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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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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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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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둥이 호위무사

DUMMY

화살은 원범의 다리 쪽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 사이를 가로막은 건, 흥선군이 익살스럽게 들이 민 통통한 토끼 한 마리였다.


"아이쿠 전하! 이런 망극할 일이!!"


"전하!"


"전하, 무탈 하시옵니까!!"


궁인들이 내 지르는 비명소리에 주변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급하게 주군의 안위를 확인 한 백 선이, 화살이 날아 든 곳을 향해 재빨리 내달리기 시작했다.


"... 전하!!"


여전히 주변의 궁인들은 '전하'를 외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도, 깊은 숲속의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 가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괜찮다! 응당 활이 날아다니는 사냥터에, 조심성 없이 함부로 나다니는 사람이 잘못 된 것이지!"


의외로 차분한 원범의 목소리였다.


"흥선군 대감, 감사하오. 제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은 방금 저쪽에서 토끼를 한 마리 잡았사온데, 우연찮게 전하의 모습이 보여서 이곳으로 달려 오던 길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하도 복실복실하게 생겨서 전하께 바치면 좋아할 듯 하여서지요."


놀란 궁인들의 웅성거림이 아직 잦아들고 있지 않았다.


"이제 조용히 좀 하라!"


그리고 그의 손짓에 따라 궁인들은 모두 다섯 보 밖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화살은 의외로 작은 토끼의 몸을 채 뚫고 나가지는 못한것 같았다.

흥선군이 하얀 털 사이로 꽂힌 화살을 뽑아 들었다.

핏물에 젖어 있었지만 역시 화살엔 촉이 꽂혀있지 않았다.


"목숨을 노린 것 까지는 아니군요. 겁을 좀 주고 싶었나 봅니다!"


이쪽의 말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화살을 본 궁인들은 또다시 놀란 듯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이 일은, 절대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라!

궐 안이 괜한 일로 어수선해 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흉흉한 소문만 만들어 낼 뿐이지."


지엄한 임금의 명이었다. 원범이 둘러 선 궁인들을 한명 씩 바라보았다.


"과인의 말을 허투루 여기는 자가 있다면, 지금 이 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온전치 못할 것이다!"


"명심 하겠나이다 전하."


한 목소리와 같은 단단한 음성이 모아졌다.


잠시 후 홧 기를 잔뜩 머금은 백 선이 돌아왔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하!"


"두세요. 호위 별감. 말이 나가지 않으면,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놈들은 임금을 놀라게 할 무리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서, 왕의 권위를 누그러뜨릴 심사였습니다.

그저 임금이 겁먹고 소심해 지길 바랬겠지요."


"전하!"


아직도 퉁퉁 불은 얼굴로, 이번엔 흥선군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고 있는 백 선 이었다.


날아드는 화살 하나 지키지 못 할 일도 아니었지만,

흥선군이 속삭인, '그대로 있으시오!' 를 어설프게 믿은 자신의 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홧기가 삭지 않은 백 선을 향해, 흥선군이 찡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시면서-!'


흥선군의 낮은 목소리를 들은 듯하였다.


물론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백 선 또한 그의 주군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미련 둥이로만 여기게 될 것이었다.


그것도 조선의 한량인 흥선군의 토끼에게 덕을 본, 임금과 호위 무사였다.




****




"이건 건륭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꽃병인데... 이게 여기에 있구만!

그리고 이 옷 벗는 여인상은 요즘 유리창에서도 인기가 꽤 많은 물품인데, 옥으로 만든 여인상이어서 보기만 해도 매끈매끈 합니다.

자꾸 만지고 싶겠어요 하하."


"농은 두고, 값이나 잘 치뤄 주시오!"


"그러지요. 자 봅시다. 자개로 만든 담뱃잎 통에, 아하.. 이건 명조 때의 금제기가 아닌가!

값어치가 좀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호박으로 장식된 패철...

귀한 게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어디서 이런 것들이..."


"물건의 출처는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예의지요. "


"허허, 젊은 사람이 딱 부러져서 참 좋습니다."


"저기에 몇 가지가 더 있으니, 금과 은으로 각각 오십 냥씩 쳐 드리도록 하겠소"


"좋습니다!"


"그런데 젊은 양반, 이제는 큰돈을 벌려면 이런 소소한 귀물로 재미를 보는 때는 지났답니다."


"무슨 소리요?"


"이제는 이런 물건보다는 말이오.

다른 나라의 상인들이 원하는 건, 노예로 팔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 이라는 거지요!"


