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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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16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28 00:00
조회
68
추천
3
글자
5쪽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DUMMY

쿵!


머리가 땅에 팍 떨어지는 느낌에 놀란, 나는 퍼뜩 잠에서 깼다.


그리곤 아직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내 눈에 동굴 한쪽에서 막 머리를 흔들고 있는 베이컨이 보였다.


숙취가 분명했다.


‘하하! 잘 됐다. 요놈! 오늘 고생 좀 해 봐라!’


베이컨 하는 꼴을 보고 피식 웃던, 나에게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와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져서 주위를 둘러봤다.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가족들은 모두 불 옆에 앉아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빠! 깼어? 어서 와서 밥 먹어!”


수가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불렀다.


“어? 어!”


밥을 먹는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가 돌아와서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그날은 잠들 때까지 분위기가 계속 냉랭해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이 걱정돼 쫓아가려는 나를 수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저기, 오빠! 둘이 할 얘기 많을 거야. 놔두자!”


그러면서 수는 내게 어머니가 한동안 아버지와 이혼할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내가 아닌 수에게만 그런 말을 한 건 서운했지만, 왠지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아마 매사에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나와는 달리 수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편이기 때문에 그랬겠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근데, 왜 이혼 안 했어?”


수가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조곤조곤 말했다.


“엄마는 아빠보다는 우리를 생각해서 이혼하려고 했던 거야! 그 빚을 우리가 다 같이 감당해야 했으니까. 우리만이라도 자유롭게 살길 바란 거지!”


오죽 했으면 그러셨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파왔다.


‘그동안 얼마나 힘 드셨을까! 그래도 고생하는 자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니···, 참, 어머니답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수는 그런 내 모습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객관적으로 판단해 말해줬어. 그때 엄마는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었고, 또 사채들이 이혼해도 우리를 놔 줄 가능성이 희박했거든! 그래서 엄마는 좀 더 견뎌보기로 한 거야. 우리에게 미안해하면서!”


나는 한참 눈물 콧물 빼면서 감상에 젖어있었다.


고맙게도 수는 평소처럼 놀리지도 않고 말없이 내 옆을 지켜줬다.


‘아아! 고마운 녀석! 역시 내 동생이다!’


나는 새삼 녀석이 참 고마워졌다.




한참 후, 계속 걱정하며 기다리던, 우리 앞에 드디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타났다.


큰 코코넛 게 두 마리를 들고서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허허허! 우리 오랜만에 목욕하고 게 잔치 벌려볼까?”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잘 풀렸구나. 다행이다!’


부모님의 밝은 표정을 보고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그래도 어머니가 용서해주기 전에, 정신 못 차리고 다시 술을 마신, 아버지를 아주 혼쭐을 냈기를 바랐다.


어찌됐든 홀가분한 맘으로 온천에 간 우리는 목욕을 하고 게를 요리해 맛있게 먹었다.


베이컨도 우리 주위를 돌며 게살을 얻어먹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즐거운 식사가 다 끝나고, 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경우야!”


그때 어머니와 수도 내 곁에 다가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해 하던 내게 아버지가 말했다.


“경우야! 아버지가 그동안 많이 미안했다. 네가 대학갈 나이에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아버지자리 대신 지켜준 것 안다. 정말 면목이 없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네? 아아! 네. 저도요!”


뜻밖의 말이었다.


동시에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서, 나는 얼른 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쳤다.


“흠흠! 그리고 이거. 내가 손 좀 봤다.”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아버지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옆구리에 매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내가 동굴에서 발견했던 검은 돌과 흰 돌이었다.


얼마 전 아버지는 내게 그것들을 빌려 달라고 하며 가져갔는데, 그 돌들을 틈틈이 갈아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돌의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빛이 났다.


“이야! 정말 멋져요!”




그 돌들을 감탄하며 보고 있던 내게 어머니가 식물줄기를 잘 말려 부드럽게 만든 미황색의 실 뭉치 같은 것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수가 가르쳐 준대로 그 뭉치를 돌 위에 두고 돌끼리 부딪혔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뭉치에 불이 붙었다.


“우와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어머니가 마른 풀을 가져와 불을 크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 불과 함께 뭉클한 게 끌어 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수가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고맙습니다. 아버지!”


감정이 북받친 나는 그만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가 다가와 격려하듯 내 등을 두드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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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원주민들 24.09.17 7 0 5쪽
47 밥은 맛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24.09.13 15 0 5쪽
46 마을 리더의 집에 초대받다 24.09.10 26 1 5쪽
45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24.09.06 48 4 5쪽
44 드디어 마을을 발견했다 +3 24.09.03 70 4 5쪽
43 너스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4.08.30 49 2 4쪽
42 다시 여행을 떠나다 24.08.27 52 3 6쪽
41 너스탱 24.08.23 48 3 6쪽
40 서울로 24.08.20 50 2 5쪽
39 싸움에서 승리하다 24.08.18 49 3 4쪽
38 근육 돼지와 베이컨 24.07.05 48 1 4쪽
37 위험했던 상황 24.07.02 50 2 5쪽
36 탈 것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컨의 식구들을 만났다 24.06.28 51 1 5쪽
35 타조새 24.06.25 50 1 5쪽
34 멋지게 친구를 구했는데 입술이 이상하다 24.06.21 51 2 4쪽
33 민기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4.06.18 52 1 6쪽
32 적과의 어색한 동침 24.06.14 53 1 5쪽
31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 24.06.11 51 2 5쪽
30 어쩌다보니 숲의 제왕을 구했다 24.06.08 51 1 5쪽
29 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24.06.07 54 1 5쪽
28 베이컨이 돌아왔다 24.06.06 53 1 6쪽
27 탈출 24.06.05 51 2 5쪽
26 동굴 (?)을 발견했다 24.06.04 54 3 7쪽
25 화산 폭발의 징후 24.06.03 56 1 6쪽
24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24.06.02 58 1 8쪽
23 친구, 민기의 등장 24.06.01 55 1 7쪽
22 말 안 듣는 아버지를 구하러 남매가 나섰다 24.05.31 58 2 9쪽
21 상어 떼가 나타났다 24.05.30 57 1 6쪽
20 이사를 결심했다 24.05.29 62 2 7쪽
»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24.05.28 69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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