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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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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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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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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DUMMY

진급 시험이 끝나고도 한 달 반. 학교는 그동안 변하지 않은 듯 많은 것이 변했다.

달리안이 7급 마법사가 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 전체로 퍼졌다. 마탑에서도 축하한다며 거대한 꽃다발과(심지어 보존 마법까지 걸려 있었다.) 상당한 양의 실험용 마석을 보내 주었으며, 교수들 또한 그를 학생보단 교수에 가깝게 대했다.

그뿐만이겠는가? 정확하게 유급하지 않을 정도로만 출석하는 레온하르트와 베일린 또한 은은하게 이름이 퍼져나갔다. 허구한 날 빈 연습장에서 대련하는 데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거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건 두 사람뿐이었기에 오히려 더 잘 기억되는 듯했다. 두 사람이 대련하는 모습은 꽤 화려했고, 그 탓에 다른 학생들이 구경하러 몰리는 일도 있었다. 그들이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수십 명에게 둘러싸이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대련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헬리온, 좋은 아침~”

“어, 그래···. 베일린은?”

“넌 꼭 인사만 하면 그런 반응이더라. 왜 그렇게 떨떠름해? 베이는 아침 건너뛰고 잔다길래 우리끼리 왔어.”

“어째 레오랑 똑같네···. 별로 떨떠름하진 않은데. 그냥 아침부터 에너지를 뺏기는 기분이다···. 아침에 그 정도로 활발한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닐까.”

“헬리온 네가 너무 저기압인 거겠지. 그치, 율리아?”


수업에 꼬박꼬박 나오는 건 프레이야와 율리아, 헬리온 세 사람 정도였다. 율리아는 원체 성실한 성격이고, 프레이야는 성적표에 적힌 출석 일수가 모자라면 부모님께 혼날 거라며 몸서리쳤다. 헬리온은 수업에 흥미는 없으나 출석이라도 하지 않으면 달리안이 허구한 날 연구실로 불러댔기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업에 꼬박꼬박 나오고 있었다.


“사람마다 생활 패턴이 다르니까요···. 헬리온은 유독 아침에 약한 것 같긴 하지만요.”

“그치!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니까? 체력이 너무 약해서 그런가?”

“머리 울리니까 사람 앞에다 두고 그만 떠들어라······.”


 빵을 깨작거리던 헬리온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식당에 왔으면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라는 의미였다. 프레이야는 힘찬 걸음으로 율리아의 팔짱을 끼고 음식을 받으러 갔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멀어지자 헬리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쓸 게 한두 개여야 말이지···.’


지금은 한창 기말고사 기간이다. 어제 기초 체력과 마법의 역사 두 과목을 쳐서 이제 두 과목만 남았지만, 마법 기초와 국사도 만만히 볼 과목이 아니었다. 기초 체력 과목의 경우 기준을 낮춰 주었음에도 거의 낙제만 겨우 면할 수준의 점수를 받았을 게 분명했다.


‘마법 기초는 그렇다 쳐도, 국사는 연표가 장난 아니던데.’


암기 과목은 자신 있는 편인 헬리온도 이젠스 왕국의 연표에는 혀를 내둘렀다. 설정하지 않은 역사가 자동으로 만들어져 이 세계에 개연성을 부여한 건 세계관을 만들어낸 창작자 입장에서 속이 시원했지만, 오래전에 일어난 자잘한 사건이 너무 많았다. 이젠스 왕국은 최근으로 올수록 큰 사건이 없는 느낌이라 그 세월 동안 바뀐 이름이나 지명 같은 고유명사를 외우는 게 가장 큰 장벽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모방’이 있으니, 교과서를 한 번 써 보기만 하면 그 움직임을 그대로 적용하여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필요한 부분을 골라내려면 어차피 흐름을 전부 알고 있어야 했기에 결국 학창 시절 공부하던 대로 대부분의 문장을 외웠다.


