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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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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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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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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진급 시험(3)

DUMMY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대기실로 돌아온 헬리온은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어렵지 않은 시험이라 해도, 달리안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이렇게 장시간 대결을 한 적은 없었기에 체력이 배로 깎인 기분이었다. 달리안은 그런 그를 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어땠어? 통과했지?”

“어.”

“상대는 누구였어? 상대역으로 나올 정도의 실력이면 이름은 웬만큼 알고 있는데.”

“다미안···, 다미안 델 리오.”


달리안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보기 드문 표정에 헬리온은 궁금증이 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알긴 아는데···. 와, 씨. 그 새끼도 출세했네, 진급 시험 상대역도 맡고?”


헛웃음을 짓는 달리안의 표정은 헬리온이 거의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적어도 사이가 좋지 않은 상대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

“아, 미안. 이제 내 차례인가 봐. 끝나고 얘기해줄게.”


말을 마치자마자 달리안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시험장을 향했다. 푹신해 보이는 치맛자락이 작게 흔들거렸다.

헬리온은 편한 자세로 고쳐 앉으며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눈앞에 나타난 초고는 이야기 흐름에 맞추어 자동으로 페이지를 펼쳤다.


‘다미안도 일단은 30화 이전에 나오는 단역이었으니까···, 여기 있네. 이때가 진급 시험 직전이니까 오히려 등장이 늦어진 건가.’


초고의 다미안은 학교에서 등장했다. 우연히 주인공과 친구들을 마주친 그는 무심코 그들을 얕잡아 보는 발언을 했고, 소규모로 이루어진 결투에서 레온하르트에게 완전히 패배하자 그 이후로 학교엔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흐름이었다.


‘다미안 소속은 설정을 안 해뒀지···. 애초에 재등장시킬 생각도 없었던 것 같고. 그럼 지금의 다미안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건가? 달리안이 알고 있는 걸로 봐선 마탑?’


다미안의 등장은 정말 그게 끝이었다. 초고를 덮은 헬리온은 턱을 괸 채 생각에 빠져들었다.


‘뭐, 단역은 이제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가 중요해.’


헬리온은 3급 마법사라는 지위를 얻었다. 초고에 따르면, 진급 시험 이후 맞이한 여름 방학에 레온하르트와 그 친구들은 뮐러 영지 근처의 휴양지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휴양과 수련을 동시에 즐기던 아이들은 우연히 희귀 광석인 ‘사비아피스’를 발견하게 되고, 보석 세공업으로 명망 높은 프레이야 하이트의 아버지에게 감정과 세공을 요청한다.

추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그 광석은 거의 마력에 가까운 에테르를 오랜 시간 동안 머금고 있는 게 가능한, 마석으로써의 역할에 아주 적합한 광석이었다. 채굴권은 모두 왕실에 귀속된 데다 채굴량과 시장 가격 또한 왕실에서 적절히 조절하게 되어 안타깝게도 돈벌이 수단이 되지 못한 비운의 광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헬리온은 이 세계 전체의 개요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사비아피스는 청금석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설정이었어. 청금석과 달리 노란 바탕에 푸른 점이 있는 광석이라고 묘사했지만···, 청색 반점이 있는 노란색이라면 예소드니까. 사비아피스는 분명 레바나 산맥에도 매장되어 있다.*’


이런 점에선 연재분에 들어가지 않은 세부 설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득이 되었다. 레바나 산맥은 딜라드 영지인 로타님 바로 옆에서부터 남쪽으로 뻗어가고, 근처 땅은 전부 딜라드 가에 묶여 있다 봐도 무방했다. 옅게 미소 지은 헬리온은 이번 여름에 해야 할 일을 정했다.

타인이 본다면 기분 나쁠 만한 미소를 짓는 헬리온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거리는 소리는 그리 굽이 높지 않은 구두의 울림이다. 고개를 든 헬리온의 눈앞에는 덩치가 작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누구···.”

“앗, 그, 저기, 젠티아 아카데미 학생이시죠? 1학년···. 교복, 보니까.”


쭈뼛거리며 말하는 그녀 또한 남색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었다. 헬리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층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헬리온의 옆에 앉았다.


“다행이다···. 오늘 시험 보러 오는 도중에, 아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거든요. 애초에 친구도 없지만······. 올 때는, 모르는 분들 틈에 끼어서 어떻게 오긴 왔지만, 돌아갈 때 어쩌나 싶었는데···. 혹시 일행분도 괜찮다면 같이 돌아가도 될까요?”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만한 일도 없었고, 이후 검술 시험을 보러 간 세 명과 합류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헬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 친구가 시험을 보러 들어가서···, 나오면 물어보죠.”

“감사합니다. 아, 말은 편하게 하셔도 되어요. 저는 존댓말이 습관이라···. 이름은 아까 들었어요. 헬리온 맞죠?”

