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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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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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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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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DUMMY

외부 시연장과 연결된 강의실에선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헬리온이 지금까지 조용히 지낸 탓이 커 보였다.


‘헬리온? 누군데?’

‘딜라드 백작 장남이잖아. 엄청 재능이 있는 것 같진 않던데. 방어 마법 구사가 된다는 거야?’

‘달리아는 쟤랑 친한가?’


추측과 의심으로 가득한 수군거림은 헬리온의 귀에도 닿았다. 어린애들의 수군거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달리안의 한 마디에 고분고분 앞으로 나가는 헬리온을 마틴이 가로막았다.


“정말 할 수 있나? 무리한 부탁이라면 거절해도 좋다.”


학생의 안전을 생각해서라기보단 헬리온의 위치를 염두에 둔 말 같았다. 딜라드 가문은 수도 방위군과 왕실 기사단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군사력을 가진 가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헬리온은 자신이 있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준비하도록.”


달리안은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목 끝까지 올라온 화를 참고 한숨을 내쉰 헬리온은 불평 대신 연습용 완드를 고쳐 잡았다.


“생각보다 순순히 나왔네? 반쯤 장난이었는데.”

“이걸 거절했으면 오후에 나를 반쯤 죽일 생각이었으면서, 말은 잘한다.”

“언제는 안 그랬나? 히히.”


장난스럽게 웃는 저 얼굴을 한 대만 때리고 싶었다. 그러나 헬리온으로도 두 살 어리고, 명진으로는 더 어린아이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대로 간다? 불에 2, 3, 5 패턴. 그 외 자잘한 건 불규칙적으로.”

“그래······.”


가장 최근에 도입한 패턴이다. 두 번 연속으로 막기, 세 군데 동시에 막기, 다섯 번 연속 공격 전체 방어하기. 그 외에도 중간중간 변수를 넣겠다는 뜻이었다.


“지금부터 시작할 거니까, 잘 봐주세요. 기초적인 방어 마법으로도 불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에게 안내한 후, 달리안의 눈빛은 헬리온이 아는 그 눈빛으로 돌아왔다.

실험쥐면 실험쥐답게 성과를 내보이라는 눈빛.

불덩어리는 즉시 헬리온을 향해 날아왔다. 이제 이 정도 움직임은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다. 금빛 에테르가 불의 위치를 정확하게 막아낸다.

연속 두 번 이후 공중 투하. 달리안은 화려한 변수를 넣을 모양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에테르 방어진에 맞닿은 불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세 개의 불덩어리가 동시에 날아온다. 생각보다 간단한 처리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작게 펼쳤던 방어 마법진의 크기를 크게 키워 전면에 내세우면 되었으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방향으로 불을 쏘아대는 달리안은 어쩐지 신이 난 듯했다.

마지막, 전체 방어막 전개. 지금까지 힘을 조절한 건 눈속임이라는 듯, 저번 ‘실험’보다 더 강한 불이 그에게 다가왔다. 아직 마법에 미숙한 헬리온은 영창으로 그 위력을 최대한 끌어내야 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달리안과의 훈련 중 처음으로 영창을 통해 위력을 올린 이후, 헬리온은 틈날 때마다 새로운 문장을 찾았다. 성경을 다 외우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문장을 만들어내기엔 창의력이 부족했으며 조금 부끄러웠다.

저번에 사용한 구절이 방어막의 두께를 두껍게 하는 문장이었다면, 이번 구절은 방어막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골라 둔 문장이었다. 물론 헬리온의 의도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번 방어막에 새겨진 문양이 너무 부담스러웠던 나머지 다른 문장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부끄럽다고, 그거. 문장을 말하는 데에는 익숙해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양이 좀···.’


헬리온의 생각대로, 구현된 방어막은 지름 3미터의 서클을 완전히 덮었다. 금빛은 다가오는 불에도 굴하지 않고 반짝였다.

이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평소 같았으면 방어막에 닿는 순간 사그라들었을 불꽃이,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튕겨 나가 달리안을 향했다. 불의 위력을 아는 달리안은 빠르게 외쳤다.


“[하늘을 공경해라, 머리를 조아려라!]”


참 오만한 문장이다. 헬리온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상했다. 달리안의 주문은 빠르고 강력하게 불을 막았다. 그의 마법에 가로막힌 불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이 강하고 화려해서도 있지만, 헬리온의 실력이 모두의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 더 클 것이다.

방어 마법은, 말 그대로 ‘공격을 막는’ 마법이지 ‘공격을 튕겨내거나 되돌려주는’ 마법이 아니다. 만에 하나 공격이 튕겨 나가 공격자에게 돌아간다 해도, 그 위력은 10분의 1을 채 넘지 못한다.

그러나 방금 헬리온이 시전한 방어 마법은 그런 상식을 단번에 깨부쉈다.

분명 모두가 그의 마법식을 보았다. 예습을 한 학생이라면, 헬리온의 마법식은 교과서적인 방어 마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테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방어막은 통상적인 방어막과는 역할이 달라 보였다. 그 교수조차 눈을 크게 뜨고 흙먼지가 가라앉길 지켜보았으니, 마법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뭔가 대단한 일이 펼쳐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다.

이 안에서 오직 달리안만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 여러분, 시연은 잘 보셨나요? 마지막에 제가 힘 조절을 조~금 잘못했지만, 저희가 쓴 건 모두 가장 기본적인 공격·방어 마법이랍니다. 그렇죠, 교수님?”

