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연재수 :
124 회
조회수 :
17,576
추천수 :
720
글자수 :
671,647

작성
23.08.14 22:45
조회
133
추천
6
글자
13쪽

사야가의 후손

DUMMY

"대감, 오늘 말이 유. 세상에나 그렇게 통 큰 사람은 처음 보았지 뭐 유?"


"누구를 보았기에 그러는가?"


"함경도 북청 에서 온 사람인데, 그 곳에서 소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 봐요.

그런데, 돈이 어-마 어마하게 많은 것 같습디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애첩이 하는 말을 무심하게 듣던 김 좌근이 그녀가 말아주는 긴 담뱃대를 물고 뻐끔뻐끔 빨아대고 있었다.


"가질 것도 다 가져보았고 있을 것도 다 있어 본 것 같은데, 지금까지 관직생활이라는 걸 한 번도 못해 보았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 관직 생활이라는 거 한번 해볼 라면 어떻게 하느냐고 주변 양반한테 물어보니,

당연히 우리 집으로 가보라고 했던 게죠.

저 두, 돈 좀 주고 산 양반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죠."


"그래, 얼마나 주던가?"


"놀라지 마시우! 아이쿠 세상에나.

임금님 얼굴도 한번 볼 수 있게 해주고, 관직은 뭐 적당한 거 하나 알아서 달라 더만 은 ... 궤를 오백 냥이나 짊어져 주더이다."


"임금님 얼굴을 보게 해 달라고? 거 참 맹랑한 자이구만! 겁도 없이."


"제 간이 크건 작건 우리 알바가 아니고,

언제 한번 궁에 데려가서 임금님께 얼굴 한번 보이고, 관직도 그럴 사한 걸로 뭐 하나 점지해 주시구랴."


"그래, 관직이라... 종오품 부사직으로 하나 주던지 하지 뭐, 어차피 실무는 없으니.

뭐 좀 있어보다가, 제 풀에 지겨워지면 관두고 고향으로 올라가겠지."


"그래요. 거 좋으네요. 받은 만큼 뒤지지 않을만한 자리인 것 같기는 합니다 대감. 호호 ."


"내, 며칠 있다가 주상께 직접 가서 교지를 받아 임명문서를 준비하도록 하겠네.

그때 자네한테 얘기 하도록 하지."


"그래요 대감. 내 그리 전하도록 하겠쑤!"


돈을 생각하며 흡족해 하는 둘의 표정이 참 닮아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 이 하전이라는 아이. 어찌 자라서 그리 간탱이가 부풀은 거랍니까?"


"왜 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글쎄 얼마 전 우진이가 가고시마에서 특별히 구한 귀한 옥으로 만들었다며, 옥 비녀를 몇개 보내 왔지 뭐 유."


"우진이가? 시킨 일도 바쁠 텐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다고. 참 내!"


"뭐유? 그래도, 병기보다는 살갑게 구는 게 더 이뿌지 않소?

어차피 둘 다 들인 자식들이라 닮은 구석은 없지만, 병기는 무뚝뚝하니 좀 재미가 없는데, 우진이 이 녀석은 그 멀리 있어도 지어미라고 얼마나 챙기는지 모른다오."


"그래 뭐, 하나라도 마음에 든다니 됐구만. 그래서?"


여전히 담배를 빨 던 김 좌근이 혀가 꼬부라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비녀로 대비 전에 생색이라도 내야겠다 싶어서 궐에 갔다가,

마침 대비전 앞에서 그 애랑 마주쳤답니다.

그런데 그녀석이 내게 뭐라는 줄 압니까?"


"뭐랬는데?"


" ' 요즘 이판 대감댁 대문 줄이, 과거장 들어가는 줄보다도 더 붐빈다고들 하던데,

그 광경을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 고 하더이다. 글쎄!"


목을 쭉 빼고 흉내를 내는 애첩의 입술이 옴짝옴짝 거렸다.


"뭐라? 어허 참. 보자보자 하니!"


김 좌근의 눈매가 곱지 않게 실룩거렸다.


"깜짝 놀랐지 뭐 유? 왜 예전에 강무 때에도, 대감이 멋있게 쏜 화살에 초칠을 했었지 않우!"


"태어난 지 한해 만에 그 애비인 완창군이 죽고, 바로 도정궁 사손이 된 아이야!

그 나이라면, 세상모르고 한참 뻣뻣할 때이긴 하지."


"듣고 보니 그러네.

이 험한 세상에, 제 몸 사리라고 옆에서 누가 얘기 해 줄 사람도 딱히 없긴 하겠네.

쯧쯧, 저리 나대다가 제 명줄이 어찌될 지도 모르는데... 딱하네."


"아직은 어리니, 가만히 두고는 봐야지. "


"하지만, 대감. 어찌 보면 저런 인간을 대감이 부릴 수만 있다면야, 맹한 장수 몇 보다도 나을 것 같은데요?

어린 나이에도 나라를 생각 한답시고 저리 맹랑하게 구는 데,

저대로 자라서 성품이 바뀌지 않으면, 지가 모시는 주인을 위해 뭐라도 해 낼 위인이 될 것 같지 않우?"


