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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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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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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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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비밀 결사(4)

DUMMY

케이슨의 집무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고 어두웠다. 아직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으로도 충분히 사물을 구별할 수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쓸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네 친구들이 ‘비밀 결사’에 가기로 했다지?”

“아, 네. 누님께서 받은 초대장을 넘겨주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뭐, 클레어는 그런 자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보아, 케이슨은 그런 사교 활동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헬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하긴, 사교 활동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으면 저택에서 파티라던가 이것저것 열었겠지.’


백작 부부는 둘 다 그런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애초에 왕국의 최북단인 로타님은 사람이 적으며, 서쪽의 오르포스 강과 남쪽의 알레프 강이 사시사철 흘러 고립되기 쉬운 지역이다. 근방에선 가장 높은 신분인 백작이 그러한 사교 활동을 열지 않으니 규모 자체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최근 젊고 돈 많은 신흥 귀족이나 상인들이 조금씩 주최하기 시작하여 조금이나마 활기를 되찾은 편이다.


“아버지께선 그 ‘비밀 결사’의 주최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클레어에게 듣지 못했나?”

“예, 저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인데다, 초대장 실물을 보진 못했기에···.”

“그래···. 내가 알기론 페레스 준남작 부인이 주최일 거다.”

“페레스······?”


처음 듣는 성씨였다. 빠르게 초고를 복기했으나 그런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통해 들은 기억도 없었다.


“처음 들어 봤나?”

“예.”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그가 준남작 작위를 얻은 게 작년 가을이니.”


작년 가을은 지금의 헬리온에겐 ‘없는 시간’이다. 이 자리에 있는 게 ‘윤명진’이 아닌 진짜 헬리온 딜라드였어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게 당연한 시간대였다.


“로타님 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아티팩트 상점이 있다. 보았느냐?”

“···자세히는 보지 않았지만, 얼핏 본 것도 같습니다.”

“그게 페레스 준남작의 것이다. 오르포스 역 앞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지점이 있더군. 민간 대상으로 물건을 파는지 저렴하지만 품질도 나쁘지 않아, 서서히 다른 지역까지 확장하려는 모양이고.”


그 정도 사업 규모라면 작위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테다. 아티팩트는 꼭 무기로만 쓰이는 게 아닌,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도 점차 개량이 진행 중이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 아직 널리 퍼지진 않았으니 분명 페레스 준남작은 그 틈을 노린 것이리라.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지. 무슨 용건이느냐?”

“아.”


새로운 정보에 헬리온은 백작을 찾아간 목적을 잊어버릴 뻔했다. 그는 여전히 [경량] 마법이 걸린 사비아피스가 담긴 자루를 백작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자루가 완전히 책상에 닿자, 헬리온은 그제야 [경량] 마법을 해제했다.


“아이들과 놀던 중에,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헬리온은 자루에서 비교적 작은 사비아피스 한 개를 꺼내 케이슨에게 건넸다. 그도 에테르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 테니, 이 광석이 마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테다. 광석을 손에 든 백작은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빛에 비추어 보았다.


“마석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디서 발견했지?”

“저택 뒤쪽, 레바나 산맥의 한 줄기와 이어지는 산 중턱에서 발견했습니다.”


케이슨은 손에 든 작은 돌을 내려놓고 자루를 활짝 펼쳤다. 헬리온이 건넨 조각의 서너 배는 될 법한 묵직한 광석이 자루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는 이 광석이 레바나 산맥 전반에 걸쳐 더 매장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거는?”

“···원래 마석은 자연 광석에 에테르를 주입하여 만들지 않습니까? 그 과정을 거쳐 적정량까지 에테르를 주입한 후 가공하여 아티팩트로 만들고요. 문득 마력이 느껴져서 보았는데, 아무래도 균열에서 흘러나온 마력을 상당히 많이 흡수한 것 같습니다. 제 에테르로 발견한 장소에 표시도 해 두었고요.”


‘예소드의 먼데인 차크라가 레바나, 즉 달이니까’ 같은 소리를 할 순 없다. 근거를 생각해 두지 않아 조금 급조한 감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근거였다. 케이슨은 처음 헬리온이 건넨 작은 사비아피스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유통되는 마석 중에 이런 종류가 있나?”

“없습니다. 아마 신종으로 추측됩니다.”

“그래···. 그래서, 이 광석을 어쩌자는 거지?”

“딜라드에서 유통을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사비아피스의 독점 유통권. 헬리온이 노리는 건 이것이었다.


