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의 시간은 무한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최근연재일 :
2024.09.09 18: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43
추천수 :
1
글자수 :
182,644

작성
24.08.14 18:00
조회
9
추천
0
글자
10쪽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DUMMY

헬리온은 곁눈질로 백작의 움직임을 살폈다. 마수가 상당히 줄어든 이 틈을 타 균열로 들어가려는 듯했다.

산 중턱의 무저갱은 여전히 독충을 내뿜었고, 이제 그 수가 처음의 절반 이하가 된 마수들은 홀린 듯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둠과 나무가 무저갱을 구색 좋게 가려 주어 다행이었다.


‘백작이 접근하면 무저갱은 없애야겠어.’


괜히 무슨 마법이냐고 추궁받아도 곤란했다. 그의 마법식은 언뜻 보면 통상적인 공격 혹은 방어 식과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달랐다. 방어 마법은 기초 방어 마법에 문장의 힘을 덧입힌 거라고 쳐도, ‘무저갱’은 전혀 아니었다.

공격도 방어도 아닌 새로운 식. 불가능하진 않으나 싸움이 줄어든 이 시대에선 드문 일이다. 새로운 마법식을 만들어내는 일은 에테르가 많이 들뿐더러 조금이라도 식이 어긋나면 정반대의 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불안정했다. 통상 마법은 괜히 통상 마법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식을 재현하고, 덧씌우고, 계속해서 후세에게 전달해도 그 효과가 일정하며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지금 통용되는 마법식은 모두 그 조건을 충족한 것들이다.

달리안은 어쩌면 그의 마법에 대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안은 제 실험에 동참해주기만 한다면 꼬치꼬치 캐물을 성격은 아니었다. 헬리온의 몸은 조금 힘들겠지만, 괜히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상황을 상상하니 실험용 쥐가 되는 게 몇 배는 더 나을 듯했다.

백작은 어느새 무저갱 근처에 다다랐다. 헬리온은 빠르게 에테르를 거두어 무저갱을 닫고 에테르를 순환시켰다. 평소보다 많은 힘을 써서 그런지 흐름이 불안정했다.


“헤, 헬리온.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한데, [치유]를······.”


율리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큰 마수는 이제 거의 나오지 않아 부담이 줄어든 모양이었다. 헬리온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괜찮아. 그냥 잠깐 흐름이 흐트러졌을 뿐이니까···.”

“하이고, 잘하는 짓이다. 최전방 방어막이 꺼지면 마수들에게 기회만 더 주는 꼴이니까 정신 차려.”


달리안 또한 여유가 생긴 듯했다. 비행형도 이제 거의 나오지 않아, 그는 주로 전선에서 검을 휘두르는 세 사람을 서포트하는 중이었다.

문득 세 검사를 바라보자,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분명 이곳은 헬리온이 살아 숨 쉬는 세계이고, 물체를 만질 수 있으며 인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마치 소설 속 묘사를 머릿속에서 그대로 재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레온하르트의 검은 무거웠다. 실제로 무게를 비교해본 적은 없으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큰 궤적을 남겼고, 마수 또한 깔끔하게 쓰러졌다. 찌르기보단 베기를 더 유연하게 쓰는 모습에선 이름에 걸맞게 사자의 형상이 보이는 듯했다.

베일린의 검은 레온하르트보다는 가볍지만, 빠르고 날카로웠다. 마치 춤을 추듯 차례로 마수들을 베어나가는 모습은 검무 무대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살벌한 움직임. 레온하르트처럼 목을 깔끔하게 떨어트리지는 않으나, 마수의 몸에는 순식간에 3, 4개 이상의 깊은 베인 상처가 무늬처럼 깊게 새겨졌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단연 주목할 만한 건 프레이야였다.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모두 바스타드 소드를 사용하고, 에테르로 그 위력을 높여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에테르는 극소량으로 사용하며 두 사람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뛰어다녔다. 소드브레이커는 마수의 이빨이나 발톱을 막았고, 그 틈을 파고들어 숏소드를 찔러넣는다.


‘괜히 ‘신벌의 대리자’가 아니구나···.’


과거 그가 붙인 이명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확실히 자극이 컸다. 심지어 초고 상 그 호칭은 반역이 일어난 후에 붙여졌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2, 3년쯤 지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워질 정도였다.


“···후우, 드디어 숨 좀 돌리겠네.”


마수는 이제 눈을 떼고 있어도 무작정 공격해오지 않았다. 헬리온은 방어막의 크기를 서클보다 작게 줄였다.


“헬리, 너 에테르는 괜찮아?”

“응. 여유 있어.”

“체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에테르만큼은 멀쩡한 게 웃긴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달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레온하르트가 웃음을 터트리자, 다른 아이들도 차례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 같아 긴장이 풀리려 했다.


“백작님은 아까 가셨지?”

“응. 지금쯤 균열에 도착했을 것 같은데···.”


그때.

