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의 시간은 무한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최근연재일 :
2024.09.09 18: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55
추천수 :
1
글자수 :
182,644

작성
24.08.16 18:00
조회
9
추천
0
글자
10쪽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DUMMY

거대한 인간형 마수는 순조롭게 무저갱으로 접근했다. 그것의 뒤를 따르는 마수들은 선두의 거대한 녀석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는지, 몇몇 이탈자를 제외하고는 따로 유도하지 않았는데도 순순히 무저갱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멍해져 쏟아지는 마수들을 보고만 있던 아이들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탈한 인간형 마수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우두머리를 포함한 상당수의 마수는 무저갱으로 착실히 이동하고 있지만, 숫자가 숫자이니만큼 이탈자도 상당했다. 헬리온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무저갱의 크기를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키웠다.

비행형이 나오지 않아 여유가 생긴 달리안은 레온하르트 및 전방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조하면서도 마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움직임은 느렸지만, 보폭이 크다. 만약 저게 일직선으로 그들을 향해 내려왔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헬리온 쟨 뭘 한 건지···.’


그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실행 중이라는 것 정도는 달리안에겐 읽어내기 쉬웠다. 첫 만남에서도 그는 헬리온의 에테르를 읽어내지 않았는가. 아이들 중에서도, 저택 내에서도 헬리온을 제외하면 달리안보다 높은 순도를 가진 이는 없다. 그렇다면 자연히 헬리온의 에테르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 또한 달리안 뿐이라는 말이 된다.

상당히 위험한 짓이었다. 그가 구사한 마법이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는 주변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으나, 공격 마법과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식이었다. 그런 검증되지 않은 불안한 마법을, 분명 연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전에 도입하다니. 아무리 실험을 좋아하는 달리안일지라도 그런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집중하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다. 무슨 수를 썼는지 헬리온이 저 거대한 마수를 맡아 준 덕분에 전투 인원은 대열에서 이탈한 마수들만을 상대하면 되었다. 적은 수는 아니었기에 달리안이 힘을 보태기만 해도 한결 처리가 수월해질 테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물어도 된다. 달리안은 제 키만 한 완드를 고쳐 잡았다.

그런 생각을 알 길이 없는 헬리온은 슬슬 체력의 한계임을 느꼈다. 에테르 순도가 높아 다른 사람에 비해 오래 쓸 수 있으면 뭐 하나, 몸뚱아리의 체력이 바닥인데. 집중력도 체력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그가 사무직이었을지라도 이렇게까지 체력이 없던 적은 없었기에 이 약해 빠진 ‘헬리온 딜라드’의 몸에 적응하기 더 어려웠다.


‘설마 특능 때문에 그런 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 주는 건 좋았다. 게다가 헬리온도 나름대로 운동이라는 걸 하긴 했다. 아침에 시간이 비면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운동장을 돈다던가, 기숙사까지 가는 길을 일부러 빙 둘러 간다던가. 격한 운동은 체력이 아예 없는 그에게는 무리였기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도 이 꼴이라니, 체력이 붙는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근성으로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나중에 정말 심각한 상황에 힘이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헬리온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마지막 박차를 가했다.

거대한 인간형 마수는 무저갱 근처에서 휘청거렸다. 지성이 조금은 있는지 무저갱 앞에 서자 조금 저항했다. 그러나 이미 독은 마수의 몸에 깊이 침투했고, 이내 저항을 포기한 그것은 한없이 깊은 어둠에 삼켜졌다. 그 뒤를 따르던 인간형 마수들도 차례로 삼켜내는 걸 확인한 헬리온은 이탈한 마수들을 눈으로 좇았다.


‘이 정도면 여기 남은 사람들끼리 해결할 수 있다.’


판단을 내린 헬리온은 근처를 얼쩡거리는 마수 두어 마리만 추가로 무저갱에 담근 후 에테르를 거둬들였다. 흐트러진 체내 에테르 흐름을 가다듬고, 두 개로 나뉜 흐름을 하나로 통합했다. 온전히 방어 마법에만 집중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는 그에게 달리안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너 진짜 괜찮아? [치유] 걸어 줘?”

“됐다니까···. 내 체력을 놀리려는 목적이라면 성공인데, 진짜로 [치유] 쓸 생각이었으면 실패다.”

“아오, 진짜. 말을 해도 꼭······.”


헬리온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수들은 이제 거의 다 처치했고, 균열에서 새어 나오던 마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제 정말로 끝이 보이는 듯했다.

파아앗—

균열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고, 마지 상처 부위를 봉합하듯 찢어진 공간이 천천히 붙기 시작했다. 막 마지막으로 덮쳐 온 마수의 목을 벤 레온하르트는 강한 빛에 눈을 찡그렸다.


“균열이······.”


누군가 그리 중얼거렸다. 균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이는 케이슨의 사병을 제외하면 달리안 정도일 테다.

