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연재수 :
124 회
조회수 :
17,593
추천수 :
720
글자수 :
671,647

작성
23.08.16 23:13
조회
121
추천
6
글자
11쪽

북청 소장수

DUMMY

그렇게 나온 상추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잘 아는 사람이에요 상추어른?"


"양순아, 너는 그 아버님 이라는 소리는 잘 하지도 않던 애가, 왜 하필 거기서는 아버님이라고 막 떠들어대 싸?

그것도 주막 안이 떠내려갈 정도로!"


"그럼 거기서, 상추어른 혼자 막 가는데, 상추 어른 가지마세요. 라고 해요? 상추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사대부 분위기라면서요. 하도 조신하게 굴 라고 해서 신경 좀 써봤는데, 치.."


"알았다. 그냥 가자, 조용히."


"사연 있는 여인이세요?"


"말하자면 길다. 나중에 얘기해 주마. 천천히..."




****



가고시마에 도착한 배에서 내린 김 병기가, 아우인 김 우진을 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짤딱막한 키에 털이 숭숭 난 맨 다리를 내 놓고 다니거나, 둘둘 뭉친 천 자락을 궁둥이 선에서 꽉 조여 맨 왜인들의 틈 사이에서,

푸른빛이 화사한 도포자락을 흩날리며 서있는 조선 청년의 모습은, 유별나게 훤칠하고 멋스럽게 보였다.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 병기의 모습을 찾아낸 그가, 이내 한량이처럼 해죽해죽 웃고 있었다.


"형님, 오셨쑤?"


"사람을 보내면 될 걸, 예까지 나오고 그러느냐!"


"하나뿐인 형님 아니우, 어떤 형인데, 내가 잘 챙겨야지요."


"녀석, 말하는 거 보면 뼛속까지 한량이구나!"


"그나저나 어쩐 일입니까 형님?"


"아버님이 보내셨다. 훈련하는 병사들의 모습도 직접보고,

어찌하여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드는 것인지 상황을 알아보고 오라고 하셨다!"


"역시, 우리의 아버지 김 좌근 대감은 꼼꼼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자식이라고, 믿기는 믿으시는가 보우. 하 하."


"녀석 말하는 것 하고는!"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출출하실 텐데, 좋은 곳에 가서 요기나 하고 갑시다. 형님!"


"아니다. 훈련장으로 먼저 가보도록 하자!"





훈련장은, 드넓은 평지에 요새처럼 지어진 작은 부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는 않구나!"


"형님, 여기 가고시마에는 임란 후에 잡혀 든 조선인 포로들이 가장 많은 곳이잖소!

저들을 버린 조선을 잡아먹겠다고 하면, 여기 왜 인들보다도 몇 배나 더 의지가 충전할 자들 일거요."


어느새 바다둘레로 지는 석양이, 세상을 태워버릴 듯이 검붉은 빛으로 사납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님이 준비한 이백 명은 이곳에 있는 것이냐?"


"이백 명은, 이라뇨. 형님? 그러면 뭐 얼마가 더 있다는 말씀이우?"


"나머지 이백 여 명은, 나가사키 만에 있는 다카보고 섬 이라고 했느냐?"


"네?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아.. 아. 그건 아버님의 병사가 아닙니다.

그건 제가 따로 키우는 애들이에요.

여기 이 백 명의 무사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수시로 인원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가 키우는 애들 중에서 바로 충당하곤 하지요"


"네가 병사들이 왜 필요한 것이냐?"


"형님. 이제는 이런 게 사업이유!

요즘 같은 시기에, 이 곳 저 곳에서 필요로 하는 무사나 자객들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이 번엔 어떻게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아버님께 신세를 좀 진 셈이긴 한데,

그래도 지금껏 문제 일으키지 않고, 이 백 명의 군사를 잘 키우고 있지 않았쑤.

그럼 뭐 잘 치고 박은 셈이죠. 안 그래요 형님?"


연신 눈 웃음을 띤 채, 김 병기를 향해 으쓱거리기 까지 하는 김 우진의 모습에, 능청스러움이 가득해 보였다.


" 그나저나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게 없습니까, 형님은?"


"아버님이 말씀하시기 전부터, 내 이미 네가 하는 짓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


"아버님은... 아직 모르시는 거죠. 형님...?"


"네가 몰래 사병을 키우는 걸 아버님이 아셨으면, 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

우린 그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존재들이야. 너와 나 또한 그렇고...

그냥 좀 더 특별한 심정으로 아버님께 충성을 바쳐 줄, 용감하고 머리 좋은 개가 필요하셨을 뿐인걸 모르는 게야?"


"내 차라리 진즉에 형님하고 의논을 해서 동업이라도 할 걸 그랬 쑤.

