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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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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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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DUMMY

앞쪽에서 프레이야와 율리아가 인간형 마수를 상대하고 뒤쪽에서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이 동물형 마수를 상대하는 동안, 그 중간 지점에 있는 달리안과 헬리온은 비행형 마수를 하나씩 격추했다. 판타지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드래곤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그것은 상상 속의 드래곤보다 크기는 작았으나 두꺼운 가죽을 지녀 검이나 총 같은 단순한 무기로는 해치우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달리안의 공격은 효과적이었다. 7급 마법사의 공격이 듣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겠지만, 그런 일 없이 속전속결로 정리가 이루어졌다. 달리안은 공격을, 헬리온은 마수의 공격과 떨어지는 시체의 방어를 맡으니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많이 줄었네.”

“처음보다야 당연히 줄었겠지.”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하지, 진짜. 헬리, 너 용케도 친구를 이만큼이나 사귀었다?”

“······.”


헬리온은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달리안을 포함한 주인공 무리와는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서 얻어낸 관계라고 생각했기에, 정말로 자연스럽게 생긴 친구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떠올라서였다. 그런 헬리온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달리안은 날아오는 비행형 마수 한 마리를 더 공격했다.


“앞쪽도 거의 정리된 것 같고, 뒤쪽은···. 아까 동물형 마수가 지나간 것 같았는데. 베이랑 레오면 괜찮겠지?”

“아마도.”


마수의 움직임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균열을 닫기 위해선 균열 안에 들어가야 했기에, 아이들의 역할은 쏟아지는 마수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지원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르포스 역에 가까우니까, 그 근처 방위대가 오겠지. 웬만해선 우리 같은 애들보다 경험도 풍부할 거고······.’


헬리온은 심호흡하며 이미 마수의 피로 너덜너덜해진 기차 외벽에 몸을 기대었다. 달리안은 좋지 않은 표정으로 헬리온의 옆에 나란히 섰다.


“아, 속 안 좋아···. 넌 괜찮아?”

“응.”

“에테르 순도가 높아서 그런가, 이만큼 상대했는데 멀쩡하네. 덕분에 마수 기척도 뒤늦게 알아차린 것 같지만.”


달리안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는 거의 마수에 가까운 에테르 순도를 지녔고, 따라서 적은 힘으로도 효율적으로 마법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런 순도 높은 에테르를 가진 헬리온은 마력과 함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기에 마수의 마력에 둔감하다는 이야기였다. 마력은 신체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으니 그 달리안이 힘들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치유] 필요해?”

“아니, 아직 괜찮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에테르는 아껴.”


‘[치유]에는 에테르도 별로 안 드는데 말이지···.’


물론 헬리온에게 한정된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억지로 마법을 시전하기도 애매했기에, 그는 잠자코 달리안의 말을 따랐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늦네?”

“앞뒤 소음도 줄어든 걸로 봐선 애들도 거의 마무리 지은 것 같은데.”

“그럼 애들 찾으러 갈까? 앞쪽부터 갔다가 뒤에서 모이면—”


그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짙은 마력이 균열의 틈새에서 새어 나온다. 순간 시야가 아찔해진 달리안은 급히 제 주변으로 얇은 방어막을 둘렀다. 헬리온은 방어막이 없어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까딱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1.5배 정도 커진 균열 틈으로 마수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헬리, 도망치자. 저건 못 이겨. 최소한 후방으로 빠진 다음에 막아야 해. 원거리 공격은 가능하니까······.”

“···달리안, 너 먼저 가라. 프레이야랑 율리아가 아직 안 왔어.”


전방의 마수를 다 해치웠다 하더라도, 이렇게 짙은 마력이 흘러넘치는 상황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울 테다. 쓸데없는 동정심이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 없지만, 헬리온 자신이 달리안보다 비교적 멀쩡한 이상 해야 하는 일이다.


‘어차피 지금까지 한 일도 죄다 쓸데없는 동정심에서 벌어진 일인데, 더 한다고 죽기야 하겠나.’


그는 이 불완전한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단을 부여받았다. 신인지 뭔지 몰라도, 그에게 능력을 준 이상 가만히 죽게 두진 않을 것이다.


“괜찮겠어? 아무리 면역이 있다고 해도 두 명이야.”

“···어떻게든 해 봐야지. 후방에서 합류하자.”


헬리온은 그 말만을 남기고 기차 선두를 향해 달렸다. 점점 짙어지는 마력에 달리안은 잠시 그가 향한 방향을 바라보다가,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기차 후미를 향했다.






마력이 짙어졌을 뿐 마수의 수는 아직 늘지 않은 듯했다.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살핀 헬리온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이 고요했다. 여기저기 튄 피에는 짙은 마력이 베어져 있고, 뜯긴 살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마수의 잔해이겠지만, 솔직히 구역질이 났다.

다음 칸으로 건너왔음에도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급해진 헬리온은 다 부서져 가는 좌석 아래나, 내려앉은 기차 잔해를 들어 올려 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


“프레이야! 율리아! 들리면 대답해!”