"무슨 말을 하는 게요. 사람이 사람을 팔다니! 그것도 노예로!"


"어허 참, 저기 저 밖에 조선 땅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이양선 중에,

노예로 팔 사람을 싣고 가기위해 기다리는 배가, 몇 몇 척은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오?"


문규가 열이 많이 오른 모양이었다.


"어차피 조선의 양난 이후 때를 생각하면 말이오, 노예를 파는 일이 지금은 새발에 피 정도도 지나지 않소.

사람이 사는 법이 어디 쉽게 바뀌어 지기야 하겠소!"


"조선 땅에서 그런 소리나 할 거면, 이제 다시는 조선 땅 밟을 생각 같은 건 꿈도 꾸지 마시오!"


"참 모르시오. 젊은 양반,

이런 규모의 수입물품 가게를 하면서, 다른 나라 상인들이 원하는 물품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소!"


"그럼, 사람의 몸이 정말 가격이 매겨지고 팔고 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요?"


"거참, 사람하고는... 눈에 보이는 것만 다겠소?

해가 지면 각 지역의 나루터에서, 몰래 하루에 팔려나가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그래서, 어디로 간단 말이오. 그들은..."


"그야, 마카오나 인도 포르투갈 쪽이 많겠지요. 가깝게는 왜국에도 팔려 간다오.

그놈들이 개중에도 참 독하지. 돈이 없으면 제 식구들도 하나씩 팔아 치우는 놈들이 아니겠소.

그런 상황이니, 조선 땅에서 싸게 사서 다른 나라로 비싸게 되파는 거지."


"우리 조선에서는 가족을 파는 사람은 없을 텐데, 어떻게 노예가 생겨난다는 말이오?"


"어허 참. 곱게만 자랐나!

백성들이 세금을 못 내면, 관원들이 그 집의 아이라도 하나씩 잡아가지 않소.

하지만 그렇게라도 되는 일이면, 밀린 세금은 탕감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거지."


"아니면?"


"아니면, 몰래 야반도주를 하거나 죄를 짓고 도망한 사람이 몰래 이 땅을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겠소.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배를 알선한다는 녀석들에게 대부분 낚이는 거지.

소개비에 식구 수대로 배 삯까지 힘겹게 구해 줘도, 그 배가 노예꾼들이 기다리는 배라는 걸 어떻게 알 길이 있나. "


청나라 밀매 업자의 이야기에, 문규가 의자위로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한 번 길을 잘못 접어 들면 말이오. 돈도 뺏기고 몸도 뺏기는 거지. 아녀자는 뭐, 말 할 것도 없잖소."


"조선에서는 아무 힘도 쓰지 않는 것이오?"


"웬걸. 그걸 한번 눈 감아 주면, 나라에서 받는 녹봉의 몇 갑절은 순식간에 챙기는데.

그냥 몇 번 해먹고 걸리기 전에 손 털고 마는 게지."


밀매 업자에게 이미 조선의 길 잃은 백성은, 그들의 노획품쯤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 그럼 금은 궤는 잠시 후에 바로 싣고 올 테니, 저 물건들도 잘 담아 두도록 하시오!"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 문규였다.




****




" 우리 같은 사대부가의 보물만 훔치는 걸보니, 아마도 '명화적'이 다시 규합된 게 아니겠소!"


"아니오, 그 보다는 좀 더 치밀해 지고 머리를 쓰는 걸로 봐서, 양반 사족들도 함께 가담이 된 것 같소.

그러면 숙종 대왕때 양반들을 괴롭히던 '녹림당' 이 다시 규합된 것이 아니겠소."


"어쨌든, 이 놈들이 간도 크지!

지들이 다녀갔다고 훔친 물건 대신 흰 머릿수건을 두고 가는데, 그걸 보면 염장이 뒤틀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저는 두 번 입니다. 두 번이나 털렸다구요!

이 겁도 없이 설쳐 대는 녀석들을 빨리 잡아서, 저 동대문 가 큰 길목에 목 따로 몸 따로 걸어 둬야지요.

두 동강난 몸뚱아리를 살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효수해야 된다 구요!"


"아이쿠 이런, 좌찬성 대감은 꽤나 열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말해 무엇 하겠소! 그렇다고 추잡스럽게 개를 집안에다 풀어두고 다니게 하기도 좀 그렇잖소.

좀 도둑 잡겠다고, 격 없이 똥까지 아무 대나 싸대는 개를 말이오!"


오늘 편전 안은 시끌벅적했다.


명경 대비가 수렴의 뒤로 들지 않는 날이었다.