"음... 그래, 그렇긴 하지."




****




완위각으로 오늘도 매화가 떴다.


"청계천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남촌의 민가에서 작은 방을 하나 얻어 지낸다고 합니다."


노 상추와 문규 백 선까지도 함께 나선 걸음이었다.


"아마, 저 집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당 안에 평상이 놓여있고 울타리 옆에는 작은 감나무가 뻗어있습니다,"


"몰래 나온 걸음인데, 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요즘 제가 좀 오래 보이지 않으면, 공륭이가 얼마나 수선을 떨어 대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안 나와야지!

궁에 좀 지근하게 붙어있으라니까, 일을 만들어 자꾸, 일을...!"


노 상추의 잔소리가 이어질 것 같았다.


"계시오?!"


마침 맞추어 문규가 인기척을 내고 있었다.


마당으로 몇 걸음을 들어가자, 콧물이 진득하게 말라붙은 아이가 보란 듯이 작은 고추를 드러내놓고 맨발로 아장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원범의 목소리가 참 따스했다.


"뉘시오?"


낡고 때 묻은 행주치마에 거친 손을 닦으며 다가온 여인의 눈에는, 어렴풋 두려움이 먼저 내리고 있었다.

연신 아이에게 저리 가라는 손길을 놓지 않으며, 아이 앞의 시선을 막아서는 듯도 하였다.


"여기 작은방에 계신 손님을 찾아왔네."


여인을 다독이듯 따듯한 원범의 목소리가 얼른 다시 이어졌다.


"아 네, 나리. 저기 옆방에 계시는데 ... 잠이 드셨나..?"


잠시 환하게 웃던 여인이 종종거리며 곧 무너질 듯 한 귀퉁이 방 쪽을 향해 쫒아가고 있었다.


"작은 방 나리? ... 나리?"


한참동안 대답이 없던 작은 문이 덜컹 소리와 함께 빼꼼이 열렸다.


"나리, 손님이 오셨습니다요!"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러선 자리로 원범이 문규를 앞세우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네, 주인장... 오셨습니까!"


"네, 선비님. 지난번 말씀 드렸던, 선비님을 만나고 싶어 하시던 어영대장 이십니다."


" 네. 손님을 모시기에 방이 작습니다.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는 결코 그가 거처하는 방이 누추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허름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서 있는 세상은 귀천은 없이 예의만 있을 뿐이었다.

방처럼 낡은 책상위로 펼쳐진 거친 종이위에는, 그림과 글씨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화승총 입니까?"


화승총이 부분별로 나뉘어져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직접 필사한 책도 몇 권이 펼쳐진 채 널려 있었다.


"신기비결(神器祕訣) 과 명나라의 '모원의' 가 만든 무비지(武備志) 군요.

화약무기를 다룬 병법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널려진 책 들을 바라보던 원범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드물게 조총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라 하여, 제가 먼저 만남을 청하였지요."


"아 네, 그저 지금의 화승총을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게 가능할지,

얕은 생각이지만 이리저리 구상을 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요. 임란이후 우리 조선의 조총은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을 뿐이지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참 궁금합니다."


오래된 지기처럼 그들의 만남에 어색함은 이미 걷혀져 버린 듯 했다.


"효종 대왕때 청에 파병되었던 조선의 조총부대가 러시아의 우월한 총기에 대응하여 승리하였을 때,

그들이 가진 총기의 많은 양을 노획하게 되었었지요.

하지만, 한 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에 다시 양도 하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그때에도 벌써 우리 조선의 조총부대는, 개인의 사격술에서도 청의 인정을 받을 만큼 훌륭한 수준이었지."


이번엔 노 상추가 신이 난 말투로 끼어들었다.


"그때에 러시아 측이 가지고 있던 조총은, 화승이 필요 없이 부싯돌을 철판에 강하게 때려 불꽃을 내서 격발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때에 얻은 한 정을 이용해서 같은 총기를 만들었지만, 명중률이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생산은 하지 못하였지요."


"맞습니다. 우리 조선은 임란 전 왜국의 대마도주가 진상한 세 자루의 조총이 다였지만,

전쟁을 하면서 우리가 직접 조총을 만들고, 조총부대를 만들기 까지도 가능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젊은 선비의 이야기에 원범이 장단을 맞추어 답하였다.


"다행히 때에 맞추어 항 왜 장군인 사야가 김 충선(金 忠善)이 조총보급과 조총 병들을 훈련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결과를 낳을 수가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백 선도 한마디를 보태고 있었다.


"맞아요. 그랬지요."


원범과 상추도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선비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소?"


원범이 창백하게 야윈 청년에게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말씀하신 사야가 김 자 충자 선자께서는, 저희 집안의 선대 할아버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아.. 아이쿠 이런, 그래서 선비께서 이런 남다른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었군요!"


함께 있던 이들의 동자와 입모양이 일제히 커진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당시 선비의 선대조 어르신께서는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선봉장 이셨다죠.

