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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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no1
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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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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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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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설득

DUMMY


다음 날 아침 지한이 회사로 출근해 로비에 있는 안내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지한에게 다가왔다.


“유 작가님 되시죠?”

“그런데요.”

“저는 한정현 배우님의 매니저 이기수입니다. 명 작가님이 전화 주셨어요. 오늘부터 유 작가님이 한정현 배우님과 동행할 거라고. 여기 명함입니다.”


기수는 지한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을 미리 꺼내서 손에 쥐고 있었는지 명함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지한은 명함을 쳐다본 뒤 기수에게 눈길을 던졌다.


“유, 지한입니다. 죄송한데 전 아직 명함이 없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연락해야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나중에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그러죠.”


이기수는 모델처럼 키가 크고 피부가 흰 미남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배우나 모델 지망생처럼 보였다. 성격이 까다롭다는 한정현의 매니저로 어떻게 버티나 싶을 정도로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차를 타고 선생님 자택으로 가실까요?”

“예, 그러죠.”


지한은 기수를 따라 회사 정문을 다시 통과해 나왔다. 회사 앞에 대어 놓은 흰색 제네시스로 걸어간 기수는 무언가에 놀라 숨을 급히 들이쉬었다.


“이런, 세상에. 잠깐 주차해놓았을 뿐인데 이게 뭐야?”


기수는 잰걸음으로 트렁크로 가서 흰 통을 꺼내왔다. 지한이 다가가서 보니 차의 앞 유리창에 새똥이 떨어져 있었다. 기수는 흰 통에서 휴지를 꺼내 새똥을 제거한 뒤 유리 세정제를 뿌리고 흰 천으로 닦았다. 새똥의 흔적이 사라졌는데도 기수는 빨개진 얼굴로 유리창을 빡빡 닦았다. 5분 넘게 유리창을 닦는 것을 보고 지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벽증인가? 이미 유리창이 깨끗해졌는데도 계속 닦고 있어.’


공장에서 막 나온 유리처럼 깨끗해진 뒤에야 기수는 동작을 멈췄다. 유리창을 대여섯 번 확인한 뒤에야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흰 통을 트렁크에 넣었다. 기수는 운전석에 올라타 차를 출발한 뒤 지한에게 말을 걸었다.


“명 작가님 말씀으로는 유 작가님은 선생님이 미니 시리즈에 출연하게 설득하신다면서요?”

“예. 그런데 한 배우님은 가벼운 드라마 출연을 아주 싫어하신다면서요?”

“맞아요. 저번에 오신 작가님의 글을 보고는 쓰레기 같은 글이나 쓴다며 선생님이 쫓아버리셨어요.”

“그래요?”


그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준수가 지한에게 글을 미리 보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인물인 것 같네.’


그러나 지한은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한정현을 공중파 드라마에 나가도록 설득할 방법이었다.


“유 작가님, 선생님은 일단 작품에 들어가면 그 인물 연구를 엄청나게 하세요. 그래서 예민하게 행동하실 때가 많아요.”

“지금 한 배우님은 <늘근 그대>라는 연극에 출연 중이시죠?”

“그냥 기수라고 불러주세요.

“예. 선생님이 바로 그런 대단한 사람이죠.”

“기수 씨는 한 배우님을 정말로 존경하고 있네요.”


기수는 지한의 말에 2, 3초의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예,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지한은 기수의 옆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네. 예민한 사람의 매니저로 손해 볼만한 성격인데.’


다시 민감한 질문이 나올까 걱정되는지 이후로 기수는 입을 열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지한 역시 기수의 운전을 방해하지 않았다.


한정현의 집은 단독주택으로 집안의 가구는 물론 흰 벽이나 마루에도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전혀 삐뚤어진 데가 없었고 거실의 책꽂이의 책들은 크기와 색깔에 맞춰 꽂혀 있었다. 창가의 화분들도 자로 잰 듯 1cm도 어긋남 없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한정현은 그 화분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 집에 있는데도 깔끔히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기수가 아니라 한정현이 결벽증일지도 모르겠어.’


지한은 정현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FN 소속 작가 유, 지한입니다.”


정현은 화분에 물주는 것을 멈추고 지한을 돌아보았다. 한정현은 얼굴에 주름이 없는 데다 3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언뜻 40대 후반 같은 성숙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싸구려 작가가 또 왔군.”


정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나이 차가 크지 않은데도 이미지 덕분에 마치 나이 많은 사람에게서 꾸지람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명 작가가 보낸 거겠지. 헛수고하지 말고 이대로 돌아가.”


정현이 날카롭게 굴었지만 지한은 침착한 태도로 정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 지한입니다.”

“이봐, 헛수고 말라니까? 난 그런 싸구려 드라마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선생님, 얼마 동안 동행할 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명 작가님이 지시한 대로 선생님의 연기를 보고 제가 글을 써보겠습니다. 그때 결정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회사에 선생님의 의견을 전할 구실도 생기니까요.”



지한의 말에 정현이 쿡 하고 웃었다.


“싸구려 작가 주제에 감히 날 설득하겠다?”


정현은 근처 탁자에 물뿌리개를 내려놓은 뒤 지한을 돌아보았다.


“당신이 무슨 수로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내 앞에서 입 벙긋한 용기를 봐서 기회를 주지. 그렇지 않아도 심부름꾼이 모자라는데 잘됐군. 저 녀석은 일하는 게 영 시원치 않거든.”


정현은 턱으로 쭈뼛거리며 선 기수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기수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한은 자신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정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어 참았다.


정현이 팔짱을 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유 작가. 날 설득하러 왔으니 당신의 실력을 보여봐. 마침 내가 연극무대에서 입는 의상이 망가졌어. 그러니 당신이 의상을 구해왔으면 좋겠어.”


