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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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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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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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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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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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DUMMY

63화

EP 7 – 도약


한편, 이것은 또 다른 작가의 이야기.


서울에 상경한 경지연은 처음 맡아보는 다양한 격무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문학나무의 편집 위원일은 물론이고, 신년에는 국예종에도 출강을 나갈 예정이라 수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경지연의 혼잣말에, 옆에 있던 한 남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지연의 사촌오빠인 경장수였다.


“왜! 우리 지연이가 왜 정신이 없어!? 누구야! 어떤 놈이야!”


경지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경장수를 진정시켰다.


“오빠, 앉아. 그냥 평소처럼 일이 너무 많은 거야.”


그렇다.

경지연은 서울에 상경한 후 사촌인 경장수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촌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 어색할 수 있겠으나, KH의 차남 경장수의 집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단독주택으로 수없이 많은 방이 들이차 있어서 사실 상관없었다.


경지연의 입장에선 호텔 객실 하나를 빌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고, 지금처럼 거실에 나와 있을 땐 공유 주방을 빌려 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경장수의 거실은 웬만한 공유 주방보다 훨씬 더 큰 규모고 말이다.


“지연아.”

“응?”

“무슨 일 있으면 이 오빠한테 말해. 나 KH의 경장수다.”


경지연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제 사촌 오빠를 바라보았다. 서울에 상경하기 전엔 그녀도 걱정이 많았다.


재벌가의 상속 다툼.

지분 분쟁.

전쟁과도 같은 경영권 쟁탈전. 지연도 그런 사태에 휘말릴까 제법 긴장하고 올라왔다.


하지만.

처음 만난 오빠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우쭈쭈’ 그 자체였다.


“네가 지연이야!?”

“사촌 여동생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경장수와 경우태.

두 사촌 오빠는 물론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마저 눈에 한가득 애정을 담고 있었다.


“허어, 우리 집안에 딸이라니.”

“경사요. 경사로다.”


그렇다.

경 씨 집안은 유독 딸이 귀한 집안이었다. 경덕관, 경덕철 세대에서 경덕희가 떠난 이후로 이 집안에 여자가 태어난 적은 없다.


경덕철은 아들 두 명을 낳았고, 그 아들은 각각 또 다른 아들 한 명씩을 낳았다.


경덕관조차 아들만 하나 있으니, 집안 전체 통틀어 경지연이 유일한 여자였다.


항상 칙칙하던 경 씨 집안에서 경지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경지연은 경장수를 타일렀다.


“하여간 오빠가 보채서 여기 집 들어오기는 했는데 너무 그렇게 챙기려고 하지 마. 아니, 어린애 취급도 정도껏이지. 나도 나이가 29살이야.”


그 말에 마흔을 훌쩍 넘어가는 경장수는 감격스러운 눈을 지어 보였다.


“스물아홉이라니! 아직, 아직 애기잖아!”


경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괜히 들어왔어. 문학나무 다니느라 피곤해서 이사 왔는데, 오빠 때문에 더 피곤한 것 같습니다.”

“그, 그런 서운한 소리를!”

경지연은 경장수를 쳐다도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일은 출판사 근처 호텔에서 자고 올게. 수업 준비도 해야 해서.”

“뭐!? 저번 주에도 자고 왔잖아.”

“아이고, 그건 저번 주고요.”

잠시 고민하던 경장수가 경지연을 향해 말했다.


“호텔 하나 사줄까? 매번 남의 객실 묵는 것도 그렇잖아. 그냥 하나 사버리면······.”


경지연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경장수를 쳐다보았다.


“진심이야?”

“응? 왜 농담처럼 들려?”


경장수의 말은 하나의 웃음기도 섞이지 않은 진담이었다.

경지연은 땀을 삐질삐질 흐르며 고개를 저었다.


“호텔은 무슨 됐어. 있는 호텔이나 잘 관리해.”

“아니, 강변 스테이엘이라고 하나 늘리면 되는 거지!”

“허어, 됐습니다. 됐어요.”


경장수는 경지연을 빤히 바라보다가 엉뚱한 소리를 또 뱉었다.

“아니야. 그냥 강변출판문화단지를 하나 사줘? 끽해야 출판사들 아니야. 전부 사도 그게 얼마나 한다고.”


재계 서열 8위.

재벌가 2인자의 거침없는 입놀림에 경지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악! 그만 좀 해! 오빠, 전부 진담이지!? 진담이니까 더 무서워!”

“이 오빠가 지연이 널 위해서라면 그 정도 다 해줄 수 있어!”

경지연은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장수를 무시하고 서류에 얼굴을 파묻던 그녀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출판사 일이란 게 생각보다 복잡하네.”


경장수가 경지연의 혼잣말에 바로 참견을 했다.


“왜? 이 오빠가 뭐 도와줘?”

“악! 그 오빠, 오빠 소리 좀 그만해! 오빠! 오빠 소리 중독이야!?”


경지연의 윽박에 경장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만 긁었다.


“아니, 나는 하나뿐인 동생이 힘들어하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지. 나도 회사 일이라면 통달한 사람이야.”


경지연은 경장수를 바라보더니 한숨만 푹 내쉬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쉽지 않네. 문혁수 편집장이 데려온 낙하산 취급도 받는 것 같고.”

“그래?”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경장수가 경지연에게 질문했다.


“그 문혁수란 사람이 요즘 입지가 어려워?”


