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하늘에서 검은색 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여러 소재로 만든 백팩에 물과 간단한 식량 등을 넣고 여분의 횃불들도 챙겨 넣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각자 무기를 들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어쩐 일로 베이컨이 동굴 근처에 있다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이제 녀석의 덩치는 내 두 배는 족히 넘어 있었다.
“아이고, 이 기특한 녀석! 용케 알고 왔구나. 그럼, 이제 가자”
아버지가 베이컨의 목 위에 손을 올리고 베이컨을 앞으로 미는 시늉을 하며 녀석을 재촉했다.
그래도 얼마간 살았던 곳을 떠나려니 마음이 착잡해 나는 여러 번 뒤를 돌아봤다.
옆에 있던 민기 녀석은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고,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드디어 터널 앞에 다다랐다.
거기서 미리 불을 붙여둔 횃불로 다른 횃불에 불을 붙였다.
여러 개가 있긴 했지만, 우선은 두 개만 쓰고 다른 횃불들은 여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곧 아버지가 어머니를 돕고, 내가 수를 챙기며 우리는 밑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우리가 내려가고 있던 순간에도, 점점 더 하늘에서 내리는 화산재의 양이 많아지고 있었다.
“야! 어째 더러운 눈 같지 않냐?”
마지막으로 민기가 자신의 머리에 붙은 화산재를 털어내며 터널을 내려왔다.
다리가 짧고 몸이 커 걱정이었던 베이컨이었지만 의외로 제법 빠르게 터널을 잘 내려왔다.
하지만 녀석은 터널 안을 들여다보더니 곧 몹시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뀌익! 뀍이익! 꾸이익! 꾸익!’
우리와 바깥을 번갈아보며 소리를 지르던 베이컨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뛰쳐나가 버렸다.
“으악! 베이컨! 야! 돌아와! 베이컨!”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도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거 쫓아가서 데려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모두에게 말했다.
민기가 같은 생각이었는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그럼 시간만 지체될 거다. 헤매다가 찾지도 못할 거고. 여기 위치는 알고 있으니 위험해지면 여기로 돌아올 거다. 그만 가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버지가 제일 먼저 결심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다 맞는 말인데도 베이컨이 걱정됐던 나는 앞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야! 경우야! 그만 가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지켜야지.”
민기가 나를 재촉했다.
그 말에 마지못해 끄덕이고, 베이컨이 빨리 돌아오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벽에는 이끼가 더 끼어있었고 산소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인지, 횃불이 자주 위태롭게 흔들렸다.
어두운 밀폐된 공간에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해오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속에서 올라왔다.
가끔 쏜살같이 지나가는 동물들에 걸려 넘어지거나 큰 동물들에게 치이지 않으려고, 우리는 벽 쪽으로 몸을 최대한 붙여 넘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조심히 걸었다.
“에휴우! 어디쯤 왔을까?”
어머니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그래도 꽤 오지 않았을까요?”
내가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애써 쾌활한 톤으로 대답했다.
“그치? 내 생각에도 많이 온 것 같아.”
민기가 맞장구를 쳤다.
그때, 수가 차분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아냐! 횃불이 탄 정도로 봤을 때 한 시간도 안 됐어. 어둠속에서는 시간관념이 더 틀어지니까 그럴 거야! 지금 걷는 속도를 감안했을 때 이런 식으로 걷는 다면 이틀이 걸릴지도 몰라!”
그런 수의 말에 모두 크게 실망했다.
그때 아버지가 우리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었다.
“설령 그렇더라도 서두르다가 다치는 것보다 나을 거다. 돌부리나 움직이는 동물들에게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가자!”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가족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조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둠속에서 얼마 있지도 않았지만, 막상 시야가 좁아지고 갇혔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것을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 모두 내 콧노래에 맞춰서 합창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째서 노동할 때 노동요가 있고, 행진할 때 행진곡이 있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니까, 걷는 속도도 일정해지고 무서움과 두려움도 훨씬 줄어들었다.
‘아아! 이대로 나아가다가 설령 막다른 길을 만나서 모두 죽어야 한다 해도 적어도 같이 노래 부르고 함께 즐겁게 있다가 가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나의 정신은 한껏 고무되었다.
어느새 나는 누구보다 신나게 크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수가 나를 벽 쪽으로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허억! 오빠! 조심해!”
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벽을 타고 울리며 크게 들려왔다.
‘타닷! 타닷! 타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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