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3 17:37
최근연재일 :
2024.08.21 23:2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73,912
추천수 :
2,845
글자수 :
373,400

작성
24.08.05 22:05
조회
522
추천
27
글자
11쪽

48화

DUMMY

48화

EP4 – 세 가지 갈림길


이것은 지나간 이야기 중 하나다.


내가 해명 방송을 한참 준비하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나 소설 쓰는 박철민이야. 유동주 맞지?”

“아, 네, 저 유동주입니다.”


뜻밖의 전화에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철민’

자칭 경덕관의 라이벌이라고 말하던 사람.


그 사람이 왜 이런 미묘한 시기에 전화를 걸었을까.


“그래, 은풀이 통해서 대충 들었어. 글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데 고생이 많네.”


박철민이 건넨 것은 예상치도 않은 위로였다. 갑자기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그의 의중이 파악되지 않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박철민이 생각지 못 한 부탁을 던졌다.


“선배로서 내가 미안하네. 안 겪어도 될 일을 자꾸 겪는군. 사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나는 그의 부탁을 가만히 들었다. 들어주어도 그만, 안 들어주어도 그만인 그런 요청이었다.


한참을 얘기하던 박철민이 쩔쩔매며 내게 이렇게 물었다.


“뭐, 만나서 얘기할텐가? 원하다면 그놈 데리고 와서 머리 조아리게 할 수 있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저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굳이 먼 걸음 하실 필요 없죠. 저는 지금 월변에 있거든요.”

“그런가?”

“네.”


나는 의아한 목소리를 하는 박철민에게 천천히 다시 답변했다.


그는 오랫동안 내게 사정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 제안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고민 끝에 나는 박철민의 제안을 수락했다.

답을 들은 박철민은 담담하게 감사를 전했다.


“알겠네. 아량을 베풀어주어서 고맙네. 서울 오면 한 번 얼굴이라도 보자고.”


그는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박철민.

그저 고집 센 외골수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면모가 있구나.


나의 답변.

그리고 그의 제안이 무엇이었냐면.




48화

EP4 – 세 가지 갈림길




이곳은 국립예술종합학교.

박철민의 연구실.


그가 가으내 기른 난초가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에서 철민의 어리석은 제자 한 명이 걸어왔다.


“바보같은 놈.”


박철민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이내 주머니로 다시 넣어버렸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더 이상 교수실에서 골초처럼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철민은 여전히 습관처럼 담뱃갑을 만지곤 했다.


꺼내들지도 못하는 독초가 그의 손에 씁쓸한 내음만을 남겼다.


이윽고 그 어리석은 제자가 교수실의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저 추덕호입니다.”

“들어와.”


박철민은 매서운 눈초리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면서 들어오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추덕호! 눈치 볼 일을 저지르긴 했나 보지!?”


추덕호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박철민이 그런 추덕호를 향해 다시 언성을 높였다.


“문단에 덕호 네 소문이 자자해.”

“소문이요?”

“그래! 고작 열여덟 먹은 후배 앞길 막으려고 수작을 부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추덕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저 변명을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결코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오기우 PD의 얘기를 들으니 그런 짓을 저지른 작가가 문단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오 PD가 거짓말을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추덕호의 변명은 어설펐다.

그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철민은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완전히 뚜껑이 열린 그가 소리 질렀다.


“너는 지금 이 박철민이가 사실 관계 파악도 못 하고 무작정 널 부른 줄 알아!?”


박철민은 추덕호를 예리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그가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현 상황을 짚었다.


“네 외삼촌, 풍영문고의 사장이 되었다더라.”

“네, 네,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박철민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작금에 돌아가는 꼴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네 외삼촌이 너 팔아치운 거야. 널 이용해서 오기우 움직인 거고, 그걸 통해 자기 상사 물 먹이고 풍영문고 사장 된 거라고 알겠어?”


추덕호는 그제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외삼촌이 정말 자신을 이용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한 덕호였다.


박철민이 추덕호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한심한 놈아. 사업하는 놈들은 우리 글쟁이들이랑 머리가 달라. 제 잇속을 위해서는 처자식도 팔아먹는 게 사업쟁이들이야. 덕호 너 철저하게 이용당한 거라고.”

“죄, 죄송합니다.”

“나한테 왜 죄송해? 너 자신한테 죄송해야지!”


추덕호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비참하게 고개를 숙였다.

박철민이 그런 덕호를 또 한 번 다그쳤다.


“경덕관한테 유동주 같은 제자가 있다 한들, 나한텐 네가 있어서 괜찮았다. 네가 나 박철민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어. 근데 왜 이렇게 모자라게 굴어!?”


박철민은 책상을 탁탁 내리치며 말을 이었다.


“너 문학씨앗 원고 받은 것도 네 외삼촌이 입김 불어넣은 거지?”

“그, 그 사실을 교수님이 어떻게?”

“풍영에서 후원하는 베이징 아시아아동도서마켓에 유동주가 간다고 들었다. 나보고 한국 전시관 관장을 맡아달라고 하더구나. 최근에 너무 바빠서 거절했지만 말이야.”


추덕호의 얼굴에 황망함이 감돌았다.


베이징 아시아아동도서마켓.


그건 세계 5대 아동도서전에 해당하는 거대한 도서전으로 매회 아시아 각국의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된다.


