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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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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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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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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DUMMY

식사 자리는 어색함을 의인화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적이었다. 미야가 참석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긴장했다기 보단 조용한 분위기에 맞추어 얌전히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적어도 레온하르트는 평소보다 긴장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헬리온까지 덩달아 긴장하게 되어, 묘하게 딱딱한 공기가 그들 주변을 가득 채웠다.


“······.”

“전하와 만나 뵙는 건 처음이 아니지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아, 예. 저야 뭐. 그 이후로 계속 수도에만 있었으니까요. 로타님 소식을 자주 듣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어색하게 받아치나 싶더니, 이럴 때는 또 교육받은 왕족이라는 느낌이었다. 맑은 미소를 띤 레온하르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는 건 무시하기로 했다. 헬리온은 괜히 두 사람의 입에 제 이름이 오르지 않도록 조심스레 식사를 시작했다.

클레어는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걱정할 게 뭐가 있나 싶겠냐마는, 클레어에겐 걱정할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차기 백작은 헬리온이 분명했다. 그러나 헬리온은 지금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고, 어머니는 때때로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애초에 전체적인 집안 관리에 관심이 있는지부터 의문이었다.

물론 클레어는 착한 아이이기에,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케이슨 딜라드 백작이 업무 등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은 클레어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이 늘었다. 그녀의 가정교사가 가르친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며, 어딘가 수상쩍은 말투로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런 클레어의 관찰에 따르면, 백작은 둘째치고 레온하르트는 상당히 긴장한 모양이었다. 얼굴만 보아선 그저 넉살 좋은 왕자처럼 보였지만, 손은 다른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으며 눈가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드문드문 갈라졌고,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튀어나왔다. 완벽한 예의범절에 비해 상당히 어설픈 모습이다.

큰 행사에 얼굴을 자주 비추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탓에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해 보였다. 이런 사소한 사항은 다른 아이들이나 백작도 정확하게는 읽어내지 못할 테니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 앞에 섰을 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제 동생에게 옮겨갔다. 헬리온은 평온하게 식사하는 듯 보였으나 레온하르트에게서 눈을 떼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분명 그 또한 왕자의 긴장을 눈치챘으리라.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대화에 귀를 기울인 채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걸 보아하니 덩달아 긴장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는 어떻습니까?”

“평범하게 좋습니다. 교수님들도 친절하시고요. 게다가 항상 친구들과 함께이니 지루할 틈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헬리온의 이름을 꺼내지는 않았으나 레온하르트의 말에는 ‘헬리온도 잘 지낸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괜히 제 학교생활을 들먹일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쉰 헬리온은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어제는 감사 인사도 잊었군요. 다들 훌륭하게 싸워 주었습니다. 딜라드 가주로서 감사를 표합니다.”

“아닙니다. 친구를 도왔을 뿐인데요. 오히려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식기가 부딪치며 내는 작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곤 그다지 귀에 남는 소리가 없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맛을 음미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럴 거면 왜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고 한 거지.’


딜라드 저택에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식사하는 일은 드물었다. 미야를 제외한 케이슨, 헬리온, 클레어 셋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색한 상황인데, 지금은 심지어 외부 손님까지 와 있다. 공기가 굳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진급 시험을 치르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힘들진 않았습니까?”

“아, 예. 모두 지난달 시험에 참가했습니다.”

“혹 급수를 물어도 될는지요.”

“저는 뭐, 상관없습니다. 너희들은?”


침묵을 깬 건 케이슨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어차피 국가에 기록되는 사항이니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다들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괜찮다는 답을 했다.


“다들 괜찮다고 하니···. 검을 다루는 저와 베일린은 5급, 프레이야는 4급이 되었습니다. 마법을 쓰는 달리안은 7급, 헬리온은 3급, 율리아는 2급이 되었고요.”


제 이름이 언급되어 순간 움찔한 헬리온은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표정을 가다듬었다. 백작은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를 들었다.


“달리안 군.”

“네, 네에?”


갑자기 이름을 불린 달리안은 깜짝 놀라 이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한 번쯤은 물어볼 만도 한데, 케이슨은 그의 외관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말을 이어갔다.


“대단한 걸 물으려는 건 아닙니다. 혹 ‘레스터’이신가 싶어서.”

“아, 아아. 네, 맞아요. 2년 전에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2년 전······. ‘세리타의 악마’라고 했던가.’


