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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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3,519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6.06 00:00
조회
53
추천
1
글자
6쪽

베이컨이 돌아왔다

DUMMY

금방 정신을 번쩍 차린 나는 벽에 착 붙어서, 시야를 확보하려고 횃불을 최대한 높이 들어올렸다.


멀리서 한 무리의 동물들이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순간 높아진 긴장감에 땀이 등 뒤로 주룩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가온 무리가 우리 앞에 떡하니 멈춰서는 게 아닌가!


‘뀌익! 귁! 뀌귁!’


“세상에! 베이컨!”


우리는 베이컨을 알아보고 달려들어 녀석을 안았다.




녀석은 혼자만 온 게 아니었다.


자기 짝과 그리고 자신의 동족들을 모조리 끌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니 녀석이 왜 그렇게 터널에서 급하게 뛰쳐나갔나 하던 의문이 금세 풀렸다.


아마 짝과 다른 동료들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아온 베이컨 네가 몹시 반갑긴 했지만, 우린 길을 빨리 재촉해야 했다.


그리고 옆에 있어주니 든든하긴 했지만, 그 큰 덩치들에 눌릴 가능성이 있어서 모두 벽으로 더 착 붙어서 조심히 가야 했다.


빨리 걷다가 몸이 지치면 잠시 걸음을 늦췄다.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물을 마시고 페이스를 조절하며 우리는 행진했다.




또 한참을 걸었을 때, 이번에는 갑자기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쿠르르릉! 쿠르르르!’


주위를 울리는 소리가 제법 컸다.


“아악!”


“으아아아!”


순간적으로 우리는 머리를 보호하며 웅크린 자세가 되었다.


그때 사방에서 진동에 놀란 짐승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수야! 무슨 일인 것 같냐?”


“하아아! 화산이 크게 폭발했을 수 있어. 그래서 그 진동이 여기까지 미친 거고. 아무래도 좀 더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


놀라서 묻는 내게 수가 빠르게 대답했다.




다행히 진동은 금방 멎었다.


하지만 조짐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우리는 조금 더 빨리 움직이기로 해 울퉁불퉁한 길을 조깅하듯이 뛰기 시작했다.


베이컨 네는 우리에게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렬로 맞춰 뛰었다.


‘와! 누가 돼지더러 멍청하다고 했는지, 오히려 돼지들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똑똑한 게 틀림없다! 우리가 없을 때 아버지를 도와서 음식을 구하는 걸 도와주고 나를 육식초에서 구하는 데 큰일을 하기도 했잖아! 그러니까 녀석들은 머리도 좋고 의리도 있는 것이다!’


녀석들이 질서를 유지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감탄하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 먹을 것만 밝히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든든하게 컸는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간 뛰다보니 점점 횃불의 세기가 약해지고 앞을 보기도 힘들어져서, 체력도 보충할 겸 우리는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고, 여분의 횃불을 꺼내서 불을 붙였다.


수의 계산으로는 한 횃불이 타는 데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그 시간 만큼만 우리가 움직였을 텐데,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하루 이상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하아아! 진짜, 죽겠다! 이 터널이 이대로 끝나지 않는 거 아냐?’


민기나 다른 가족들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목은 또 계속해서 탔다.


등에 진 배낭도 어째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쉬었어도 기력이 빠져있던, 우리는 처음엔 조깅으로 가던 길을 곧 빠른 걸음으로 가다가,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해주려고 다시 선선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짐승들의 큰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끼에엑!’


‘찌지직! 찍!’


‘카악! 뀌엑!’


뒤에서 소리 지르며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짐승들의 물결에 터널 안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높은 톤의 불안한 울음소리가 계속 되자 베이컨 네들도 불안했는지 큰 소리로 같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꾸엑! 뀌익! 뀌이익!’


같이 불안해진 우리도 상황을 보려고, 횃불을 이리저리 흔들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수야! 민기야! 뭐 보여? 어머니! 아버지! 뭐 보여요?”




그 순간 어둠속에서 빛나는 수많은 동물의 눈들 중 익숙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한 쌍의 눈을 나는 발견하고 말았다.


거의 터널 반을 차지하며 다가오는 높이 달린 그 사나운 눈은 그레이의 것이었다.


놈도 화산폭발을 피해 육지로 대피하는 길을 알아냈는지 터널로 들어선 것이었다.


우리가 들은 것은 숲의 제왕의 등장에 모든 동물들이 겁에 질려 내는 소리였다.


놈은 위풍당당하게 터널 한가운데로 걸어왔다.


그리고 미쳐 못 피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밀려 녀석의 앞을 막아섰던 사슴을 물어서 저쪽으로 날려버렸다.


‘여역! 끼겍!’




사슴이 소리를 지르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바람에 작은 동물들이 놀라 사방으로 뛰고 덩달아 큰 짐승들도 뛰었다.


그 와중에도 그레이 녀석은 다른 동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으르렁 거리며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으르르르! 크르르르! 크웡!’




좁은 터널에서 울려 퍼지는 그 낮고 깊은 소리가 더욱 더 무섭게 느껴졌다.


숨 막히는 공포감이 우리를 감쌌다.


‘아아! 제발! 그냥 지나가라, 지나가!’


나는 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는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놈이 우리 옆을 지나가려는데 마침 다른 짐승들에게 떠밀린 베이컨 네 중, 한 마리가 그만 놈을 밀쳐버렸다.


‘꾸이이익!’


‘크아앙!’


그 즉시 그레이는 고개를 획 돌리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무모하게도 베이컨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녀석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 이런 젠장! 가만히 있으면 될 걸! 어릴 때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왕따를 당했던 놈이 그래도 제 동료를 구하겠다고 나섰다니 어이가 없네!’


난 그 녀석의 행동에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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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밥은 맛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24.09.13 15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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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24.09.06 48 4 5쪽
44 드디어 마을을 발견했다 +3 24.09.03 70 4 5쪽
43 너스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4.08.30 49 2 4쪽
42 다시 여행을 떠나다 24.08.27 52 3 6쪽
41 너스탱 24.08.23 48 3 6쪽
40 서울로 24.08.20 50 2 5쪽
39 싸움에서 승리하다 24.08.18 49 3 4쪽
38 근육 돼지와 베이컨 24.07.05 48 1 4쪽
37 위험했던 상황 24.07.02 50 2 5쪽
36 탈 것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컨의 식구들을 만났다 24.06.28 51 1 5쪽
35 타조새 24.06.25 50 1 5쪽
34 멋지게 친구를 구했는데 입술이 이상하다 24.06.21 51 2 4쪽
33 민기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4.06.18 52 1 6쪽
32 적과의 어색한 동침 24.06.14 53 1 5쪽
31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 24.06.11 51 2 5쪽
30 어쩌다보니 숲의 제왕을 구했다 24.06.08 51 1 5쪽
29 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24.06.07 54 1 5쪽
» 베이컨이 돌아왔다 24.06.06 54 1 6쪽
27 탈출 24.06.05 51 2 5쪽
26 동굴 (?)을 발견했다 24.06.04 54 3 7쪽
25 화산 폭발의 징후 24.06.03 56 1 6쪽
24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24.06.02 58 1 8쪽
23 친구, 민기의 등장 24.06.01 55 1 7쪽
22 말 안 듣는 아버지를 구하러 남매가 나섰다 24.05.31 58 2 9쪽
21 상어 떼가 나타났다 24.05.30 57 1 6쪽
20 이사를 결심했다 24.05.29 63 2 7쪽
19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24.05.28 69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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