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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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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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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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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DUMMY

산맥을 타고 흐르는 짙은 마력은 스멀스멀 저택을 향해 내려왔다. 동시에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비행형이랑 동물형인가보군. 인간형은 기분 나쁘니까 없는 게 편하지.’


저택 부지는 입구의 숲을 제외해도 꽤 넓었다. 방어막은 저택을 크게 감싸고 있었으나 부지를 다 덮을 만큼 넓지는 않았고, 저택에서 약 2~300미터 반경까지 커버할 수 있다. 백작의 움직임으로 보아 일부 병력은 저택 앞 숲 방향으로 배치한 듯했다. 헬리온은 현재 최대 반경 30미터 정도의 서클을 펼칠 수 있었으니 그의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적어도 원거리 공격을 하는 달리안 같은 사람에게까지 방어 마법을 쳐 주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더 숙련되면 대상 지정으로 서클을 펼칠 수도 있다고 듣긴 했지만···. 일단 내가 그 정도 레벨은 아닌 것 같으니까.’


헬리온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저택 방어막의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나아가 서클을 최대로 펼쳤다. 헬리온이 마석에 건 [보존] 마법 때문에 은은한 금빛이 가미된 푸른 방어막에 찬란한 금빛이 겹친다.

이 서클 범위 내에만 들어와 있으면, 다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시간은 벌 수 있다. 백작의 군에는 마법사도 섞여 있었으니 아무리 [치유]를 이중으로 건 것처럼 꾸며도 금방 들통날 테다. 따라서 헬리온은,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숨기고 싶긴 하지만, 특수 능력으로 주어진 현상인 건 맞는 것 같으니까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귀찮은 게 아니라 백작이 죽지 않는 거야.’


애초에 백작이 죽으면, 그가 능력에 관해 설명하는 상황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귀찮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수의 기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마수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에테르 순도가 변한 게 아니니 다른 사람들보다 둔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헬리온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말이리라.


“온다.”


짧게 읊조린 레온하르트는 검을 고쳐 쥐었다. 기분 나쁜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챙—

레온하르트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마수의 목을 베어냈다. 비교적 덩치가 작아 금방 처리했지만,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는 동물형, 그중에서도 늑대에 가까운 모습을 지닌 마수는 평균적으로 이 개체보다 훨씬 컸다.

그 개체를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마수가 쏟아져 나왔다. 산 중턱에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열린 균열의 틈새에서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게 눈으로 보였다. 준비 태세를 취하던 베일린과 프레이야도, 아이들 무리와 조금 떨어져 대기하던 백작의 군사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율리아는 큰 개체를 향해 [감속] 마법을 걸고 있었다.


‘달리안이랑 아버지 쪽 마법사들은···, 예상대로군. 멀리 있는 큰 개체나 비행형 위주로 공격하고 있어. 숲 쪽으로 이동하는 마수는 적은 편이고···. 이대로라면 안정적으로 수를 줄일 수 있다.’


헬리온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착실히 주변 상황을 살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다니는 광경은 보고 있으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지만,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어긋나면 위험한 상황이다. 헬리온은 최대로 펼친 방어막을 유지하며 다음 진행을 생각했다.


‘초고에서 백작은 균열을 닫기 전에 사망했다. 그 부하가 들어가서 균열을 닫았고, 이후 헬리온의 복귀······. 어렵네. 산속에 있는 마수들은 여기까지 내려오기 전에 처리하는 게 편할 것 같은데.’


피나 사체가 직접 보이지만 않으면 될 것도 같았다. 헬리온은 제 손으로 무언가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이 섭취하는 고기도 누군가가 생명을 빼앗은 후에 식사 자리에 올라온다.

조금 꺼림칙하긴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면 손이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헬리온은 전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성경을 펼쳤다.


‘······이거면 되겠지.’


계속해서 날아다니는 피와 살점에 손이 떨렸다. 그는 떨리는 손을 꽉 붙잡고 서클 너머를 향해 외쳤다.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헬리온은 문장을 끝맺지 않았다. 너무 길기도 했고, 문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생각하면 끝까지 읽었을 때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번개가 치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땅에 꽂히더니 하늘이 조금 전보다 아주 미세하게 어두워졌다. 전투에 집중하는 이들은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테다.

