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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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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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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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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DUMMY

헬리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지 헬리온이 조용해진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오늘따라 조용한 고양이는 침대 구석에서 얌전히 잠을 청했다. 잔뜩 얼었던 분위기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뭐어···, 그래. 미안, 계속 강하게 말해서.”

“아냐, 숨긴 건 나고. 의심스러우면 그럴 수도 있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완전한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 전쟁은 여전히 일어나고, 평화 조약 같은 건 몇몇 국가 간에만 성립한다. 게다가 총칼을 모두 빼앗는다고 하더라도 에테르라는 이상 에너지가 있는 세계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분쟁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폭력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러니 적어도 힘을 가진 자는 타인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주변에 비슷한 힘을 가진 자가 많다면 더더욱.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자를 곁에 둘 만큼 레온하르트는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궁금한 건 다 해결했어?”

“응. 말해줘서 고맙다.”

“뭘, 어차피 너한텐 언젠가 말하려고 했었고···. 슬슬 들어가 자라.”


휘적휘적 내젓는 손에는 힘이 거의 없었다. 머리를 굴리는 것도 체력이라는 말이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레온하르트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알았어. 시간도 늦었으니까 너도 자. 내일 또 비실거리지 말고.”

“비실거리긴 누가 비실거렸다고···. 알았어. 아, 지금 내가 말한 건······.”

“말하지 말라는 거지? 그 정도야 뭐. 네가 말할 때까지 나만 알고 있을게. 진짜 간다.”


레온하르트는 손을 흔들며 방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풀어진 공기와 갑작스러운 고요함에, 헬리온은 무의식적으로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어떻게든··· 넘어갔나.’


이 이상 추궁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문양을 보여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했다면 곤란했으니.

그는 금빛 글자가 일러 준 대로 능력의 존재를 알았고, 적절히 사용했지만 문양은 드러나지 않았다. 혹시 평상시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나 하여 살펴보았으나 그 또한 아니었다. 이런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 연구 대상으로 실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보다, 왜 하필 레온하르트에게 그 능력이 갔냐는 건데···.’


단순히 생각하면, 그가 레온하르트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헬리온의 능력을 그가 가지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헬리온이 생각하기에도 그 해석이 가장 잘 들어맞았으나,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애초에 왜 나한테 이 능력을 준 건데? 그리고 그런 식으로 능력을 교환할 수 있는 거면, 어떻게 잘 해서 지금이라도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누가 능력을 부여하는지도, 방법도 모르긴 하지만. 굳이 왜 원래 헬리온의 능력을 준다는 선택을···.’


그는 육체만 헬리온 딜라드일 뿐, 내용물은 이 세계와는 큰 연관이 없는 이방인이다. 아무리 그가 이 세계를 구축했다 하더라도 지금 이곳은 그의 초고와 상세한 부분은 다른 점이 꽤 많았다. 전체적인 틀과 엮였다는 것만으로 이 세계를 꿰뚫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 모르겠다. 피곤하니까 머리도 안 돌아가.’


레온하르트가 나간 후에도 계속 어정쩡한 자세로 침대 위에 앉아 있던 헬리온은 몸에 힘을 빼고 벌러덩 누웠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잠에서 깬 고양이는 가늘게 눈을 뜨고 작게 불만을 표한 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역시 사람은 잠이 모자라면 안 돼.’


자세를 고쳐 옆으로 눕자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어려운 건 충분히 잔 후,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는 게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옅은 숨소리는 규칙적으로 바뀐다.

어려운 일이 더 생길 거라곤 꿈에서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다음 날 아침.

맑게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헬리온은 느릿느릿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창밖은 밝았지만, 아직 푸른빛이 옅게 감돌았다. 최근 며칠 중 가장 일찍 일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몸이 개운했다. 아마 지금쯤 아침 식사 준비가 한창이리라. 아카데미 입학 전엔 할 것도 없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었는데, 한 번 무너진 습관을 이제 와서 다시 바로잡기에는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볍게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진 헬리온은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방문을 열었다.


“어머, 도련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외출하시나요?”

