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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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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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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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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비밀 결사(2)

DUMMY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초고에는 설정하지 않은 사건인데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이름. 관심이 가지 않는 게 더 신기할 정도다.


“그야, 신경 쓰이긴 하는데.”


 그러나 헬리온은 그 ‘비밀 결사’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울 듯했다. 살롱이라고는 하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모이는 느낌이었고, 그 모임이 어떤 모임이든 간에, ‘딜라드 백작의 장남’을 내치진 않을 테다. 아마 초대장을 요구하면 순순히 내어 주겠지.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기본 상식이 좀 딸려야 말이지.’


살롱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사교와 학습의 공간이다. 철학과 예술, 경제 등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런 모임을 통해 사교계에서의 입지를 넓혀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비밀 결사’는 아니지만, 초고의 후반부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살롱 또한 비슷한 역할이었다.


‘초고에선 헬리온 딜라드가 개최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다가 모인 사람들에게 데클란에게 협조할 것을 종용하는 수단이었지만···.’


지금의 헬리온에겐 절망적일 정도로 그런 교양 상식이 없었다. 이 세계가 대한민국이 속한 우주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몰라도, 아마 고대부터 내려온 철학 사상 등은 다를 것이다. 철학 하면 떠오르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이 있으려면 먼저 그들이 속한 국가인 고대 그리스가 존재해야 했으니. 아카데미의 역사 수업에 따르면 이곳엔 그리스라는 국가가 있었던 적이 없고, 자연히 그들도 존재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 닮은 사상은 있겠으나 자칫 입을 잘못 놀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원래도 헬리온은 예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유명한 그림이라곤 모나리자나 천지창조 정도만 알고 있었고, 화가에 대한 정보도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 세계엔 그들이 존재했던 적이 없으니 그 쥐꼬리만 한 지식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가 보면 되지. 왜? 레이디 클레어가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접촉 수단은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나는 좀.”

“하긴, 헬리온은 이상하게 상식 면에서 좀 모자라지?”


달리안은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조소했다. 맞는 말이지만 저보다 두 살이나 어린 달리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헬리온은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


“뭐?”

“맞잖아? 역사는 배웠으니까 이제 좀 아는 것 같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학자들 이름은 거의 모르던데. 뭐 마도학자 정도는 아카데미에서도 배우니까 지금은 아는 것 같긴 해도···.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모르지? 철학자나, 예술가 같은 사람들.”

“······.”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괜히 달리안을 쏘아 본 헬리온은 입을 꾹 닫아버렸다.


“거 봐, 부정 안 하잖아. 헬리온, 책 읽는 건 좋아하면서 왜 그런 쪽엔 관심을 안 두는 거야?”

“딱히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보단, 헬리온은 지금 이 세계에 적응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벅찼다. 특히 그가 깨어난 겨울부터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정말 기초적인 상식과 지리 등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을 대부분 썼고,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는 수업 진도를 따라가며 달리안의 실험에 어울리느라 도저히 일반 책을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다.

이런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아봤자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게 뻔했다. 결국 헬리온은 한숨으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후···, 어쨌든. 가고 싶은 거야?”

“가고 싶다기보단, 일단 신경 쓰이니까. 가 볼 수 있으면 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만약 갈 거면 너희끼리 가라.”

“알겠어, 알겠어. 그럼 이따가 레이디께 물어봐야겠네.”

“···너무 귀찮게 굴지는 마.”

“와, 꼴에 누님이라고 아끼는 거야?”

“달리안, 말.”


베일린은 조금 엄한 얼굴로 달리안을 꾸짖었다. 그래도 자신이 더 어리다는 자각은 있는지, 달리안은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볼을 부풀리며 몸을 웅크렸다. 베일린은 그런 그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귀찮게 굴지는 않아. 난 레이디께 잘 보이고 싶은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넌 가끔 보면 남자들보다 더해.”

“그게 내 매력이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베일린은 당당했다. 레온하르트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레온하르트의 수고를 체감한 듯했다.






“그럼 너희는 가기로 한 거야?”

“아마도? 자세한 이야기는 베일린이 다 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표정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긍정적인 쪽이겠지. 그나저나···.”


달리안의 말은 끝에 가선 약간 신경질적으로 되었다. 오늘 그의 드레스가 비교적 어두운 색상이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치맛자락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달리안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헬리온을 노려보았다.


“뭐 하러 가는 건데? 이런 산속에 뭐가 있다고? 옷에 흙도 다 묻고······.”

“그러게 안 따라와도 된다니까.”

“그치만 헬리온 혼자 보내면 시체로 발견될 것 같고.”

