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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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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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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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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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DUMMY

54화

EP5 – 베이징의 말


그러니까 이건 조금 과거의 일.


박서완과 유동주가 <바람과 그늘>을 펴내기 전의 상황.


두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여긴, 대한민국 월변시.

한때, 경찰로부터 ‘VIP’의 자택으로 불리던 한 단독 주택이 있다.


그건 박서완의 집.


오늘도 박서완의 부친은 길길이 화를 내며 출근길에 나섰다.


“제기랄, 애비 잡아먹은 새끼! 기어코 그 거지 같은 그림책을 낸다고!?”


박길춘은 박서완을 향해 맹폭격을 퍼부었다. 그는 급기야 주변에 있는 신문지를 던졌다.


-퐈아악!


잿빛 종이 뭉치가 박서완의 가슴팍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서완은 익숙하다는 듯 그 신문을 휴지통에 주워 버렸다.

그리고 무심한 표정으로 제 아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녀오세요.”


박길춘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제 아들에게 삿대질했다.


“아무나 예술을 하는 줄 알아!? 너는 나 박길춘이 자식이야! 네가 그림에 재능이 있을 것 같아!? 개떡 같은 거 집어치우고 공부나 해!”


박길춘의 모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목울대에 핏대까지 세우며 그는 소리쳤다.


“너 내가 두고 보마. 네가 무슨 그림에 재주나 있는 줄 알아!? 네 그 잘난 친구 덕분에 묻어가는 거야! 정신 단단히 차려!”


그 잘난 친구.

박길춘의 말에 박서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 친구에 대해 그만 안 좋게 말하세요.


친구에게 묻어간다는 그 말이 그의 마음 깊숙한 곳을 찔렀다.


동주에 대한 서완의 마음은 복잡했다.


마음 한편엔, 아버지가 저지른 짓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여전히 있었다.


자신과 제 아버지 때문에 소년원까지 갔다 온 유동주이지 않은가.


또 한편으로는 질투심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별다른 발전 없이 혼자 방에서 그림을 그릴 때,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는 친구에 대한 동경이.


박서완의 굳은 표정 앞에 박길춘이 다시 한번 닦달했다.


”뭐가 어쩌고 저째? 그 X새끼는 친구이기 전에 네 애비 잡아먹은 괴물이야! 그리고 그런 재능이랑 네가 비교나 가능할 것 같아!? 넌 그런 타고난 놈이랑 달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박서완은 마침내 제 부친을 향해 반격을 했다.


“공부해서 뭐 하게요.”

“뭐!? 뭐가 어째!?”


박서완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제 아비를 공격했다.


“아버지처럼 괴물이 되라고요? 뒷돈이나 받고, 가족이나 때리고, 그러다 그 잘난 직장에서도 잘리는 형편없는 인간이 되라고요!?”


박길춘의 미간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길춘이 마치 서완을 때릴 것처럼 손을 들었다.


하지만 박서완도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지지 않고 맞서 싸웠다.


“어디 한 번 또 쳐봐요! 경찰들이 아직도 가만히 갈 줄 알아요!? 아버지는 이제 판사도 뭣도 아니잖아요!”


박길춘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주변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너 이 X새끼! 이리로 와. 어차피 난 인생 망했어. 너도 죽고, 나도 죽자! 우리 가족 다 죽자!”


그가 신발장 옆에 세워져 있는 도자기를 집어 들었다.

흰 백자 위에서 전등 빛이 위협적으로 번쩍거렸다.


“던져봐요! 던지라고요!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그런데.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악을 쓰며 박길춘을 뜯어말렸다.


“여보! 그러지마요! 애 몸 나은지도 얼마 안 됐어!”


그녀는 박길춘 손에 들린 도자기를 억지로 뺏으려 들었다.


두 사람의 안간힘 속에서 백자가 미끄러졌다.


-와자자창!!!


문 앞으로 수없이 많은 도기 파편이 쏟아졌다.

아비규환.

섣불리 발을 움직이면 그대로 배일 것 같은 순간이었다.


박길춘의 아비는 조금 망설이더니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X발 놈의 집구석! X 같은 여편네!”


그가 거칠게 문 닫는 소리가 집안에 쏟아졌다.


그 안에 남은 두 사람.

박서완과 그의 어머니가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서완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얼른 들고 왔다.

그리고 깨진 도기 파편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엄마. 아침부터 너무 요란했죠.”


박서완의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면서 함께 청소했다.

그녀가 땅으로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답했다.


“아니야. 엄마가 이제까지 너무했지. 내가 너무 모든 걸 모른 척했어.”


그녀의 눈 속에서 맑고, 고운 도자기 파편이 하나 떨어졌다.

그 유리가 바닥에 닿아 맑게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서완아.”

“네?”

“요새 힘들지?”


박서완은 고개를 저었다.

애써 명랑한 표정이 열여덟 소년의 얼굴에 자리 잡았다.


“힘든 거 없어요. 아버지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덜하신걸요.”


그 말에 박서완의 모친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예전보다 덜하다니.


아침부터 신문지를 집어던지고, 백자를 들어 아들을 내려치려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상황이라니.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서완의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엄마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

“네?”

“네 아빠 젊은 때는 더 폭군이었어. 집안에 남아나는 물건이 없었지. 지금은 그나마 남들 눈치 본다고 저렇게 변한 거야. 그래서 네 아빠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박서완의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란 말을 들었어야 해. 네 아빠가 판사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서완이 네 아빠니까 이제까지 견뎠어. 판사한테 이혼 딱지 붙일 수 없으니까. 그것도 가정 폭력 때문에 말이야.”


