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그 후 불안한 오랜 기다림이 계속 됐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흘러가자 걱정이 앞섰다.
의논 끝에 아버지의 신변이 분명 위험할 것이라 확신한 우리가 나서려는데 갑자기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어떤 사람과 어깨동무를 한 아버지가 그 사람과 정답게 수다를 떨며 나왔다.
“어, 어! 경우야! 수야! 민기야! 모두 나와서 인사해! 이분은 김정훈 씨야! 우리처럼 서울이 고향이란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 고향에 와 있다는 구나. 하하하!”
술을 마신 게 분명한 아버지가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르며 자신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사람을 소개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우리가 마지못해 어색하게 나서며 인사했다.
“어! 그래. 어서 와.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지? 밖에서 살아남느라, 또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면서. 이제 안심해도 된다. 여기는 안전해. 모두들 들어가서 맛있는 것 좀 먹자!”
“여보! 어서 와. 빨리 들어가게! 허허허!”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어리둥절해 있는 어머니를 반갑게 불렀다.
그 후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안내를 받아, 한 집에 들어간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을 오랜만에 맘껏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곳엔 욕조도 있어서 온천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목욕다운 목욕을 즐겼다.
민기는 욕조와 한 몸이 돼서 나올 줄을 몰랐다.
심지어 욕조 옆엔 비누까지 있었다.
몸을 개운하게 씻고 쉬고 있는데 누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때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수가 문을 열었다.
그곳엔 웬 예쁘게 생긴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수랑 거의 나이가 같은가? 참 예쁜 얼굴이네. 균형이 잘 잡힌, 꼭 예전에 성형외과 선전물에서 나오는 그런 우아하진 않지만 예쁜 얼굴!’
나도 모르게 빤히 그 여자의 얼굴을 너무 오래 쳐다봤나 보다.
그 여자는 나를 힐끗 보더니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누구세요?”
수가 물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수를 알고 있다는 듯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오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 좀 놀라긴 했지만 보자마자 너라는 걸 알아봤지. 꽤나 힘들었나봐? 밖에서 사는 게···. 그새 얼굴이 엉망이 됐다.”
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여자를 쳐다보며 내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수를 재미있다는 듯 위아래로 훑어본 여자가 말했다.
“나야. 나! 주연지!”
‘응? 그 주연지? 수를 괴롭혔던 그 못된 X? 근데, 가만! 분명 저런 얼굴이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나는 예전에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는 길에서 만나면 한 마디 해주려고, 수 몰래 훔쳐봤던, 동생의 졸업 앨범에서 봤던 그 X의 사진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정말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만 년 전 사람들이 성형외과 의사를 “의느님!”이라고 했던 거구나!’
나만큼 수도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수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곧 수가 말했다.
그냥 뭐, 지성인답게 대처하기로 한 것 같았다.
“응. 너도 차암 많이 변했다. 근데 네가 여기 왜 있어?”
“아빠랑 같이 냉동 수면 캡슐에 들어갔지. 너도 그렇지 않아? 아마 돈이 없어서 임상실험으로 참여했다지? 호호호!”
화가 난 수가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보였다.
하지만 수는 예전의 수가 아니었다.
녀석은 그 정도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미성숙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내가 급발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으응! 그랬지. 근데 너도 많이 변했다. 아휴! 정말 많이 아팠겠는데! 거의 새로 태어난 수준이네. 어버이날에 선물 드려야 할 분이 한 명 더 늘었겠구나.”
자연스레 웃으며 말하는 수에게 주연지는 눈을 한껏 흘기며 씩씩거렸다.
그때 마침 긴 목욕을 마치고 욕실을 나오던 민기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달려왔다.
“아아! 안녕하세요. 이, 이렇게 예쁘신 분이 여기까지 어쩐 일로···. 하하하!”
하지만, 민기의 출현에도 누구하나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수와 연지는 서로를 오래 노려봤다.
드디어 연지가 먼저 돌아서며 던지듯 말했다.
“흥! 내 동생이 이 마을 리더야. 오늘 특별히 너희 가족 초대했으니까, 궁상맞게 입지 말고 오도록 해. 알았어?”
연지는 ‘특별히’를 유난스럽게 강조하며 말하더니 떠나기 전에 수를 한 번 더 째려보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수야! 괜찮아?”
나는 수가 많이 걱정됐다.
녀석에겐 그 연지 일이 제일 힘들었던 기억들 중 하나였을 테니까!
“오빠! 난 괜찮아. 다 지난 일인 걸. 근데 하나도 안 변했네. 얼굴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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