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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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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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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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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DUMMY

수도와 비교하면 로타님은 확실히 온도가 낮아 ‘북쪽’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는 지난겨울부터 입학하기 전까지 겨우 몇 개월을 보냈을 뿐이지만, 저택을 둘러싼 방한 마법과 집안 곳곳에 놓인 온기를 머금은 마석이 다른 지역에 비해 온도가 매우 낮다는 걸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2, 3중으로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두었는데도 창문을 열거나 대문을 나서면 찬 바람이 살을 베어낼 듯 불었으니, 헬리온이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하긴, 로타님은 루센트보다도 북쪽이지?”


프레이야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래도 정말로 피서지를 로타님으로 정하려는 듯했다. 베일린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고, 레온하르트도 재미있어 보였는지 가세했다.


“헬리, 나도 오랜만에 가 보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헬리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린애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부탁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마지막 남은 밀크티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은 헬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얘기는 해 볼게. 어차피 곧 연락해야 했으니까···.”

“정말? 고맙다, 헬리온! 꼼짝없이 벨라토르로 가야 하나 했는데!”


베일린은 활짝 웃으며 헬리온의 등을 팡팡 쳤다. 검사의 팔 힘이 온전히 전해지니 꽤 아팠다. 헬리온은 슬쩍 베일린으로부터 떨어지며 은근히 흘겨보았다.


“넌 벨라토르에서 태어났을 거면서, 더운 게 그렇게 싫냐.”

“헬리, 그거 네가 할 말이야? 너도 추운 거 싫어한댔잖아.”

“······.”


레온하르트가 갑자기 끼어들어 내뱉은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머쓱해진 헬리온은 가만히 쿠키를 씹어 먹었다.


“그럼 며칠에 갈래? 아직 정식으로 방학 시작은 아니긴 한데, 벌써 간 애들도 있을걸? 딱히 수업도 없는 것 같고.”

“내 생일날은 빼 줘~ 어디 이동하면서 생일을 맞이하고 싶진 않거든.”

“레이 생일이 언제더라?”

“7월 5일.”

“정말 곧이네요···. 그럼 4일은 어떨까요?”

“뭐, 빠를수록 좋지. 방학식이 그 바로 전이었으니까···.”


베일린과 레온하르트, 헬리온 세 명이 대화하는 동안 프레이야와 달리안, 율리아는 마치 로타님행이 결정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지금 ‘아직 정해진 게 아니니 진정해라’라고 해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게 뻔했다.


‘이따가 기숙사 돌아가자마자 집에 연락부터 넣어야겠네···.’


*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전보를 보낸 지 5일째 되던 날 아침, 로타님으로부터 온 답신은 아이들의 방문을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알려주면 다들 좋아하겠네.’


피식 웃은 헬리온은 오랜만에 충만하게 게으른 시간을 즐기는 중이었다. 오전 수업은 출석을 다 채워서 더 이상 나갈 필요가 없다. 배 위에 올라앉은 따끈한 고양이와 손이 닿는 위치에 적절하게 놓인 간식, 달리안에게 배운 냉각 마법까지. 휴일에 에어컨을 켜고 영화를 보던 때가 생각났다.


‘달리안은 할 게 남았다고 했고, 레온하르트랑 베일린은 출석 채우러 갔으니까···. 오랜만에 초고나 좀 들여다볼까.’


그동안 진급 시험이니, 기말고사니 여러모로 바빠 초고를 제대로 정독하지 못했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주인공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붙잡아 둬야 하기에, 헬리온은 가볍게 귀걸이를 튕겼다.


[[□□□의 눈물]을 매개로, [□□□ □□□: 초고]에 접속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찬란한 금빛이었다.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기던 헬리온은 지금 시기와 비슷한 시점의 페이지를 펼쳤다.

연재분 및 초고의 내용에 따르면, 주인공 일행은 사비아피스를 발견한 후 수도로 돌아오는 길에 균열과 처음 마주한다. 로타님에서도 동시에 큰 균열이 발생했지만, 아이들이 있는 곳의 균열은 규모가 작아 아이들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라는 게 기존의 내용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초고보다 달리안이 훨씬 강해졌고, 아마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겠지. 게다가 이런 어설픈 초고가 아닌 지금 여기에선···. 백작이 죽지 않는다.’


