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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최근연재일 :
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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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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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DUMMY

“···아버지.”


헬리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홀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분주하게 돌아다녀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던 그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는 모를 일이나, 타이밍이 나빴다. 그는 지금까지 백작 앞에선 단 한 번도 마법을 쓴 적이 없었고(애초에 에테르 흐름을 조절하는 방법조차 아카데미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특수한 방식으로 체내에 에테르를 ‘저장’했기 때문에 백작은 그의 에테르 자체를 처음 보는 것일 테다. 그 상황이 하필이면 이럴 때라니, 정말 타이밍이 나쁘다는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곧 균열이······.”

“나도 안다.”


따지고 보면 그에게 균열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었다. 케이슨 딜라드는 이 로타님에서 적어도 헬리온의 나이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다. 직접 균열을 닫은 경험이 있기도 했으니 현재 상황은 어쩌면 헬리온보다 빠르게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백작에게는 혹시 모르는 상황—실력을 보고 차기 가주로 확실하게 지명한다던가—을 피하기 위해 마법을 보일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힘을 억누른 채 펼치려 했던 헬리온이었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는 곁눈질로 마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지막에 백작 탓에 마법이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이전에 건드린 마석과 완전히 동일한 상태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헬리온은 잠시간 백작과 눈을 마주친 채 대치했다.


“······.”

“싸울 수 있느냐?”

“···예? 예···.”

“다른 사람들은?”

“저택 밖에 있던 사용인들은 대부분 안으로 들어가게끔 유도했습니다. 저택 안은 아마 레온하르트가 정리했을 겁니다.”

“···호오, 데려온다는 친구 중 한 명이 전하였군.”


이건 혼잣말인 듯했다. 케이슨 딜라드는 묘하게 헬리온에게 물렀다.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는 그의 말을 흔쾌히 들어 준 것도 그러했지만, 학기 중에도 거의 하지 않았던 연락을 학기가 끝나갈 즈음이 되어서야 ‘친구들을 데리고 가도 되냐’같은—어린아이가 친구들을 이미 이끌고 온 후 부모님에게 ‘친구들을 오늘 집에서 재워도 되냐’고 물어보는 반 통보식의 연락을 했음에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는 ‘뭐든지 들어 주는 자식에게 무른 아버지’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헬리온을 대할 때 쓰는 말투는 방금 입에 담은 읇조림과는 달랐다.


“그렇다면 됐군. 본격적으로 균열이 열리면 마수들이 튀어나올 거다. 위치는···. 숲보단 산에 가깝겠군. 적당히 상대하다가 네게 맡기겠다.”

“맡긴다고 하신다면···.”

“수를 줄이는 데까지는 가세하겠다. 어느 정도 줄어든 이후부턴 네가 지휘해라. 난 균열을 직접 닫으러 갈 테니.”

“···알겠습니다.”


백작이 균열을 처리하러 간 이후부터는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다면 해결은 쉬울 것이다. 물론 이미 힘을 숨기기는커녕 제대로 펼치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았지만. 그전까지는 아버지와 다른 마법사 혹은 병사들이 전면에 설 테니, 힘을 아낄 수 있다. 백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 어디론가로 향했다. 방향을 묻진 않았지만 아마 정말로 균열을 처리할 준비를 시작하려는 것이리라.


“잠시만요, 아버지.”


헬리온의 목소리에 케이슨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앳된 얼굴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는 그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마치 악몽을 꾸었으니 함께 자자는 어린아이가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헬리온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에테르를 펼쳤다. 부드럽게 퍼지는 금빛에 케이슨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헬리온의 손에서 시작된 금빛은 그 바람을 타고 케이슨에게 전해져 그의 주위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하던 그도 에테르라는 걸 깨닫자 긴장을 풀었다.


“마법인가.”

“···방어 마법입니다.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시전자와 떨어져 있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발동합니다. ······다치지 마십시오.”

“···노력해보마.”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헬리온도 감사 인사를 바라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는 백작을 걱정한다기보단, 그가 죽으면 자신에게 떠밀려 올 무수한 부담을 두려워할 뿐이니까. 케이슨과 헬리온의 육체는 유전자적으로 연결되어있을지 몰라도, 헬리온에게 그는 타인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은 뻐꾸기 새끼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다 해도 진짜 어미가 아닌 것처럼. 그는 멀어지는 백작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향을 틀어 마지막 마석을 향해 달렸다.


*


마지막 마석까지 마법을 걸자, 전체적으로 푸른 빛을 띠던 방어막에 옅은 금빛이 돌기 시작했다. 헬리온은 그가 건 마법을 통해 마석이 모두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후, 사람들의 기척이 나는 곳으로 향했다.


“오, 헬리. 드디어 왔네.”

“레온하르트.”

“네 말대로 저택 안은 정리하고 나왔어. 뭐, 내가 말하자마자 다들 익숙하게 어디론가 갔지만. 네 누나가 가는 것까지 보고 나왔어.”

“그래.”


그가 로타님에 머무는 동안에는 균열이 발생하지 않아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맥락상 집안 어딘가에 사람들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정도로 짐작되었다. 헬리온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선두는 아버지가 맡으실 거야. 수가 적당히 줄어들면 아버지는 직접 균열을 닫으러 가신다고 했으니까, 그동안은 우리가 맡아야 해.”


