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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최근연재일 :
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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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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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균열 너머의 세계(1)

DUMMY

‘비밀 결사’의 날짜는 당장 일주일 후였다. 그동안 아이들은 무슨 옷을 입고 갈지 정하고, 따로 준비할 건 없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헬리온은 가지 않겠다고 미리 말해 두었고, 레온하르트도 그 모임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네 명만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렇게 나머지 네 아이들이 준비에 온 신경을 쏟는 동안 헬리온은 한가로웠다. 적당히 일어나 책을 읽고 산책하고,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백수의 삶이었다.

물론 그런 헬리온도 눈치라는 건 있기에, 가끔은 아들 같은 행동을 보였다. 그중 그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어머니의 병문안’이었다. 그녀가 일전에 헬리온에게 늘어놓은 알 수 없는 말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목적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또 찜찜할 듯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아이들이 ‘비밀 결사’에 참석하기 하루 전인 오늘 방문할 예정이다.


똑똑똑.

헬리온은 언제나처럼 문을 두드렸다. 노크에 대답을 들어 본 일은 드물었지만,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엉뚱한 행동(주로 이 시대, 혹은 세계에 맞지 않는 예법을 칭한다.)을 아이들에게 지적받곤 하는데, 어떤 사람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어머니에게까지 한소리 듣고 싶진 않았다.


“실례합니다.”


 미야의 방은 언제나처럼 어두컴컴했다. 조명을 전혀 켜지 않는 건지, 아니면 필요할 때만 잠깐 켜는 건지는 모를 일이다. 헬리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아아, 그래. 헬리온.”

“예.”

“순간 네 아버지인 줄 알았단다. 기척이 제법 비슷하구나?”

“예에···.”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외관상으로 헬리온과 케이슨 딜라드는 닮긴 했다. 전체적인 선이나 머리카락의 색, 눈매 등. 헬리온 쪽이 조금 더 둥글고 순하게 생기긴 했지만, 분명 케이슨의 어릴 적은 헬리온과 거의 똑같이 생겼을 테다.

아무리 그래도 기척이 비슷하다는 말은 잘 와닿지 않았다. 케이슨은 저보다 키가 훨씬 크고, 보폭도 넓다. 기척이 옅은 편인 헬리온에 비해선 큰 존재감을 드러냄이 분명하다.

미야는 이러한 논리적으로는 잘 성립되지 않는 말을 하곤 했다. 헬리온이 말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았다. 분명 오늘도 헬리온은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돌아가게 될 게 뻔했다.









헬리온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야가 하는 말은 그의 뇌에 제대로 닿지 않았고, 미야 또한 그가 듣든 말든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하면 나머지는 미야의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졌으니, 헬리온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들어온 지 20분 정도 지났나? 슬슬 가봐도 될 것 같은데.’


그는 항상 미야의 방에 30분을 채 머물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 정도 시간이 되면 끝을 맺었고, 나가는 헬리온을 잡지도 않았다. 헬리온은 평소처럼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비밀 결사’에 간다지?”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최근 며칠간 그의 귀에 가장 많이 들어온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헬리온은 슬쩍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의자에 붙이고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일단은 내가 딜라드 가의 안주인이니, 소식 정도는 들려오는 법이지···. 어쨌든. 너도 참석하니?”

“···아뇨, 저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뭘까. 헬리온은 필사적으로 생각했지만, 쉬이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모임에는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그래···, 네 누나와 다른 줄 알았는데, 이런 점에서는 똑같구나?”

“······.”


헬리온은 말을 아꼈다. 미야의 말대로 클레어 또한 그런 사교의 장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긴 했지만, 아마 헬리온이 그런 자리를 피하는 이유와는 다를 것이다. 가타부타 말을 얹고 싶지 않은 헬리온은 침묵을 택했다.


“뭐··· 그래. 그나저나 아쉽구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올 텐데.”

“···모임에 참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래. 아주 초반뿐이지만···. 네가 아카데미에 간 직후 정도에 발족한 모임이니.”

“······.”