경장수의 안목에 경지연이 놀란 얼굴을 했다.


“어떻게 알았어?”

“낙하산이란 거 원래 그렇지. 꽂힌 사람이 형편없거나, 꽂은 사람이 위태롭거나 그럴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게 낙하산 아니야. 지연이 네가 일을 못 해서 흠 잡힐 일은 없으니, 꽂아준 사람의 위치가 흔들리는 거겠지.”


의외의 모습에 경지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재벌 3세 회사 파벌 돌아가는 거에 이치가 빠삭하네?”


경지연의 말에 경장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거 칭찬 아니지?”

“뭐, 오빠 좋을 대로 생각해.”


경장수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환한 미소로 지연을 바라보았다.

여동생이라니.

바라만 보아도 웃음이 나오는 존재였다. 별다른 걸 안 해도 예뻐만 보였다.


경영 참여에 전혀 뜻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형과 달리 누가 회사를 갖니, 마니, 다툰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경장수의 지금 마음 같아선, 지분 정도야 기꺼이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장수가 경지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엔 재미있어하더니.”

“그거야 문학나무가 워낙 대단한 출판사기도 하고, 나도 책 만드는 일 근처에 있으니까 좋더라고. 근데 결국 회사 생활이야. 파벌도 있고, 사내 정치도 있고.”


경장수가 못마땅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가 지연을 향해 툴툴거렸다.


“작은 회사라 그래.”

“허, 오빠네 회사는 유학파랑 국내파 다툼 없어?”


경장수는 코웃음을 쳤다.


“있었지.”

“근데 왜 작은 회사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그래?”

“우리 회사에선 거의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야. 그 출판사엔 이제 막 유학파가 채워지니까 벌어지는 소동이지. 그러다가 결국 누구 하나 나가면 그때야 좀 잠잠해질 거야. 네 편이니, 내 편이니 할 게 아니라 각자 목숨줄이 중요하단 걸 깨달으면.”


살벌한 발언에 경지연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었다.


“역시 재벌 총수.”

“총수는 큰아버지다. 나 아니다.”

“역시 재벌가의 2인자.”

“2인자는 우리 아버지야. 난 그냥 KH문고와 KH미디어그룹을 담당할 뿐.”

“누가 펙트 말하래!?”


경지연이 입을 비죽 내밀며 제 오빠에게 투정을 부렸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구칠월섬에선 아버지랑 단둘이 적막하게 세월을 보내던 경지연이었다.


한 사람은 조각.

한 사람은 문학에 몰두하여 청춘을 보내던 섬.


고요와 침묵을 벗 삼아 은근한 가족애로 지내던 섬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온 가족의 지나친 애정을 독차지하며 막내 기분을 누리는 서울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원룸에서 고독하게 서울살이하던 경지연이 사촌의 제안에 순순히 집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경장수가 경지연에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왜 남의 회사에 가서 그 고생을 하고 있어.”

“우리 회사에 서점은 있어도, 출판사는 없잖아. 그리고 나도 문학나무가 이럴 줄 알았나. 그냥 책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지. 다양한 시도도 하고 싶은데 쉽게 진행되지가 않고 말이야.”


경지연은 길게 말을 뱉고선 다시 한숨을 쉬었다. 마치 그 한숨에 중독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데 경장수는 경지연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저 한마디 말에 꽂혔을 뿐이다.


-우리 회사에 서점은 있어도, 출판사는 없잖아.


경장수는 KH그룹에서 미디어와 서점, 문화재단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출판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KH그룹이지만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진 않았다.


대기업으로서 중소 출판사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조심스럽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관습을 반드시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출판의 영역도 단순히 종이책을 출간하는 것에서 다방면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장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경지연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 출판사가 없으면 출판사를 차리면 되지.”

“뭐라고?”

경지연이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호텔을 산다, 출판단지를 산다에 이어 이젠 출판사를 만들겠다니.


경지연은 경장수의 말을 가볍게 받아들였다.


“어이구, 어련하시겠어요.”


하지만 장수는 이미 경영자로서의 진지한 모습으로 돌변해 있었다. 지연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 모습은 어느새 달아나 있었다.


“기존에 우리 그룹이 출판을 하지 않은 건 종이책 출간이란 파이를 대기업이 침해할 수 없어서였지. 그러면 출판업에 진출하되 종이책이 아니라 더 확장성 있는 방향을 모색하면 돼.”

“진지한 얘기야?”


경장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지연은 불안한 목소리로 경장수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 보고 사장 하라는 건 아니지?”

“네가 사장 안 할 거면 누가 할 건데?”


경지연이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아니야, 실력 있는 사람을 데려와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일단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난 아니야.”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20대 초반에 기업을 만드셨어!”

“오빠? 그때는 전쟁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잖아. 지금은 2024년이야.”


경지연의 면박에 경장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뭐 누구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있지.”

“누구?”

“날 낙하산으로 만들어줬던 사람? 그분이 요즘 프로젝트 하나를 추진하는 것 같긴 하던데······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경지연의 말에 경장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손을 들어 보이며 돈 모양의 손동작을 만들었다.


“안 되는 건 없다. 이거 앞에서.”

“오, 역시 재벌. 황금만능주의.”


이때까지 한국 문학은 몰랐다.

문학계를 뒤집을 거대 공룡이 이렇게 즉흥적으로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의말

63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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