하지만 명분이 없는 의롭지 않은 전쟁을 따르지 않기로 하시고, 부하 오백여명과 함께 투항하신 후에 조선의 승리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당시 선조 할아버님께서는 사성 김해 김 씨의 성을 받고 공로를 인정받아,

정 이품 상 정헌대부 벼슬까지 오르셨습니다.

그 후로 경상도 우록리에서 대대로 가문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헌데, 선비께서는 어찌하여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여전히 궁금한 표정의 원범이 집요하게 묻고 있었다.


" 가문에서는 이제 양반에 어울리는 문인의 길을 가기를 원하지만,

저는 아버님과 생각이 달라서,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려니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선대 조부님께서 대대로 남기신 조총을 아버님 몰래 몇 번을 해체하다가 들키자,

아버님께서는 유품도 보존해야하지만 제 고집을 꺾게 하시겠다며, 조부님의 총을 단단히 싸서 집 담을 새로 세우시고 거기에 묻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아이쿠, 그동안 고충이 많으셨겠습니다!"


"그래서 잠시 집을 떠나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편지글을 써서 두고,

이렇게 나와서 식견을 쌓고 있는 중이지요."


"아, 네.. 정말 대단한 열정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자는 어떻게..."


"허락을 받지 않고 나온 걸음이다 보니, 벗들에게서 조금씩 노자를 얻어서 온 것과 제가 가져왔던 물건들을 하나씩 팔면서 지냈습니다.


"저런...!"


"하지만 그도 이제 여의치 않은 터에, 마침 이집의 주인장이 입소문을 내어 주어서,

잡과 라도 준비하려면 글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을 조금씩 봐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집안의 자제께서 지금껏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집안 어른들의 뜻을 거역하고 마음대로 행동한 대가로는,

아직도 고생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조선의 병력에 큰 도움을 주실 분을 만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여 괜찮으시다면, 궁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를 하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야, 제가 궁에서 조금 더 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만들어 볼 수도 있다면, 마다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원범의 입가에도 밝은 웃음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다행입니다. 그럼 얼마 후, 군기시에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주상전하의 교지를 받고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빨리 가능이나 하신 일인지..."


젊은 선비가 꽤나 당황한 표정이었다.


"선비의 이름이 ..."


원범도 기분이 많이 좋아 보였다.


"김 유천 이라고 합니다!"




****




"공륭아, 사가에 심부름을 좀 다녀와야겠다!"


"네, 전하!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원범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비단주머니를 서 탁 아래에서 꺼내어 들었다. 묵직해 보였다.




*화승- 화약 심지의 불을 붙게 하는 데 쓰는 노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24 13:51
    No. 1

    사야가의 후손까지. 너무 좋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9.25 00:11
    No. 2

    ㅋㅋㅋㅋ, 네~ 베르겐님.
    휴일은 잘 보내셨나요^^
    무엇이든, 이뿌게 봐주셔서.. ㅎ,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창덕궁의 의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외숙 염 종수 +4 23.08.22 112 6 12쪽
36 왕의 길 +4 23.08.21 120 6 12쪽
35 암행어사 노 상추 +4 23.08.20 128 7 12쪽
34 의적 장가들다 +4 23.08.19 132 7 11쪽
33 거친 만남 +4 23.08.19 124 7 13쪽
32 노상추의 연인 +4 23.08.17 124 6 11쪽
31 북청 소장수 +4 23.08.16 121 6 11쪽
30 공륭이의 영입 +4 23.08.15 130 6 13쪽
» 사야가의 후손 +2 23.08.14 134 6 13쪽
28 미련둥이 호위무사 +4 23.08.13 136 6 11쪽
27 백성이 훔치다 +4 23.08.12 150 5 11쪽
26 검무 추는 흥선군 +4 23.08.11 136 6 12쪽
25 기억속의 여인 +4 23.08.09 137 6 12쪽
24 절실한 거래 +4 23.08.08 138 5 14쪽
23 무사 흥선군 +4 23.08.07 158 6 13쪽
22 대왕의 비밀통로 +4 23.08.06 148 6 12쪽
21 총의 신 만나다 +4 23.08.05 162 6 12쪽
20 원래, 있었던 것 +4 23.08.04 159 6 11쪽
19 분명. 그다! +4 23.08.03 152 6 13쪽
18 복면의 검객 +4 23.08.02 151 6 12쪽
17 음모 +4 23.08.01 156 6 12쪽
16 조선의 실세 +8 23.07.31 180 9 13쪽
15 시작된 의심 +6 23.07.30 204 9 14쪽
14 흔적 +6 23.07.29 226 10 13쪽
13 난(蘭)쟁이 흥선군 +6 23.07.28 227 10 13쪽
12 물색 +6 23.07.27 260 12 14쪽
11 신료들의 나라 +6 23.07.26 291 11 13쪽
10 사인검의 주인 +6 23.07.25 308 8 13쪽
9 강화도령 +7 23.07.24 323 9 14쪽
8 상감마마 행차시다. +6 23.07.23 351 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