“와~ 헬리온 또 진지한 표정. 항상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새 음식을 받아 왔는지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건다. 프레이야와 율리아는 자연스럽게 헬리온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헬리온은 깨작거리던 빵을 놓고 스튜를 마셨다.


“프레이야, 네가 생각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와, 이건 좀 상처인데···. 저기요, 헬리온 딜라드 씨. 님이 생각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런 것보다. 율리아는 좀 어때? 베일린이랑 프레이야가 도와주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불리하니까 말 돌리는 것 좀 봐. 리아, 저런 남자랑은 만나면 안 돼. 리아는 착하니까 뭐든 받아줄 것 같아!”

“지금 말 돌린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프레이야와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키득거리는 프레이야를 보며 율리아도 마주 웃었다.


“두 분 다 잘 가르쳐주고 계세요. 곧 방학에 들어가면 연습은 어렵겠지만···.”

“근데 리아, 너 진짜 재능 있어. 리아네 아버지도 참 너무하시지, 리아가 검을 휘두를 때 얼마나 멋있는데!”


율리아는 진급 시험 당시 마법사 시험을 보고 2급 마법사가 되었지만, 본인은 마법보단 검술을 익히고 싶어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상당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탓에 일단은 마법 쪽으로 나아가려고 마음먹은 듯했으나, 베일린과 프레이야가 상당히 아쉬워하며 개인 교사를 자처했다. 덕분에 율리아는 4, 5급 검사들에게 직접 검술을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다면 좋겠지만요···. 만약 안 된다고 하더라도, 조금 정도는 익혀두는 게 안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마법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보기엔 마법도 나쁘지 않은데~ 달리안이랑 헬리온이 정상이 아닌 거야.”

“왜 또 나야···.”


시끌벅적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헬리온에게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학창 시절의 풋풋한 청춘을 다시 체험하는 기분이라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오, 드디어 끝났다······.”


레온하르트는 기지개를 켜며 작게 중얼거렸다. 헬리온 또한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니 마음이 한층 편해졌다.


“레오, 넌 시험 내내 잤으면서 뭐가 힘들어?”

“계속 엎드려 있는 것도 고역이라고. 그리고 풀 수 있는 건 풀었거든? 무엇보다 베일린 너도 잤잖아.”


베일린이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레온하르트 또한 장난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다 나가길 기다리던 그들은 저마다 짐을 챙기거나, 굳은 몸을 풀거나 하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아이고, 시체들 납셨네. 이제 나도 슬슬 시체 조종술을 배워야 하려나?”

“와아, 달리안이다. 오랜만!”

“응, 오랜만. 레이는 통 기숙사에 놀러 오질 않는다니까. 베이는 자주 왔는데.”

“남자 기숙사잖아~. 아무리 뒷문이 있어도 한밤중에 움직이는 건 귀찮다구. 베이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익숙한 것보다는 그냥 술 마시러 오는 거에 가깝지 않아?”


다섯 명이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달리안은 개인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연구실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고, 기숙사에 들어와도 술판을 벌이는 세 사람과 잠깐 수다를 떨다 잠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웬일이야? 시험장까지 찾아오고.”

“뭐야, 헬리온. 불만이야? 내가 너 나랑 대련하기 싫어서 수업 꼬박꼬박 나가는 거 모를 줄 알아?”


헬리온은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으나 정확한 지적에 속이 다 쓰렸다.


“뭐 어쨌든. 너희 이제 시험 다 끝난 거지?”

“응.”

“그럼 내 연구실에서 놀자. 기숙사는 덥잖아?”


*


달리안의 연구실은 그리 넓진 않았다. 창고나 실험 도구가 있는 곳까지 다 합하면 꽤 넓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그는 정리 정돈에 재능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법을 써서 청소하는데도 더 엉망이 되었다. 보다 못한 헬리온이 어느 정도 도와주지 않았다면 여섯 명은커녕 세 명도 들어오기 힘들었을 테다.


“살겠다······.”


