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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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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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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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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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 추는 흥선군

DUMMY

"많이 컷어요!

그, 말하는 거 한번 보세요. 굳이 하려면 가벼운 걸로 하나 하라구요?

아니, 이게 뭐 시장장터에서 물건 고르듯 하는 일인가요?

임금 이라면서 생각이 없어도 어찌 그리 없는지, 어허 차암 내!"


"글쎄 말입니다 우상!

그나마 우상이 효명세자의 이야기까지 건드려 놓으니, 대비께서도 발끈하신 게지요.

아니면 이번에도 풍양 조 씨 꺾는 일은 물 건너갔을 겝니다."


"그래요. 그렇고 말구요. 권 돈인 대감도 낙담할 일은 아니에요.

육십 줄도 반이 넘은 노인이 이제 막 유배를 시작했는데, 몇 번을 이배(移配)하다보면 힘이나 남아나겠습니까!

아마도 살아서 다시 얼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네, 그렇게 되어야지요. 항상 걸리적거려서 애를 먹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참에 조 씨 일가의 탄핵으로 유배중인 김 흥근을 다시 불러들이라는 게, 이판 대감의 뜻인 것 같아요.

보란 듯이 조정에 다시 복직 시킨다는 게지요."


"아 하, 그거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기분 좋은 날에, 김 좌근 대감은 오시지 않는 겝니까. 대사헌 영감?"


"안 그래도 퇴청 길에 따로 말씀을 드렸건만, 오늘 저녁엔 바빠서 안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야 뭐, 그 나합 부인이 오늘 밤 선약을 해 두었던 게지요. 하하!"


"맞아요. 그것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그 술 좋아하는 양반이."


"첩이라도, 그렇게 나라의 녹보다도 몇 갑절이나 많은 돈을 벌어 대는데, 나 같아도 업고 살겠습니다.

헌데 조선 땅의 돈은 죄다 그 집으로 모이는 것 같은데, 그 많은 돈으로 뭘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라라도 하나 사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지요. 하하!"


"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돈만 많다면야 이 꼴 저 꼴 안보고, 나라라도 하나 사서 따로 나가 살아도 되지요. 하하 !"


"그래도 말조심 하세요. 아무리 농이라도 유생들의 귀에 잘 못 들어가면,

또 역모니 뭐니 해서, 시끄럽기만 합니다. 판서 대감."


"그렇게 나라 살림에 어두워서 야. 제조 영감.

지금은 김 좌근 대감에게 잘못 보이면, 그게 바로 역모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라구요!"


"..."


"자자, 다른 이야기는 두고, 술이나 한잔 합시다.

이게 그 청나라 유리창에서도 구하기 힘들다는 금이 상감된 유리병이 아니겠소!

술이 담긴 색이 그대로 드러나니, 술이 아니라 신선이 마시는 선주가 따로 없습니다."


그들의 요사스런 이야기가 끊어질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도깨비가 따로 없네. 저런 것들이 높은 자리는 다 꿰차고 앉았다니."


대사헌 이경재의 집 솟을지붕위에 걸터앉은 원범과 상추가,

외 별당의 열려진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소리에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원범아, 보물만 훔칠 거면,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날을 잡은 게야!

저렇게 짖어대는 소리를 언제 까지 들을 거야!"


"오늘 이 곳에 함께 모인다고 하길래, 일부러 시간에 맞춰 들러 본 거에요.

적을 알아야 대비를 하죠."


지붕위에 걸터앉은 노 상추가 불편한 지,

오늘은 지붕위에 함께 걸터앉은 백 선을 연신 곁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호위 별장께서는, 오늘 이 곳에 어떻게 발걸음을 했는지... 괜찮소?"


백 선이 아무 말도 없이, 아래 방안에서 웅성거리는 이들만 바라보는 척을 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따라 온 거예요."


"참 난처 하겠쑤. 무사 양반, 지붕 위까지 와서 임금을 살피려니."


여전히 못 들은 척 하는 백 선을 향해, 상추가 씹는 입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 화전민 촌의 사람들은 좀 어떻습니까?

돈도 식량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겨울은 무사히 날 수 있겠습니까?"


"그보다, 화전민 촌의 사람들 수를 좀 나누어서 작은 숫자로 터전을 만들도록 해야겠다.

요즘 어떻게 소문이 탓는지. 야반 도주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긴 것 같아!"


"우리가 인도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화전민 촌을 찾아낸다는 건가요"


"이제 화전민 촌의 상징은 백 수건이야!

살 길이 막막한 이들이 들은 말은 있어서, 지게에 백 수건을 한 쌍씩 묶어서 나루터 근방에서 어슬렁거리고 한다는 군.

어쩌다 산 아래로 내려온 산 채 식구의 눈에 띄어서,

한 눈에 봐도 딱한 사람들 같으면, 우리가 보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안 데리고 갈수가 없다고 하더구나."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 너무 위험합니다."


