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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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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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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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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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DUMMY

58화

EP6 – 이런 날


나는 리우 지앙과 함께 윤동주의 묘지에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쏟아진 통에 가는 길은 거의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나의 무덤에 가는 길이 진흙밭이라니······ 어쩐지 상징적이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 무덤가에 도착했다.


누군가 정성 들여 관리한 흔적이 느껴지는 묘지였다.

그런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한 돌비석이 있었다.


“저건 중국에서 세운 건가요?”


리우 지앙이 몹시 민망한 얼굴로 고개만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마음 같아선 저것을 치워버리고 싶지만······ .”


중국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비석엔 전생의 나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었다. 소개글은 얼추 보기엔 틀린 것이 없었다.


문제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나를 소개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심경으로 그 글자를 노려보았다.


리우 지앙이 내 곁에 가만히 와 대신 사과를 하였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실 중국은 문혁 이후로 윤동주의 윤자도 언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요?”

“네, 그래 놓고서 이제 와서 윤동주를 중국의 애국 시인으로 둔갑시키니 우스운 일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죠.”


리우 지앙은 나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실 우리 중국은 오랫동안 윤동주의 무덤을 방치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처음 이곳을 발견한 사람들이 문혁 때 파묘를 당했을까 염려했을 정도죠.”


나는 리우 지앙의 굽은 등을 얼른 일으켜 세웠다.


“아닙니다. 왜 리우 지앙 선생님께서 저한테 사과하세요. 이럴 일이 아닙니다.”


리우 지앙은 부끄러운 얼굴로 천천히 허리를 일으켰다.


“그래도 정말 중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무덤도 사실 이 나라에서 찾은 게 아닙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리우 지앙에게 물었다.


“그러면요?”

“처음엔 가족분들의 부탁으로 한 일본인 학자와 연변대학의 교수들이 찾았고요.”


리우 지앙은 천천히 한 비석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뒤론 윤동주 시인의 여동생이신 윤혜원 여사님과 그 남편분께서 오래도록 보살폈습니다. 무덤을 몇 번이고 다시 개수하셨죠. 송몽규 작가의 무덤도 두 분이 개수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고요한 타종 소리가 들렸다. 그 종소리가 천천히 내 가슴을 가득 꽉 메웠다.


그러하구나. 그렇구나.


내 여동생 혜원이가 나와 몽규의 무덤가까지 보살폈구나.


나는 개수비에 적힌 글자들을 바라다보았다. 누이와 조카들의 이름이 거기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또 다른 쓸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58화

EP6 – 이런 날





내일이면 벌써 신년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 발을 내디뎠다.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가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는 천천히 그 무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묘지의 모든 풀과 나무들이 나를 향해 무어라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제법 쌀쌀하구나.”


나는 옷깃을 여몄다.

이곳에 위치를 알려준 경덕관은 내게 무덤에 같이 와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에잉! 나도 오랜만에 선생님을 찾아뵈어야겠다.! 너 혼자 간다고!? 아니, 왜!?]


경덕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이 무덤만큼은 꼭 혼자 오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 생에 윤동주의 무덤보다도 더욱더 가고 싶은 장소였다.


“저기인가?”


멀지 않은 곳에 봉분이 있었다.

바람이 가지런히 쓸어 넘기는 누런 잔디들. 잡풀 하나 없이 관리된 무덤은 누군가 꾸준히 이곳을 보살핀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주의 가족들이 고생이 많겠구나.”


나는 눈을 들어 눈앞의 비석을 읽어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이름 석 자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윤일주.

전생의 내 아우.


지금은 봉분 안에 가지런히 누워, 형을 기다리고 있을 동생이었다.


“일주야, 형이 너무 늦게 왔구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되찾은 후.

이전 생의 가족에 대한 흔적을 찾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황망함에 부러 소식을 더 뒤지진 않았다.


“그런데 일주 너의 쓸쓸한 소식을 내가 간도에서 들을 줄이야.”


나는 봉분 앞에 말없이 가만히 섰다. 쌀쌀한 바람이 나의 옷깃을 파고들고.


나는 일주를 향해 묵념했다.


너의 천국은 어떠니.

나와 떨어지고 일주 너의 삶에는 행복과 안녕이 가득했니.


나의 질문은 일주에게 닿지 못하고 아스라이 속으로만 맴돌았다.


그리고.

먼 하늘에서부터 천천히 싸락눈이 내려왔다. 눈 내리는 소리가 귀에 차갑게 달라붙었다.


“갑자기 웬 눈이람?”


나는 천천히 그 눈을 바라다보았다.


“전생에 일주랑 눈싸움하던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윤일주.

내 아우의 외로운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전 간도에서의 일이다.






58화

EP6 – 이런 날






이 이야기는 간도에서 내가 전해 들은 소식.


전생의 내가 죽은 후, 나의 아버지는 내 유골을 안고 북간도에 돌아오셨다고 한다.


[동주야! 동주야! 내 아들아!!!]


내 가족은 그곳에 전생의 나를 묻고, 묘지를 세웠다고 한다.


내 할아버지는 나의 묘지에 이런 비석을 세웠다지.


[시인 윤동주]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나였다. 그러나 가족들의 가슴 속에서, 나는 죽는 그날까지 시인이었다.


그리고 불과 1년도 안 되어 조국은 해방된다.


광복 후, 중국은 공산화가 되었고, 소련군이 밀려 들어오는 난리통 속에 우리 가족은 남한에 내려왔다고.


그리고.

그렇게 아득히 내 가족들은 나의 무덤과 멀어졌다.


