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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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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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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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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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DUMMY

62화

EP 7 – 도약


㈜문학나무의 회의를 마친 후.

편집장 문혁수는 저녁 약속을 위해 낙성대 근처로 이동했다.


모교 인근의 허름한 중식당이 오늘 저녁 약속 장소였다.

그는 감회에 젖은 눈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이곳은 변함이 없구나.”


50년 전통의 중식당은 혁수가 20대 때부터 다니던 단골집이었다.


동기, 후배, 선배는 물론 스승들과도 격의 없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청춘의 어느 날.


혁수는 그때 작가를 꿈꾸던 젊은 문청이었고, 이곳은 그의 꿈이 부풀던 토양이었다.


기억력 좋은 사장은 문혁수를 향해 얼른 아는 체를 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요즘엔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죄송합니다. 출판사들이 전부 강변출판문화단지에 있으니까, 제가 서울 나올 일이 없네요.”


사장은 뿌듯한 얼굴로 문혁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바쁜 게 최고지. 이제 편집장이지?”

“네, 편집장 단 지는 조금 됐지요.”

“출세했어. 출세했네.”


문혁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장의 나이는 어느덧 칠순이 훌쩍 넘어있었다.


처음 만난 날엔 혁수는 20대의 젊은 대학생, 사장은 40대의 아저씨였다.


지나간 세월만큼 쌓인 애정이 사장의 얼굴에 묻어있었다.


“아차참, 내 정신 좀 봐. 얼른 들어가. 선생님은 이미 한참 전에 와계셨어. 부지런하신 분이잖아.”


문혁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중식당 한 편의 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경쾌한 목소리의 노인이 혁수를 반겼다.


“오랜만이구먼. 잘 지냈어!?”

“저야, 뭐 여전하지요. 선생님도 잘 지내셨어요?”


문혁수가 인사를 건넨 사람은 다름아닌 경덕관이었다.

덕관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일어섰다.


“허허허헣. 나야 잘 지내지. 문 편집장 자네가 박철민이 있는 곳을 알려줘서 호주 최근에 갔다 왔네. 간 김에 바캉스도 즐기고 말이야.”


문혁수.

그의 별명은 문단의 만물상이자 정보통이었다.


한국 문학계에서 막히는 일이 있으면 문혁수를 통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곳곳에 네트워킹을 뻗고 있는 그였다.


경덕관 또한 박철민을 쳐들어가는 데에 문혁수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박철민 선생님 만나 뵈러 간 것은 잘 해결됐습니까?”

“해결이고 나발이고 될 게 무어야. 이미 서던크로스니 뭐니 하는 상 후보에 나를 떡하니 올려버렸는데.”


경덕관은 후보에 오른 것이 영 달갑지 않은 눈치로 툴툴거렸다.


“서던크로스 그 상은 영 마음에 안 들어. 언제부터 세계에 4대 문학상이 있었어. 근본도 모르는 상에 왜 다들 호들갑인지.”


경덕관의 불평은 겸손이나 너스레가 아닌 진심이었다.

그가 문혁수를 향해 불평불만을 이어갔다.


“문학상이란 게 말이야. 좋은 문학이면 상을 받는 거고, 아니면 상을 안 받아야지. 그런 거 아니야!? 말해보게, 문 군!”


50이 훌쩍 넘은 자신을 아직도 ‘문 군’이라 호칭하는 스승.


그 앞에서 문혁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학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그래! 지당한 얘기지! 근데 그놈의 상은 매회 어느 나라 놈이 탔는지를 고려하면서 다음 수상자를 정하지를 않나!? 게다가 소위 제3세계 작가엔 가점을 주고 말이야! 아이고, 세상 말세야. 말세.”


그렇다.

서던크로스가 2000년대에 세계 4대 문학상으로 급부상한 데엔 독특한 방식의 수상자 선정이 있었다.


기존 세계 3대 문학상과 노벨상의 경우 서구 중심 제1세계 작가들이 주로 수상했다. 반면, 서던크로스는 주목받지 못하던 제3세계 작가를 집중 조명했다.


게다가 암암리에 떠도는 풍문에 따르면 매회 수상자를 정할 때, 전회 수상자가 어떤 대륙 출신인가를 검토한다고 한다.


실제 수상자들은 매회 다른 대륙, 국가에서 번갈아서 배출되었다.


문혁수가 스승을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번엔 아프리카나 아시아 차례 아닌가요?”


경덕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못마땅한 얼굴이 허공을 쳐다보았다.


