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쿵!
머리가 땅에 팍 떨어지는 느낌에 놀란, 나는 퍼뜩 잠에서 깼다.
그리곤 아직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내 눈에 동굴 한쪽에서 막 머리를 흔들고 있는 베이컨이 보였다.
숙취가 분명했다.
‘하하! 잘 됐다. 요놈! 오늘 고생 좀 해 봐라!’
베이컨 하는 꼴을 보고 피식 웃던, 나에게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와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져서 주위를 둘러봤다.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가족들은 모두 불 옆에 앉아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빠! 깼어? 어서 와서 밥 먹어!”
수가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불렀다.
“어? 어!”
밥을 먹는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가 돌아와서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그날은 잠들 때까지 분위기가 계속 냉랭해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이 걱정돼 쫓아가려는 나를 수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저기, 오빠! 둘이 할 얘기 많을 거야. 놔두자!”
그러면서 수는 내게 어머니가 한동안 아버지와 이혼할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내가 아닌 수에게만 그런 말을 한 건 서운했지만, 왠지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아마 매사에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나와는 달리 수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편이기 때문에 그랬겠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근데, 왜 이혼 안 했어?”
수가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조곤조곤 말했다.
“엄마는 아빠보다는 우리를 생각해서 이혼하려고 했던 거야! 그 빚을 우리가 다 같이 감당해야 했으니까. 우리만이라도 자유롭게 살길 바란 거지!”
오죽 했으면 그러셨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파왔다.
‘그동안 얼마나 힘 드셨을까! 그래도 고생하는 자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니···, 참, 어머니답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수는 그런 내 모습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객관적으로 판단해 말해줬어. 그때 엄마는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었고, 또 사채들이 이혼해도 우리를 놔 줄 가능성이 희박했거든! 그래서 엄마는 좀 더 견뎌보기로 한 거야. 우리에게 미안해하면서!”
나는 한참 눈물 콧물 빼면서 감상에 젖어있었다.
고맙게도 수는 평소처럼 놀리지도 않고 말없이 내 옆을 지켜줬다.
‘아아! 고마운 녀석! 역시 내 동생이다!’
나는 새삼 녀석이 참 고마워졌다.
한참 후, 계속 걱정하며 기다리던, 우리 앞에 드디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타났다.
큰 코코넛 게 두 마리를 들고서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허허허! 우리 오랜만에 목욕하고 게 잔치 벌려볼까?”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잘 풀렸구나. 다행이다!’
부모님의 밝은 표정을 보고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그래도 어머니가 용서해주기 전에, 정신 못 차리고 다시 술을 마신, 아버지를 아주 혼쭐을 냈기를 바랐다.
어찌됐든 홀가분한 맘으로 온천에 간 우리는 목욕을 하고 게를 요리해 맛있게 먹었다.
베이컨도 우리 주위를 돌며 게살을 얻어먹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즐거운 식사가 다 끝나고, 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경우야!”
그때 어머니와 수도 내 곁에 다가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해 하던 내게 아버지가 말했다.
“경우야! 아버지가 그동안 많이 미안했다. 네가 대학갈 나이에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아버지자리 대신 지켜준 것 안다. 정말 면목이 없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네? 아아! 네. 저도요!”
뜻밖의 말이었다.
동시에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서, 나는 얼른 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쳤다.
“흠흠! 그리고 이거. 내가 손 좀 봤다.”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아버지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옆구리에 매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내가 동굴에서 발견했던 검은 돌과 흰 돌이었다.
얼마 전 아버지는 내게 그것들을 빌려 달라고 하며 가져갔는데, 그 돌들을 틈틈이 갈아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돌의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빛이 났다.
“이야! 정말 멋져요!”
그 돌들을 감탄하며 보고 있던 내게 어머니가 식물줄기를 잘 말려 부드럽게 만든 미황색의 실 뭉치 같은 것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수가 가르쳐 준대로 그 뭉치를 돌 위에 두고 돌끼리 부딪혔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뭉치에 불이 붙었다.
“우와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어머니가 마른 풀을 가져와 불을 크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 불과 함께 뭉클한 게 끌어 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수가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고맙습니다. 아버지!”
감정이 북받친 나는 그만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가 다가와 격려하듯 내 등을 두드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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