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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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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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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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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DUMMY

소피는 간단한 식사를 가져오며 아이들은 연무장에서 대련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헬리온은 여전히 정신이 다른 데 가 있는 사람 같았다. 소피는 아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정신은 번쩍 들었지만, 평소의 배로 쌓인 피로가 조금 오래 잔 정도로 깔끔하게 풀릴 리 없다.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도 헬리온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맞은편 벽을 응시하기만 했다.


‘애들은 기운도 좋지.’


헬리온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읽은 책의 내용과 지각한 게 아닌가 하고 눈을 떴을 때 느낀 짧은 공포, 그리고 젊은 애들은 좋겠네 하는 감상 정도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몸이 젊어도 정신이 이미 현대 사회에 찌든 직장인인데 어쩌겠는가.

식사를 끝낸 헬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간다고 해봤자 저택 부지 내이지만, 그래도 잠옷을 입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벼운 셔츠로 갈아입은 헬리온은 산책하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듯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긴 회랑을 따라 걷다 보니, 어디선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금세 연무장에 다다랐다. 백작의 사병은 주로 성에 머물러 저택의 연무장은 그리 자주 쓰지 않은 듯 황량했지만, 그 공간을 아이들이 채우고 있었다.


“어? 헬리다. 지각~”


헬리온을 가장 먼저 발견한 프레이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말에 정신없이 움직이던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이 움직임을 멈추었고, 율리아와 무언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던 달리안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지각은 무슨 지각이야, 만나기로 한 적도 없는데···.”

“보나 마나 늦게 일어난 거겠지, 뭐. 우리 체력 바닥 마법사님이 어디 가겠어?”


달리안은 명백히 헬리온을 놀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 말과 헬리온의 퀭한 얼굴을 동시에 뇌에 담은 아이들은 웃음을 참기 힘들어 보였다.


“웃을 거면 그냥 웃어라.”

“큽, 아니, 헬리. 진짜로 웃으려는 게 아니라···, 푸흡.”

“그러니까 그냥 웃으라고.”


 베일린은 입을 틀어막고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나오기 전에 거울은 보고 나왔고, 그때 별다른 점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이상한 점은 없을 테다.


“···레오, 내가 그렇게 웃긴 말 했어?”

“글쎄···? 좀 웃기긴 했지만, 저렇게 웃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엔 따라 웃던 달리안과 레온하르트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베일린과 프레이야는 뭐가 그리 웃기는지 눈물까지 흘릴 기세로 깔깔 웃었고, 율리아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두 사람 곁에서 쿡쿡 웃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긴다는 게 저런 건가······.’


또다시 남자 세 명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딘가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굳이 이해하려 들진 않았다.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색하게 시선을 맞춘 세 사람은 그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들 대련 중이었던 거야?”

 “음, 일단은? 레오랑 베이는 쭉 대련하고 있었고, 나는 율리아 좀 가르쳐 주다가 쉬는 중이었어. 달리안은 혼자 뭐 하다가 율리아를 부르더니 속닥거리던데.”


상황이 일단락되자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다시 대련에 집중했다. 오늘 하루는 프레이야가 율리아의 검술 수업을 봐주기로 했는지, 헬리온이 오기 전부터 함께 연습하고 있던 듯했다. 중간에 잠시 쉬는 동안 달리안에게 율리아를 빼앗긴 프레이야는 근처에 적당히 앉아 두 사람의 대련을 관찰 중이었다.


“쟤네도 참 대단하단 말이지···. 어제 그렇게 날뛰어놓고 안 힘든가?”

“마수 처리량으로 따지면 프레이야 너도 만만치 않았던 거 같은데. 그리고 속도는 셋 중에서 네가 제일 빨랐잖아.”

“나는 이래 봬도 꽤 힘들어하는 중이거든···? 근육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중이란 말이야. 율리아 검술 봐주는 것도 그래서 먼저 자처했고.”

“[치유] 걸어 줘?”

“아니, 그런 걸로 쉽게 나으면 나중에 또 힘들 테니까···, 그냥 풀릴 때까지 놔두는 게 좋아. 아, 마사지라면 얼마든지 해도 되는데.”

“···내 힘으로?”

“···응, 미안. 좀 아닌 것 같네.”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 가던 프레이야와 헬리온은 편한 자세로 앉아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챙, 챙 하며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저 정도면 5급 이상일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날카롭고 묵직해.’


