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의 시간은 무한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최근연재일 :
2024.09.09 18: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30
추천수 :
1
글자수 :
182,644

작성
24.07.19 18:00
조회
15
추천
0
글자
10쪽

17. 진급 시험(5)

DUMMY

레온하르트의 말을 들은 로렌스는 미소를 띤 채 제 곁에 찰싹 달라붙은 달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가왔다.


“예. 별 의미는 없지만요. 그나저나 전하, 제 검을 못 알아보신 겁니까?”

“아니, 로렌스 경. 경은 검술의 귀재이지 않습니까. 전혀 경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저를 가르칠 때와는 아주 딴판입니다.”


로렌스는 작게 웃었다. 레온하르트와는 아는 사이인 듯했다. 다정다감한 표정만 봐선 전혀 강할 것 같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에테르는 상당했다. 전체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듯했으나 순도가 지극히 높은 헬리온은 알 수 있었다.


“달리안, 그동안 잘 지냈니? 자주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으응, 괜찮아. 나도 요샌 정신없었고, 형 바쁜 건 나도 아는걸. 기사단장이잖아?”

“이해해 줘서 고맙다. 시험 보러 왔다고 했지, 어땠어?”

“당연히 쉽게 통과했지! 나 이제 7급이다?”

“7급? 세상에, 다음에 파티라도 열어야겠는데?”


그 뒤로도 훈훈한 형제의 대화가 이어졌다. 로렌스의 얼굴로 보아 2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달리안과 꽤 크게 벌어진 나이 차이였다. 형제간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헬리온은 슬쩍 레온하르트에게 다가갔다.


“아는 사람이야?”

“응? 아, 응. 헬리온은 모르겠구나. 그게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로렌스 경은 왕실 기사단장이야. 기사단이라고는 해도 근위대에 조금 더 가깝지만. 2년 전에 새로 임명되어서 나한테 검술을 가르쳐주기도 했고.”


레스터 가에는 작위가 없었다. 그런데도 기사단장에 임명되었다는 건, 최소한 엄청난 전공을 세웠다는 의미로 들렸다. 레온하르트의 말을 들은 로렌스는 달리안을 매달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꽤 컸다.


“전하께서 흡수력이 워낙 좋으셔서요. 저는 크게 한 것도 없습니다.”

“에이, 또 그러신다. 경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저는 검에 흥미조차 가지지 않았을걸요. 시대가 시대인 만큼 검술이 필수인 것도 아니고요.”


그 말대로였다. 에테르라는 에너지가 존재하는 만큼 그 힘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은 대우받거나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말로 ‘가능성이 높은’ 것뿐이다. 근대와 현대의 중간 지점에 놓인 이 시대—이 세계가 뭐든지 어중간하고 적당히 구색에 맞춰 돌아간다 해도 점점 현대와 궤적을 같이하게 될 테다. 앞으로 도래할 시대는, 혈통에 의한 신분이 아닌 자본과 능력에 의한 신분으로 지위가 결정된다.

그런 격동의 시대에 놓인 왕실 또한 변화하기 마련이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백성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있는 군주의 시대는 저물었다. 국민들은 평화를 원하고, 무의미한 피가 흐르는 걸 꺼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리라.

따라서 지금의 지배자들은 온건한 방식을 택했다. 무력으로 백성을 짓누르고 다스리는 군주가 아닌, 민중의 의견을 듣고 협상하는 식으로 시작하는 등 ‘더 이상 잔혹하지 않다’라는 점을 강조한 정치를 펼쳤다. 이에 따라 무력은 군주에게 필수적인 항목이 아니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만약 반란이 일어난다면 무력이 다시 이 나라를 휩쓸 것이다. 헬리온은 최악의 경우 능력을 끌어다 쓸 계획이긴 했지만, 되도록 직접 나서고 싶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레온하르트의 주위에 뛰어난 실력자들이 포진해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폐하께서도 전하의 검술 실력을 들으시고 기뻐하셨는걸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뭐 그건 그렇죠.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좋아하셨고.”


헬리온은 딱히 대화에 끼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애매하게 서 있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뒤로 빠지려는 순간, 화제가 자신을 향했다.


“아, 그쪽 분은 아까 얼핏 이름을 들었습니다만. 혹 딜라드 백작님의 자제분이신지?”

“···네, 맞습니다. 헬리온 딜라드라고 합니다.”

“아아, 역시나. 백작님과 많이 닮으셔서요. 2년 전엔 미처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감사를 전합니다.”

“아버지께서 하신 일인걸요. 제게 인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헬리온은 적당히 맥락에 맞추어 답했다. 설명은 나중에 레온하르트나 달리안에게 들으면 될 것 같았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마친 그들은 이제 슬슬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럼 형, 나중에 봐. 편지든 뭐든 연락하고!”

“그래. 달리안 너도 몸조심해라.”


