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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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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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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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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비밀 결사(1)

DUMMY

그 시각, 오르포스 방위대 집무실.

사락, 사락 하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집무실을 가득 채운다. 관자놀이를 짚은 채 하염없이 서류를 넘기던 다미안은 작게 한숨지었다.

균열을 막을 수 있던 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가—헬리온 딜라드가 보내온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대량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리라. 그의 눈앞에 있는 건 그 결과 보고서였고, 일부 재산 피해를 제외하면 인명 피해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


가만히 서류를 쳐다보고만 있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꼿꼿하게 세웠던 허리를 굽혀 의자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댄 다미안은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나지막이 목소리를 내었다.


“전에 부탁했던 건?”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듯하던 어두운 구석에서 검은 인영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성별을 알 수 없는 그 인물은 마치 그림자 같았다.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서류 뭉치를 다미안에게 건넨 그는 여전히 옅은 기척으로 다미안의 뒤에 섰다.


“헬리온 딜라드, 870년 9월 29일생. 딜라드 가 장남. 손위 누이가 있고···, 아카데미 재학 중. 흐음. 가족들도 특이사항은 없고. 이것뿐인가?”

“그 이상의 정보는 뒤쪽에도 적혀 있으나,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고작해야 3급 마법사이고, 성적도 적당히 중상위권이더군요.”

“그래. 그런 것 같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떤 점이 말입니까?”

“너무 평범해. 뭐든지 평균이고, 눈에 띄지 않아.”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너희···, ‘그림자 기사단’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지도 않아. 그렇다면 이 정보는 매우 정확한 정보라는 말이 되는데.”


다미안은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책상 위에 철썩 소리가 나게 올려 두었다. 자신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그는 묵묵히 다미안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내가 본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단 말이지.”

“진급 시험 때 말이십니까.”

“그래. 아, 너는 시험장엔 들어오지 않았던가?”

“네. 통로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럼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직접 봤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텐데.”


다미안은 그날 그가 본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렸다. 제 공격이 조금 과하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헬리온의 방어 마법이 상당히 눈길을 끌었기에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었다.

그의 방어 마법은 정말이지 신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공격 효과를 감소시키는 건가 했으나 아니었다. 이중으로 공격 마법을 전개한 것이라는 예측도 빗나갔다.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꾸몄을 뿐, 그가 시전하는 마법은 극히 평범하고 기본적인 방어 마법이었다.


‘공격 마법도 허술하기 그지없었는데.’


의도적으로 계산한 것 같긴 했다. 위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 마법은 구사할 수 있다’는 증명은 충분히 가능한 마법. 3급을 목표한다면 적절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특이한 방어 마법을 구사하는 이가 시전한 마법 중 가장 강한 공격 마법이 고작 그런 수준이라는 점이 수상쩍었다. 분명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숨겨져 있다.


“뭐, 일단은 수고했어. 추가로 들어오는 정보 있으면 바로 알려 주고.”

“예. ···지금은 손대지 않는 겁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잖나. 아무리 그래도 그 딜라드인데. 본인에게는 편지를 보냈으니 알아서 해석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아, 지금 수습 상황은?”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피해 보상안과 복구 작업 일부만 진행 중입니다.”

“피해 보상안은 언제 나가지?”

“지금 다미안 님께서 보고 계신 서류가 승인되어야 합니다.”

“······.”


그도 정신이 없긴 한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다미안은 혼자 생각하고 싶으니 피해 현장으로 가라는 명을 내렸다. 고요해진 집무실에는 이제 정말 그 혼자 남았다.


“···헬리온 딜라드.”


나지막이 읊조린 이름은 큰 울림을 만들지 못하고 금세 사라졌다. 확실히 존재감이 옅은 편이긴 했다. 울림조차 금방 사라져 버리다니, 꼭 존재하지 않는 이의 이름을 입에 담은 기분이었다.


‘분명 무언가 있다.’


균열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다년간의 통계를 통해 추측이 가능할 뿐, 그마저도 적중률은 미비했다.

그러나 헬리온이 보내온 급보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오르포스 역에 진입하기 전, 선로 위의 대형 균열. 기차의 진입은 미리 통제했고, 그 주위로는 방위대를 배치했다. 균열이 터지자마자 그들은 훌륭히 제 역할을 다했으며, 주민들의 대피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방위대장인 다미안의 공이 될 테다.

공적이 쌓이는 건 좋은 일이다. 그는 일 년 전 마탑에 있던 시절,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달리안에게 쫓겨나듯 탑을 나와야 했다. 다행히도 그의 공적까지 지워지진 않아 무사히 오르포스 방위대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마탑에서 쫓겨난 그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게 분명하다.