정현은 벽시계를 쳐다본 뒤 다시 지한에게로 눈길을 던졌다.

“적어도 2시에 당신이 구해온 의상과 소품을 봤으면 좋겠어. 지금은 11시 10분이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3시에는 무대에 올라가야 해. 그래서 1시 전까지는 최남수가 입는 옷과 기본 소품을 구해와 줬으면 해. 비용은 회사에서 받고.”

“최남수가 입을만한 옷과 기본 소품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그걸 왜 내가 알려줘야 하지? 당신이 알아서 구해와야 하는데.”

“......알겠습니다. 2시 이전까지 의상과 소품을 구해오겠습니다.”


지한이 가볍게 눈인사하며 돌아서자 정현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남수가 입을 옷을 찾지 못한다면 굳이 날 만나러 올 필요 없어.”


지한은 잠시 멈칫했지만, 정현을 돌아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정현 배우의 집을 나온 지한은 ‘연리지’라는 극장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다섯 번이나 울린 뒤에야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FN 소속 작가 유, 지한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유 작가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한정현 배우님이 ‘연리지’에서 연극을 하지 않습니까? <늘근 그대>에서 최남수 역으로요.”

“예, 그런데요?”

“한 배우님의 부탁으로 연극 의상과 기본 소품을 구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적당한지 알 수 없어 전화했어요.”

“한 배우님의 연극 의상과 기본 소품이요? 기본 소품이라면 지팡이 같은 걸 말하는 거죠? 이미 갖고 계실 텐데요?”

“의상이 망가졌다고 하시네요. 새 의상을 구해오면서 기본 소품 역시 사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잠시만요.”


여직원은 말을 멈춘 다음 무언가 찾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 여기 있네. 한 배우님의 연극 의상은요. 70대 할아버지가 입는 그런 옷이면 돼요. 무대에서 한 배우님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계신 것은 지팡이와 모자 정도예요. 아, 그리고 부적을 항상 지니고 있다는 설정이에요.”

“부적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고요?”

“예. 사별한 부인이 생전에 준 부적인데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적이에요. 그 부적대로 한 배우님이 연기하는 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데요. 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나버려요. 그래서 한 배우님의 대사 중에 부적 같은 건 자신이나 갖고 다니지, 하는 대사가 있어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죠. 한 배우님 팬이어서 <늘근 그대>를 세 번이나 봤거든요. 아, 차라리 한 배우님이 무대에서 입었던 의상을 설명해줄까요?”

“아니요. 한 배우님이 무대에서 입었던 것과 똑같은 의상을 가져간다면 퇴짜맞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것은 일종의 시험입니다.”

“시험요?”

“예. 연극 의상이 망가졌다면 스태프에게 말하는 것이 빨랐을 겁니다. 위험 부담 없이 역할에 맞는 의상을 바로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처음 본 저에게 의상 심부름을 보낸 이유는 제가 최남수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지 시험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원래대로라면 <늘근 그대> 극본을 봐야겠지만 시간제한이 있어 관계자분에게 직접 묻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최남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경제력은 어떤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친구는 몇 명인지, 지병은 있는지, 옷에 대한 특별한 취향은 있는지, 작중 계절은 어떤지 알려주실래요?”

“구체적으로 물으시네요. 그런데 의상을 고르는데 성격과 친구가 몇 명인지도 알아야 하나요?”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은 옷을 고를 때부터 차이가 나요. 외향적이고 활동이 많은 사람은 좀 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해서 옷을 고르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주 입는 디자인을 고를 가능성이 크죠. 내향적인 사람은 그것이 덜한 편이고.”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가족 없이 혼자 사시는 노인이라면 아주 깔끔하게 옷을 입지 않을 겁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더 그럴 테죠. 의상을 고를 때 특정 직업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의상 하나만으로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네요.”


여직원은 감탄인지 놀람인지 모를 소리를 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최남수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어시장에서 일해온 사람이에요. 성격은 다소 내향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대신에 아주 친한 친구는 한 명 있어요. 자신이 모아놓은 돈도 있고 아들 둘이 대체로 잘 살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요. 여자 문제는 별로 없고 화투를 즐기지만 노름은 싫어합니다. 고집이 세지만 타협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죠. 그리고 튀는 행동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남의 눈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작중 계절은 초겨울이에요.”

“흠.....,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최남수 할아버지가 입을 만한 옷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도움이 돼서 다행이네요.”


지한은 전화를 끊고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지한은 휴대폰 메모장에 ‘연리지’ 여직원에게서 들은 최남수 정보를 입력했다.


지한은 택시가 광장시장 앞에 도착하자 내렸다. 그는 기수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기수 씨. 유, 지한입니다. 의상 때문에 그러는데 한 배우님의 옷 사이즈 좀 가르쳐줄래요?”

“아, 유 작가님......”


기수는 당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한 배우님이 ‘연리지’ 극장으로 가자고 하셔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예? 저더러 2시까지 의상과 소품을 구해서 한 배우님 집으로 오라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자, 작가님이 어차피 의상을 못 구하실 거라고 한 배우님이 그러셔서......”


지한은 어이가 없었다. 기껏 심부름을 시켜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러나 지한은 일단 참기로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의상과 소품을 구해 2시 전까지 ‘연리지’ 극장으로 가겠습니다. 배우님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됩니까?”

“기성복은 M 사이즈를 입으세요......”


뒷말을 끌던 기수는 잠시 말이 없다가 좀 더 소리를 낮춰 말했다.


“한 배우님, 가끔 이러시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지한은 자신을 위로해주려는 의도를 느끼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위로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면 이따가 봐요.”

“예.”


지한은 전화를 끊고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허,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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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꼼수 24.06.16 4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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