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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최근연재일 :
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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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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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DUMMY

한참을 웃고 떠드는 사이 기차는 중간 정차역 인근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오르포스 강을 건너기 조금 전에 있는 오르포스 역에 정차하기까지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몇 시간 째 깔깔대며 신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레오를 다들 봤어야 하는데! 혼자 자빠져서는, 아무도 못 봤겠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는 게 얼마나 웃겼다고.”

“야, 베일린! 그걸 까냐? 좋아, 나도 못 깔 거 없지. 네가 혼자 공 가지고 놀다가 본궁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 위에 걸려서, 그걸 꺼내려고 올라갔다가 나무가 상할까 봐 내려오지도 못하고 공도 못 줍고 쩔쩔매던 게······.”

“아, 잠깐, 잠깐! 그걸 말해?!”


두 소꿉친구의 계속되는 폭로전에 다들 기차 한 량이 떠나가라 웃었다. 다행히 이 시간대에는 타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그들이 탄 칸에는 그들 여섯 명을 제외하고는 이쪽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한두 명 정도만이 타고 있었다. 헬리온은 웃음과 피곤함을 동시에 견뎌내느라 얼굴에 힘을 잔뜩 주었다.


“헬리 표정 좀 봐, 진짜 웃겨.”

“졸리면 그냥 자도 되는데.”

“그냥 피곤해서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거짓말이 아니었다. 장시간 기차여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힘들었다. 게다가 라피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최대한 덜기 위해 가방에 아주 약한 방어 마법을 걸어 둔 지라, 신경이 여러 군데로 분산되어 괜히 더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아이들의 대화를 놓치면 언젠가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불안감이 그의 귀를 대화에 집중시켰다.


“그러고 보니까, 중간에 한 번 서지? 오르포스 역이었나.”

“응. 신설 노선이라 갈아탈 필요는 없고···. 곧 도착할걸? 길게 서는 것 같진 않은데.”


프레이야는 이렇게 북쪽까지 오는 건 처음이라며 들떠 있었다. 베일린도 마찬가지로 신이 나 있었지만, 더위 탓에 프레이야보단 얌전한 축에 속했다. 레온하르트는 이제 완전히 이야기를 듣는 쪽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조금 전까지 신나게 폭로전을 이어가더니 두 사람 모두 지친 모양이었다.


“맞다, 헬리. 기차에서 내리고 바로 집으로 갈 거야?”


로타님으로 향하는 기차이니만큼,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수도보다는 많을 것이라 짐작한 헬리온은 아이들에게 다른 이름으로 불러 달라 부탁했다. 결국 채택된 건 레온하르트가 언젠가부터 부르기 시작한 ‘헬리’라는 애칭이었지만. 프레이야의 물음에 헬리온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집에서 마중 나온다고는 했으니까···. 왜, 어디 다른 데 가 보고 싶은 데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 근처에—”


쾅—!


프레이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굉음이 그들의 귀를 덮쳤다. 동시에 기차에 가해진 충격은 고스란히 그들의 몸으로 전해졌다. 헬리온은 무의식적으로 라피가 있는 가방을 둘러싼 방어 마법에 에테르를 불어넣었다.


“···무슨 일이지?”

“글쎄. 기차도 멈춘 것 같은데···. 뭐랑 부딪힌 건가?”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목을 쭉 빼고 앞쪽을 바라보았으나,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금방 다시 운행하지 않을까 싶어 방어 마법을 느슨히 하려던 그때.


“헬리, 숙여!”


달리안의 목소리에 헬리온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바짝 숙였다. 모든 훈련을 달리안과 해서인지 그의 명령조 목소리는 몸에 각인된 듯 반응이 빨랐다.

머리 위로 뜨거운 열기가 지나간다. 확실하게 공격 마법이었다. 이어서 인간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와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열기가 사그라든 후 헬리온은 고개를 들어 공격 마법이 지나간 자리를 보았다.

기차가 그을린 건 둘째치고, 헬리온은 달리안의 공격으로 나가떨어진 무언가의 시체를 보고 경악했다. 단순한 야생 동물이나 무기가 아닌······.

마수다.

아이들은 동시에 저마다 가진 무기를 꺼냈다. 헬리온 또한 재빠르게 완드를 꺼내 그들 주위로 서클을 펼쳤다. 찬란한 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가 방어 마법을 구현하는 동시에, 기차 위쪽에서 큰 소음이 들려온다. 마치 무언가가 기차 위에 올라타 난동을 부리는 듯했다.

그동안 레온하르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다른 칸으로 도망친 것 같았고, 기차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과 기차 안에 남아있는 사람이 갈린 느낌이었다. 그는 베일린과 시선을 교환한 후, 아이들을 보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균열 같아. 나랑 베일린은 후방을 맡을게. 앞쪽은 피해가 더 크겠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간 우리까지 말려들 거야. 율리아랑 프레이야가 앞쪽에 있는 사람들을 뒤쪽으로 유도해 줘. 헬리온이랑 달리안에겐 기차 바깥을 부탁할게.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 알겠지?”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끝난 즉시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뒤쪽으로, 프레이야와 율리아는 앞쪽으로 이동했다. 달리안과 헬리온 또한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쪽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기차 바깥으로 나와 최대한 앞쪽으로 이동하던 프레이야는, 기차가 충돌한 물체의 정체를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마수 중에서도 가장 처리하기 껄끄러운 인간형 마수. 그러나 그 크기는 평범한 인간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적어도 사람 다섯 명 정도는 합쳐진 듯한 크기였다.

