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베이컨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자 그레이는 더 독이 올랐는지 입을 벌려 위협하는 소리를 내면서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크어엉! 커어엉!’
그런데 놈의 공격 직전에 놀랍게도 민기가 앞으로 얼른 나서며 횃불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이 나쁜 새끼야! 저리 가! 야아! 저리 가라고!”
그 친구 녀석의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녀석은 지난 번 그레이가 자신을 잡아먹을 뻔했던 트라우마에서 아직 채 회복되지도 않은 터였다.
어쨌든 민기의 기세에 그레이가 당황했는지 조금 물러서자 우리 모두는 민기 옆에 서서 역시 횃불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물러가! 물러가라! 물러가아!”
‘으르르렁! 크르르릉!’
놈은 짜증이 났는지 낮은 소리로 으르렁 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가버렸다.
겨우 상황이 종료되자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한동안 베이컨에게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베이컨이 내 발에 오줌을 지리는 게 느껴졌다.
‘오도도도톳’
‘아이! 나쁜 XX! 용감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오줌은 나한테 지리고 앉았네! 후유!’
욕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그레이를 만나고 모두가 다친 데 없이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베이컨, 이 겁쟁이 놈이 어떻게 그렇게 앞으로 나섰을까! 그래도 장하다! 베이컨!’
생각을 달리한 내가 베이컨의 등을 가만히 두드렸다.
그러고 또 한참을 걸었다.
곧 다시 한 번 새 횃불에 불을 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쿠구궁! 쿠구궁! 콰르르르! 와르르!’
앞서 느꼈던 진동보다 더 큰 진동이 느껴지며 작은 돌멩이들이 천장에서 후두두둑 떨어져 내렸다.
우리는 잠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멈춰 섰다가 곧 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왠지 빠르게 터널 안이 점점 더 더워지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덥지? 혹시 동물들이 가득 차 있어서 일까? 뛰어서 일까? 아님 다른 이유 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마에서 줄줄 흐르기 시작한 땀을 닦아 가면서, 모두와 함께 있는 힘껏 달렸다.
그런데 한참 앞쪽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웅! 하웅! 으헝!’
나는 그것이 그레이의 소리라는 것을 금세 알아챘지만 그것은 다른 때와 뭔가 사뭇 다른 것이었다.
“모두 들었지? 또 그놈이 있나보다. 주의해서 피해 가자꾸나!”
아버지가 말했고 모두가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우리는 바로 전방에서 소리가 들리는 쪽을 피해 반대편에서 뛰며 상황을 살폈다.
곧 내 시야가 닿는 곳에 그레이가 한쪽 발을 벌어진 틈에서 빼내려 애쓰면서 울부짖는 게 보였다.
‘어허엉! 크허엉!’
다른 동물들은 위기에 처한 그레이를 아는 체도 않고 피해갔다.
자업자득이었다.
“얘들아! 어서 서두르자! 땅이 갈라지고 있어!”
아버지가 우리를 재촉하며 소리쳤다.
곤경에 처한 그레이를 무시하고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내 마음은 심란했다.
따지고 보면 녀석은 숲에서 여러 번 마주쳤을 때에도 나를 위협하거나 해치지 않았었다.
그건 아마도 녀석이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정말 나쁜 놈이었다면 나를 재미삼아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그러지 않았다.
무섭게 생기고 성질이 지랄 같기는 해도 저렇게 죽는 건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녀석을 구하고 싶었다.
“하아! 잠깐만!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녀석을 구해야겠어!”
나는 소리치며 무리와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오빠! 안 돼! 가지 마!”
동생이 흥분해 소리 지르며 나를 불렀다.
“수야! 어서 가! 어머니, 아버지 안내해야지. 곧 따라갈게!”
나는 돌아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수에게 소리쳤다.
“아이씨! 그럼, 같이 가자! 경우야.”
민기가 나를 쫓아왔다.
그런 민기를 강하게 만류하며 내가 외쳤다.
“아냐. 제발 오지 마! 너는 가서 우리 가족을 지켜줘! 어서 빨리 가!”
오던 길을 멈춘, 민기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돌아 달려갔다.
“오빠! 안 돌아오면 가만 안둘 거야! 진짜 가만 안둘 거야! 흐으으엉!”
수가 울먹이며 소리 질렀다.
수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일을 해내야만 했다.
나는 바보 같은 나 자신을 속으로 욕하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반대편으로 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혼자 터널을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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