크바 중앙 붉은 광장 인근에 배치되었고, 표도르가 속한 기갑 부대는 모스크바의 북동쪽 외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표도르는 왜 지금 북동쪽으로 이동하는건가 머리를 굴려 보았다.
'왜 지금 이동하는거지?'
드미트리가 말했다.
"왜 북동쪽으로 부대 이동하는건지 궁금합니다!"
표도르 일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부대 이동은 상당히 급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표도르가 말했다.
"파시스트가 놈들이 포위된 병력을 구하러 올 것에 대비하는 것 같군..."
글리에르가 말했다.
"아..아무래도 입을 다물고 있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파시스트 특수부대가 위장하고 우리 말을 엿듣고 있을 수도!!"
그렇게 표도르가 소속한 기갑 부대는 모스크바 북동쪽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밀짚을 이용하여 전차를 은폐하고 야전삽으로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이거 땅이 왜 이렇게 딱딱해!!'
이젠 날씨가 엄청나게 추웠기 때문에 참호를 파기도 힘들었다.
'으아아아...'
그래도 아직까지는 참호를 팔 수는 있었지만 일주일만 지나면 엄청나게 온도가 급강하할 것 이고, 그 때는 폭약을 폭발시켜서 참호를 파야 할 것 이다. 한참 참호를 판 다음 휴식을 취하는데
쉬이이 쉬이이이이
항공기들이 비행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쪽 비행기야? 우리 쪽 아냐?"
하늘 위로 붉은색 조명탄이 발사되었다.
"파시스트 항공기다!!"
"대공 경계!! 대공 경계!!!"
표도르 일행은 잽싸게 T-34/85에 탄 다음 비행기가 오는 방향을 향해 포탑을 선회시켰다. 그리고 독일군의 비행기를 향해 기관총을 긁었다.
드르륵 드르르륵 드륵
소련군 기관총 사수들은 빠른 속도로 맥심 4연장 대공 기관총을 독일군의 항공기가 오는 방향으로 돌리고 하늘을 조준했다. 이 맥심 4연장 대공 기관총에는 아까 밀짚을 잔뜩 매달아두어서 위장해두었기에, 조준할 때마다 거대한 밀짚도 같이 움직였다. 기관총 사수들은 동심원이 여러 개 그려져 있는 조준기를 바라보며 독일군의 항공기를 조준했다.
"사격!!"
드득 드드득 드드드득
맥심 4연장 대공 기관총이 하늘을 향해 4개의 노란색 줄을 만들었다. 아직 트럭에서 내리지 않은 다른 맥심 4연장 대공 기관총도 하늘을 향해 불을 뿜었다.
드드득 드드득 드드드드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항공기는 계속해서 북동쪽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기관총 사수들은 모두 대공 기관총의 방향을 급하게 돌렸지만 이미 독일군의 항공기는 유유히 하늘을 날아갔다.
표도르 또한 욕설을 퍼부으며 T-34 전차에서 내렸다.
"이런!! 젠장!!!"
잠시 뒤, 독일군의 항공기에서 수 많은 강하엽병들이 낙하했다고 소련군 정찰병에 의해 보고되었다. 참고로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브란덴부르크 특수 부대 등 독일의 정예병들이 낙하산을 타고 강하해서 후방을 교란하는 것은 소련군에게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표도르가 생각했다.
'모스크바 북동쪽에 있는 보급선을 공격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표도르의 부대는 명령을 받고 북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하엽병들이 낙하할 때는 무기도 같이 낙하산에 의해 투하된다. 강하엽병들이 무기를 회수하고 자리를 잡기 전까지 빨리 도착해서 놈들을 쓸어버려야 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드등
그렇게 어둠 속에서 T-34 전차들과 장갑차, 트럭, 오토바이 등 소련군의 기계화 부대가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표도르는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고 사방을 살폈다.
'분명 파시스트 놈들이 매복했을 거다!!!'
역시나 독일군은 소련군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중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따.
쉬잇!! 퍼엉!! 쉬잇!! 쿠과광!!!
독일군이 발사하는 중포탄은 현재 표도르의 부대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착탄하고 폭발했다. 거대한 나무가 뿌리채 뽑혀나가고 여기저기서 불길이 일었다.
쿠구궁!! 쿠과광!!!
드미트리가 외쳤다.
"파시스트 놈들 포격 좌표가 형편없군!!"
하지만 표도르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겨우 이 정도로?'
만약 독일군의 정예 부대가 지금 시각에 강하했다면 독일군 포병 입장에서는 이를 엄호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놨을 것이다. 소련군의 기갑 부대가 이들을 공격하러 올 것이라는 것은 독일군 입장에서도 뻔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을 것 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소련군 기갑 부대를 공격하기 위한 매복조차 안 해놓은 상태였다.
지금 소련군의 트럭 한 대는 위에 대공 탐조등을 실고 있었다. 이 대공 탐조등은 이리저리 돌아가며 시커먼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저 대공 탐조등 덕분에 독일군 포병대는 소련군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평소와는 달리 너무 부정확하게 대충 중포탄 몇 발을 발사할 뿐이었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낙하산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었다. 빠르게 달려가는 트럭 뒷칸에서 소련군 기관총 사수들이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득 드드득 드드드득
트럭을 타고 가는 소련군 보병들 또한 하늘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
탕!! 타앙! 탕!