아마 헬리온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저택 근처를 지키는 건 백작의 병사들이었을 테다. 그러나 케이슨은 헬리온의 마법을 보았다. 7급 검사이니만큼 에테르도 확실히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균열을 닫는 건 그 틈에서 빠져나온 마수를 잡는 일보다 어렵다. 균열 안의 상황은 들어가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고, 해결 시간이 늦어질수록 생존 확률도 내려간다. 내부 마석을 찾는 데까지의 난이도도 균열에 따라 상이했다.

그렇다면 균열에 최대한 빨리 들어가는 게 상책이다. 마수를 피해 그 틈을 파고들기만 하면, 마석을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니 말이다. 게다가 헬리온이 저택을 맡아준다면 데려갈 수 있는 병력이 늘어난다. 균열마다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상이한 듯했지만, 그 주변 정리도 필요하다. 백작은 아마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하여 헬리온에게 저택을 맡긴다는 선택을 했으리라.


“좋았어, 그럼 전략은?”

“···레온하르트, 네가 어떻게든 해라.”


베일린의 물음에 헬리온은 슬쩍 눈을 피했다. 레온하르트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되물었다.


“나? 내가 전략을 짜라고?”

“그래. 여기 레온하르트가 너 말고 있는 것 같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좀 갑작스럽지 않아? 못 할 건 없긴 한데···.”


레온하르트로서는 당황스러운 게 당연하다. 오르포스에서 전략을 제시한 레온하르트에 대한 기억은 헬리온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으니까. 그에게 진두지휘를 익숙하게 하려는 의도도 없잖아 있었지만, 헬리온이 뭔가 명령을 내리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서도 있었다.


‘남의 말 들었다가 망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내 말대로 했다가 망하면 죄책감이 장난 아닐 텐데. 그거 버틸 바엔 남의 명령 듣고 수틀리면 돌아가는 게 낫지.’


저번 ‘24시간 회귀’의 후유증은 극심한 졸음과 두통인 듯했다. 상당히 버티기 힘들긴 했지만, 이번에도 능력을 쓰게 된다면 24시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맨 처음 능력을 써 3분 전으로 돌아갔을 땐 아무런 후유증이 없었으니, 적어도 전처럼 미친 듯이 졸리거나 머리가 아프지는 않을 테다.


“그럼···, 나랑 베일린, 프레이야가 앞에 선다. 달리안은 후방에서 공격해 줘. 그리고 율리아랑 헬리···.”

“저, 저는 중앙에서 [감속] 같은 걸로 상대할게요. 속도가 빠른 마수들은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줄어드니까요. 가벼운 [치유]도 쓸 수 있어요.”


율리아는 내심 검을 쓰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지금 그녀에겐 검이 없다. 집안에 남는 검이 있긴 해도 누군가의 소유물일 수도 있고, 그녀가 평소 사용하던 게 아니기에 초심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율리아 또한 2급 마법사이니, 간단한 디버프 정도는 걸 수 있는 모양이다.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그럼 헬리온에게는 평소대로 방어를 부탁할게.”

“그래. 아, 그 전에.”


헬리온은 슬슬 제 방어 마법의 특성 중 하나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가까이 불러 모은 그는 작지만 빠르게 말을 전달했다.


“내 서클 범위 안에 있으면 상처가 나도 금방 나을 거야. 물론 진짜 [치유] 마법은 아니라 내 서클에서 벗어나거나 내가 서클을 해제하면 상처가 다시 터져.”

“상처가 낫는다고? 치유 마법이 아닌데도?”

“그러니까 진짜 [치유]가 아니래도. 임시방편 같은 거니까, 상처가 너무 크게 나면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고생하는 건 너희 자신이야. 그래도 최대한 힘을 발휘해 줘.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확실하게 보조할게.”


아이들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의 서클의 기묘함을 알고 있는 달리안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에 재능이 없는 누구 때문에 다들 혼란스러운 것 같은데, 요약하자면 헬리 서클은 좀 이상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니까 그렇게 몸 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피가 나도 금방 멎고, 살이 찢어져도 금방 붙고. 그런데 헬리가 서클을 해제하면 그건 다 ‘없던 일’이 돼서 너희 상처는 그대로라는 말씀.”

“그런 게 가능해···?”

“그러게 말이야. 나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어쨌든, 마음껏 날뛰어. 나머지는 헬리가 해결해 줄 거야.”

“아니, 그래도 크게 다치진 마라. 내가 무슨 만능인 줄 알아.”

“아, 네에. 3급 마법사님.”


달리안의 대답은 삐져서 아무렇게나 말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평소처럼 분위기가 풀어지려는 그때, 천둥소리와 비슷한 굉음이 고막을 울렸다.

우르릉—

꼭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다. 방어막을 뚫고 스미는 짙은 마력이 균열의 시작을 알린다. 아이들은 각자 준비 태세를 취했다. 백작의 군도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는 적은 인원이었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보랏빛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산 중턱에서 마치 아지랑이 같은 무언가가 구불거리며 피어올랐다. 그것은 천천히 입을 벌려, 칠흑 같은 어둠을 쏟아낸다. 아까보다 더 짙어진 마력이 호흡을 방해했다.

균열이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작가의말

*시편 62:2 (개역개정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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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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