짙은 마력이 균열에서 토하듯 흘러나왔다. 무심코 헛숨을 들이킨 헬리온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기의 마수였다. 크기도 크기지만, 비행형이나 동물형이 아닌 인간형이기까지 했다. 거인을 연상시키는 그 마수는 천천히, 그러나 큰 보폭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이렇게 되면 [감속]도 소용없어! 달리안의 원거리 공격은 통하긴 하겠지만, 저 크기로 봤을 때 달리안이 숨통을 끊어놓기 전에 저택에 다다른다. 심지어 저 뒤에 끌고 오는 건······.’


수많은 인간형 마수의 무리가, 마치 개미 떼처럼 줄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 불쾌하기까지 한 모습에 베일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우리만으로는 안 되겠는데.”


아이들과 더불어 병사들도 꽤 많이 있었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저갱을 다시 열자니 헬리온이 지친 만큼 제대로 발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저 정도 수라면 백작의 목숨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라케시스의 실타래]를 사용합니다.]


그가 ‘무저갱’을 열었던 시점으로 돌아가면 된다. 특능을 너무 자주 쓰는 것도 내키지는 않았으나 이런 상황을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헬리온은 즐길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익숙해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발동된 마법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인데다, 계속 열어 둘 필요가 있다면 에테르를 조절하여 크기를 작게 줄이거나 위치를 옮기면 될 일이다. 게다가 독충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위치만 잘 조정한다면 백작에게 들킬 일도, 위해를 가할 일도 없을 것이다.

사방이 익숙한 금빛으로 물든다. 각자의 위치 또한 조정되고, 넘쳐흐르는 마수들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시전자인 헬리온을 제외하고 마치 비디오를 역재생하는 듯 움직이는 풍경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헬리온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가 다르다. 아이들은 모두 그가 무저갱을 닫기 전 위치로 돌아갔고, 그 이후에 쏟아져 나온 마수들도 사라졌다. 백작의 위치는 조금 아래로 내려갔으며 그의 방어막은 서클을 완전히 덮는 크기를 이룬다. 모든 게 같았지만, 어딘가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금빛이 사그라들기 직전, 헬리온은 위화감의 정체가 신경 쓰여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달라진 게 없는데,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레온하르트가 나를 보고 있었나?’


전투 중 레온하르트가 헬리온에게 말을 건 적은 없다. 끝나갈 무렵 겨우 입을 연 그는 헬리온에게 계속 등을 보였으며, 마수에 집중한 탓에 몇몇 명령을 제외하곤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똑바로 헬리온을 바라보고 있다.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능력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올리브색 눈은 금빛이 반사되어 밝은 연두색으로도 보였다. 그가 움직임이 없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꼭 자신에게 말을 걸 것만 같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괜히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헬리온이 시선을 거두고 무저갱과 에테르를 연결할 태세를 취하자, 실타래가 모두 감겼다. 순식간에 금빛이 사그라든다.

다시 전장이다. 헬리온은 무저갱에 불어넣던 에테르의 가닥을 잡아 연결했다. 역시 지친 상태에서 발동하는 것보단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쪽이 편하고 안정적이었다. 백작은 이제 막 무저갱 근처를 지나가려는 중이었다.

헬리온은 무저갱의 위치를 옮겼다. 백작과 그의 부하들은 왼쪽으로 올라갔으니, 크기를 조금 줄여 오른쪽으로 옮기면 눈에 띄지 않을 테다. 동시에 독충들이 유도하는 방향도 자연스럽게 달라져, 공격받은 마수들은 다른 마수들과 엇갈리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묘하게 더 눈에 띄는 것 같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 거대한 인간형 마수를 다시 상대하는 것보단 몇백 배 더 나았다.






잠시 후.

예상대로 거대한 인간형 마수가 균열 틈새로 울컥 쏟아졌다. 헬리온은 무저갱을 확대한 후 재빠르게 독충을 보냈다. 독충의 수도 한계가 있으니 모든 마수를 다 무저갱으로 몰아넣기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저 거대한 마수와 다른 몇 마리라도 집어넣으면 족했다. 헬리온은 에테르 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야, 너······.”


달리안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에테르에 관한 이야기였으리라. 지금 그가 내뿜는 에테르의 순도는 어림잡아 8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헬리온은 지금 처음 써 보는 마법을 장시간 유지하고 있었기에, 피로가 쌓인 데에 더해 경험이 부족한 몸은 세밀한 조절이 어려워졌다. 어차피 그가 에테르를 제한하여 사용하던 건 다른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기는 로타님의 딜라드 저택 부지 내였다. 주변 사람들은 제 친구이거나 아버지에게 충성하는 이들이고, 그 외엔 마수뿐이었다. 세밀한 조정 없이 에테르를 들이부어도, 자신을 괴물이라 착각할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순도 높은 에테르를 쓰니 마음이 후련하기도 했다. 마치 3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사람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듯, 뻥 뚫린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한 번씩 발산해 줘야 한다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포터의 시간은 무한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9/30) 24.09.11 1 0 -
공지 연재글 수정 안내 24.08.02 9 0 -
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