“어휴, 아프리카는 이번에 수상 후보도 없어! 그러니 답답한 노릇이지.”


문혁수는 스승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경덕관의 불만은 결국 그런 뜻이었다.


이번엔 사실상 경덕관의 수상이 확실시된다는 것.


그렇다면 사상 최초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서던크로스 마스터피스.

서던크로스 호라이즌.


세계 4대 문학상의 신인상, 본상 모두를 한국 작가가 차지하는 광경 말이다.


문혁수는 스승을 향해 조심스럽게 제안을 건넸다.


“선생님, 사실 이번에 저희 문학나무에서 너튜브를 하나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볼까 합니다. 임프린트를 만들오서서 스튜디오도 해보려 하고요.”


뜻밖의 얘기에 경덕관의 시선이 집중됐다. 문혁수가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첫 번째 콘텐츠로 선생님과 유 작가님의 서던크로스 실황을 찍는 것은 어떨까요?”


경덕관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에 문혁수는 등골에 땀이 흘렀다.


“아, 아니. 다른 게 아닙니다. 이번에 두 작가님이 만약 동시 수상한다면 한국 문학의 역사에 남는 일 아닙니까. 사제가 동시에 상을 타는 기념비적인 일이기도 하고요.”


변명하는 사람처럼 문혁수는 말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식사가 준비되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양장피와 짜장면.

경덕관이 이 식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 두 가지가 가장 먼저 차려졌다.

덕관이 혁수에게 말했다.


“밥이나 들자고.”


경덕관은 말을 마치자마자 짜장 그릇에 코를 박았다. 먹는다기보단 짜장을 해치우는 느낌이었다.


-후루루룩! 후루루룩!


한참이나 식사에 몰두하던 경덕관이 입에 묻은 소스도 닦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봐, 혁수.”

“네?”

“자네를 처음 데리고 내가 여기서 양장피 사줬을 때 기억하나?”


문혁수는 의아한 눈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새삼 몇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것일까.


“제가 어떻게 그 순간을 잊습니까.”


한국대 국문과를 다니는 학생 중 가장 가난한 스무 살.


그게 바로 문혁수의 청춘이었다. 새벽엔 신문 배달을 했고, 오전엔 수업을 몰아서 들었다, 그리고 남은 모든 시간엔 과외를 했다.


“참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셨죠.”


문혁수는 애잔한 눈빛으로 스승을 보았다. 경덕관이 입가를 닦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내가 돕긴 뭘 도와. 문 군 자네가 다 제 앞가림을 잘했지.”



문혁수는 말없이 스승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저 살리셨죠. 기억 안 나세요? 제가 1학년 2학기 때 장학금 받은 거 있잖아요. 생활비로 쓰려고 했었는데, 하필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해서 집에 다 보냈었잖아요.”

“다 지난 얘기는 왜 꺼내. 자네 어머니 아직도 잘 살아 계시잖아!”


경덕관의 호탕한 목소리에 문혁수의 고개가 저절로 굽어졌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다 지난 얘기긴요. 제가 어떻게 잊습니까. 집에 돈 다 보내고, 3일째 굶고 있는데 선생님이 저 데리고 여기 식당 오셨잖아요.”

“그게 그 양장피였나?”

“네, 그게 제 인생에서 처음 먹어본 양장피였습니다. 짜장면만 먹어도 감지덕지인 애한테 그런 걸 그냥 주셨잖아요.”


경덕관은 쑥스러운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뭐 너튜브 영상 찍자고 아부 떠는 게야!?”

“아닙니다. 그냥 감사해서 그러죠. 게다가 그때, 창작 장학금이라고 없던 장학금도 만들어서 저한테 주셨잖아요.”

“그건 자네가 소설을 잘 써서 준 거지!”


문혁수가 경덕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늘 툴툴거리는 스승의 깊은 속내를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저 다 압니다. 선생님.”

“뭘 알아?”

“나중에 강정운 선배가 알려줬어요. 그 장학금, 선생님 사비로 따로 만드신 거라면서요. 그리고 제게 주라고 직접 지목하셨다면서요.”


그 말을 들은 경덕관이 문혁수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뭐 하나? 소설은 홀라당 때려치우고 편집자 노릇만 몇십 년을 하는데.”


경덕관의 핀잔은 단지 부끄러워서 뱉는 말은 아니었다. 그건 다소 간의 진심이 섞인 진지한 이야기였다.

덕관이 혁수를 타일렀다.


“문혁수 편집장.”

“네?”