진급 시험 직후 달리안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그 외에는 딜라드와 레스터가 엮인 적이 없는 듯했으니 헬리온이 생각하기에도 가장 무난한 대답이었다.

대화는 그 이후로도 이어졌다. 다들 고향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가문인지라, 케이슨은 아이들의 대략적인 내력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헬리온은 집안사람인 게 천만다행으로 여겨졌다.


‘뭔가 물어봐도 차라리 나중에 따로 불러내서 물어보는 게 편해. 애초에 내 마법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른다고.’


“헬리온.”

“예?”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케이슨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래도 바라지 않던 전개가 진행될 모양이었다.


“네 마법은 3급 치곤 상당히 특이하던데.”

“아, 네. ···달리안이 평소에 잘 지도해 준 덕분입니다.”


헬리온은 달리안에게 바통을 넘겼다. 나중에 험하게 구르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치켜세우는 말인데 기분이 나쁘진 않겠지, 라는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었다.


“네에. 개인적으로 하는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어요. 제가 개량한 마법도 같이 알려 주어서 그런가 봅니다.”


다행히도 달리안은 웃으며 받아주었다. 일단은 의심 없이 넘어갈 듯했다. 케이슨 또한 달리안의 말을 받았다.


“개인 연구입니까. 대단하군요.”

“헤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수도는 로타님보다 훨씬 더우니까, [냉각]을 활용해서······.”


*


몇 시간 후.


“죽는 줄 알았다······.”


헬리온은 침대에 철퍼덕 드러누우며 한숨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강한 충격에 고양이가 작게 웨앵, 하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만 살짝 들어 라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미안. 형 진짜 힘들었으니까 오늘만 봐주라···.”


메인 요리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샐러드만 퍼먹었는데도 얹힐 것 같았다(능력 덕분에 얹히진 않을 것이다.). 끄으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 머리맡까지 꾸물꾸물 기어 올라간 헬리온은 자세를 바로잡고 고양이를 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저항은 없었다.


‘이대로 쭉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방학 끝날 때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딱 2주 만이라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게다가 헬리온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를 더 기억했으니,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도 당연했다. 인간의 정신적 한계를 알고 싶진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알게 되는 것도 시간 문제이다.

그러나 신은 그의 마음의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헬리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내려가 문을 열어 주었다.


“레온하르트, 또 무슨 일이야?”

“헤헤헤.”


바보처럼 웃은 왕자는 자연스럽게 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헬리온도 딱히 막진 않았다.


“달리안은 벌써 자러 간 모양이고, 다른 애들은 네 누나랑 수다 떨기 바쁜 것 같아서.”

“또 혼자 남겨졌다 이거구만.”

“그렇지.”


달리안은 걸핏하면 연구에 몰두해 밤을 새우는 주제에, 연구하지 않는 평소 생활 패턴은 올바르다 못해 어린아이 같았다. 잠드는 시간만 보면 열네 살이 아니라 네 살이라고 해도 크게 문제없을 듯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말이야.”

“뭔데? 빨리 얘기하고 너도 가서 잠이나 자.”

“와아, 너무해.”


짐짓 불쌍한 표정을 지은 레온하르트는 상처 입은 어린 동물 같은 눈빛을 보냈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헬리온이 묘한 표정을 짓자, 레온하르트는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미안, 미안. 네 반응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한번 말하는데, 네가 아무리 왕자라고 해도 여긴 일단 우리 집이다.”

“네에, 네. 알고 있다니까.”


커피 테이블 옆의 의자를 적당히 꺼내 앉은 레온하르트는 창문을 통해 비치는 달빛을 온전히 받았다. 금빛 머리카락이 반짝였고, 올리브색 눈동자는 한층 날카로워 보였다. 헬리온은 그와는 대비되게 침대의 그림자 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주변의 어둠을 모두 흡수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그에게서 빛나는 거라곤 푸른 눈동자밖에 없었다. 기척이 옅은 편인 헬리온은 이럴 때 가끔 유령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장난은 이쯤 하고···,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건 진짜니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그래.”


레온하르트는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이내 장난기를 뺀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헬리온을 올려다보는 올리브색 눈은 달빛을 받아 형형하게 빛난다. 마치 사냥감을 탐색하는 맹수의 눈빛 같았다. 그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어제 전투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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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9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9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1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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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1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2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4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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