“그렇다면야. 응. 헬리온 딜라드. 그쪽은?”

“율리아예요. 율리아 프로하스카. 사정이 있어서 입학이 조금 늦어지는 바람에,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지만···.”


헬리온은 몸을 약하게 움찔거렸다.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

율리아 프로하스카.

초고에 등장하는 레온하르트의 동료 중,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유일한 이였다.

푸른 빛 머리카락은 길게 자라 허리까지 곧게 내려와 있었으며, 눈꺼풀 사이 금빛 눈은 마치 맹수 같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드럽고 유약했지만, 요소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정말이지 육식 동물이 따로 없었다.


‘이 애가 앞으로 우리와 계속 함께한다면, 레온하르트의 주요 전력은 다 모인 셈이야.’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될진 몰라도 우선 안심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레온하르트의 충성스러운 심복이며 친우였고, 동시에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이였다. 분명 헬리온이 빠지더라도 이들은 잘해 나갈 수 있을 테다.


‘물론 나도 살아야 하니까 빠질 생각은 없지만.’


자력으로 악역의 편에 설 생각은 없었고, 외력에 의해 협력하기도 싫었다. 만약 가문의 군을 움직여야 한다면 그건 레온하르트를 위해서일 것이다. 헬리온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완성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완성도: 2.57%]


점점 올라가는 완성도를 보고 있자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야기를 완성하면 완성할수록 그는 이 이야기 속에 깊게 관여하게 되어갔으니까.


‘내가 선택한 길이긴 하지만···, 어깨가 무겁네. 그러니까 능력을 준 거겠지······.’


마침 달리안이 상쾌한 얼굴로 대기실로 돌아왔다. 헬리온은 자신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푹신해 보이는 치맛자락이 시야에 들어오자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적당히 손을 흔들었다.


“어어. 잘하고 왔어?”

“당연하지. 아이 참, 너무 쉬운 상대를 내보낸 거 아닌가 몰라? 난 이제 7급 마법사야.”

“뭐? 7급?”


7급 마법사는 왕국 내에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9급까지 있는 급수 체계지만, 현존하는 9급 마법사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늙은 마탑주 뿐이었고 8급도 많은 숫자는 아니다.

그런데 열네 살에 7급 마법사라니, 이 세계관의 어느 나라를 뒤져도 그런 사람은 달리안이 유일할 게 분명했다. 상대역은 응시자보다 급수가 높아야만 지원할 수 있으니, 달리안의 상대역도 분명 7급 이상의 희귀 마법사일 테다. 본인도 그런 사람을 상대로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지 얼굴에서 감출 수 없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응. 7급 마법사한테 마법을 배우다니, 영광인 줄 알아야겠지? ···어라, 근데 이분은?”


율리아는 자신을 향하는 붉은 눈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며 허둥지둥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율리아 프로하스카라고 해요. 젠티아 아카데미 1학년인데, 돌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겠는 데다 친한 친구도 없어서···. 여러분만 괜찮다면 동행하고 싶어서······.”


문장이 대체로 끝을 맺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율리아를 본 달리안은 생긋 웃으며 대외용 얼굴을 꺼냈다.


“아, 물론이죠. 저는 괜찮아요. 헬리온은··· 보니까 괜찮다고 한 것 같고? 검술 시험을 보러 간 친구들도 있어서 사람이 조금 늘어나겠지만, 그것도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그나저나 프로하스카라면, 그 거상 프로하스카?”

“아, 네에. 수도까지 이야기가 닿는군요···.”

“수도니까요. 아무리 중앙과의 왕래가 적다고 해도, 그 정도 규모면 닿기 마련이죠.”


부끄러운 듯 웃는 율리아는 속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였다. 키득키득 웃는 두 사람을 보며 헬리온은 초고를 펼쳤다.


‘이것도 설정이랑 들어맞네. 연재분으로 올라가진 않았지만, 프로하스카 가는 상업으로 부를 엄청나게 축적한 가문이라는 설정이었으니까. 그나마 금전 쪽은 한시름 덜었군.’


아무리 금전적 지원을 할 생각이었다고는 해도, 혼자서 부담하는 것과 두 사람이 나누어서 부담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거웠던 어깨가 다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헬리온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슬슬 나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아, 응. 율리아, 이만 나가요.”

“후후,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저는 존댓말이 습관이라···.”

“그렇다면 편하게 할게. 가자, 율리아.”


달리안의 성격상 저러는 편이 더 편할 테다. 헬리온은 재잘거리는 두 남녀를 뒤로하고 조금 앞서서 검술 시험 대기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예소드의 먼데인 차크라(세피라와 상응하는 천체)는 레바나(히브리어로 달moon이라는 의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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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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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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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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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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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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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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