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17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29 00:00
조회
62
추천
2
글자
7쪽

이사를 결심했다

DUMMY

우리는 바위위에 불을 피우고 한참동안 웃고 얘기하며 떠들었다.


주로 만 년 전에 도시에 살던 이야기였다.


그때는 많이 우울했는데, 지금은 조금 그리운 그런 얘기 말이다.


실컷 이야기하고 웃으며 시간을 보낸 우리는 오후 늦게 동굴로 향했다.


베이컨이 신이 나서 우리보다 먼저 앞서 달려 나갔다.


그렇게 동굴에 거의 다와 가는데 먼저 달려갔던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도로 뛰쳐나왔다.


‘꿰앵! 꾸엑! 꾸에엑!’


그런데 이게 웬일!


달려오는 베이컨의 등에 성난 노랑이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으아악! 저게 뭐야. 베이컨! 괜찮아? 이 나쁜 새끼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몹시 놀랐지만, 우리는 상황이 긴급한 베이컨에게 얼른 달려가 빽빽이 매달린 노랑 놈들을 떼어내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놈들 손에 상처가 났는지 베이컨의 몸 사방에서 할퀸 자국들이 있고 그곳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뀌익! 꾸이익! 뀌이이!'


베이컨은 비틀거리며 아픈 듯 계속 끙끙거렸다.


“아이씨! 그 놈들, 어제 일로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지독한 새끼들!”


수가 베이컨을 부축하며 이를 갈았다.


그 말을 듣고 엄청 당황한 아버지가 동굴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곧 쫓아간 우리는 동굴 앞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동굴 안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불은 이미 꺼져 재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사방이 아주 난리였다.


어머니가 말려 놓았던 과일들은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물건들은 부서지고 엉망이었으며 놈들이 똥을 싸놨는지 사방에서 구린내가 진동했다.


만 년 전에 겪었던, 사채 놈들이 우리 집을 마구 헤집어 놓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새끼들 또 올 거야!”


수의 대사도 그때랑 똑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정확했다.




다친 베이컨을 치료해주고 동굴을 간신히 정리해 놓았는데 우리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간 틈에 놈들이 다시 동굴을 헤집어 놨던 것이었다.


우리를 아예 그곳에서 쫓아내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이 나쁜 놈들은 며칠 단위로 찾아와 동굴을 못 쓰게 만들어 놓고 갔다.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진짜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다 죽이자! 그것들 그냥 다 죽여 버리자. 응?”


매번 말이 나올 때 마다 화가 나 펄펄 뛰는 나와는 달리 부모님과 수는 뭔가 다른 근본적인 대책을 찾고 있었다.




며칠 후 어머니와 수는 이른 아침부터 짐을 꾸렸다.


이대로는 성질나서 못 나간다는 나를 다독이며 어머니가 말했다.


“야아, 경우야! 차라리 잘된 거야. 어차피 해안 쪽으로 나가서 살펴보려고 했거든. 여기서 나갈 방법이 있는지 말이야!”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아버지는 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 죄인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왜 나가요? 어차피 육지도 여기처럼 똑같이 변했을 테고 노랑이등 보다 못된 짐승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더욱 더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때 수가 나를 보고 차분하게 말했다.


“들어봐. 오빠! 한라산이 곧 폭발할지도 몰라. 우리가 갔었던 온천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 산봉우리에서는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고. 그래서 혹시나 바다를 통해 육지로 갈 수 있는지 보려는 거야!”


그 처음 듣는 소식에 나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뭐어? 폭발? 언제?”


수는 흥분한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가만히 물을 건넸다.


나는 그 물을 받자마자 벌컥벌컥 마셨다.


잠시 후, 내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수가 말했다.


“진정해. 오빠! 당분간은 아마 괜찮을 거야. 해안가에서 살면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자는 거야. 화산활동의 징후가 보인다는 거지, 당장 터진다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


진정은 됐으나 곧 내 머릿속은 터질 듯이 복잡해졌다.


‘뭐야! 당장 터지지는 않아도 곧 그럴 수 있다는 거잖아. 아아! 어떡하나!’




나는, 갑작스럽게 들은 충격적인 소식 때문에 몹시 마음이 어지러워져, 노랑이들은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주는 대로 짐을 받아 묵묵히 가족들을 따라 나섰다.


걸어가는 내내 수는 쏟아내는 내 질문들에 참을성 있게 답해줬다.