‘어차피 채굴권은 왕실에서 가져갈 테고, 유통량도 그쪽에서 조절할 가능성이 크고. 그럼 적어도 최초 발견자가 독점 유통할 권한 정도는 줘야지.’


지금까지의 마석을 형광등에 비유한다면, 사비아피스는 LED이다. 더 밝고 오래 가는 조명처럼, 마력에 가까울 정도로 순도 높은 에테르를 시중에 나온 어느 마석보다 오랜 시간 담을 수 있는. 발견과 유통이 공표되는 순간, 시장 가격은 왕실에서 지정한 한계 가격에 거의 꽉 들어차는 최고가로 책정될 게 뻔했다.


“유통을?”

“네. 그리고 그걸 저와 누님이 맡았으면 합니다.”


헬리온의 두 번째 목적이다. 가벼운 용돈벌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크고 복잡한 데다, 그는 이러한 상업 쪽에는 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적어도 함께할 사람이 한 명은 필요했다.

그러나 타인을 끌어들이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중간에 상대방과의 사이가 틀어지거나, 다른 쪽에 붙거나 한다면 끝이다. 헬리온이 전체적인 흐름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만큼, 상대방이 주무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클레어는 1순위로 고려되었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이 모든 건 클레어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거절한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클레어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가?

백작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닌, 독자적인 돈을 얻고 싶어 하는 일인데 그가 참여한다면 사업의 의미를 잃는다. 레온하르트는 믿을 만했으나 왕족이고, 다른 아이들은 이런 돈이 오가는 직책을 맡기기엔 아직 어렸다.

그렇다면 남는 건 클레어뿐이다. 그녀는 현재 어머니인 미야를 대신해 집안을 관리하고, 백작이 자리를 비울 때면 백작의 업무도 일부 처리해야 했다. 실전 경험이 있는 만큼 적임자가 아닐 수 없었다.


“너희 둘이 맡겠다는 말이지.”

“예.”

 “···그래. 담당할 사람도 마땅치 않으니. 감정을 마친 후에 채굴을 시작할 때쯤 필요한 서류들을 네 누나 쪽으로 보내 두겠다.”

“···예, 감사합니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도 생각했지만, 백작은 겉보기엔 딱딱하고 엄할 것 같아서는 생각보다 후한 성격인 듯했다. 아니면 자식의 부탁에 약하거나. 외모로만 보아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점이었다.


‘역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더 할 말이 있느냐?”

“아, 아니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헬리온은 가볍게 목례한 후 뒤로 돌아 집무실을 나섰다. 지난 며칠 동안 반복되던 가혹한 시간에서 드디어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홀가분했다.






헬리온은 그 길로 클레어를 찾아가 방금 백작과 나눈 대화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클레어는 평소보다 신이 난 듯 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보다 이런 일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야 좋지. 어차피 이 사업에 나는 깊이 관여할 생각 없고, 전체 수익의 4할 정도만 내 손에 들어와도 충분하니까. 게다가 클레어가 여기서 능력을 발휘하면 나중에 나 대신 작위를 잇도록 설득하기도 쉬워질 테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완전히 실패하지 않는 이상 헬리온에게 이득밖에 남지 않는 최고의 흐름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헬리온은 아이들이 있을 터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어, 헬리온 돌아왔다.”

“이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딱 맞췄네.”


이제 슬슬 해가 질 시간이었다. 아무도 주변을 지나가지 않는 걸 확인한 헬리온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이들 사이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뭔데···, 어, 아까 그거야?”

“응. 달리안, 아니, 너희 다 하나씩 가져.”


그가 내려놓은 건 작은 사비아피스 조각이었다. 푸른 부분이 더 많고 손바닥 위에 올려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작아, 아마 상품으로는 쓰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아직 유통은커녕 채굴을 위한 조사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다. 그의 미래를 위해, 이 정도 뇌물은 있는 편이 좋다.


“새로 발견한 광석인데, 마석으로 쓰기 좋아서. 가공해서 마음대로 써.”

“오, 예쁘다. 헬리온 귀걸이랑 좀 닮았나?”

“이게 더 짙은데? 세공하면 예쁘겠다.”


프레이야와 달리안은 어떤 모양으로 무얼 만들지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렸고, 베일린과 율리아도 그 대화에 끼어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레온하르트는 그런 화제에는 관심이 없는지 한 발짝 떨어져 작은 사비아피스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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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 38. 비밀 결사(4) 24.09.06 5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10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1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10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9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10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11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1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3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1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3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8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4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8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8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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