아니, 반드시 죽지 않아야만 했다. 초고대로라면 이번 여름에 발생할 로타님 균열에서 백작이 사망하고, 헬리온이 그 지위를 이어야 한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그는 진급 시험 이후로도 방어 마법만큼은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달리안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부어도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만큼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에테르 흐름 또한 달리안을 ‘모방’하지 않더라도 매우 부드럽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서클 범위 또한 10미터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에테르의 순도가 높은 만큼 발전도 빠른 느낌이었다.

방학 동안 그가 집에 돌아가 있고, 초고보다 훨씬 강해진 아이들까지 로타님에 있을 예정이니 어떻게든 막아낼 수는 있을 듯했다. 헬리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완성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완성도: 3.24%]


완성도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게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올라가는 게 어디인가. 헬리온은 2%를 벗어났다는 점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허락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니 모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뻐했다. 특히 베일린은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


‘하긴···, 수도는 그렇다 쳐도, 벨라토르까지 내려가면 더운 건 둘째치고 엄청 습하겠네.’


루센트는 그나마 북쪽이지만, 벨라토르는 남쪽인 데에 더해 바닷가였다. 대한민국의 장마철 폭염을 떠올린 헬리온은 이제야 베일린의 심정을 이해한 듯했다.


“그럼 전에 말했던 대로 4일에 갈까?”

“방학식 다음 날이네, 나야 좋지.”

“저도 괜찮아요.”

“나도 찬성~”

“좋았어, 그럼 그전까지 각자 짐 다 싸 두기다? 거기 둘도 알겠지?”


묻지도 않았으면서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참 달리안다웠다. 두 사람 모두 이견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끌벅적한 첫 여름방학의 시작이었다.


*


드디어 로타님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날이 다가왔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딱히 큰 짐이 없는 헬리온은 잡동사니 몇 개와 라피가 들어 있는 가방만을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라피가 순한 고양이라 천만다행이었다.


‘평소엔 계속 기숙사에만 있었고, 라피도 나갔다가 때 되면 다시 들어오니까 이동장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하나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만약 방학 때마다 학교를 벗어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라피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가방 등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현대와 같은 동물 이동장 같은 걸 팔 리가 없다. 헬리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들어야 하나? 돈 주고 주문 제작 맡기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라피는 어차피 다 컸으니까 사이즈도 하나면 될 거고······.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기차가 도착했다. 첫 운행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타지 못할 듯하여 두 번째 운행하는 기차였다. 아이들은 신이 나 빠르게 기차에 올라탔다.


“오, 자리 꽤 좋은데? 넓고.”

“그러게, 누워서 자도 되겠다. 베이 무릎 빌려 줄래?”

“대단히 죄송하지만, 남성분께 내어 드릴 무릎은 없습니다.”

“뭐 어때? 난 귀엽잖아.”


당당한 발언에 베일린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본인 입으로 말하니 웃기긴 했지만, 달리안은 객관적으로 귀엽긴 했다. 연녹색 드레스와 보닛에 달린 수많은 리본과 프릴은 마치 달리안과 한 몸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보닛에 달린 크림색 리본을 턱 밑으로 매어 한층 더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 그래. 누가 널 남자로 보겠냐.”

“저도 여러분께서 말해 주시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근데 학교 애들은 아직도 여자로 알고 있는 애들이 많지?”


프레이야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대화에 끼었다. 아무래도 여섯 명이 한 좌석에 몰려 앉긴 힘들어, 여자 세 명과 달리안이 함께 앉고 레온하르트와 헬리온이 그 옆 좌석에 앉게 되었다.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내밀고 옆 좌석 아이들의 대화에 끼었다.


“그야 교복도 잘 안 입고, 항상 드레스 차림이잖아, 달리안은. 교복 입은 거 지금까지 딱 한 번 봤나? 그마저도 치마였으니까.”

“아, 그때? 연구실이 하도 난잡하니까, 돌아다니다가 드레스 끝부분이 찢어져서 수선 맡겼던 때인가 보네. 아끼는 드레스였거든···. 맞다, 레오. 형 이야기 해 주면 안 돼? 편지에 일하는 건 안 적는단 말이야. 일하는 형도 궁금한데.”

“그거라면 말해줄 게 산더미처럼 많지. 우선은···. 그래. 로렌스 경이 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렇게 운을 뗀 레온하르트는 궁에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왕궁의 내밀한 이야기에 아이들은 모두 상체를 앞으로 빼고 레온하르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차는 천천히 덜컹거리며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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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0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4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6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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