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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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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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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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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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음모

DUMMY

행렬의 길은 한성의 도심부를 지나, 외각의 산자락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부님, 이제 더 이상 이어지는 지붕도 없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 붙어야 하겠습니다."


"그래, 일단 내려가자."


불빛 하나 없는 숲길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수레 마다 환하게 불을 밝힌 후, 익숙한 길 인양 모두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숲 자락에서 불어오는 가을 밤바람에 횃불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어둠속에서 소리를 듣자하니, 수레가 하나 둘 멈춰서는 모양이었다.

흔들리는 횃불사이로 어렴풋이 주변을 가늠해보니,

담 둘레가 제법 넓게 산자락위로 뻗쳐 올라가 있는 고택의 문 앞 같았다.


대문이 활짝 열리고, 세곡들이 실린 수레도 하나 둘 고택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문이 닫혔다.


"따라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서라! 국구이셨던 김 조순 대감의 별장이다.

그러면 말 다 한 거지 않겠느냐. 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으니, 됐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그 아들이 김 좌근 대감이야!"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끝은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원범아, 이 정도면 알 건 다 안거야! 김 조순 대감의 횡포가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더냐.

그러니 이제 네가 어서 왕권을 ..."


역시 원범이 저 만치 먼저 담벼락 쪽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녀석, 임금님이 되더니만, 요즘 동문서답에 어른 말씹는 습관까지, 장난이 아니야!"


원범의 뒤를 쫒아 담벼락을 오른 후 다시 넓은 지붕위로 올라서자,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 마당 안으로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내려보였다.


그들 중 두목쯤으로 되어 보이는 이가 다른 몇몇에게 당부를 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슬며시 대문을 나선 후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원범과 상추도 이내 지붕선을 타고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 나섰다.


'옥호 동천'


그가 들어서는 처마가 달린 대문위로, 큰 글씨체로 쓰여 진 편액이 멋스러워 보였다.

대문의 안쪽으로는 밝은 등롱이 사방으로 걸려 빛을 발하고 있었다.


등롱 빛에 걸맞게, 화려한 누각이 소담스러운 연못을 앞에 두고 자리를 잡고,

누각의 현판에는 '옥호정' 이라는 필체가 굵고 가늘게 획을 달리하며 위용 있게 쓰여 있었다.


누각 위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김 좌근과 그의 사촌동생 한성부 판윤 김 수근의 옆으로, 그의 아들인 공조판서 김 병학, 예조 판서 김 병국. 그리고 김 좌근의 양아들인 성균관 대사성 김 병기가 나란히 둘러 앉아 있었다.


김 좌근이 김 병기를 양자로 삼은 이유는,

문관이지만 그가 가진 뛰어난 무술실력이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 이유로 김 좌근의 옆에는 궁에서조차도 김 병기가 언제나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대감, 모두 오백 석 입니다!"


수레를 끌고 온 두목이 김 좌근의 무리들 앞에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래, 수고했다. 내일 다시 옮길 물건이니, 수레는 그대로 두고 말은 따로 쉬게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대감."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눈으로 쫒던 김 수근이 다급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형님, 정말 이대로 두고 보신다는 말씀입니까!"


"통감 두 권과 소학 일 이권을 읽었다고 하였다지? 정말 그러하다고 생각하느냐?"


"정 원용 대감이 살뜰히 살펴본 결과로도, 더 이상의 학업은 없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형님!"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제왕학은 고사하고 경연에서 논어를 강론하였다!"


김 수근을 제외한 젊은이들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렇게 말했던 건 그냥 겸양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주상께서도 지금 무언가를 숨긴 채, 계획하고 있는 것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님."


그의 아들 김 병학이 조심스럽게 끼어 들자, 동생인 김 병국도 이야기를 거들었다.


"임금이 가장 강하고 두려울 때가,

학문이 크고 깊어 신하들을 앞서고 직접 가르침까지 이어갈 때 입니다.

이전의 세종 대왕이나 영종 대왕의 위엄도 모두 신하들을 직접 가르치고 눌러버릴 만큼,

깊은 학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주상께서는, 홍문관의 교리들은 물론이고 당상관의 관리들과 함께한 경연에서도 전혀 학식이 뒤지는 법이 없으시다는 평판입니다.

이리되면 저희 가문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주변의 세력들에 의해, 임금의 위세가 점점 커져갈 것입니다."


"그래서 당분간 주상의 경연을 모두 미루라고 하였다."