수가 한 말에 따르면 한라산은 휴화산이며 좀 더 높은 부분에 있어야 할 온천이 우리가 머물던 동굴 부근에 생긴 것은 활발한 화산활동의 징후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 우리가 잡은 큰 게를 익히는데 걸렸던 시간보다 며칠 전 그만한 게를 익힌데 걸린 시간이 훨씬 짧았어.”


나는 먹을 생각만 했는데 동생은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니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아침 일찍, 동굴에서 출발한 우리는 점심때가 다 되자 가던 길을 멈추고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는 곳에 앉아 쉬며 싸간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바로 또 길을 나서서 한참을 더 걸어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아버지가 말한 해안가로 나올 수 있었다.


바다내음 가득한 바람이 얼굴에 시원하게 부딪혔다.


그 청량한 바다 바람을 맞으니 우울했던 내 맘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로부터 한참을 더 걸어 아버지가 안내한 동굴에 도착했다.


짐을 놓고 쉬는 시간도 잠시, 동굴 안쪽에 불을 피우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꿈도 못 꿨을 불 피우기를 할 수 있다니 그저 꿈만 같았다.


불을 피우고 좀 지나자 축축했던 동굴이 차츰 건조해졌다.


곧 불기운에 쫓겨 동굴에 살던 벌레들이 물러갔다.


‘그래도 오늘 밤은 노랑이들이 들이닥칠 걱정 없이 잘 수 있겠구나!’


그 사실이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됐다.




그날 밤,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많은 걱정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바람이라도 쐬려고 밖으로 나갔다.


가까이서 파도소리가 리듬 소리처럼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들이 쏟아질 듯이 떠있었다.


나처럼 수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는지 일어나 별구경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인기척을 듣고 나를 발견한 수가 반갑게 불렀다.


“오빠, 이리 와! 같이 별구경 하자.”


우리는 정답게 앉아서 오랫동안 얘기하며 별구경을 했다.


특히, 도란도란 수가 얘기해주는 별자리 얘기는 너무도 재밌었다.


나는 감탄했다.


‘와! 어떻게 그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지 정말 똑똑한 녀석이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 졸려진, 나는 수와 함께 동굴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런데 뭔가 많이 허전했다.


그제야 베이컨이 없어진 것을 눈치 챈 내가 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수야! 베이컨 돌아올까?”


“그럼, 여기가 집인걸! 어서 자. 피곤하겠다.”


사이좋게 코고는 부모님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수의 말대로 베이컨은 식사 때마다 우리를 잘 찾아왔다.


다친 몸 때문에 더 먹이 찾기가 힘들어졌는지 평소보다 더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엄청나게 불어난 덩치 때문에 더욱 많이 먹어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 년 (부제: 경우의 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원주민들 24.09.17 7 0 5쪽
47 밥은 맛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24.09.13 15 0 5쪽
46 마을 리더의 집에 초대받다 24.09.10 26 1 5쪽
45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24.09.06 48 4 5쪽
44 드디어 마을을 발견했다 +3 24.09.03 70 4 5쪽
43 너스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4.08.30 49 2 4쪽
42 다시 여행을 떠나다 24.08.27 52 3 6쪽
41 너스탱 24.08.23 48 3 6쪽
40 서울로 24.08.20 50 2 5쪽
39 싸움에서 승리하다 24.08.18 49 3 4쪽
38 근육 돼지와 베이컨 24.07.05 48 1 4쪽
37 위험했던 상황 24.07.02 50 2 5쪽
36 탈 것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컨의 식구들을 만났다 24.06.28 51 1 5쪽
35 타조새 24.06.25 50 1 5쪽
34 멋지게 친구를 구했는데 입술이 이상하다 24.06.21 51 2 4쪽
33 민기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4.06.18 52 1 6쪽
32 적과의 어색한 동침 24.06.14 53 1 5쪽
31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 24.06.11 51 2 5쪽
30 어쩌다보니 숲의 제왕을 구했다 24.06.08 51 1 5쪽
29 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24.06.07 54 1 5쪽
28 베이컨이 돌아왔다 24.06.06 53 1 6쪽
27 탈출 24.06.05 51 2 5쪽
26 동굴 (?)을 발견했다 24.06.04 54 3 7쪽
25 화산 폭발의 징후 24.06.03 56 1 6쪽
24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24.06.02 58 1 8쪽
23 친구, 민기의 등장 24.06.01 55 1 7쪽
22 말 안 듣는 아버지를 구하러 남매가 나섰다 24.05.31 58 2 9쪽
21 상어 떼가 나타났다 24.05.30 57 1 6쪽
» 이사를 결심했다 24.05.29 63 2 7쪽
19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24.05.28 69 3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