혹시나 있을 마수에 대비하여 소리는 최대한 내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이 조급해지니 그런 생각 따윈 깔끔하게 내던지게 되었다. 맨 앞칸부터 헬리온과 아이들이 타고 있던 칸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헬리온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가까스로 의자를 잡고 버틴 헬리온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몇 년을 누워만 있던 몸에는 부담이 컸는지, 에테르는 둘째치고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단순히 길이 엇갈린 걸 수도 있어.’


그와 달리안은 기차 안에서 나온 이후로는 줄곧 기차의 왼편에 있었기에, 만약 두 사람이 기차의 오른편으로 이동하여 후방에 도착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헬리온은 두 사람을 내팽개치고 홀로 도망친 사람이 되지 않는가. 마음을 굳게 먹은 헬리온은 기차 밖으로 나와 후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뛰니 어느새 아까 달리안과 헤어진 곳에 다다랐다. 그들은 전체 기차의 정중앙에 있었기에, 앞으로 절반만 더 가면 되었다. 헬리온이 다시 한번 힘을 내어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


저 멀리 오르포스 강 너머, 아마 딜라드 저택 근처로 추정되는 먼 하늘의 색이 변했다. 불길한 예감에 손갓을 만들어 저 너머를 내다본 헬리온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균열의 징조다.

멀어서 잘 느껴지진 않았지만, 꽤 큰 균열 같았다. 새파랗게 질린 헬리온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먼 하늘을 내다보았다.


‘설마 로타님 균열이 벌써? 그럴 리가, 초고에서도 그 사건은 여름 방학이 끝날 즈음에 일어났는데. 지금 로타님에 균열이 터졌다간, 아니, 그 상황에서 백작이 죽는다면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다.’


속이 울렁거렸다. 일단은 한시라도 빨리 아이들과 합류해야 했기에, 헬리온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렇게 끝에 다다랐을 즈음, 헬리온은 깜짝 놀라 속도를 높였다. 발걸음을 멈춘 곳에는 달리안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달리안! 다쳤어?!”

“콜록···. 뭐야, 헬리. 애들은?”

“···못 찾았어. 어쩌면 길이 엇갈린 걸 수도 있으니까, 일단 먼저 왔는데···. 그보다 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가 말하는 동안에도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와 연녹색 드레스를 붉게 물들였다.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천천히 말했다.


“하···. 동물형이 세 마리 숨어 있었어. 동시에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그쪽에 미처 못 피한 승객이 있어서······.”


상황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도, 그건 실험체와 자신의 안전이 모두 보장된 상황에나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무고한 사람을 향해 강력한 공격 마법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겠으니까 더 말하지 마, 지금 바로 치료해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라고 덧붙이려던 헬리온은 별안간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명에 귀를 틀어막았다. 삐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놀라 감았던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눈앞의 풍경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찍은 영상 같은 화면이었다.

맨 처음 보인 건 프레이야와 율리아였다. 인간형 마수를 상대하던 그들은 상당히 줄어든 숫자에 마주 보며 미소 지었지만, 곧이어 쏟아져나온 마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헬리온이 찾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지금, 기차 안이 아닌 기차 밖 오른쪽 잔햇더미에 깔려 있었으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생사를 확인하고 싶은데, 이 환각인지 뭔지는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음으로 보인 장면은 달리안이었다.

그가 설명한 대로였다. 가까스로 승객들은 몸을 피했지만, 달리안은 그 공격을 거의 온전히 받아냈다. 헬리온의 방어 마법과는 달리 그가 사용하는 방어 마법은 평범하여 공격을 반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까는 피가 새어 나와 자세히 보지 못했으나 상처가 꽤 깊었다. 이건 제아무리 에테르 순도가 높은 헬리온이더라도 에테르를 상당히 써야 치료할 수 있을 테다.

아마 마지막일 터인 영상에 비치는 건 베일린과 레온하르트였다. 이쪽도 상태가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피투성이인 베일린은 기차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레온하르트 또한 여기저기 난 상처를 따라 피가 흘렀다. 승객들은 이미 더 먼 곳까지 피신시킨 모양이었다. 그 점은 레온하르트다웠지만, 베일린의 생사가 불분명한 데다···. 레온하르트 본인도 상처에 마력까지 더해지니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멍해진 정신으로는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전멸이다. 우려했던 상황이, 가장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레온하르트의 의식이 흐려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헬리온은 머릿속이 새하얘져 가만히 굳은 채 레온하르트의 의식을 따라갔다.

그러나 그 순간, 세계의 시간이 멈춘다.


‘···어?’


눈앞에 흘러가던 상황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공유되던 의식도 끊어졌다.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움직임을 멈춘 그 순간, 헬리온 딜라드만이 유일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동시에 익숙한 금빛이 그를 덮친다.


[[라케시스의 실타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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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9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1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2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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