“아, 네 아버지께는 비밀로 하고 간 거니까, 너도 주의해 주렴. 그이라면 이미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긴 하다만.”

“예에···.”

“그 모임에선 말이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단다. 네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을 만한.”


창밖의 구름이 걷혔는지 어두운 방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미야의 푸른 눈은 그 빛을 받아 더 푸르게 빛나는 듯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독사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제 눈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궁금증이라 하시면, 어떤···.”

“음······, 예를 들자면, 내가 너를 엿볼 수 있었던 이유라던가?”


‘저건 진짜 뭔 소린지······.’


헬리온은 저번 만남에서 미야의 말을 듣고, 초고에 나오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 타인의 능력은 몸에 나타난 문양만으로 알아맞히기 어렵다.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능력을 속일 수도, 감출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있다’라는 건, 그녀가 말한 ‘엿본다’라는 표현이 개인의 능력과는 관계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내가 참석했던 몇 회 사이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서는···, ‘균열 너머의 세계’도 있었지.”

“···예?”

“균열 너머의 세계. 균열은 내부의 마석을 깨트려야만 닫히는 형식이잖니? 너라면 모를 수 없을 텐데.”

“······.”

“아니면, 그 안에 정말 아무것도 없이 정말 마석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물론 헬리온은 알고 있다. 그가 직접 부여한 설정이었고, 주인공 일행이 균열 안으로 들어가 내부의 마석을 깨고 성공적으로 균열을 닫는 이야기 또한 초고에 확실히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균열 내부의 세계’는, 그 안에 들어간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이다. 마석을 깨고 밖으로 나와 타인에게 내부에서 본 것들을 말하려는 순간, 마치 음소거되는 것처럼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 억지로 이야기하려 반복해서 시도하면 물리적인 고통이 가해지기도 했다. 그 안에 함께 들어갔던 사람들끼리는 이야기할 수 있으나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정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당히 폐쇄적인 환경 설정이었다.


‘그런데, 그걸 모임에서 이야기한다고? 그게 가능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그가 설정을 많이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큰 위기 요소에 대한 설정을 완전히 반대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은 작다. 미야는 그런 헬리온의 혼란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함없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뭐, 네가 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네 선택이니. 이제 혼자 있고 싶으니, 가 봐도 된다.”

“···아, 예. 그럼······.”


헬리온은 얼떨결에 방문을 닫고 밝은 빛 아래로 돌아왔다. 미야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꼭 다른 세계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뭐, 나한테는 여기도 다른 세계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헬리온은 천천히 그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비밀 결사라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 쓰이는데. 초고에도 안 나오고, 정보 수집에도 한계가 있고······.’


방에 들어서자 고양이가 입을 쩌억 벌린 채 맞이해주었다. 혼자 놀다가 지친 모양이다. 바닥에는 잘 가지고 놀지 않던 털실이 나뒹굴었다.

헬리온은 괜히 그 털실을 발끝으로 툭툭 차며 방 안을 빙빙 돌았다. 라피는 그 털실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 생각을 마무리지은 헬리온은 발끝으로 굴러가던 털실의 움직임을 막았다. 고양이의 불만 가득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길로 다시 방을 나선 헬리온은 아이들이 묵는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웃음소리가 한 방에 모여서 들려오는 걸 보니, 지금쯤 모여서 수다라도 떨고 있으리라. 작게 한숨지은 헬리온은 말소리가 들리는 방문을 세 번 두드렸다.


“헬리온이야. 들어가도 돼?”

“어라, 웬일이야? 들어와~”


문 안쪽에서 넉살 좋은 프레이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상 그대로 펼쳐지는 풍경에 헬리온은 감탄사를 내뱉으려던 걸 참았다.


“무슨 일이야? 너도 심심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뭐야? 용건만 말해.”


달리안은 변함없이 까칠하고 버릇없었다. 헬리온은 그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점도 달리안의 성격 형성에 기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일 너희가 가는 ‘비밀 결사’, 나도 갈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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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5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5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9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8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9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10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1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10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10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10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12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1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3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2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2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2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3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5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2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4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9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5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7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8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1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8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8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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