기차와의 충돌 탓인지 움직임은 없었지만, 강력한 마력이 마수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게다가 그 마수의 바로 뒤가 균열인 듯했다. 하나둘씩 쏟아지는 비행형 마수에 프레이야는 순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프레이야!”


갑자기 이름을 불린 그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율리아가 있었다. 


“괜찮아요? 무리 같으면 저 혼자라도···.”

“아니, 괜찮아. 고마워 리아. 덕분에 정신이 들었어. 갈까?”


마음을 다잡은 프레이야는 율리아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마수의 눈을 피해 빠르게 달려 더 앞쪽을 향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대부분 패닉 상태였다. 앞 두 량 정도는 마수에 의해 완전히 뭉개져 진입할 수 없었지만, 세 번째 칸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마수의 공격이 크지 않았는지 크게 다친 사람도 없어 보였다.


“다들 피하세요! 균열입니다!”

“아이고, 피, 피하라니, 어디로 피하란 말입니까?”

“뒤, 뒤쪽으로 가세요. 그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요. 일단 최대한 균열에서 떨어지세요···!”

“그래요, 이왕이면 가면서 뒤 칸 사람들한테도 좀 전해 주면 좋고! 빨리요!”


사람들은 허둥지둥 뒤로 빠져나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는 걸 보니, 프레이야의 말대로 뒤 칸 사람들까지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프레이야는 소드브레이커와 숏소드를 움켜쥐었다.


“앞쪽은 인간형뿐인 것 같지?”

“네. 비행형은 거의 뒤로 빠진 것 같아요.”

“그럼 뭐, 그쪽은 달리안이랑 헬리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우리도 지금 있는 인간형만 처리하고 뒤로 빠지자.”

“네.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무슨 소리야! 마법사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데. 우리 둘 다 실전은 처음이니까,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형 잔챙이 몇 정도는 처리할 수 있겠지.”


말하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앞칸에서부터 넘어온 마수들이다.


‘소드브레이커가 아니라 그냥 숏소드 두 자루만 들고 올 걸 그랬나.’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마수를 상대로 소드브레이커를 쓸 일은 없다. 아무리 반대쪽에 날이 서 있다 하더라도 사용 방법이 명확하게 달랐으니, 무기로서의 위력은 일반 검보다 조금 떨어졌다.


‘그래도 해 봐야지, 뭐.’


날카롭게 선 날이 반짝인다. 프레이야는 다가오는 마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


그 시각, 후방.

레온하르트와 아이들이 있던 칸보다도 피해가 없는 뒤쪽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듯했다. 더 후방으로 가야 한다는 베일린의 말에 승객들은 불만을 표했다.


“그냥 잠깐 멈춘 거 아닙니까? 뭘 그렇게까지···.”

“대체 내 말은 뭐로 들은 겁니까? 균열이라고요, 균열! 여기서 다 죽고 싶은 겁니까?!”

“애초에 당신 누구요? 대충 보니까 검사 같긴 한데, 균열이라고 해도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잖수. 그럼 근처에서 금방 지원을······.”

“아악, 진짜! 지금 심각하다고요, 밖에도 비행형 마수가 잔뜩입니다! 마수 밥이 꿈입니까?!”


베일린이 열변을 토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최근에 벌어진 균열 중 가장 큰 균열은 세리타에서 나타났고, 그마저도 진압이 빨라 왕국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아마 여기 있는 이들은 그마저도 겪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레온하르트는 ‘차마 민간인을 죽일 수는 없지만 한 대 치고 싶은’ 표정을 짓는 베일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레오, 진짜 괜찮겠어?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이럴 땐 어쩔 수 없지. 이런 데에라도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레온하르트는 앞으로 나서 불평하던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그 위압적인 눈맞춤에 열차 안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젠스 왕국의 왕자, 레온하르트 아인 이젠스입니다. 믿기 힘드실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위급한 상황입니다. 지금은 속도가 느린 인간형 마수와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비행형 마수가 대부분이지만, 언제 더 위험한 마수가 나올지 모릅니다. ···왕실의 이름을 걸고 말합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후방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중함과 위엄이 느껴졌다. 베일린은 속으로 조금 감탄하며 동시에 분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리 그가 자작의 딸이라 하더라도, 왕족의 말과는 무게감 자체가 다르니까.

사람들은 천천히 후방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버지를 빼닮은 그의 외모로 보아 거짓말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으리라. 지금만큼은 가끔이라도 행사에 얼굴을 비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역시 난 이런 건 안 맞아.”

“잘했으면서 뭘.”

“사람들이 뒤로 빠져준 건 다행이지만···. 이렇게 권력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잖아.”


참 속이 깊은 왕자님이었다. 베일린은 그의 이런 면모를 오랫동안 봐왔지만, 볼 때마다 감탄했다. 만약 그녀가 레온하르트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람들을 움직였을 테다.


“넌 나중에 훌륭한 왕이 될 거다.”

“이런 상황에 갑자기 뭔 소리야?”

“그냥. ···슬슬 오는 것 같은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가장 포악하다고 알려진 동물형 마수, 그중에서도 늑대에 가까운 듯했다.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에 두 사람은 검을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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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2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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