말 그대로 무저갱이다. 균열과 저택의 중간 지점 정도에 위치한 산 중턱에 어두운 구멍이 열린다. 쏟아져 나오던 마수들은 잠시 주춤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들은 무저갱을 우회하여 점점 저택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들은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처음 쓰는 마법에 긴장하고 있던 헬리온은 씨익 웃으며 방어막을 강화했다.


‘성공이다.’


요한계시록의 다섯 번째 천사. 그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무저갱의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전갈의 독을 가진 메뚜기들이 나와 다섯 달 동안 인간들을 괴롭게 한다.

그가 문장을 끝맺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우선 무저갱이 생성되어도 자연환경은 확실하게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공격하려는 건 마수들이지, 인간이 아니다. 정말 ‘무저갱이 생성되어, 독을 가진 벌레가 나온다’라는 최소 조건만 충족하고 싶었다. 문장의 힘은 강력하고, 헬리온의 에테르를 기반으로 마법이 실행된다.

그렇다면 도박을 해 볼 만도 했다.

무저갱 속에서 튀어나온 무수히 많은 벌레는 헬리온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아직 무저갱의 경계에 다가가지 못한—이제 막 균열에서 빠져나온 마수들 위주로 달라붙어 독을 주입했고, 몸에 독이 돌기 시작한 마수들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휘청거리며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작업을 이어가자 저택 쪽으로 내려오는 마수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성공이었다.


“······.”


케이슨은 끊임없이 마수를 베던 움직임을 멈추고, 환한 금빛의 중심에 선 아들을 바라보았다. 헬리온은 전혀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지 제 할 일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는 부하 몇 명을 불러 모아 균열을 닫으러 갈 준비를 했다.


“마수가 꽤 많이 줄었다. 이 틈을 타서 들어가지.”

“예. ···도련님은 저대로 괜찮습니까?”


딜라드 가문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헬리온의 건강 상태를 알고 있다. 회복이 된 건 둘째치고, 몇 년 동안 누워만 있던 도련님이 저렇게 힘을 써대는데 걱정하지 않을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 케이슨 또한 그에게 물러나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조금 전 헬리온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진심으로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헬리온이 아주 어렸던 시절, 집무실 창문 너머로 본 미소와 똑같았다. 유모와 함께 균형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했던가. 작은 벽돌 위에 올라가 한 발을 들고 휘청거리기를 몇 번, 결국 성공했을 때 헬리온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유모는 대단하다며 손뼉을 쳐 주었고, 지나가던 클레어도 그 모습을 보고 함께 놀기 시작했다.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아 귀한 풍경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헬리온의 그런 뿌듯한 표정을 보는 일은 없었다. 중병에 걸린 건 아니었으나 어째서인지 잔병치레가 늘어 바깥 활동이 줄었고, 어머니인 미야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싸늘해졌다. 결국 그는 쓰러지고 말았으니 무언가를 성취해낼 만한 시간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그가 몇 년 만에 보여 준 미소는, 표현이 서툰 케이슨에게 제법 큰 안정감을 안겨 주었다. 부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케이슨은 검에서 마수의 피를 털어내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괜찮다.”

“하지만···.”

“병력 전체가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저 아이 주변에도 유능한 이들이 많은 듯하니. 그냥 두는 게 나을 듯해.”

“예······.”

“누가 보면 자네 아들인 줄 알겠어.”

“그래도 쭉 누워 계셨잖습니까. 걱정 정도는 할 수도 있죠.”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도 헬리온의 미소를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지 조금 고민했을 테니까. 그러나 헬리온은, 그를 꼭 닮은 그의 아들은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면서도 여전히 금빛으로 반짝이는 뿌듯한 미소를 띠고 있다. 케이슨은 무심코 피식 웃고 말았다.


“자네 시력이 더 걱정되는군. 저렇게 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말이야.”


작가의말

*요한계시록 9:1 (개역개정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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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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