“아, 스노우 부인. 오랜만입니다. 외출이라기보단, 가볍게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요.”

“어쩜, 부지런도 하셔라. 곧 식사 준비가 다 되니까 그전에는 들어오셔요. 오늘은 디저트로 밀푀유를 준비했답니다.”


오랜만에 마주친 스노우 부인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디저트 이야기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단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 헬리온에게 스노우 부인의 디저트는 그야말로 헬리온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아, 도련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좋은 아침이에요!”

“소피도요. 아침부터 부지런하네요.”


얼마 가지 않아 헬리온은 소피와 마주쳤다. 꽤 넓은 편에 속하는 저택인데도 두 사람이나 마주친 게 신기했다. 밝게 웃어 보인 소피는 무언가 떠오른 듯 아, 하는 탄성을 내며 손에 쥐고 있던 편지 뭉치를 하나하나 넘겨 보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도련님. 도련님 앞으로 온 게 하나 있어서···. 만난 김에 드릴게요. 아, 찾았다.”

“편지가요?”

“네. 보내는 사람 이름이 안 적혀있어서, 조금 수상하긴 하지만···.”

“내용물에만 적은 걸 수도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지금은 어디 나가던 중이세요?”

“잠깐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요. 부지 밖으로는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침 산책하는 도련님도 오랜만에 보네요, 후후.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들어오세요.”


이 집의 사용인들은 전체적으로 그를 어린애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소피만 해도, 분명 저보다 고작 네다섯 살 정도 많아 보였으나 태도로 봐선 일곱 살 아이를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어쩌면 부모보다도 더 부모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싫진 않은데, 익숙해지지도 않고 좀 부끄러우니까······.’


드디어 밖으로 나온 헬리온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름날 아침 공기는 언제나 상쾌하게 느껴졌다.


‘출근 직전이라면 다른 기분이었겠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좋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켜자 정신이 확 맑아졌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 발치를 바라보면, 제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라피가 있다.


“라피, 또 나왔어? 계속 나오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매앵.”

“하긴 뭐, 기숙사에서도 계속 나갔다 들어오는 것 같던데. 이제 와서 혼내는 것도 웃기긴 하다···. 어디 뛰어가지 말고, 형한테 붙어 있어.”

“앩.”


 라피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대답하더니 헬리온을 쫄래쫄래 따라오기 시작했다. 시원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고양이와 함께 맞으며 산책하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지난겨울부터 그의 산책 코스였던 저택 반 바퀴를 거의 다 돌아갈 때쯤, 헬리온은 문득 편지 내용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방으로 돌아가 읽을 생각으로 가지고만 있었는데, 아예 들어가기 전에 읽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헬리온은 회랑 난간에 기대어 조심스레 편지 봉투부터 살펴보았다.


“진짜로 이름이 안 적혀 있네.”


필체도 처음 보는 필체였다. 내용물도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편지지인 듯했다. 헬리온은 망설임 없이 편지를 꺼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편지로 먼저 인사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덕분에 균열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오르포스 인근 민가의 피해도 거의 없다더군요. 헬리온 님 덕분입니다.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언젠가 보답할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당신에게 여신의 축복이 있기를.

오르포스 방위대장

다미안 델 리오 」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그 다미안이 오르포스 방위대장일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 그의 불찰이다.


‘역시 균열이 터졌었구나. 인명 피해가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다미안 델 리오···. 이 사람은 날 수상하게 여길 텐데.’


진급 시험에서 처음 만난 그는 헬리온의 방어 마법이 공격을 튕겨내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헬리온의 눈속임은 멀리서 보는 이를 속일 순 있어도, 조금만 자세히 뜯어 보면 금방 탄로 날 정도의 대단하지 않은 눈속임이다. 시험 상대역으로 나올 정도의 실력을 갖춘 그라면, 가까이서 본 그의 마법에 공격 마법 따윈 이중으로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바로 꿰뚫어 보았을 테다.

게다가 지금 헬리온은 예측 불가능한 재해인 균열의 발생을 예고했다. 그런 그를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어도 모자란 증거가 차고 넘쳐났다.

헬리온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린 듯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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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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