김 좌근의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고뿔때문에 경연을 미룬 게 아니었나 봅니다. 사부님."


"쉿, 조용히 해봐라..."



"그게 가능 합니까. 형님?"


"경연이나 공무는 제쳐두더라도, 임금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더냐.

사냥도 하여야 할 것이고, 무술도 어느 정도는 연마를 해야 할 것이다.

또 온천 행궁에 다니는 일에 재미를 들이다 보면, 저절로 바쁜 나날이 되겠구나."


김 수근의 물음에 김 좌근이 여전히 노련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저렇게 굴릴 거라는 거죠?"


"그렇지."



"그 보다, 그가 강화 섬에 있을 때 함께 있던 아이가 지금 한양에 와서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지붕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원범과 노 상추의 얼굴빛이, 약속처럼 동시에 굳어져 갔다.


"네, 아버님. 양순이라는 아이인데, 지금 영평군의 사가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말 수가 적은 김 병기가 대답을 이었다.


"그래, 그 아이를 차차 만나보고 양녀로 들이도록 해야겠다."


모든 눈길이 김 좌근을 향했다.


"처음부터 이 경응을 그 자리에 올리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누님의 반대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지금 두 돌이 갓 지났으니, 우리에게는 딱 좋은 상황 이었었는데..."


김 좌근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술 한 모금을 입안으로 거칠게 털어 넣었다.


"덕완군을 없애려 할 때마다 계속 일이 틀어졌어.

이제는 아예 누님에게 찍혀버려서 더 이상 덕완군을 건들게 되면, 누님과의 사이가 많이 불편해 질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형님! 지금 임금이 왕손을 가질 때 까지 마냥 기다려야 합니까?"


"어쩔 수 있나! 그 왕손이, 왕의 씨에서 나와야 하는 걸."


김 좌근의 이야기에 김 수근이 어둡게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언제 씨앗을 뿌리고, 애를 낳아 키웁니까!"


"그러니 빨리 국혼을 준비하도록 누님과 의논을 해야지.

그만하면 혼기도 이미 꽉 찼을 터.

마침 강화섬에서 부터 정이 깊은 여인이 있고, 그 여인이 우리 편에 있다면,

일은 훨씬 더 순조로워지지 않겠느냐!"


"아, 역시 대단한 혜안이십니다 형님!

그러면 원자가 될 아이가 너 댓살 정도일 때가 가장 적절할 테니, 서둘러야 겠습니다.

하루 빨리 형님이 섭정승(攝政承) 이 되셔야, 다음 일에 가능성이라도 있지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 후궁도 좀 넉넉히 준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는 것들이야. 지금! 사부님 저런 놈이 조정의 대신이라니. 당장 끌어내려야 합니다!"


홧기가 치민 원범의 목소리가 조심성 없이 커지고 말았다.


"쉿! 대비 마마의 동생들이다. 섣불리 건들였다간 네가 먼저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좀 조용히 해라!"



김 병기의 귓등이 꿈적거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이전 효명세자가 아악과 무용을 정리 한답시고, 의궤를 찾아보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유,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말입니다. 그냥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늦지 않게 형님이 힘을 쓰셨으니 망정이지."


"시끄럽다! 아무리 우리끼리다 하더라도, 그 얘기는 두 번 다시 꺼내지 말라고 했거늘."


"아, 예. 알겠습니다. 형님! 하지만, 우리도 나이가 먹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늦추게 되면 아무리 돈이 차고 넘친다고 한들, 힘도 없어진 우리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좀 더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 수근의 입이 쭈삣 거리고 있었다.


"그 보다, 누님께서 정전의 용좌에서 보이는 단청에 눈길을 주셨다.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손을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시더군."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김 좌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전연사의 별감에게 물어보니, 그저 오래되어 칠이 바래어 진 부분이 있어서 옻칠을 새로 하면 될 것 같다고는 하는데...

신하인 입장에서는 용좌에 오를 수가 없으니, 우리는 어떤 흔적 때문에 그러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빨리 형님께서 섭정승이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봐야지 별을 따지요. 빨리 국혼부터 치르도록 해야겠습니다."


"정조 대왕께서 갑자기 승하하시기 전,

나이어린 순조 대왕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아버님에게 부탁을 하셨을 때,

순조 대왕이 약관이 되는 시기에 전하라고 하셨다."


" ... "


"그래... 아버님께서는 순조 대왕에게 끝까지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셨어.

