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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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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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0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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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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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DUMMY

다 씻고 동굴로 돌아가는 길에, 궁금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내가 물었다.


“야! 진짜, 어떻게 된 거냐? 네가 왜 여기 있어?”


민기가 그런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네가 냉동, 머시기 실험에 참여한다는 걸 듣고, 2주쯤 있다가 너 네 집에 갔어. 근데, 가봤더니 아무도 없고 집 앞에는 쓰레기만 가득 있더라. 자세히 보니 집이 열려있어서 들어가 봤지.”


‘이 녀석이라면 그랬겠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만나 놀았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 꼴이 장난이 아니었어. 누가 헤집어 놨는지 엉망이었지. 그래서 빚쟁이들이 또 왔다 갔나보다 생각하고 거기서 한참을 기다렸어. 그런데 다음 날까지 아무도 안 나타나니까 슬슬 걱정이 되더라.”




민기는 그 길로 경찰서에 가, 실종신고를 했다.


물론 경찰은 그 일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사채 빚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래서 경찰은 우리가 야반도주한 걸로 생각한 거 같았다.


“그래도 간간이 들러서 네가 혹시나 돌아왔나 봤어. 그러고 일 년이 지나버렸지.”


민기가 그때를 회상했다.


사실, 민기 이외에 아무도 우리의 실종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네가 봤다던 그 광고를 보게 된 거야.”


회상하듯 녀석이 말했다.




민기는 그 즈음 강대국들 간에 전쟁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세계는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람들은 세상이 망했다고 생각해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휴! 미친놈들이 가게를 털고 범죄가 사방에서 일어났다니까. 곧 핵무기도 쓸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어.”


그 상황을 설명하던 친구 놈이 흥분했다.


어쨌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놈은 우리가 찾아갔던 사무실로 쳐들어가 따졌더랬다.


“내 평생 그 박사인가 하는 그 여자보다 이상한 사람은 못 봤어. 너네 가족을 아예 모른다고 딱 잡아떼더라니까. 에휴! 근데 하는 행동이 너무 미심쩍어서 며칠간 나는 그 여자를 조용히 따라다녔어.”


나는 그 말에 몹시 감동했다.


세상 못미더워 보였던 친구 놈이 나를 구하려고 그런 일을 했다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어느 새 얘기에 몰입한 내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렇게 감시를 계속하던 어느 날, 그 여자가 퇴근해서 어느 건물로 들어가는 걸 봤어. 딱 봐도 미심쩍어 보이는 건물이었지. 그리고 건물 한쪽에 숨어서 그 여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퍽 하는 소리가 났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어.”




그때 민기는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


그리고 머리에는 검은 천이 씌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간간히 들려오던 차 소리와 짠 내, 그리고 계속 이동하는 듯, 차의 진동을 느끼며 민기는 어디론가 끌려가 살해당하는 상상을 하며 겁에 질려 있었다.


마침내 배가 너무 고파, 죽을 때 죽더라도 뭐라도 좀 먹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 때 드디어 머리에 씌워졌던 천이 벗겨졌다.


“정말 그때는 이제 죽는 구나하고 생각했지.”


그 순간이 떠올랐는지 친구 놈이 갑자기 몸을 떨었다.


드디어 얼굴에 씌워졌던 천이 벗겨지고 민기가 환한 빛에 눈을 찡그리며 둘러본 그 곳은 어떤 방이었다.


그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민기가 잘못했다고 울며불며,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런 그에게 놀랍게도 허 박사가 다가왔다.


그 여자의 얼굴을 금방 알아보고 흥분하며 소리 지르던, 민기에게 다른 가운 입은 사람이 주사를 꽂았고 녀석은 또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자신은 강가에 누워있었고, 커다란 회색 털을 가진 짐승이 자신을 먹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저기, 근데, 경우야! 여기는 어디냐? 우리 지금 어디 섬에 고립된 거냐?”


민기의 질문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앉아서 쉴 만한 쓰러져 있던 나무를 근처에서 찾아냈다.


곧 그 나무 등치 위에, 내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민기를 데려가 앉혔다.


“민기야! 잠깐만 쉬었다 가자. 뭐도 좀 먹고.”


‘꼬르르륵! 꾸르륵!’


음식얘기가 나오자마자 그 녀석 배에서는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무척이나 배가 고픈 소리였다.


나는 민기에게 아까 전 따놨던 산딸기와 물을 건넸다.


친구 녀석은 내가 준 것을 급하게 낚아채듯 가져가 먹었다.