그런 난장판 속에서도 아이들은 거의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창 더울 6월 중순,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살아가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달리안이 에어컨의 개념을 알 리는 없지만 매일같이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그가 더위를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서 그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 프로젝트는 냉방 기구였다. 제작은 성공적이었고, 몇 차례 시험가동 이후 특허를 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마석을 원료로 돌아가기 때문에 작동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마저도 감사히 여겨졌다.


“아, 달리안. 여기다 두면 될까요?”

“응? 아, 응! 고마워 리아~ 나도 과자 들고 금방 갈게!”


율리아는 쟁반에 놓인 여섯 개의 컵을 하나씩 천천히 내려놓았다. 부드러운 밀크티의 향이 연구실 내에 가득 찼다.


“읏차. 자, 다들 먹어.”

“고맙다, 달리안. 덕분에 살았어···.”


반쯤 시체가 되어 있던 베일린이 꿈틀거리며 허리를 세웠다. 항상 풍성하던 붉은 머리카락이 더위 때문인지 유난히 차분했다.


“벌써 이렇게 더운데, 여름 방학엔 어떡하지.”

“그러게···. 다들 집에 갈 거야?”

“음, 글쎄. 수도보다 더 더울 것 같으니까 나는 내려가고 싶지 않은데···.”

“아, 베이네 집이 벨라토르였던가?”


머리에 억지로 쑤셔넣은 이젠스 왕국의 역사에 따르면, 벨라토르는 오래전 칼레나 공국이 위치했던 땅으로 이젠스 왕국에 흡수된 지 오래인 지역이었다. 헬리온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이 지역을 그려낼 때 이탈리아를 많이 참고했고, 실제로도 이탈리아처럼 툭 튀어나온 반도 지형이었다. 최남단은 아니지만, 수도보다 위도가 낮으니 베일린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벨라토르까지 가는 건 진짜 무리야···. 그렇다고 수도 저택에 있기엔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고, 기숙사에 남기도 좀 그렇고. 레이랑 리아는?”

“나도 딱히 가고 싶진 않은데. 트루이스트까지 가는 기차도 애매하고, 바다 옆이라 습해서 별로.”

“저는 돌아가도 상관은 없지만···. 검술 연습을 조금 더 하고 싶은데, 루센트에선 힘들 것 같아서요.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래도 루센트면 날씨는 좀 낫겠네. 그나마 북쪽이잖아?”


레온하르트는 쿠키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율리아는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북쪽이라고 해도 바다가 바로 앞이라 습한 건 수도보다 심하지만요···. 레오 님은, 궁으로 가실 예정이세요?”

“으음···. 아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삼촌이 온다고 해서, 그냥 방학 내내 피해 있으려고 했어.”

“삼촌이라면, 공작님 말씀이시죠?”

“응, 맞아. 나 그 사람 불편해서···. 저번에도 무슨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니까.”

“그만큼 조카를 아끼시나 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헬리···. 아니 뭐,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래도 그, 직접 만났을 때 주는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헬리 너야말로 집에 안 가?”


괜히 딴지를 걸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헬리온은 조용히 밀크티를 한 모금 넘겼다. 잔을 내려놓으며 헬리온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사비아피스 얘기도 해야 하고, 가 보긴 해야 하는데.’


“뭐···, 나는 갈 것 같은데. 할 일도 있고.”

“그래? 헬리온네 집이···. 아, 로타님이지.”


이젠스 왕국의 최북단,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 레바나 산맥 바로 옆에 위치한 로타님에서 국경을 수비하는 것이 딜라드의 역할이다. 헬리온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로타님···. 로타님?”

“뭐, 뭐야. 왜.”


베일린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큰 소리로 되물었다. 당황한 헬리온을 앞에 둔 베일린의 뒤에서 달리안이 대신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온 지역 중에서 제일 시원한 데가 로타님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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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균열 너머의 세계(1) 24.09.09 4 0 9쪽
38 38. 비밀 결사(4) 24.09.06 4 0 10쪽
37 37. 비밀 결사(3) 24.09.04 8 0 9쪽
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8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9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10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9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9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10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2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1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1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2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4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1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2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4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20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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