헬리온은 검술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개월간 옆에서 관찰한 바를 통해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들의 움직임은 처음 그들의 검술을 보았을 때, 아니, 지난 진급 시험 때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강했다.


“거의 매일 수업 빠지고 대련하러 가더니, 진짜 엄청나게 발전했네. 쟤네 둘.”

“그러게.”


프레이야는 검을 쓰는 사람이었으니 두 사람의 성장을 더 깊게 체감할 테다. 공격은 빠르고 깔끔했으며, 방어 또한 빈틈없었다. 몇 합을 더 맞춰 보던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잠시 쉬려는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둘 다 엄청난데? 안 힘들어?”

“뭐, 그럭저럭? 아예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응.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지 않나 싶어서~ 레이, 너도 하지 그래? 상대해 줄게.”

“아니, 난 지금 격하게 움직이면 죽을지도 몰라.”


고개를 가로젓는 프레이야의 모습은 정말 힘들어 보였다. 베일린은 목을 축인 후 프레이야의 옆에 털썩 앉았다.


“후우···. 레오,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 헬리온도 왔고,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은데.”

“그럴까? 나도 슬슬 힘들긴 하네. 그럼···, 어라, 달리안이랑 율리아는?”

“아까부터 저쪽에서 뭔가 이야기하던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길래 저기까지 가서 비밀스럽게 얘기하는지······.”


마침 이야기가 끝난 건지, 아이들의 대화를 들은 건지는 몰라도 달리안은 딱 맞추어 헬리온과 아이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율리아도 그와 조금 떨어져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베일린은 그새 얼굴을 정리하고 말끔한 낯으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침 잘 왔네. 무슨 이야기 했어?”

“응? 아, 잠깐 알려줄 게 있어서. 왜? 기다렸어?”

“으음, 비슷하지? 우리도 슬슬 대련 마무리할까 싶어서, 이제 뭐 할지 물어보려고······.”


*


그날 저녁.

어제 케이슨이 한 말은 진담인 듯했다. 솔직히 헬리온은 거의 까먹을 뻔했지만,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지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용인들을 보고 겨우 떠올려냈다. 아이들의 권유에 따라 오후 내내 저택 옆, 성과 이어지는 숲속을 돌아다니며 놀았던 헬리온은 피곤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를 통으로 돌리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영향이 좀 남긴 하네. 온종일 피로가 가시질 않으니, 원.’


능력 부작용에 체력 부족까지 더해지니 특히 더 심해 보이는 듯했다. 식사 준비가 될 때까지 방에 있을까 싶어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 등 뒤에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


“헤, 헬리.”

“누님.”


헬리온은 계단에 올렸던 한쪽 발을 내리고 클레어를 향해 몸을 돌리며 작게 고개를 까딱였다. 부드럽게 웃은 클레어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 오늘, 저녁을 다 같이, 먹는다고 들어, 서.”

“아, 네. 어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셔서···.”

“응, 가, 같이 밥 먹는 건, 오랜만이네.”


헬리온이 깨어난 이후에도 얼마간은 식사를 따로 했다. 4년간 누워 있던 사람에게 바로 일반식을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아무리 그가 건강을 회복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끊이지 않아 산책 같은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 안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헬리온 본인도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편하긴 편했다.). 따라서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한 횟수는 그가 저택을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었다. 헬리온도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게요. 오늘은 다른 아이들도 많이 있어서 평소보다 즐거울 것 같습니다.”

“그, 그렇지. 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랑 밥을 먹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지만···. 모, 모두 좋은 분들 같았어.”

“아,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다과회에 초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아, 레이디 베일린이, 가장 먼저 말을, 걸어 주셔서. 조, 좋은 친구들을 사귄 것, 같아서 다행이야, 헬리.”


‘역시나 베일린이었나···.’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참 베일린다운 행동이었다. 처음 본 레이디에게도 신사적으로 접근하여 달콤한 말로 제 가까이 두는 수법은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왔다. 제 세력을 늘리려는 속셈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레이디를 가까이 두고 싶을 뿐이라는 점까지.


“누님께서 곤란한 일을 겪은 게 아닌가 했는데, 즐거웠던 것 같아 다행이네요. 조금 후 식사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으, 응. 그럼 이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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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9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2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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