편전 안은 여지없이 서열 잃은 닭장처럼 시끄러운 모습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던 원범이, 자신의 목을 슬며시 어루만지며 단청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좌근 또한 원범의 눈길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전하! 감축 드리옵니다.

선대왕의 국상기간이 지나고 금혼령이 내려진 후, 대왕 대비마마의 명으로 가례도감을 설치하고 국혼의 절차가 진행 중이옵니다."


"알고 있소."


"이제 삼간택이 끝난 규수들이 별궁에 머무르고 있사오니,

머지않아 최종간택을 가려 길일을 택일하고 국혼을 진행할 것이옵니다."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시끌벅적 하던 편전 안이 잠시 질서를 찾은 모양이었다.


별안간 그녀가 생각났다.

지금 별궁에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김 좌근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함께 들고 있었다.


"알겠소!"


원범은 별로 웃지 않았다.


"하옵고 전하. 수소문한 끝에, 전하의 외숙부를 드디어 찾았사옵니다!"


김 좌근이 뜬금없이 내 뱉은 말이었다.


"무슨 말이오 이판?"


술렁이던 조정안이 금 새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궁에 들어 오신지가 어언 두해가 다 되었사오나, 일가친척이 없이 외로움을 느끼시는 모습에

소신 그동안 몸 둘 바를 몰라 하였사옵니다.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하의 친척을 찾아 수소문을 하던 중, 드디어 외숙이 되시는 분의 생사를 확인할 수가 있었사옵니다."


"어디에 계시오?"


"성함이 염 종수라고 하는 이옵니다.

지금은 파주 땅에서 한미한 벼슬로 근근이 생을 이어가고 있사온데, 전하께서 윤허하시면 궁에 들이도록 하겠나이다!"


"과인이 어릴 적 외삼촌댁에 잠시 맡겨진 적이 있습니다.

워낙 어릴 적의 기억이라 얼굴모습도 똑바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외삼촌이 살아 계신다면, 반드시 만나고 싶습니다. 빨리 궁으로 모셔오세요. 이판."


"네, 알겠사옵니다 전하!"


원범의 얼굴에 간만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패철 – 휴대용 나침반

*명화적 – 횃불을 들고 떼를 지어 부잣집 등을 습격하던 도적의 무리. 주요 구성원은 행상 승려 걸인 농민 품팔이 등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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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8.15 15:06
    No. 1

    배움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술술 읽습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8.15 18:14
    No. 2

    항상, 고맙습니다.
    베르겐님~
    더 노력 하겠습니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12.25 22:06
    No. 3

    상당히 좋습니다
    이번 회차는 속도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26 00:28
    No. 4

    하윌라님 피곤하실텐데,
    댓글까지 살뜰히 챙겨주시다니..
    감사히 받아서,
    응원의마음 잘 간직하였다가,
    다음글은 더 열심히 쓰겠씀미다용~~^^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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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공륭이의 영입 +4 23.08.15 130 6 13쪽
29 사야가의 후손 +2 23.08.14 134 6 13쪽
» 미련둥이 호위무사 +4 23.08.13 137 6 11쪽
27 백성이 훔치다 +4 23.08.12 150 5 11쪽
26 검무 추는 흥선군 +4 23.08.11 136 6 12쪽
25 기억속의 여인 +4 23.08.09 137 6 12쪽
24 절실한 거래 +4 23.08.08 138 5 14쪽
23 무사 흥선군 +4 23.08.07 159 6 13쪽
22 대왕의 비밀통로 +4 23.08.06 148 6 12쪽
21 총의 신 만나다 +4 23.08.05 163 6 12쪽
20 원래, 있었던 것 +4 23.08.04 159 6 11쪽
19 분명. 그다! +4 23.08.03 152 6 13쪽
18 복면의 검객 +4 23.08.02 152 6 12쪽
17 음모 +4 23.08.01 156 6 12쪽
16 조선의 실세 +8 23.07.31 181 9 13쪽
15 시작된 의심 +6 23.07.30 204 9 14쪽
14 흔적 +6 23.07.29 226 10 13쪽
13 난(蘭)쟁이 흥선군 +6 23.07.28 227 10 13쪽
12 물색 +6 23.07.27 261 12 14쪽
11 신료들의 나라 +6 23.07.26 291 11 13쪽
10 사인검의 주인 +6 23.07.25 308 8 13쪽
9 강화도령 +7 23.07.24 323 9 14쪽
8 상감마마 행차시다. +6 23.07.23 351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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