이제껏 이것들을 먹여 살린다고, 내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네가 몇 명의 자객을 만들어 키우든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상관하지는 않겠다.

아버님께도 당분간 비밀로 하겠다.

하지만 후일 배를 타고 저 물을 건너오는 머리수는, 너까지 딱 이백 한명이다!

알겠느냐?"


"거 참,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해도, 사업은 사업입니다.

만약에 인원이 더 필요하다고 해도, 두 당 계산이 되지 않으면 저도 무턱대고 보내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




명경대비가 나서지 않는 편전은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전하, 이전에 말씀드렸던 창신 교위에 제수된 구 만석 입니다."


김 좌근의 목소리가 편전 안으로 울리자, 주변의 소란은 알아서 잦아들었다.


임금이 제수한 벼슬이었다고는 하지만, 원범이 전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은 거무잡잡 하고 머리는 커다랬다.

입술은 어디에서 물렸던 적이라도 있는지, 아랫입술이 발랑 뒤집어진 것이 퉁퉁하게 보였고

키는 공륭이와 비슷하게 작았다.


단 학 흉배 위에 걸친 흑각대가, 저리도 몸통에 꼭 맞게 끼워져 있는 것을 본 적도 없었던 듯했다.


"첨 뵙겠씀메다레 대신들 나리, 내레 함경도 북청에서 내려온 구 만석이라고 하옵메다!

소만 키우다 이런 덴 처음 드러와봐서리, 눈꾸녱이가 신이 났데지 뭡 메까. 하하!

우쨋끄나 임금님, 앞으로 잘 좀 부탁 드립메다"


"저 저! 저런, 저렇게 무식한 놈이 창신 교위 임명장을 받는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판 대감!"


"어-허 참, 이게 무슨 일입니까!"


편전 안에 미풍이 일어나듯, 순식간에 다시 일어난 어수선함 이었다.


"함경도에는 소를 많이 키운다고 하지요. 창신 교위?

어떻게 그곳의 풍토와는 잘 맞는 일인 것 같습니까?"


임금의 부드러운 음성에 한층 더 분노한 대신들이, 더 큰 소리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유, 말해 뭐함메까! 쩌 아래 농사 짓는데 사용하는 소에 비하믄, 산 타넘고 지 멋대로 풀 뜯어 먹고 이리저리 댕기던 놈들이 돼 나서리,

힘도 좋고 덩치도 커다란거이, 고놈의 게기맛도 쨉 도 되지 않는 게지비요!"


"그렇군요...!"


주변의 어수선함을 뚫고 원범과 구 만석의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는 김 좌근을 따라, 주변이 다시 침묵을 찾아 가고 있을 때였다.


"참으로 순박한 사람입니다. 지금의 그 마음 오래도록 변하지 말고 착하게 간직 하세요!"


웅성거리던 대신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임금과 저 무뢰한이 벌써 지기나 된 듯이 말을 섞고 있었다.

편전 아래 대신들의 눈꼬리가 곱지 않았다.


"어허 참, 예법과 도리가 어찌 이런 곳에서, 저렇게 엉망이 될 수 있답니까!"


"실로 통탄 할 일입니다!"


임금과 김 좌근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던 대신들이 연이어 양반스런 말을 곱씹어댔다.




****




"공륭아, 내 잠시 형님의 사가에 다녀와야겠다."


"네, 전하!"


공륭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어쩌면 들떠 있는 것이, 잔뜩 설렌 표정이었다.


"어느 쪽으로 나가시옵니까?"


"뒤로!"


"그럴 줄 알았사옵니다 전하! 아무 걱정 없이, 완수 하고 오십시요."


"...? ... 뭘?"


원범에게 바짝 다가온 그의 목소리가 은근히 작아지고 있었다.


"머리 수건은 챙기셨사옵니까? 그게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전하!"


"오늘은 그거 아니다. 사부님과 의논 할 일이 있다."


"그러셔야죠. 계획도 없이 움직이다간, 옥체가 상하실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계획, 둘째는 안전, 그리고 세째도 안전입니다 전하!"


"공륭아, 어째 신이 난 것 같구나!"


"아니옵니다. 걱정이 앞선 것뿐이옵니다 전하.

부디 옥체를 생각하시고, 조심히 움직이시고 속히 돌아오시옵소서!"


결의에 찬 공륭의 배웅을 뒤로하고, 또다시 원범과 백 선이 후원 쪽으로 사라졌다.


"공륭이가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달라졌습니다.

마치 혼자서 첩자 놀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전하. 전하의 출궁에 많이 예민해 진 것 같습니다."


"대전 안으로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도,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살핍니다.

기미상궁도 감시하는 눈치인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전하!"


"그런데, 그게.. 많이 귀여워 지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들의 이야기는 영평군의 집 앞에 도착 할 때 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후원으로 난 작은 문쪽으로, 원범과 백선이 들어섰다.