다미안은 빠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 그런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더 많은 공적을 쌓으면 모두 그를 다시 보게 되리라.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은 다미안에게 이득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만약,

헬리온 딜라드가 균열의 발생 위치를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수상한 건 둘째치고, 정말 그런 능력이라면 다미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제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로렌스 레스터도 단독으로 큰 전공을 세워 기사단장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기회만 잘 잡는다면 그에게도 그런 축복이 올 가능성이 있다.

서류에 적힌 헬리온의 이름은 다른 글자에 비해 조금 옅은 듯하기도 했다.


*


“비밀 결사요?”


프레이야는 과자를 우물우물 씹으며 되물었다. 기본적으로 모두 예의 바른 아이들이었지만, 이렇게 또래 친구들과 있을 땐 당연하게도 편하게 행동하였다. 클레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드, 들어 본 적···, 없으신가요?”

“음~ 아마도요. 이름만 들어서는 뭔가 정치적인 느낌인데.”

“정치적이랄까, 좀 위험한 느낌이지? 뭔가 들고 일어날 것 같고.”

“아, 아마 그런 결사, 는 아닐, 거예요. 듣기로는, 살롱, 같은 거라고.”


달리안은 프레이야 옆에 착 달라붙어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그런 두 사람과 살짝 떨어져 앉은 베일린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면 왜 비밀 결사라는 거창한 말이 붙은 걸까요? 살롱이나 사교 파티 같은 건 최근에도 꽤 자주 열리는 편이고, 그런 수상쩍은 이름을 붙이면 괜히 세간의 주목을 받을 텐데.”

“뭔가 특별한 규칙이나 내부 행사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율리아도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내었다.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는 그렇게, 들었어요. 최근에, 이 근처에서 자주 열, 리고요. 저, 전국을 돌아다니면, 서···. 열린다는 것, 같은데, 이,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요.”


멀찌감치서 듣고 있던 헬리온은 이상한 소문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돌아가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길래,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레온하르트와 헬리온은 빠진 참이었다.


‘이즈음에 뭔가 설정해 둔 사건이 있던가?’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아티팩트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페이지를 넘겨 여름방학 부근의 플롯을 보았지만, ‘비밀 결사’같은 이야기는 한 줄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클레어의 설명은 이어졌다.


“그 살롱, 이라고 해야 할까, 비밀 결사는···. 하,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모인다고 해요. 정오쯤부터 모여서, 밤늦게, 끝나는데. 나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화, 황홀한 얼굴을 하고, 나온다는 이야기, 예요.”

“황홀한 얼굴? 모여서 약이라도 하나.”

“달—리안, 직설적으로 내뱉기 금지.”

“레이, 네가 뭔데? 내 보호자도 아니잖아.”

“응, 보호자가 아니니까 해 주는 말이지. 그러다가 나쁜 사람한테 걸리면 바로 저세상 갈지도 모른다?”

“너 지금 나 어린애 취급하지.”

“아닌데~”

“나보다 급수도 낮은 주제에!”

“자, 자. 둘 다 그만. 달리안도 좀 돌려서 말하고, 레이도 그만 놀려.”


베일린은 이럴 때 훌륭한 중재자였다. 금세 조용해진 공간에 어색하게 눈치를 보던 클레어는 베일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싱긋 웃어주자 황급히 고개를 돌린 클레어는 말을 이어갔다.


“이 근처에, 그 모임에 나가는 사람이, 꽤 있는데···, 그 중 몇 명이, 상태, 가, 안 좋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요.”

“상태가 안 좋다면, 어떤?”

“그, 그 사람들 말로는, 꼭 화, 환각을 보는 것 같다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눈물을 흘리거나, 기, 기절한다더라고요. 그, 그냥 소문일 뿐이니까, 큰일은 아니겠지만요.”


아이들은 모두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의가 집중된 상황이 어색한지, 클레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해요. 전혀 재미있, 는 이야기가, 아니었죠.”

“아니에요.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레이디 클레어. 귀중한 이야기를 들었네요.”


베일린은 입에 꿀이라도 발랐는지 달콤한 말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뱉었다. 클레어는 여전히 그런 베일린의 태도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얼굴을 붉혔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문장을 주고받던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시간입니다.”

“아, 아. 네. 그, 금방 갈게요.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수, 수업이 있어서.”

“아아, 네. 즐거웠습니다, 레이디.”

“이따가 또 놀러 와요!”

“네, 네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클레어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아이들은 잠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베일린은 모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양, 괜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비밀 결사’,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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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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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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