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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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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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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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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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화산 폭발의 징후

DUMMY

그로부터 얼마 후, 수와 어머니가 온천에 목욕을 다녀온 날이었다.


돌아온 수의 얼굴이 엄청 심각했다.


“수야? 무슨 일이야? 목욕 가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게, 우리가 이용하던 온천이 뜨거워져서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어.”


수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그래? 다른 온천 찾아볼까?”


나의 반응에 수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이 변했다.


“어, 왜 그래?”


생전 안 그러던 수가 내 물음에 흥분하며 말했다.


“오빠! 목욕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라산이 점점 더 빨리 뜨거워지고 있다고. 당장 탈출 계획을 세워야 돼!”


수의 말에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라산이 수의 말처럼, 아니 섬 전체가 점점 더 데워지고 있긴 한 것 같았다.


요 며칠 동안 온갖 벌레와 뱀들이 산에서 내려와 동굴 근처에 많아져, 어머니는 그것들을 쫓는 식물을 구해와 밤낮없이 태워 연기를 내고 있었다.




밤이 돼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탈출할지 계속 얘기해 봤지만, 좀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제안한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는 방법은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느껴졌지만 수의 얘기를 들은 우리는 거의 반포기 상태가 됐다.


“그럼, 물에 있는 수많은 상어 떼들은 어떻게 할 거야? 그놈들보다 더 위험한 놈들이 있을 가능성도 커. 그리고 뗏목을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서 간다 해도 동력 없이 우리가 육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야. 해류에 밀려가 언제 어디로 도착할지 알 수 없어. 그리고···.”


수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모두를 쳐다봤다.


“베이컨은 어떡할 거야?”


그렇다.


베이컨은 우리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아무리 이성에게 눈이 멀어 가족을 몰라본다고 해도 우리는 그 녀석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의 무게가 이미 150킬로는 훨씬 넘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녀석이 자기 짝을 두고 갈 리 없으니 우리는 적어도 600킬로 이상 버텨낼 수 있는 뗏목을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였다.


결정적으로 그 녀석들이 표류기간에 먹어야할 식량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직도 한참 클 때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건지, 녀석들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먹는데 썼다.




별 다른 대책 없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중, 어느 오후에 나는 민기와 함께 코코넛 게를 잡으려고 노랑이들이 사는 숲의 경계까지 갔더랬다.


그날 수와 아버지는 물고기를 잡으러, 또 혹시라도 만들어야 될 지도 모르는 뗏목의 재료를 찾아보러 나간 참이었다.


우리는 게를 찾으려고 바닥에 떨어진 코코넛 열매들 사이를 창으로 헤집고 있었다.


그때 ‘사삭’ 소리가 났다.


드디어 찾았구나 싶어서 창을 들고 내려치려는 순간 나는 너무도 깜짝 놀랐다.


게가 아니라 햄망이 가족이 쌓여있는 나뭇잎들 사이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큰 햄망이 둘과 작은 녀석,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아! 어쩜 저렇게 한결같이, 언제나 귀여울 수가!’




그 녀석들은 우리가 감탄하며 보고 있는 사이에, 곧 우리 옆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햄망이 가족이 사라져 가는 걸 한참 보고 있다 다시 앞을 본 나는 그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뻔 했다.


왜냐면 노랑이 한 마리가 내 눈앞에 있던 나무를 타고 내려와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있으면 부딪힐 것 같아서 나는 얼른 엎드리며 소리쳤다.


“민기야! 피해!”


“아! x발! 깜짝이야.”


민기가 내 외침을 듣고 몸을 낮추며 소리를 질렀다.




‘오오옥! 까약! 끼오오옥!’


사방에서 노랑이들 소리가 들렸다.


그건 나무를 타고 노랑이들이 이동하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전에 있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우리를 공격해 오는 거라 생각했었지만, 정작 그놈들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재빠르게 지나가버렸다.


노랑이들이 지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저 멀리서 큰 말소 두 마리가 달려오다가 나와 민기를 보고 양 옆으로 갈라져서 뛰어갔다.


전에 그레이가 사냥해 물고 가던 놈이랑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었다.


덩달아 사슴들도 그 뒤를 따라 달려 지나갔다.



동물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는 내게 민기가 다가오며 물었다.


“근데, 이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거지?”


“글쎄! 하지만, 정말 이상하다. 꼭 피난 가는 거 같지 않냐?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 민기야! 우리 따라 가보자!”




그렇게 소리친 나는 동물들이 사라진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달리면서 위에서 내려다 본, 내 다리 근육은 지치는 기색 없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보고는, 만 년 전에는 어림도 없었을 숲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새삼 기특해졌다.


‘이야! 한참을 쉬지 않고 달려도 전혀 숨차지 않는 이 체력 보소!’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저만치 한참 뒤에서 내 뒤를 겨우 겨우 쫓아오던 민기가 심하게 헐떡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아아! 헤엑켁! 야아! 같이 가! 제발 쪼옴!”


“쫌만 더 가면 돼. 힘내. 친구야!”


나는 민기를 격려하며 달리는 속도를 늦추고 소리쳤다.


“그런데 진짜 어디 가는 거지? 이놈들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비교적 발이 느린 햄망이들을 쫒았다.


정말 이상한 것은 그 동물들이 향하는 곳이 다 한 방향이란 사실이었다.


그것들은 숲을 지나 바위들이 많은 구간을 거쳐 해안지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멈춰 쉬면서, 지나가는 동물의 종류를 살폈다.


뱀, 쥐, 너구리 비슷한 것, 햄망이, 노랑이, 말소, 사슴, 돼지, 여우 등등, 내가 여기 지내면서 본 거의 모든 동물들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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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24.09.06 48 4 5쪽
44 드디어 마을을 발견했다 +3 24.09.03 71 4 5쪽
43 너스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4.08.30 49 2 4쪽
42 다시 여행을 떠나다 24.08.27 52 3 6쪽
41 너스탱 24.08.23 48 3 6쪽
40 서울로 24.08.20 50 2 5쪽
39 싸움에서 승리하다 24.08.18 49 3 4쪽
38 근육 돼지와 베이컨 24.07.05 48 1 4쪽
37 위험했던 상황 24.07.02 50 2 5쪽
36 탈 것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컨의 식구들을 만났다 24.06.28 51 1 5쪽
35 타조새 24.06.25 51 1 5쪽
34 멋지게 친구를 구했는데 입술이 이상하다 24.06.21 51 2 4쪽
33 민기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4.06.18 52 1 6쪽
32 적과의 어색한 동침 24.06.14 53 1 5쪽
31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 24.06.11 52 2 5쪽
30 어쩌다보니 숲의 제왕을 구했다 24.06.08 51 1 5쪽
29 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24.06.07 54 1 5쪽
28 베이컨이 돌아왔다 24.06.06 54 1 6쪽
27 탈출 24.06.05 51 2 5쪽
26 동굴 (?)을 발견했다 24.06.04 54 3 7쪽
» 화산 폭발의 징후 24.06.03 57 1 6쪽
24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24.06.02 59 1 8쪽
23 친구, 민기의 등장 24.06.01 55 1 7쪽
22 말 안 듣는 아버지를 구하러 남매가 나섰다 24.05.31 59 2 9쪽
21 상어 떼가 나타났다 24.05.30 57 1 6쪽
20 이사를 결심했다 24.05.29 63 2 7쪽
19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24.05.28 69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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