"내 그리 일러는 두었는데,

그들이 어려운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다보니 남 일처럼 여기지를 못하는 거지.

그러니 촌락의 규모를 작게 나누어서, 한꺼번에 외부에 노출되는 일을 막아야 할 것 같다."




"아이쿠, 이런 이런 .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렇게 한 상 차려놓고 놀 거면서, 어찌 이 몸을 부르지 않으셨소!"


흥선군 이었다.

호기롭게 별당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 저 보게. 말도 안했는데, 어찌 이렇게 또 나타난다는 말인가!

술과 고기 냄새를 맡는 데는, 정말 개가 따로 없 구만. 어허 참!"


그가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신들은 그 만큼 흥선군이 만만하다는 뜻이었다.


"조용하시오 대사헌 영감. 저 개 주인이 김 좌근 대감 인지도 모른다오.

애첩 나합 부인에게 스스럼없이 형수님 이라고 부른다고 하지 않소!"


"맞소, 이제 왕실의 권위가 어디에 있기나 하겠소.

술이나 좀 멕여 보냅시다."


"그래도 술상 분위기 띄우는 데는 또 저만한 인물도 없지요.

오늘은 또 어찌 놀다 가려나. 허허!"


"오셨소. 흥선군 대감.

대감이야 이리 술 냄새를 잘 맡는 위인인데, 뭐 미리 연락을 할 필요나 있겠소!"


"맞소, 자 자 어서 들어오시오. 와서 술이나 한잔 걸치시오!"


주변의 양반들이 다들 알아서 흥을 맞추어 주었다.


"그렇지요 하하.

이 몸이 술과 고기 냄새 맡는 솜씨는, 동네 개도 아마 형님- 하고 꼬리 내리고 내 뺄 거요."


"그렇고 말구요. 도총관 나리. 자 자 어서 이리 오시오!"




"백 선 형님, 이상합니다. 흥선군이 저렇게 어리석게 굴 사람은 아닐 텐데요."


"그야, 살아남으려는 것이지 않느냐! 못난 사람만 살아남는 세상이야.

그러니 원범아 너도 명심해야한다. 당장 어떻게 할 게 아니라면 움츠려야 해. 알겠느냐?"


과묵한 백 선 대신, 역시 노 상추가 말대답을 먼저하고 나섰다.

저 아래는 술기운이 조금씩 무르익어 가는 것 같았다.


"자, 형님 나리들. 제가 간만에 검무를 한번 춰 올릴 깝쇼?

이거 함부로 추는 춤이 아닌데, 귀한 자리에서만 선보이는 거 아시지요?

이렇게 좋은 술을 주시니, 내 오늘 오래간만에 한번 제대로 춰 봐야겠습니다!"


"아, 그래요. 흥선군의 검무는 온 조정대신들 사이에도 소문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날개를 펼쳐 든 학의 우아한 자태 같기도 하고, 무사의 한이 서린 무서운 칼날 같기도 하다지요.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도 그게 가능하다니, 정말 궁금해집니다!"


"맞아요.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검무라는 것이, 그 옛날 백제왕 앞에서 춤을 추던 신라의 화랑이 왕을 죽이고, 자신도 잡혀 죽은데서 유래한 게 아닙니까.

흥선군도 춤을 추다가, 갑자기 다듬이 방망이로 우리를 두들겨 패려 덤벼 들기 라도 하면 어찌 한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하!"


"웬 농도 참, 판서대감 허허!"


"자, 여기서는 이 술상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저 너른 사랑채 앞으로 가서 술상을 다시 펴시지요.

방망이도 하나 준비하라고 하시구요."


"그럽시다. 흥선군이 저렇게 나서니, 모두 일어나서 따릅시다."


흥선군의 몇 마디에 별당 안에 들어앉아있던 모든 대신들이 흥이 오른 채, 사랑채 쪽으로 사라져 갔다.


"아니, 일이 이렇게 쉽게 된다고?"


노 상추가 감탄에 마지않았다.


"흥선군이 들어오는 걸음에, 저희를 미리 본 것 같았습니다. 전하!"


"흥선군이 왜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는데? 봤으면 소리라도 질렀어야지."


여전히 노 상추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부님, 이왕 이렇게 된 거 사람들이 오기 전에 얼른 내려갔다 와야지요.

저 안에는 백 선형님과 함께 다녀올 테니, 사부님은 여기서 계시다가 인기척이 보이면, 얼른 신호를 해 주세요."


"내가? 신호를? 신호는 저 무사 양반이 해야지."


"아니요. 사부님은 이제 이런 일은 살 살 하셔야 할 나이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내려가죠. 백 선형님."


"아니, 뭘 벌써 노인 취급을 하는 거야!"