그렇게 어둠 속에서 소련군은 차량을 타고 달리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낙하산을 향해 총알을 쏟아부었다. 일부 낙하산들이 이미 언덕 뒤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T-34를 타고 있는 중대장이 소리쳤다.
"놈들이 29구역 주요 거점인 사거리를 점령할 가능성이 높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표도르가 외쳤다.
"최고 속도로 진격해!!!"
그렇게 표도르의 T-34는 다른 T-34 전차들과 언덕 우측으로 우회해서 전진했다. 표도르가 외쳤다.
"유탄 장전!!"
"장전 완료!!!"
트등 트드등 트드드드등
수십 대의 T-34들이 언덕 우측으로 우회해서 갔는데 놀랍게도 총격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표도르는 전차장 해치 위로 상체를 내밀고 사방을 살폈다.
"어떻게 된거지?"
드미트리가 외쳤다.
"놈들이 튄 겁니다!!"
"강하부대가 무기를 챙기려면 시간이 소요된다!! 벌써 튈 리 없다!!"
표도르는 귀를 최대한 기울였다. 하지만 T-34와 오토바이, 장갑차 등의 엔진 소리가 뒤섞여서 도저히 독일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정찰을 마치고 온 오토바이 병이 외쳤다.
"10시 방향에서 총성!!!"
"가자!!"
트응 트드등 트드드등
오토바이 병이 외친 곳으로 달려가니 정말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탕!! 타앙!! 탕!!!
"유탄 발사!!!"
"발사!!"
퍼엉!!
T-34 전차들은 모두 총성이 들리는 곳으로 유탄을 발사했다. 85mm 주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티잉!! 쿠과광!!!
티잉!!! 콰과광!!!
거대한 나무들이 불타오르며 쓰러졌다. 그렇게 사격을 한 다음 T-34 전차들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공병들은 세 번째로 진격하는 T-34 뒷부분에 매달려 있었다. 만약 선두에 있는 T-34전차가 대전차 지뢰를 밟고 기동불가 된다면, 공병들이 나서서 길을 개척해야 할 것 이다. 공병들은 제발 대전차지뢰가 없기를 바랬다. 설령 대전차지뢰가 깔려있더라도, T-34 전차들이 대전차 지뢰가 없는 루트로 무사히 지나길 기도했다.
'제발...제발...'
잠시 뒤 T-34들이 멈추었다. 그리고 보병들과 공병들은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탕! 타앙!! 탕!!
독일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이건 전쟁터에서 여태까지 수도 없이 들어왔던 총성과는 달랐다. 아무리 개활지라서 소리가 퍼진다고는 해도, 진짜 총성은 이거보다 훨씬 세게 공기를 두들긴다. 더군다나 야간에는 이러한 전투음이 더 크게 들려야 한다.
한 공병이 중얼거렸다.
"이건 무슨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데?"
오토바이 병들이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키가 큰 침엽수에는 낙하산들이 대롱대롱 달려있었고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오토바이 병들이 이 정체불명의 것들을 향해 모신나강을 발사했다.
탕! 타앙!! 탕!!
하지만 이 나무 위에 걸린 사람 형태의 무언가에서는 계속해서 반복적인 소리가 들렸다.
탕!! 타앙!!
돌격하라!! 돌격하라!!
오토바이 병과 보병들은 손전등을 비추어보았다. 독일군 군복을 입혀놓은 허수아비들이 낙하산에 매달려있었다. 그 허수아비들에서는 계속해서 기계음이 들리고 있었다.
돌격!!
탕!! 타앙!!
소련군은 이 광경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함정이다."
그 순간, 나무에 걸려있던 허수아비 한 개가 폭발했다.
쿠과광!!
허수아비가 폭발하면서 키가 큰 침엽수의 나뭇가지들이 날카롭게 잘려나가서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소련군의 주요 전력이 모스크바의 북동부, 그리고 모스크바강 북쪽 붉은 광장에 집중하고 있을때, 구데리안 2기갑군은 모스크바의 남동쪽 방어선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난리가 난 이 때, 히틀러 총리와 빌헬름 3세는 늑대굴에서 현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천장이 7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인 이 늑대굴 내부는 공기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벙커 바깥에는 산소 탱크가 있었고, 주기적으로 산소 탱크로 늑대굴의 산소를 충전했다.
빌헬름 3세가 현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데, 어디서 방구 소리가 들렸다.
부르릉
한 부관이 방구를 낀 것 이었다. 빌헬름 3세와 히틀러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한 직원이 황급히 산소를 충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소가 충전되고 늑대굴이 환기가 되었다. 다시 빌헬름 3세는 현재 전황에 대해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방구 소리가 들렸다.
부르릉
그 부관이 또 방구를 낀 것이었다. 그 부관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완전히 당황했다. 결국 다시 산소 탱크에서 산소가 충전되었고, 빌헬름 3세와 히틀러는 현재 전황에 대해 참모들과 논의를 시작했다. 그 때, 국방군 장교가 히틀러에게 귓속말을 했고 히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들어오게."
그리고 한스 파이퍼가 들어와서 경례를 했다. 빌헬름 3세가 말했다.
"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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