해방 후, 삼엄한 시절 중공은 대한민국 국민이 들어갈 수 없는 금기의 땅이었다.


광복과 6.25, 냉전이란 새로운 전쟁 속에서 내 가족은 발만 동동 구르며 나의 무덤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나의 동생 일주는 대한민국에서 건축학과 교수를 지내고, 시도 쓰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 나의 무덤을 찾지 못해 애타게 마음 들끓는 시절을 보냈다고 하지.


마침내 때는 80년대.

중국은 천천히 개방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도쿄 어느 대학의 일본인 교수가 연변에 교환 교수로 건너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북한 때문에 대한민국과 수교를 재개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하여, 나의 아우 일주는 그 교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형의 무덤을 찾아주시오. 용정에 아버지가 세운 형의 무덤이 있소.]


그 교수는 중국으로 돌아간 후, 연변의 다른 조선인 교수들과 함께 나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하지.


그리고 마침내.

무덤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황량한 산기슭 어딘가.


그곳에서 연변의 한 선생이 ‘시인’이라 두 글자 적힌 비석을 발견했다고 한다.


[시, 시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윤동주 시인 묘지에요! 이 묘지가 틀림없어요!]


일본의 교수는 그 소식을 안고 연변에서 애타게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함부로 편지 한 통 보낼 수 없는 시절. 좋은 소식을 찾고도, 일주에게 바로 알릴 수 없었다고.


그 교수는 중국을 벗어나자마자 일주를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일주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윤일주 교수님! 형님의 묘지를 찾았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묘지를 찾았어요!]


일본인 교수는 일주의 무덤가에서 오래도록 참배했다고 한다. 너무 뒤늦은 소식을 품에 들고서.


교수가 나의 무덤을 찾은 것은 1985년의 일.

하필이면.

일주가 눈을 감은 해도 1985년이었다.





58화

EP6 – 이런 날





그래.

여기는 다시 일주의 무덤 앞.


나는 천천히 묵념하던 고개를 다시 치켜들었다.


“일주야, 네가 내 무덤에 오지 못하여 형이 네 무덤에 직접 왔다.”


재미도 없는, 그런 농담이었다.

나는 고개를 처박고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 하하하하.”


나는 하늘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래, 일주 너도 이 무덤가에 있지 않겠지.


우리가 믿던 신 곁에서 너의 행복한 천국을 누리고 있지 않겠느냐.


하늘 먼 곳에서.

누군가 보내는 반가운 소식처럼 눈이 들이차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일주의 무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내 여동생 혜원도.

또한, 내 동생 일주도.


내 부모와 친구마저 모두 떠난 이 땅에 나는 어찌 다시 온 것일까.


“일주야. 일주야. 형은 도무지 모르겠다. 모르겠구나.”


유동주로서의 어린 생각은 완전히 달아나고, 전생 아득한 기억에서 지독히 고독한 한 사내가 건너왔다.


그리고 그 사내가 마침내 시간의 벽을 건너서 하나의 생각을 얻었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게 주어진 또 한 번의 생애, 나는 일주에게 한탄하러 온 것이 아니다. 미안함을 전하러 온 것도 아니다.


“일주야.”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린 뒤에 품속의 말들을 뱉었다.


“내 동생 일주야······. 네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니 형은 무척 뿌듯하구나. 훌륭한 어른이 되어 평생을 살았다니 너무 자랑스러워.”


나는 잘 정돈된 누런 풀을 어루만졌다.

내 어린 동생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리고.

소처럼 씹고, 되씹어 뱉어낸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일주야, 우리 일주를 다시 만나서 이 형은 너무나 기쁘구나. 정말로, 진심으로 기뻐.”


나는 잠시 다시 묵념한 뒤, 무덤가를 떠났다.


하늘엔 더욱더 세찬 눈발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완전히 하얘진 하늘은 마치 흰 편지지 같았다.


“우와, 눈 많이 온다! 좋네! 좋아!”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못물처럼 유동주의 어린 생각이 흘러들었다.


명랑하고, 고독한 마음 앞으로 눈은 세차게 쏟아졌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희디흰 하늘. 그 편지지에 검은 새 몇 마리가 글자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하늘이 보내는 그 편지를 내 멋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래, 일주야! 너도 반갑다고!? 그래! 형도 무척 기쁘구나! 무척 기뻐! 형도 행복하게 잘 살다가 갈게! 쓰고 싶은 만큼 마음껏 쓰다가 갈게!”


나는 어디가 잘못된 사람처럼 마구 웃으면서 무덤가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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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작가의말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다른 연재보다도 오늘 연재는 유난히 무거운 마음으로 임하게 됩니다.



이번 에피소드의 경우,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픽션이기에 더욱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여러 자료와 논문을 검토하였고,

실제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윤동주 시인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모든 순국선열을 기립니다!



아울러

아래엔, 이번 에피소드를 위해 참고한 여러 자료들을 적었습니다.

윤동주 시인과 그 가족의 생애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58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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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송우혜, 『윤동주 평전』, 서정시학

김응교, 『처럼』, 문학동네

오무라 마스오, 『윤동주와 한국 근대문학』, 소명출판



논문



김응교, 〈시가 있는 만주기행 25: 북간도 용정 명동촌 송몽규 고택을 찾아서〉, 『오늘의가사문학』, 고요아침



기사



“한참 헤매다 동주 묘 찾곤 감격에 겨워 말 못 이었다” (hani.co.kr)

한겨레, 최재봉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오마이뉴스 윤여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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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룽징(3) 대성중학교, 윤동주 묘, 윤동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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