아마 아버님 생각에도 우리 가문이 그걸 찾아내길 바라셨던 게지."


원범과 상추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김 좌근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영종 대왕이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비밀리에 채굴해서 보관해놓은 거대한 양의 금궤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보관이 된 걸 아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우리 가문만이 그 금궤를 찾는 것이 가능한 것이지. "


김 좌근을 바라보던 무리가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비장 하기까지 한 눈빛이었다.


"그러니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조심스럽게 제대로 찾아내도록 해야 해!"


"하지만 형님,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고작

그 위치를 몰래 적어둔 곳이 그 많은 어람용 의궤들 중의 한 곳이고,

또 살펴봐야 할 의궤의 종류를 적어 둔 곳이, 정전의 단청 아래라는 것 밖에 없는데,

정말 단청아래를 찾아본다면 알 수가 있을까요?"


"정조 대왕께서 왕손에게만 비밀을 물려주기 위해서,

어좌에 앉은 눈 높이에서 보았을 때에만 그것이 보일 수 있도록 , 직접 각인을 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그러니 어좌의 근처라도 가 보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도 없는 일이야."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 병기를, 김 좌근이 흠칫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만약 그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면, 모든 어람용 의궤를 샅샅이 뒤쳐 봐야겠지.

하지만 왕가들만 볼 수 있는 어람용 이라면,

그 또한 지금처럼 신하의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살펴 볼 수도 없으니..."


"네, 형님. 그러니 어찌 되었든 섭정승의 자리라도 빨리 꿰어 차야 하는 게지요!"


"그리고 숙부님. 권 돈인 대감을..."


"대감! 여기 계시우?"


김 병국의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목소리가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섭정승- 섭정을 신하가 하는 경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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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03 18:56
    No. 1

    이런 장르 중에 이렇게 술술 읽히기는 처음인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습니다. 속도를 좀 높여봐야 겠습니다.
    정말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9.03 22:54
    No. 2

    안녕하세요. 베르겐님~~^^
    너무 반가워요. 그리고, 넘 감사합니당~~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영양제 같은 베르겐님의 응원에, 열심히 홧팅~!! 하겠습니다^^
    편한밤 되시고,
    베르겐님도, 건필 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12.12 09:11
    No. 3

    잼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나라가 이리도 어려운데, 뒷주머니 찰 생각만 가득한 정치인들입니다.
    이편저편 가를 것도 없이 모두 그놈이 그놈이지요.
    이 회차에서 보듯이 그놈이 다 그놈인 겝니다.. 으이구... 그러니 얼마나 살림이 힘들었겠습니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12 15:25
    No. 4

    하윌라님 댓글이 창의 내용보다 열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난 윌라님 댓글 보는게 훨~ 재밌어요.
    오늘도 신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이 맘, 고이접어 보내오리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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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북청 소장수 +4 23.08.16 122 6 11쪽
30 공륭이의 영입 +4 23.08.15 130 6 13쪽
29 사야가의 후손 +2 23.08.14 134 6 13쪽
28 미련둥이 호위무사 +4 23.08.13 137 6 11쪽
27 백성이 훔치다 +4 23.08.12 151 5 11쪽
26 검무 추는 흥선군 +4 23.08.11 136 6 12쪽
25 기억속의 여인 +4 23.08.09 137 6 12쪽
24 절실한 거래 +4 23.08.08 139 5 14쪽
23 무사 흥선군 +4 23.08.07 159 6 13쪽
22 대왕의 비밀통로 +4 23.08.06 148 6 12쪽
21 총의 신 만나다 +4 23.08.05 163 6 12쪽
20 원래, 있었던 것 +4 23.08.04 159 6 11쪽
19 분명. 그다! +4 23.08.03 152 6 13쪽
18 복면의 검객 +4 23.08.02 152 6 12쪽
» 음모 +4 23.08.01 157 6 12쪽
16 조선의 실세 +8 23.07.31 181 9 13쪽
15 시작된 의심 +6 23.07.30 204 9 14쪽
14 흔적 +6 23.07.29 226 10 13쪽
13 난(蘭)쟁이 흥선군 +6 23.07.28 227 10 13쪽
12 물색 +6 23.07.27 261 12 14쪽
11 신료들의 나라 +6 23.07.26 292 11 13쪽
10 사인검의 주인 +6 23.07.25 308 8 13쪽
9 강화도령 +7 23.07.24 323 9 14쪽
8 상감마마 행차시다. +6 23.07.23 351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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