달리안은 몸을 돌려 로렌스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로렌스 또한 밝은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법 큰 마차를 부른 그들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사람이 한 명 늘었을 뿐인데도 마차 안이 꽉 찬 듯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여러분들이 좁게 가는 것 같아서···.”

“아냐아냐, 율리아. 편하게 있어. 난 친구가 생겨서 기쁜데. 다들 그렇지?”


베일린은 자연스레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처음부터 다들 율리아를 환영하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그녀가 분위기를 주도한 덕분에 아직은 어색하던 공기가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했다.


“베일린 말이 맞지. 친구가 생기는 건 기쁜 일이니까~ 어어, 율리아라고 했나? 만나서 반갑다. 나는 레온하르트야.”


레온하르트는 활짝 웃으며 율리아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네, 네···. 저는 율리아 프로하스카예요. 그러니까, 전하······?”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딱히 밖에서 주목을 모을 생각은 없어서. 봐봐, 다들 나를 그냥 ‘레오’라고 부르잖아?”

“아, 아무리 그래도···. 그럼, 레오 님···.”


율리아 안에선 최대한 타협을 본 모양이었다. 레온하르트로서는 존댓말도 그만둬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도 모두 존댓말을 쓰는 걸 보니 아무래도 습관 같았다. 그런 것까지 고치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니, 레온하르트도 마음속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나저나 헬리온, 너 2년 전에 있었던 일 몰라?”

“나야 모르지······. 내가 말 안 했던가?”


달리안의 물음에 헬리온은 간단하게 얼마 전까지의 제 상태를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니 그가 의식불명 상태였다는 걸 레온하르트 외엔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야기가 끝나자 달리안도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모를 수밖에 없겠네. 제법 큰일이었으니까 모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까는 용케 맞춰서 대답했다?”

“대충 눈치로. 애초에 내가 뭔가를 시켜서 도움을 줬을 리도 없으니까 아버지가 한 일이겠지. 그래서 무슨 일이었는데?”

“‘세리타의 악마’. 맞지?”


한참 조용히 앉아 있던 프레이야가 입을 열었다. 달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게 부르는 걸 보면 꽤 자세히 알고 있나 보네?”

“트루이스트는 생각보다 세리타에 가까우니까. 게다가 마침 그때 세리타 외곽에 있었거든.”

“아하, 외곽은 피해가 거의 없었지. 어쨌든 간단하게 사건을 설명하자면, 세리타 중앙구역에 발생한 균열에서 거대한 마수가 나왔다는 이야기야. 그걸 그 근처 사람들이 당시에‘세리타의 악마’라고 불렀는데···. 그 마수 하나면 다행이었겠지만 자잘한 놈들도 많이 나와서 말이지? 부모님은 마침 그때 혼란에 빠진 거리에서 마차 사고를 당했고, 조용히 훈련만 하던 우리 형이 나서서 그 마수와 균열을 모두 처리했다는 말씀.”


마지막 말에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양친의 사망이 너무 가볍게 스쳐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헬리온은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 가문이 왜 나오는데?”

“사후 처리를 도와줬거든. 로타님도 세리타랑 아주 멀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알레프 강에 스며든 마력도 어느 정도 걷어내 줬고. 근처 농가에선 전부 알레프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니까 사람들이 엄청 고마워했지.”

“로렌스 경이 그걸 계기로 기사단장이 되었다고 했지?”

“응. 원래도 기사단에 들어갈 생각이긴 했던 것 같지만, 친척들이 워낙 시끄러워서. 원래 레스터 가문은 자작 작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형이 정식으로 기사가 되고 나면 나를 꼭두각시로 세워 두고 가문을 먹을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나는 마탑으로 갔고 형은 아예 기사단장이 되어버렸지. 그와 동시에 영지랑 작위를 반납했고.”

“둘 다 작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긴 해.”


레온하르트는 레스터 형제를 향해 한 말이었으나 괜히 옆에 앉은 헬리온까지 찔렸다. 달리안은 다리를 흔들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난 한참 어리잖아? 작위 같은 거 잘 몰라. 작위가 이어진다고 해도 형이 받았겠지. 그땐 뭣도 모르고 형이 하자는 대로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괜히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들한테 휘둘리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나아 보이고.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된 거였군.’


마탑 또한 세리타에 있었으니 친척들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적어도 보호만큼은 확실히 해주었을 테다. 게다가 달리안은 2년 만에 최연소 5급 마법사가 되었으니 더는 걱정할 것도 없었다. 정말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프레이야는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증이 일어 달리안에게 질문했다.


“달리안, 그럼 그 옷은? 네 취향이야?”

“으~음, 취향이기도 하지만 여기도 사정이 좀··· 아, 도착했다. 나중에 알려줄게.”


실컷 떠들다 보니 벌써 기숙사 앞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여섯 사람은 세 명씩 갈라져 각자 기숙사로 향했다.

그날 밤, 헬리온은 오랜만에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포터의 시간은 무한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9/30) 24.09.11 1 0 -
공지 연재글 수정 안내 24.08.02 9 0 -
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0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4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6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6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