그리고 금세 먹을 걸 게걸스레 다 해치우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알려줬다.


여기가 어디이고 언제인지를 말이다.




“세상에! 그, 그럼, 우리는 우리가 살던 곳에 있는 게 아니네? 그리고 우리는....흐윽, 흐으으윽!”


친구 녀석이 말을 다 끝마치지 못 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 심정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가만히 민기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때까지 맨 발이었던 친구 녀석의 발에 난 상처를 보고는, 이제는 아예 넋을 놓고 울고 있는, 그 녀석에게 내 신발을 신겼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녀석은 풀이 팍 죽어서 나를 따라왔다.


큰 충격에 의식이 아예 멀리 날아갔는지 녀석은 꼭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


‘뭐,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단지 친구를 구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젠 가족도 못 보고 게다가 만 년 후라니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동굴로 돌아온 나는 민기를 보고 깜짝 놀란 식구들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사정을 다 전해들은 가족들은 친구 놈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달라진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고 많이 어색해하던, 민기는 특히 수를 보고는 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녀석에게는 달라진 수가 많이 이상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실의에 빠진 민기를 살뜰히 챙겼다.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에고! 배 많이 고팠나보구나. 많이 먹어라. 응?”


어머니는 먹고 싶다는 만큼 맛있는 것을 다 내주고 제일 따뜻한 곳에서 녀석을 재웠다.




그날 저녁을 먹자마자 실신해 자기 시작한 민기를 보며 우리 가족은 조용히 얘기를 나눴다.


수의 말대로 그 박사인지 사기꾼인지 하는 여자는 우리를 시설에 두고 실험을 계속한 듯 했다.


“그리고 그 실험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됐겠지!”


수가 곯아떨어진 친구 놈을 보고 말했다.


모두들 그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난 민기는 동굴을 헤집고 다니는 덩치 큰 베이컨을 보고 무척 놀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이컨의 붙임성이 빛을 발해 둘은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내 걱정과는 달리, 원래 천성이 밝았던, 민기 놈은 다행히 금방 활력을 되찾았다.




며칠 뒤, 사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민기에게 물었다.


“야! 나 때문에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 부모님 안 보고 싶냐?”


민기가 오히려 반문하며 내게 말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그런 건데, 네가 왜 미안해 하냐? 그리고 가끔 부모님이 생각나기는 해도 괜찮아. 어차피 그때 두 분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져서 이혼할 참이었거든. 차라리 이렇게 된 게 잘됐다 싶어.”


그 말에 나는 녀석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녀석! 그래도 고맙다. 나를 찾으려고 해줘서.”


일생에 참된 친구 하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던데. 그렇게 보면 나는 성공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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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밥은 맛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24.09.13 15 0 5쪽
46 마을 리더의 집에 초대받다 24.09.10 26 1 5쪽
45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24.09.06 48 4 5쪽
44 드디어 마을을 발견했다 +3 24.09.03 70 4 5쪽
43 너스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4.08.30 49 2 4쪽
42 다시 여행을 떠나다 24.08.27 52 3 6쪽
41 너스탱 24.08.23 48 3 6쪽
40 서울로 24.08.20 50 2 5쪽
39 싸움에서 승리하다 24.08.18 49 3 4쪽
38 근육 돼지와 베이컨 24.07.05 48 1 4쪽
37 위험했던 상황 24.07.02 50 2 5쪽
36 탈 것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컨의 식구들을 만났다 24.06.28 51 1 5쪽
35 타조새 24.06.25 50 1 5쪽
34 멋지게 친구를 구했는데 입술이 이상하다 24.06.21 51 2 4쪽
33 민기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4.06.18 52 1 6쪽
32 적과의 어색한 동침 24.06.14 53 1 5쪽
31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 24.06.11 51 2 5쪽
30 어쩌다보니 숲의 제왕을 구했다 24.06.08 51 1 5쪽
29 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24.06.07 54 1 5쪽
28 베이컨이 돌아왔다 24.06.06 54 1 6쪽
27 탈출 24.06.05 51 2 5쪽
26 동굴 (?)을 발견했다 24.06.04 54 3 7쪽
25 화산 폭발의 징후 24.06.03 56 1 6쪽
»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24.06.02 59 1 8쪽
23 친구, 민기의 등장 24.06.01 55 1 7쪽
22 말 안 듣는 아버지를 구하러 남매가 나섰다 24.05.31 58 2 9쪽
21 상어 떼가 나타났다 24.05.30 57 1 6쪽
20 이사를 결심했다 24.05.29 63 2 7쪽
19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24.05.28 69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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