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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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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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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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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금빛 태양

DUMMY

저택 건물 자체는 대문에서도 조금 떨어져 있었다.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이고, 길이 좁아 그들이 타고 온 큰 마차가 들어오기도 힘들었기에 이곳에서만큼은 모두가 걸어야 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탐색했다.


‘경치가 괜찮긴 하지.’


헬리온이 이 세계에 온 이후 첫 새해를 맞아 저택 주변을 산책하며 느낀 바이기도 했다. 지금은 여름인지라 녹음이 우거진 숲이 돋보였지만, 눈 쌓인 숲이야말로 진정 절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짙은 상록수 위로 소복이 쌓인 흰 눈과 드물게 보이는 작은 동물들, 알알이 맺힌 붉은 열매.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띠는 딜라드 저택의 외벽에 어우러지는 그 배경은 가슴이 욱신거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또한 저택의 여름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숲은 울창했고, 새들이 즐거운 듯 노래했다. 항상 무거운 저택의 분위기가 계절 탓에 조금은 밝아진 듯하기도 했다.

저택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클레어와 그녀의 가정교사였다. 근처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사용인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게 불편하다고, 이런 게.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헬리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신분제 사회. 그는 아마 계속 직장생활을 했어도 높은 자리는 탐내지 않았을 것이다.

클레어는 가정교사와의 대화에 집중하다가 주변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다. 남매의 푸른 눈이 마주치자 클레어의 두 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헬리! 어, 어서 와. 다른 분들도, 반, 가워요.”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헬리온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했다. 친화력 좋은 베일린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가 클레어에게 정중하게, 그러나 조금 가볍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디. 뮐러 가의 베일린 뮐러라고 합니다. 얼마간 신세 지게 되었습니다.”

“아, 아니에요. 저택에, 다른 사람이 오래 머무는 일, 이 드무니까, 저도 기쁜, 걸요. 방, 은······.”

“방은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가씨는 방금 하던 걸 마저 해주세요.”

“아, 네. 그,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녀의 가정교사는 20대 초중반 정도로 그리 나이가 많진 않았지만, 눈빛이 냉랭하고 옷도 깔끔하여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비유하자면, 까다로운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같은 이미지였다. 헬리온은 몸을 돌려 아이들을 따라가려 했으나 클레어가 그의 손을 잡았다.


“···누님?”

“아, 가, 갑자기 잡아서 놀랐지, 미안.”

“아뇨, 딱히···. 뭔가 할 말이라도?”

 “아, 응. 그게 있지, 어머니가 좀 아프셔서···.”


두 사람의 어머니, 미야 딜라드는 아이들에게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지만,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은 철저히 수행했다. 그런 그녀가 손님을 맞으러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헬리온은 머릿속에 떠올랐던 의문을 해결했다.


“요, 요새는 방 밖으로도 잘 안 나오셔서, 식사도 거의, 방에서 하시고···. 지금 내가 하는 것도, 원래는, 어머니께서 하시던, 거고. 아마, 네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계실 테니까···. 한 번, 가 봐 줄래?”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접점이 거의 없었던 데다, 작년 겨울부터는 미야 딜라드의 아들인 헬리온 딜라드조차 아니었다. 헬리온의 껍데기를 빌려 쓸 뿐인 그에게 어머니를 꺼릴 이유는 전혀 없다. 클레어의 저 태도는 분명 천성과 더불어 지금까지의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헬리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는 기쁜 듯 미소 지었다.






똑똑똑—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식사를 담당하는 메이드는 지금쯤이라면 들어가도 될 것이라 말했다. 헬리온은 문 앞에 서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 인간들은 어째 노크해도 대답하지를 않네.’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그러했다. 그래도 그때는 케이슨 딜라드가 서재 안에서도 문이 덧대어진 공간에 있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는 그저 침실이지 않은가. 결국 헬리온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커튼을 쳐 두어 방안은 어두컴컴했고, 사방이 조용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완전히 방 안으로 들어온 후 문을 닫자,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가느다란 빛만이 방 안의 유일한 빛이 되었다.


“···어머니?”


사방이 어두운 탓에 사물이 잘 분간되지 않았다.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가만히 서서 눈을 깜박거리고 있던 그때.

턱.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깜짝 놀란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상대방을 마주 본 채 에테르를 끌어 올렸다. 완드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최소한 방어 마법 정도는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마법을 전개할 일은 없을 듯했다.