“···프레이야, 가만 보면 너도 참···, 아니다.”


뒤쪽에서 헬리온을 따라오던 프레이야까지 상대하려니 기운이 쭉 빠졌다. 그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묵묵히 산을 올랐다.


“그래서 갑자기 왜 산을 타는 건데? 헬리온 네가 운동하려고 마음먹었을 리는 없고.”

 “레이, 너 아직도 헬리온을 모르는구나? 쟨 적극적으로 몸을 쓸 바엔 차라리 평생 내 연구 자료 정리를 할 사람이야.”

“누가 네 자료 정리를 한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아, 진짜 해 주면 좋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달리안의 상대를 계속하다간 영원히 시비만 걸릴 것 같았다. 헬리온은 이제 완전히 무시하고 산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했다.


‘사비아피스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까 어렵네. 며칠 전에 균열이 터졌으니까 마력을 많이 머금어서 찾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비아피스는 마력을 많이 저장하기로 유명해진 광석이었으니, 헬리온의 가설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을 사비아피스에 더불어 토양까지 약간의 마력을 머금은 채인지라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토양의 마력이 중화되며 난이도가 내려가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만약 저들이 아닌 다른 이가, 초고와 비슷한 시기에 벨라토르 근방에서 사비아피스를 먼저 발견한다면 그 가치가 내려갈뿐더러 채굴권 등이 전부 왕실에 귀속되고 만다.


“어어, 헬리온. 너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넘어진—꺄악!”


비명과 동시에 노을빛 에테르가 번쩍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한 달리안이 넘어지기 직전, [도약] 마법으로 몸을 공중에 띄운 듯했다. 공중에서 흔들거리며 균형을 잡은 달리안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남 걱정하기 전에 네 몸부터 챙겨라.”

“드레스 때문에 발밑이 잘 안 보인단 말이야.”

“그러게 누가 드레스 입고 산을 올라?”

“흥, 산에 갈 줄 알았나.”


헬리온은 무작정 할 일이 있다며 저택을 나섰고, 검술 연습을 위해 남은 레온하르트와 베일린, 율리아를 제외한 두 사람이 다급히 따라 나온 것이었으니 헬리온의 잘못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약한 체력 자체가 잘못일까.


“뭐에 걸린 거야? 아이, 진짜. 드레스에 다 묻었잖아······.”


달리안은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몇 번 툭툭 털더니, 윗부분을 잡고 마법으로 약한 바람을 만들어 남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 작은 틈. 지면과 드레스 사이의 아주 작은 틈 사이로, 푸른 빛이 반짝였다.


“달리안, 잠깐만 옆으로 비켜 봐.”

“어, 응? 왜?”


의문을 표하면서도 순순히 비켜 준 달리안 덕분에, 그의 발밑에 있던 (아마 그가 걸려 넘어질 뻔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돌이 선명하게 보였다.

흙이 묻어 탁한 색을 띠었으나 선명한 레몬색. 그 사이사이 박힌 푸른 반점이 날카로운 빛을 뿜어낸다. 짙은 마력을 머금고 있다는 증거였다.

헬리온은 몸을 숙여 그 돌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확실히 마력이다. 빙긋 웃은 그는 달리안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이 돌을 파내는 게 더 중요했다.


“······.”


그러나 어떤 마법을 써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흙을 파내는 마법 같은 건 없으니, 다른 마법식을 응용하는 수밖에 없다. 헬리온은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마법식을 동원했지만, 이런 광석을 취급하기에는 전부 위력이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한 것뿐이었다.


“헬리온, 그 돌을 찾던 거였어?”

“···응.”

“뭐야···. 그럼 빨리 파내지, 왜 바보같이 그러고 있어.”

“무슨 마법을 써야 할지······.”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암기는 잘하지만 응용은 어려웠다. 덕분에 문과 과목에선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곤란했다. 사용하는 마법에 비해 에테르 농도가 짙은 탓에 힘 조절이 어려워서 막막한 것도 있겠으나 대체로 응용력의 문제이다.


“나 참, 아직 나한테 더 배워야겠구나? 비켜 봐, 내가 확실하게 꺼내 주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7급 마법사님!”

“프레이야, 넌 뭐야?”

“그냥? 재미있잖아.”


달리안은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완드를 꺼내 들었다. 조금 전에도 본 오렌지빛 에테르가 서클을 중심으로 환하게 솟았다.


“[비밀이 많은 자여, 전부 드러내시오. 드러냄은 죄가 아니며, 신은 당신을 용서해 주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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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0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4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5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6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6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6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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