"이-얍! 얍! 덤벼 덤벼."


노 상추의 별채 앞까지 이르자, 오늘도 양순이의 무술 연습 소리가 담을 넘고 있었다.


"양순아, 별로 나아진 건 없구나!"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나타난 원범을 알아차린 양순이가, 입술을 뾰족이 내민 채로 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원범 오라비는 요즘 초칠 수련중이래요?

만날 만나면 초칠만 하려고 해요! ...치."


"그래그래 사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건 맞지.

처음엔 칼이라고는 부엌칼만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던 애였는데. 그렇잖느냐?"


원범을 바라보는 양순이의 입술이 뭔가를 씹는 듯이 오물거리고 있었다.


"이거 사부님이 만들어 주신, 눕지 않는 인형이구나! 나도 이거 많이 했었다.

둥그렇게 깍은 나무통 아래 부분에 납을 넣어서, 넘어져도 무거운 아래 부분을 바닥으로 두고 일어서려고 하는 원리지."


"사부님이 원범 오라비 보다 내가 조금 더 낫다고 하시던데요?"


"그거, 너 듣기 좋으라고 하는 거짓말이야. 당연히 내가 더 잘했지.

너는 지금처럼 나무통의 팔이 세 개 밖에 되지 않잖아.

난, 길고 짧은 일곱 개의 팔에 무서운 칼과 창이 막 달려 있었다고! 그러니까, 내가 더 잘하는 거야!"


양순이를 놀려먹는 게 재미있어서 시작되는 고집 싸움이 여지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나무통에 뭐라고 써 놓은 거야? 이상한 글자인데?"


원범이 나무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지만, 알 수 없는 언문 글귀가 나무통위로 휘갈기듯 써내려져 있었다.


'ㅂㅅㅈ 우버'


"뭔 글자야? 양순아."


"배신자 원범"


곁에 서있던 백 선이 먼저 대답했다.


"내가 왜 배신자야!"


"나 보러 온 거 아니더냐? 거기서 놀다 가려고?"


노 상추였다. 방문을 열어젖힌 그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25 09:59
    No. 1

    잘 보고 갑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9.25 20:02
    No. 2

    네~ 베르겐님,
    오늘도 이렇게 들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녁 맛있게 드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12.26 12:27
    No. 3

    오~~ 잼있어요
    서사가 탁월하군요.
    아주 멋져요.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를 짧게 간략히 적는 노하우가 있으신 느낌입니다.
    아주 좋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26 14:21
    No. 4

    윌라님~~
    칭찬이.. 곰도 춤추게 합니다~ㅋㅋ
    감사해요.
    엉덩이만 들썩 거릴게용.^^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창덕궁의 의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외숙 염 종수 +4 23.08.22 112 6 12쪽
36 왕의 길 +4 23.08.21 120 6 12쪽
35 암행어사 노 상추 +4 23.08.20 128 7 12쪽
34 의적 장가들다 +4 23.08.19 132 7 11쪽
33 거친 만남 +4 23.08.19 125 7 13쪽
32 노상추의 연인 +4 23.08.17 124 6 11쪽
» 북청 소장수 +4 23.08.16 121 6 11쪽
30 공륭이의 영입 +4 23.08.15 130 6 13쪽
29 사야가의 후손 +2 23.08.14 134 6 13쪽
28 미련둥이 호위무사 +4 23.08.13 137 6 11쪽
27 백성이 훔치다 +4 23.08.12 151 5 11쪽
26 검무 추는 흥선군 +4 23.08.11 136 6 12쪽
25 기억속의 여인 +4 23.08.09 137 6 12쪽
24 절실한 거래 +4 23.08.08 139 5 14쪽
23 무사 흥선군 +4 23.08.07 159 6 13쪽
22 대왕의 비밀통로 +4 23.08.06 148 6 12쪽
21 총의 신 만나다 +4 23.08.05 163 6 12쪽
20 원래, 있었던 것 +4 23.08.04 159 6 11쪽
19 분명. 그다! +4 23.08.03 152 6 13쪽
18 복면의 검객 +4 23.08.02 152 6 12쪽
17 음모 +4 23.08.01 156 6 12쪽
16 조선의 실세 +8 23.07.31 181 9 13쪽
15 시작된 의심 +6 23.07.30 204 9 14쪽
14 흔적 +6 23.07.29 226 10 13쪽
13 난(蘭)쟁이 흥선군 +6 23.07.28 227 10 13쪽
12 물색 +6 23.07.27 261 12 14쪽
11 신료들의 나라 +6 23.07.26 292 11 13쪽
10 사인검의 주인 +6 23.07.25 308 8 13쪽
9 강화도령 +7 23.07.24 323 9 14쪽
8 상감마마 행차시다. +6 23.07.23 351 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