“···돌아왔구나?”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빛난다. 미야는 묘한 표정으로 헬리온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머니였다는 걸 알게 된 헬리온은 끌어올린 에테르를 다시 집어넣었다. 몸에 긴장을 푼 헬리온은 가볍게 인사하고 곧바로 안부를 물었다.


“아프시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클레어 그 아이가 말했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미야는 작게 쯧, 하고 혀를 찼다. 대화가 좀처럼 나아가지 않고 빙빙 도는 듯했다. 서로가 듣고 싶은 대답은 하지 않고 제 물음만을 던졌다. 헬리온은 침묵을 택했다.

의자에 걸터앉은 미야는 헬리온에게도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티 테이블엔 텅 빈 잔만이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은 헬리온은 가만히 미야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상태는 나쁘지 않단다. 이것도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야.”

“···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구나.”


그야 당연했다. 제 물음에 답하지 않는가 싶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가볍게 답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미묘하게 말이 맞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라니, 꼭 사이비 종교에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헬리온이 몸을 굳히자 미야는 돌연 소녀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난 그렇게까지 욕심이 많지 않아.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침묵은 최고의 미덕이니···.”

“······.”


갑자기 웃음이 뚝 멎었다.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소리가 사라지니 곱게 접힌 푸른 눈은 공포 영화에나 나올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미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휘청 헬리온에게 다가오더니, 그대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두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누르며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

“참 이상한 일이지. 너는 드러나지 않을 터인데.”


손아귀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강해졌다. 이러다간 손톱에 눌린 살이 피를 보일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는 미야의 눈은 두 남매보다도 맑은 푸른색이었으나, 동공 근처는 옅은 회색이었다. 제 속까지 꿰뚫는 듯한 시선에 헬리온은 눈을 피하려 했다.


“아까 잠깐이지만 분명히 네 에테르를 보았단다. 금빛이었지? 아주 아름답더구나.”

“······.”

“하지만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을 터인 네가, 어째서? 합일은 예정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그 역할은 네가 아니어야 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슬픈 건지 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누그러트리고는 헬리온의 뺨을 놓아주었다. 계속 억지로 위를 보고 있던 탓에 목과 눈이 뻐근했다. 미야는 그대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자리에 앉지 않고 비틀거리며 침대로 향했다.


“부축을······.”

“되었다,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명색이 마법사이면 경계심을 좀 키우는 게 좋지 않겠니?”

“···명심하겠습니다.”


미야는 또다시 작게 웃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헬리온은 알 길이 없다.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띤 헬리온을 가만히 보던 미야는 어딘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넌 ‘위대한 업적’을 도울 셈이구나. 한시름 놓았다. 클레어 그 애는 아무래도 부족하단 말이지······.”

“···위대한 업적, 이라고 하시면?”

“난 말하지 않을 거란다. 아까도 말했듯, 침묵은 훌륭한 미덕이니 말이야. 나는 네 부모 된 자로서 아주 약간 엿볼 수 있을 뿐, 네 정보를 모두 읽어 들일 수는 없어. 그래도···. 뭐, 제법 모인 듯하구나. 그럼 되었다. 가 보거라.”

“······예, 그럼.”


헬리온은 방에서 빠져나와 문을 닫자마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쪼개질 듯했다.


‘뭐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데? 몸이 안 좋다는 것도 순 거짓말 아니야? 손힘이 엄청났는데···. 그리고, 마지막 말이 아무래도 신경 쓰인단 말이지.’


위대한 업적. 아마 그녀가 정말로 헬리온의 속내를 읽어낸 것이라면, 그 업적이란 레온하르트를 지지하고 무사히 왕이 되게끔 하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리라. 왕을 보좌하는 일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고, 개인의 업적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기에.


‘엿본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런 특능을 가진 사람이 초고에 있었나?’


아무리 되짚어봐도 초고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그가 세계를 창조할 때, 그런 정신적인 능력은 신이 아닌 이상 어렵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엿본다거나, 읽어낸다거나 하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 세계관을 만들 때 참고한 건···, 세피로트의 나무랑 여러 나라의 신화였지. 괜히 복잡하게 만들기는.’


과거의 자신을 향해 혀를 찬 헬리온은 찝찝함을 뒤로하고 2층의 제 방을 향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도 아직 바깥엔 태양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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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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