상추의 말이 끊어지기도 전에 젊은 도둑들은 벌써 지붕을 내려서서 별당 안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별당 안은 후끈후끈한 열기 속에 꿈꿈 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백 선 형님, 금이 상감된 유리병 이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팔아 쓸 물건이니까,

조선 물건은 그대로 두고, 다른 나라에서 온 것만 가져가서 팔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전하!"


금이 상감된 유리병을 찾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술상과 어울리지 않게 고운 자태로 상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보물 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함부로 쓴다고? 돈이 넘치나 보군!"


다른 물건을 살피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던 원범의 눈에, 벽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낯익은 글씨체의 족자가 눈에 들어왔다.


'청고 고아(淸高 古雅)'


"사람됨이 맑고 고결하고 뜻이 아담함 이라... 추사선생의 글씨군요.

그렇게 못 죽여서 안달 하면서 참 욕심 많은 사람입니다."


원범이 가만히 글귀를 바라보는 사이,

촛불의 움직임을 따라 족자의 하얀 여백사이로, 어두운 그림자가 살며시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았다.


"백 선 형님. 여기..."


백 선이 가까이 다가와 족자를 들어 보았다.

벽 안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금고였다.


"금고 입니다. 열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열어드리겠습니다 전하."


움찔 놀란 표정을 짓던 원범이 옆으로 물러나며, 뭐라고 한마디 말을 내뱉기도 전이었다.


허리춤에서 작은 쇠 조각을 하나 꺼내어, 금고의 구멍 안으로 찔러 넣고 요래조래 돌려보던 백 선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자리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열렸습니다. 전하."


"네? 이렇게 빨리요?"


백 선을 쳐다보는 원범이 많이 신이 난 것 같았다.


"전하, 얼른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형님."


금고 안에는 역시 생각한 대로 많은 양의 금 은 궤와, 몇몇 보석류 까지도 소담하게 쌓아 정리를 해 두었다.


"같이 나눠 씁시다!"


원범이 가져온 주머니 속으로 금은과 보석류들만 순식간에 쓸어 담았다.


금이 상감된 유리병과 함께 양손 가득 보석 주머니를 잡아 든 백 선이, 눈길로 원범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 잠시 만요. 형님!"


원범이 주춤거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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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23 19:53
    No. 1

    재밌습니다. 회차가 많이 쌓였는데 속도 높여서 즐감하겠습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09.24 01:22
    No. 2

    안녕하세요. 베르겐님~^^
    부족함이 많은 글을... 이렇게
    항상 찾아주시고, 좋은 말씀 건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양분으로 삼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3.12.22 15:18
    No. 3

    어허.... 원범이 직접 나서다니요... 위험합니다.
    아마.. 흥선에게 약점을 잡힐 것 같은데요... 직접은 위험한데..
    일을 어찌..이리....전하~ 아니되옵니다아아~!!!

    아랫 것들을 부리셔야지요~~ 저언하아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22 15:27
    No. 4

    그치요~~
    진심으로 도와줄 만한 아랫것들이 없어서,,
    원범이 좀.. 어쩌면 쭉 힘이 부족할 것 같아요.
    하지만 요래야,,
    세상과 좀 얽히겠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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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북청 소장수 +4 23.08.16 121 6 11쪽
30 공륭이의 영입 +4 23.08.15 130 6 13쪽
29 사야가의 후손 +2 23.08.14 133 6 13쪽
28 미련둥이 호위무사 +4 23.08.13 136 6 11쪽
27 백성이 훔치다 +4 23.08.12 150 5 11쪽
» 검무 추는 흥선군 +4 23.08.11 136 6 12쪽
25 기억속의 여인 +4 23.08.09 137 6 12쪽
24 절실한 거래 +4 23.08.08 138 5 14쪽
23 무사 흥선군 +4 23.08.07 158 6 13쪽
22 대왕의 비밀통로 +4 23.08.06 148 6 12쪽
21 총의 신 만나다 +4 23.08.05 162 6 12쪽
20 원래, 있었던 것 +4 23.08.04 159 6 11쪽
19 분명. 그다! +4 23.08.03 152 6 13쪽
18 복면의 검객 +4 23.08.02 151 6 12쪽
17 음모 +4 23.08.01 156 6 12쪽
16 조선의 실세 +8 23.07.31 180 9 13쪽
15 시작된 의심 +6 23.07.30 204 9 14쪽
14 흔적 +6 23.07.29 226 10 13쪽
13 난(蘭)쟁이 흥선군 +6 23.07.28 227 10 13쪽
12 물색 +6 23.07.27 260 12 14쪽
11 신료들의 나라 +6 23.07.26 291 11 13쪽
10 사인검의 주인 +6 23.07.25 308 8 13쪽
9 강화도령 +7 23.07.24 323 9 14쪽
8 상감마마 행차시다. +6 23.07.23 351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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