충분히 감탄할 만한 광경이었다. 균열이 닫히기 시작함과 동시에 하늘은 점차 맑아졌다. 짙게 내려앉은 마력도 바람이 안개를 몰아내듯 깔끔하게 걷혔고, 마수의 시체와 피는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마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구원자가 나타난 것처럼 느껴지는 극적인 변화였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경탄했으며 누군가는 그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강한 빛이 잦아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작이 내려왔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케이슨과 그의 병사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마치 후광처럼 보였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매우 평화로웠다. 뒷정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찰나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는 바람에 쓸데없이 걱정을 사긴 했지만, 헬리온도 조금 피곤한 걸 제외하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헬리온이 서클을 해제하기 직전, 율리아와 달리안은 미리 [치유] 마법을 준비했다. 헬리온의 서클 안에서 싸운 건 아이들뿐이었기에, 자잘한 생채기나 베인 상처 등은 서클이 해제된 직후에 빠르게 치료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에겐 큰 상처가 없었다. 빠르게 일을 끝마친 아이들은 저택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고, 헬리온도 도우려 했으나 ‘체력도 약해 빠진 놈이 무슨 뒷정리를 하느냐’며 구석으로 격리당했다. 그렇게 조금 멀찍이 떨어져 뒷정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헬리온의 곁으로 케이슨이 다가왔다.


“헬리온.”

“···아, 예. 아버지.”


멍하니 있던 헬리온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살짝 튀어 올랐다. 목소리는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침착했기에 백작은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다친 데는 없느냐.”

“예.”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예.”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이쪽으로 치워야 한다는 둥, 산은 괜히 건드리지 말자는 둥 엉망이 된 주변 정리에 힘쓰고 있었다. 백작의 병사들도 힘을 보태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백작은 말없이 헬리온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들의 눈은, 어머니를 닮은 투명한 하늘색이었다. 살도 근육도 없는 아이의 몸은 이제 겨우 평균에 가까워졌을까 싶었다. 여전히 어린 티가 나는 얼굴엔 젊은 시절의 케이슨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


아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케이슨을 바라보았다. 변성기가 덜 지난 여린 목소리에, 제 또래 같지 않은 어른스러운 표정. 아이의 선천적인 성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공사다망한 백작이었고, 부인은 제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육아나 교육은 전부 유모와 외부 선생에게 일임했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얼굴을 마주할 일이 드물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가까워지려 해도 어색할 뿐이었다.



“내일 저녁은 다 같이 먹도록 하지. 네 누나와 손님들도.”

“예···.”

“오늘은 수고 많았다. 쉬어라.”

“예, 아버지도 쉬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케이슨은 자리를 떴다. 이 이상 함께 있으면 괜히 더 어색해질 듯해서였다. 게다가 헬리온에게는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괜히 방해하는 것보단 먼저 자리를 뜨는 게 아이들에게 더 편할 테다. 그가 자리를 뜬 건 잘한 선택이었는지, 곧바로 아이들이 헬리온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헬리, 안 심심해~?”

“심심해 보이면 빨리 끝내라.”

“레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그냥 마법 써서 한 번에 옮기자고······.”


*


그날 저녁.

헬리온은 일찍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뒹굴거리고 있었다. 침대 옆 협탁에 올려 둔 스노우 부인의 디저트는 여전히 최고였다.


‘설마 나도 위장이 줄어서 밥을 못 먹는다는 게 진짜일 줄은 몰랐지.’


대학에서 여학우들과 이야기하며 몇 번 나온 주제였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위가 줄어서 먹고 싶어도 많이 못 먹게 되었다며 한탄하던 후배의 말을 명진은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 그의 식사량은 평균이었고 가끔은 과식하기도 했기에, 믿지 않았던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약해 빠진 몸은 정말로 위장이 작은 건지, 평균 식사량의 절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학생 식당은 기본적으로 양이 적고 추가 배식받는 구성이어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헬리온이 식사를 빠르게 마치자 스노우 부인이 트레이 한가득 디저트를 담아 보냈다.

조금 달콤한 스콘과 홍차는 정말 잘 어울렸다. 식사가 아니라 간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일까, 그저 맛있어서일까. 식사보다 더 잘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라피는 친절한 스노우 부인 덕분에 지금까지 먹었던 식사에는 비할 바도 되지 않는 최고급 펫푸드를 받아 신나게 먹은 후 침대에 드러누웠다. 따끈한 털을 쓸자 기분이 좋았는지 고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이제 할 일을 좀 해 볼까······.’


헬리온은 입에 남은 스콘 한 조각을 삼키고, 홍차로 입가심한 후 자세를 바로잡았다. 가볍게 귀걸이를 튕기자 익숙한 글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익숙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의 눈물]을 매개로, [아□□ □□□: 초고]에 접속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포터의 시간은 무한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9/30) 24.09.11 1 0 -
공지 연재글 수정 안내 24.08.02 10 0 -
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9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1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2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4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