“···그래. 두 사람 다 수고 많았다.”

“네에. 그럼 저는 연구실로 돌아가 볼게요.”


헬리온은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몰래 자리로 돌아왔다. 저를 좇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프레이야는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특훈이 제대로 되긴 했나 봐? 나 같아도 내 제자가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내면 뭐라도 더 시키고 싶겠다.”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나는 매일 힘들어 죽겠다고······.”


그 이후로 진행된 수업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은 강력하고 화려한 마법을 본 직후여서인지 의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지만, 그뿐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에테르를 움직이는 건 완전히 별개였으니, 이 안에서 헬리온 비슷하게라도 방어 마법을 전개할 수 있는 건 프레이야뿐일 테다.

마법 실력과 에테르 순도 간에 연관성이 많이 밝혀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보통 재능 있는 아이들은 에테르 수용량이 많았지, 순도가 높은 건 아니었는 데다, 적어도 5급 이상의 마법사나 검사쯤 되어야 타인의 에테르 순도를 측정할 수 있었으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 헬리온은 에테르가 많아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내 에테르 자체는 많진 않아. 양으로 따지면 달리안이 훨씬 많지, 처음에 에테르 흐름을 ‘모방’하려고 했을 때 에테르 총량이 차이 나서 헤맸으니까···. 나는 단순히 순도가 높고, 특능이랑 특성 덕분에 에테르가 채워지는 속도가 빠른 것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수업이 끝났다. 다음 수업까지는 시간이 조금 비어, 헬리온은 기숙사로 돌아가 잠깐 낮잠을 잘 생각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가는 아이들 틈에 끼어 빠져나가려는 순간,


“헬리온 딜라드? 잠깐 좀 보지.”


절대 맞이하고 싶지 않던 결말이었다. 프레이야는 동정의 시선을 보냈으나, 아마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베일린을 찾아 오늘 일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테다.

헬리온은 축 처진 어깨를 숨길 생각도 없이 마틴을 따라갔다.








마틴 리히터 교수는  초고에서도 언급된 바가 있다. 실전보단 이론을 중시하는 성격이며, 그런 성격과는 다르게 시험 문제는 응용을 많이 섞어 학생들을 죽어 나가게 하는 범인. 동시에 달리안과 함께 레온하르트를 보조할 아티팩트를 여럿 개발한 학자.

교수 중에선 젊은 축에 속하는 마틴은 헬리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제 흰머리가 희끗거리기 시작하는 그의 미간에 주름이 깊었다. 그는 가볍게 학생 명부를 훑으며 물었다.


“헬리온 딜라드, 갈리아력 870년 9월 29일생. 맞나?”

“네.”


학생증에 적힌 생년월일을 미리 봐 두길 잘했다. 기본적인 정보에서 뜸을 들였다간 기억이 애매하다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았을 테니까.


‘생일은 내 원래 생일이랑도 같아서 다행이야.’


“몇 급이지?”

“···아직 진급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달리안에게도 했던 말이다. 진급 시험은 월초에 한 번만 이루어졌고, 입학 직후 열린 진급 시험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그 전부터 마법을 쓸 줄 알았으면 또 모르지만, 나는 여기 와서 겨우 에테르 다루는 법을 알았다고.’


마틴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이어갔다. 어색한 공기에 헬리온은 지금 당장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까 시연한 마법, 다시 구현할 수 있겠나? 영창도 포함해서.”

“···해 보겠습니다.”


상급자의 명령엔 따를 수밖에 없다. 비단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위계나, 쉬운 마법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장 생활에 익숙한 만큼, 헬리온은 대체로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들을 직장 상사 대하듯 대했고, 당연하게도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펼쳐진 방어 마법은 은은한 금빛을 흩뿌린다. 마틴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헬리온이 전개한 방어 마법 식을 관찰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식은 평범하다. 기본적인 식은 암기를 통해 서클에 덧씌워야 하기에, 오히려 철자가 애매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 견고함이라니. 공격 마법으로 활용도 가능하겠어.’


마틴은 순수하게 놀랐다. 그 달리안도 이 정도로 정교한 방어 마법은 구현하기 어려울 듯했다. 게다가 에테르의 흐름도 꼭 숙련자같이 일정했다. 도저히 초보자의 실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되었다.”

“네. ···돌아가 봐도 됩니까?”

“몇 가지만 더. 마법은 수업과 달리안에게서 배운 게 처음인가?”

“네.”

“···그래, 진급 시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건, 그 전엔 마법을 쓸 줄 몰랐다는 거겠군. 가족들은 네 힘에 대해 알고 있나?”

“정확하게는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겠지. 네 아버지께선 7급 검사이시니.”

“······.”

“혹시라도 상급반 수업이 필요하다면 꼭 말해 주도록. 다음 진급 시험에는 참가하도록 하고.”

“···예? 아, 네.”


상급반이라는 단어에 지레 놀란 헬리온은 순간 이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진급 시험은 그렇지 않아도 달리안의 닦달에 신청하려는 참이었다. 당장 상급반 수업을 들으라는 말이 아닌 점에 안도하며, 그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작가의말

*잠언 24:5 (개역개정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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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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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0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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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6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6 0 9쪽
»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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