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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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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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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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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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DUMMY

50화

EP4 – 세 가지 갈림길



이곳은 도쿄.

그랜드칼튼 호텔 53층에 위치한 대연회장.


나가레보시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상식이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타카시로 유리, 타카시로 히즈키.


두 남매는 교토문예출판의 임원들과 함께 한 테이블에 착석해 있었다.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 두런두런 환담을 나누던 그때.


임원들 중 한 명이 눈에 띄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이사님은 웬일로 회사 행사를 다 참석하세요?”


타카시로 유리를 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하는 한 남자.


그 사람은 바로 타카시로 마츠이였다. 유리의 먼 친척으로서 늘 그녀를 견제하는 멍청한 사촌이었다.


“우리 마츠이 부장님이야말로 대단하시네요.”

“뭐가요?”

“부장이 되어서 이사한테 행사 참여를 가지고 눈치를 다 주시고요.”


타카시로 유리의 능청스러운 한 마디에 테이블 한 구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츠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가 얼굴을 붉힌 채 변명을 늘어놓았다.


“눈치라니요.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하시네요. 하하하. 하하하. 그저 부장이기 전에 친척 오빠로서 걱정되니까 물어본 거죠.”


타카시로 유리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회사의 직급에 대해 얘기하자, 실제 나이에 대해 얘기하는 마츠이.


그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지도 모르는 사촌이 그저 한심할 따름이었다.

타카시로 유리는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네, 걱정해주셔서 고맙네요. 앞으로는 이런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카시로 마츠이는 못 마땅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유리의 답은 그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회사 일은 빠져주겠다.

행사엔 사실 관심이 없다.

네가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


본래 그 말이야말로 타카시로 마츠이가 바라는 바이고, 최근 몇 년 간 유리가 해왔던 포지션이었다.


방에 틀어박힌 후계자, 타카시로 유리.

그 후계자를 대신해 회사 일을 천천히 대신 해나가던 사촌, 타카시로 마츠이.


마츠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경영을 물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전까지는 말이다.


마츠이 옆에 앉아있던 임원 중 한 명이 타카시로 유리의 성과를 상찬했다.


“이사님, 올해 나가레보시 실적이 아주 좋더군요. 사실 웹진을 계속 이끌어나가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올해처럼만 나와준다면 언젠가는 본사 매출을 뛰어넘을 것 같습니다. 하하핳.”


그 말에 타카시로 마츠이의 표정이 구겨졌다. ‘웹진을 계속 이끌어나가는 것이 회의적인 사람’의 대표 주자가 바로 마츠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마츠이의 구겨진 표정 앞에서 유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이에요. 그래봤자 작년 매출의 3배 밖에 안 나왔는 걸요. 그마저도 유동주 작가님 같은 신진 작가들 덕분이고요.”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자신감의 노골적인 표현이다.


일본이라고 해서 문학 시장이 침체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세계적 불황 앞에 문학이 호황을 맞은 곳은 없다.

이런 시대에서 매출 3배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웠다.


게다가 유동주를 언급한 것도 노림수가 분명했다.

유동주.

조회수가 20도 안 되던 DongJu를 발굴한 것은 바로 타카시로 유리였다.

유동주가 성공을 거둘수록 타카시로 유리의 안목도 덩달아 널리 칭송받았다.


그리고 타카시로 유리의 의기양양한 표정은 마츠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유리라고 해서 몰랐겠는가.

마츠이에 대한 이야기는 유리가 히키코모리일 때에도 종종 들려왔다.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자 그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더 크게 번져왔고 말이다.


마츠이와 마츠이를 옹립하고자 하는 세력이 교토문예출판에서 제법 입지를 다졌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았다.


그러니까.

오늘 나가레보시 문학상 시상식은 그 마츠이 일파에게 보여주는 선전포고와 같았다.


3배나 신장된 매출.

유동주, 솔루션 같은 신진 작가들의 발굴.

나가레보시 문학상의 성공적인 정착.


이 모든 건 타카시로 유리의 금의환향을 대대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선전포고였다.


그런데, 시상식장 한편에서 수군거림이 번져왔다.


“그 한국의 작가님은 안 오신 거죠?”

“그러게요. 분명 되게 나이가 어린 남자 작가님이라고 했는데.”

“유 작가님 없어? 유 작가님 안 오셨어?”


타카시로 유리는 그 술렁거림을 못 들은 척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앉은 테이블까지 웅성거림이 번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타카시로 마츠이가 승기를 잡은 사람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사님.”

“네?”

“그 한국의 유동주 작가님은 안 오셨어요? 소통 안 하셨어요?”


타카시로 유리는 마츠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어린 시절, 종종 자신을 데리고 놀아주던 마츠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마츠이는 사탕과 초콜릿을 안겨주던 다정한 오빠였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만난 사촌은 이제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이상한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


마츠이는 변했다. 어린 시절과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도 유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을 기점으로 말이다.

그 사실이 유리를 더욱 못 견디게 했다.


유리는 마츠이를 향해 밝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충분히 전달드렸고요. 소통도 했습니다.”

“충분히 소통했다고요? 근데 왜 작가님이 안 오셨어요? 오늘 신문 문화면 다 살피고 오셨죠?”


타카시로 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가레보시 문학상.


나가레보시 리터러시의 창업 첫 해부터 만들어진 이 문학상은 어느새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진 작가의 상징이 되었다.


독자 투표+심사위원 투표로 정해지는 독특한 수상 방식 때문에 기실 발표 전부터 수상자가 어느 정도 예측되는 문학상이었다.


하여, 나가레보시 문학상의 시상식 당일엔 일간지 문화면이 올해 유력 후보의 얼굴로 도배되기 마련이었다.