박서완은 제 엄마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가정 폭력에 시달린 것은 서완만이 아니었다. 최초의 피해자는 박서완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피해자이기도 하고 말이다.


박서완의 엄마가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더 나아진다는 기대를 너까지 하지 마. 그건 견딜 수가 없다. 서완아. 엄마는 이혼할 거야. 괜찮지?”


박서완은 제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하죠.”


박서완의 엄마는 짐짓 그의 눈길을 피하면서 사과했다.


“사실 엄마가 너무 미안해. 인제 와서 이러는 게 너무 뒤늦지. 뭐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 판사 마누라 타이틀이 신경 쓰여서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해고되니까 이혼한다고 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런 거 아니시잖아요.”


박서완의 모친이 한참이나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먹먹한 목소리로 서완에게 물었다.


“서완이 너는 이제 네가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어떻게 하고 싶니?”


박서완은 제 엄마를 바라보면서 고민하던 바를 말했다.


“동주가 그러더라고요. 서울 가서 같이 사는 건 어떠냐고요. 같이 올라가서 자기는 글을 쓰고, 저는 그림을 그리자고요.”


서완 엄마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환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너 요즘 틈만 나면 밤새우면서 그림 그리잖아. 네 아빠 때문이지?”


박서완이 머쓱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고 계셨어요? 근데 아버지 때문은 아니에요. 잠도 안 오고, 여러 생각이 많아서.”


박서완의 어머니는 말없이 제 아들을 바라보다가 끌어안았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우리 아들.”


그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박서완에게 말을 이었다.


“엄마는 네가 꼭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사실 몰래 네 그림을 봤단다.”

“그래요?”

“응. 네가 밤마다 열심히 그린 그림들 말이야. 최근에는 무언가 어두워진 것 같지만, 옛날보다 분명히 나아졌어.”


제 엄마의 칭찬에 박서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환한 얼굴이 서완의 엄마를 기쁘게 했다.


‘그림에 관해 이야기할 때야말로 내 아들이 살아나는구나.’


박서완의 엄마는 진심을 토로했다.


“왜 네가 얘기했잖니.”

“뭐를요?”

“동주네 아버지가 그러셨다며. 어두운 것도, 밝은 것도 다 담아내서 동주가 훌륭한 작품을 썼다고. 자기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이야.”


박서완의 엄마는 다시 한번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도 분명히 네 그림에 좋은 힘이 되어줄 거야. 엄마는 아들 믿어.”


그리고.

그때까지 박서완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매일 같이 밤을 새우며 작업하던 그림.


아버지와의 다툼.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시기심.

엄마에 대한 미안함.


그 여러 복잡하고 다난한 마음이 그의 그림을 분명 일취월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박서완의 엄마가 서완에게 말했다.


“동주랑 가서 살아. 전학 수속이랑, 이사하는 거 걱정하지 마. 다 엄마가 알아서 챙길게.”

“고마워요, 엄마.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서완이 마침내 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월변을 떠나기 전 박서완은 집에서 밤을 새우며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건 한 달을 거쳐 그린 대작이었다.


고래와 달.

우주 어딘가에 펼쳐지는 해변을 캔버스에 수놓은 그 그림.


일전에 달바다촌 담벼락에 그렸던 그 그림을 캔버스 위로 더욱 발전시켜 옮긴 그림이었다.


박서완은 그때까지 그 그림의 운명 행로가 어떻게 될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54화

EP5 – 베이징의 말




시간은 쏜 화살처럼 흐르고 흘러 여기는 중국.


박서완은 리우 지앙과 유동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박서완의 심경은 계속해서 복잡해지고 있었다.


유동주와 함께 한국 대표 작가로 초청받은 것이 기뻤지만, 동시에 유동주 옆에 들러리가 된 기분이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도, 비행기에서도, 모두 박서완보다 유동주에게 더 큰 관심과 환호를 보였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

박서완은 <바람과 그늘>로 이제 데뷔를 한 작가이고, 유동주는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승승장구는 유명 작가였다.


유동주와의 협업은 박서완에게 무척 뜻깊고, 행복한 일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계속 복잡하게 했다.


박서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한 어린이 독자의 순수한 질문 앞에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까님! 자까님! 작가님 전시회는 어디서 열려요!?]


경지연이 난처한 얼굴을 보이며 통역을 해줄 때, 박서완이 할 수 있는 건 유쾌한 웃음밖에 없었다.


[그러게! 이 작가님이 첫 전시회를 열게 되면 꼭 알려줄게!]


그 너스레는 그늘이 담겨 있어 더욱 명랑한 너스레였다.


그리고 마침내.

리우 지앙은 박서완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환함과 어둠을 동시에 공존시키는 그런 묘한 색채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 말이 박서완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전시회 제안까지 건넸다.


[혹시 다음 작품 계획이 따로 없으시다면 중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어떠신가요?]


박서완이 리우 지앙의 제안에 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동주와 협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심.

그와 따로 작업을 해도 자신이 빛이 날까, 하는 걱정.


여러 가지 마음속에서도 박서완은 리우 지앙에게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해볼게요.”


그리고.

그 말에 가장 기뻐한 것은 박서완이 아니었다.


유동주가 그 누구보다 밝고, 명랑한 얼굴로 박서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됐어! 진짜 잘 됐다! 인마! 축하한다!!”


두 소년은 서로를 마주 보며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었다.


작가의말

54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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