“요새 뭐가 마음이 바빠? 너튜브니 뭐니 왜 헛짓거리를 하려고 해?”


헛짓거리.

단호하고 냉정한 말에 문혁수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덕관이 혁수에게 말을 이었다.


“내가 꼰대 늙은이라고 하면 할 말 없네. 미디어 변화도 좋지. 너튜브니 뭐니 따라가는 것도 좋아. 하지만 책 내는 일이란 게 무엇인지 그 본질을 생각해야 하지 않아? 자네, 요즘 읽고서 마음이 두근거리는 작가가 있어?”


경덕관의 충고에 문혁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음이 두근거리는 작가.

분명 문혁수에게도 그런 작가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편집자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현장에서 다소 물러나 관리자의 역할을 맡는 지금, 문혁수는 사내 정치와 문단 정보통 역할에 더 몰입해 있었다.


경덕관이 문혁수를 바라보았다.


“회사 생활 힘들지?”

“네, 네!? 아닙니다. 제가 벌써 여기서 몇십 년을 일하는데요. 창립 맴버 아닙니까.”


경덕관이 문혁수의 얼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너스레 떨기는. 다 알아. 요즘 국내파니, 유학파니 지랄들을 하고 있다며? 근데 문 군 자네도 그런 거에 휘둘릴 줄은 몰랐구먼.”


문혁수는 별다른 말 없이 경덕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덕관은 혁수에게 말했다.


“정민태 그놈한테 당하지 마. 의장이니 뭐니 아직도 욕심 못 버리는 거 봐. 그 선배, 어쩔 수 없이 사업꾼이야. 이득이 되면 싸움박질도 이용할 놈이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글쎄요.”


경덕관이 한숨을 쉬었다.


“긍정한다는 뜻이구먼. 쯧쯧. 휘둘리지 마. 명퇴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젊은 놈들 싸우는 거에 휘말리려고 해?”


잠시 생각에 잠긴 경덕관이 중식당의 변색한 벽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득한 과거 속 어딘가를 회상 중이었다.


“기억이 나. 문 군 자네 회사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딱 이랬지?”

“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문혁수 자네는 소설가 재질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죠.”


경덕관과 문혁수는 동시에 똑같은 순간을 회상했다.


소설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젊은 날의 문혁수.

그를 타이르던 중년의 경덕관.


결국 ‘어머니가 여전히 많이 아픕니다’라고 스승 앞에서 목 놓아 울부짖던 20대 초반 제자의 설움.


그 모든 장면이 두 사람 머릿 속에 생생했다.


간신히 생각에서 빠져나온 경덕관이 문혁수에게 말했다.


“그때도 내가 이렇게 말했지.”


잠시 목을 가다듬은 덕관이 그때의 말을 다시 건넸다.


“눈앞에 보이는 고단함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지 말아라. 결국 후회하게 될 거다.”


경덕관이 자신의 제자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가족 때문에 꿈을 포기한 나이든 사내. 그것이 바로 덕관의 제자였다.


“문 군.”

“네?”

“어머니는 좀 어떠셔. 치매는 괜찮으신가? 회사에 딱 버티려는 게 그 이유야?”


문혁수가 놀란 눈으로 제 스승을 휘둥그레 쳐다보았다.


“다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문 군 자네 소식을 어찌 모르겠나. 강정운이한테 들었어.”


잠시 망설이던 덕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혁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람의 인생이 기구하지. 결혼도 못 하고 어찌 이렇게 평생 가족만 챙기다 인생이 저문단 말인가.”


위로인지 악담인지 모를 소리가 혁수에게 쏟아졌다. 덕관이 혁수를 향해 한 마디를 던졌다.


“너튜브인지 뭔지 하고 싶으면 도와줄 수 있을 만큼 도와주지. 새로운 임프린트 그것도 한 번 살펴줄게.”


경덕관의 말에 문혁수는 고개 숙이며 감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경덕관은 잠시 숨을 들이쉬고 문혁수를 마지막으로 타일렀다.


“그래도 편집자의 본업을 너무 뒤로 하진 마. 결국 책을 사랑하는 게 문학 편집자의 본업 아닌가.”


문혁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하염없는 고갯짓 앞에 덕관이 구미가 당기는 정보를 던졌다.


“유동주가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어떤가.”

“유 작가님이 벌써 신작을요!?”


경덕관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그가 혁수에게 말했다.


“어때, 좀 두근거리나?”


경덕관의 능글맞은 미소가 문혁수를 바라보았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 62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연재는 오후 중으로 정상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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