“봤어요. 유동주 작가님이 올해 나가레보시 문학상 유력 후보라고 다들 떠들더군요.”


타카시로 마츠이가 헛웃음을 켰다. 그가 유리를 쏘아붙였다.


“아니, 근데 유 작가님 불참한 거예요? 이거 분명 말 나올 걸요? 내일 문화면이 난리가 날 거예요.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역대 최고로 크게 벌려 놓고서!?”


마츠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철부지의 경거망동이었다.

그런 마츠이를 타카시로 히즈키가 제지했다.


“부장님, 그만하세요. 부장님 말처럼 여기 기자들도 있고, 외부 관계자도 많아. 우리끼리 이러면 좋을 게 없어요.”


히즈키의 중재에 마츠이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도 유리를 계속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


“이사님, 가뜩이나 관리 능력 의심받는 건 아시죠? 아무튼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츠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단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축사, 축하 공연, 축전과 축하 영상이 틀어졌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유동주는 시상식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초조해진 타카시로 히즈키가 옆에 앉은 제 동생 유리에게 필담을 건넸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 오늘 혹시 유동주 작가님 수상 못 하시는 거야? 그래서 따로 연락했어?


타카시로 유리는 고개를 저은 채 다시 필담을 되돌려 주었다. 돌아온 내용은 이러했다.


- 상은 누가 타는지는 나도 모르지. 나가레보시 문학상은 독자님들과 심사위원들이 정하는 거야.


동생의 우문현답에 히즈키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입술만 깨물은 채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이윽고.

대망의 하이라이트인 나가레보시 문학상 발표 순서가 다가왔다.


시상자는 교토문예출판의 부사장인 요시다 타케시, 그리고 일본하야쿠의 거장인 쓰시마 켄지였다.


요시다 타케시가 허리를 숙이며 내빈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번 나가레보시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해주신 내빈 여러분들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바쁜 일정 중에도 시상을 위해 자리를 빛내는 쓰시마 켄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리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퍼져나갔다. 쓰시마 켄지가 이어서 말을 했다.


“이 늙은이가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겸양에 또 한 번 자리에서 박수 소리가 퍼져나갔다. 쓰시마 켄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관객을 쳐다보았다.


“처음엔 웹에서 순문학을 연재한다기에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후보들의 면면을 보니 이것이 새로운 문학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쓰시마 켄지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도 말을 이었다.


“지나간 시대를 이 시대에 다시 불러오는 유동주의 시와 소설. 언젠가 다가올 먼 미래를 이 시대에 소환하는 솔루션의 SF소설. 모두 이 늙은이의 심금까지 울리는 명작이었습니다. 긴 말은 줄이겠습니다. 이제 발표해야지요.”


그의 말과 함께 연회장 전체에 정적이 흘러나갔다. 잠시 그 침묵을 즐기던 켄지가 마침내 수상자를 호명했다.


“202X 나가레보시 문학상의 수상자는 바로 유동주입니다!”


연이어 사회자의 안내가 연회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올해 나가레보시 문학상 수상자인 유동주 작가님은 오늘 베이징 아시아아동도서마켓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여하는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불참하였습니다.”


그 말에 연회장 전체가 또 한 번 술렁였다.

나가레보시 문학상 수상자의 불참.

그것은 전례 없는 사태였기 때문이다.


타카시로 마츠이가 비웃음과 함께 유리를 노려보았다.


“저자 관리 잘 하라니까. 이게 제대로 뭘 한 꼴이야? 봐라. 기자들 플래쉬 터뜨리고 난리 난 거.”


타카시로 마츠이가 연회장 한편에 모인 문화부 기자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언가 이상했다.


기자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술렁거림은 ‘우려’가 아니라 ‘기대’ 혹은 ‘놀라움’ ‘경악’이었다.


그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오는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푹 눌러쓴 작은 체구의 여자.

사회자가 그 여자의 정체를 호명했다.


“오늘 유동주 작가님 대신에 대리 수상해주실 분이 올라오고 계십니다. 바로 유동주 작가님의 시에 BGM을 제공해주셨던 우타 나나미 씨가 대리 수상 담당하시겠습니다!”


우타 나나미.

그 이름에 연회장에 폭탄이 떨어졌다. 미친듯한 환호성과 플래시가 연신 터져나왔다.


“우, 우아아아! 우타 나나미!!”

“와아아아악!”

“나나미!!!”


우타 나나미가 광기 어린 현장에서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그녀가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대신 전했다.


“존경하는 유동주 작가님의 수상을 대신 맡을 수 있게 되어 정말 뜻 깊고, 영광입니다. 오늘 이 상은 제가 꼭 직접 전달 드리겠습니다.”


고작 몇 마디 되지도 않은 말이지만, 문화부 기자들의 펜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타 나나미와 직접 소통한다.

존경을 받는다.

본인의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도 불참했던 그녀가, 타인의 상을 대리 수상하러 나왔다.


기사를 쓸 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잠시 연회장을 둘러보던 우타 나나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유동주 작가님이 직접 수상 소감 영상을 보내주셨습니다. 함께 보시죠.”


우타 나나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동주의 수상 소감 영상이 화면에 떠올랐다.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다.

앳된 얼굴의 10대.

잘 쳐야 20살도 안 됐을 것 같은 어린 남자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능숙한 일어를 구사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연회장 테이블 한 구석에서 타카시로 유리는 웃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츠이 부장님?”

“아, 아, 네?”


혼백이 싹 털린 마츠이가 멍하니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츠이를 향해 말했다.


“제 나름대로 저자랑 소통한 결과인데, 어떠세요?”


마츠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리는 아예 쐐기를 꽂았다.


“내일 문화면이 불타겠네요? 그쵸?”



작가의말

드디어 50화입니다!!! 50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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