이번엔 중국과 연이 깊은 풍영의 후원으로 주최되는데, 추덕호는 사실 1년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삼촌의 입김으로 아동문학 쪽에 발을 넓힌 것도 그 이유였다. 한국을 대표하여 아시아아동마켓에 가기 위해서.


추덕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유동주에 대한 질투심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박철민이 그런 추덕호를 향해 말했다.


“감당도 못 할 원고를 왜 맡겠다고 나섰어? 편집자들 사이에서도 네 악명이 자자해.”


추덕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박철민이 그런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어쩌면 유동주가 네 스승이 될 수도 있어.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질투심으로 추한 꼴은 그만 보여. 그러다 크게 더 망신 당한다.”


박철민의 충격 선언에 추덕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 유동주는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안 나왔잖아요?”


추덕호의 말에 박철민의 얼굴이 얼음장이 되었다. 그가 추 작가를 향해 답했다.


“덕호, 너는 지금 내 얘기하냐?”


추덕호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박철민이 대학을 가지 못한 고졸 출신 작가라는 사실을 까먹은 덕호였다.


박철민이 그런 추덕호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찌 될진 몰라. 우리 대학 면접날이 26일인데 마침 베이징 아동도서마켓도 하필 26일이라.”


그 말을 들은 추덕호가 눈에 띄게 기쁜 내색을 비췄다. 미소 띤 얼굴이 박철민에게 답했다.


“그러면 면접이 아니라 베이징을 가겠네요. 어차피 교수 자리는 가능성도 희박하잖아요.”


박철민은 황당한 표정으로 추덕호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철부지여도 이렇게 생각이 없을 줄이야.


“추덕호.”

“네?”

“네가 지금 실실 웃음이 나와? 제정신이야?”


추덕호는 입을 다물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박철민이 그런 추덕호를 향해 쐐기를 꽂았다.


“나는 홀리데이 바캉스 갈 거라서 이번 초빙 교수 면접은 온라인으로 볼 거야.”


추덕호는 당황한 얼굴로 박철민을 노려보았다.


홀리데이 바캉스라니.

온라인 면접이라니.

그렇다면 베이징에 있는 사람도 면접 참여가 가능하지 않은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어란 말인가.


왜 도대체 자신의 스승이 유동주 잘 되는 꼴을 돕는단 말인가.

추덕호는 제 처지도 잊고 언성을 높였다.


“아, 아니. 교수님이 왜 유동주를 도와요!? 경덕관 선생님 제자를 왜 교수님이 돕습니까!?”

“너 때문에 내가 유동주한테 단단히 빚이 생겼어. 그걸 갚아야 하지 않겠어!?”


박철민의 말에 추덕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빚이라니.

그것도 추덕호 자신 때문에 진 빚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어란 말인가.


박철민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천천히 추덕호에게 걸어갔다.


“야, 추덕호.”

“네, 네!?”

“너는 이번에 유동주가 해명방송 할 때 오기우만 저격한 게 왜라고 생각해?”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박철민이 한숨을 쉬었다. 깊고 무거운 숨소리가 교수실을 가득 채웠다.

박 교수가 그간의 사정을 밝혔다.


“후우, 손은풀이가 너랑 오기우 PD 바에서 만나는 거 다 녹화했다. 그리고 나한테 묻더라. 이런 상황인데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추덕호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손은풀.

국립예술종합학교의 전 학생회장이었고, 현재는 고려일보의 문학 담당 기자.

덕호도 익히 아는 재능 있는 선배였다.


손은풀과 유동주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단 사실은 덕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명 방송 전에 모든 걸 파악하고 박철민과 통화까지 했을 줄이야.

덕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창백한 그 얼굴에 박철민이 말을 이었다.


“내가 고민 끝에 그 유동주 녀석에게 직접 전화걸었어.”

“교, 교수님이요!?”


추덕호는 말문을 잃고 박철민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철민은 착잡한 낯빛으로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 어린놈한테 빌었다. 너는 폭로하지 말아달라고. 같은 문단의 동료인데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냐고. 그 어린놈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추덕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박철민이 유동주의 말을 대신 전했다.


“함께 글 쓰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 선배의 마음을 신경쓰지 못해 도리어 죄송하다고 했어. 그런데 너는 뭐냐. 추덕호 네 이 추잡한 꼴은 뭐야?”


추덕호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박철민이 추덕호를 애잔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명퇴 날짜만 기다리는 늙은이야. 문단에서도 뒷방에 들어갈 구닥다리지. 하지만 추덕호 넌 아니다. 네 미래는 네가 가꿔나가야 돼.”


추덕호가 생각이 많은 눈으로 박철민을 바라보았다.

철민이 마지막 한 마디를 던졌다.


“질투에 눈이 멀지 마라. 나는 평생 경덕관이 뒤꽁무니만 쫓았지. 하지만 넌 그러지마. 이 늙은이가 이제 와서 깨달은 거야. 작가는 그저 자신의 문학을 해야한다.”


추덕호는 말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창밖에선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희끗한 머리의 노교수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일몰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말

48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입니다 24.08.23 111 0 -
공지 제목 변경하였습니다! 24.08.07 53 0 -
공지 작품 제목을 변경했습니다! 24.07.22 126 0 -
공지 연재 시간 변경!!! (매일 비정기적으로 올라옵니다!) 24.06.23 1,069 0 -
64 64화 +2 24.08.21 171 9 15쪽
63 63화 +1 24.08.21 202 11 11쪽
62 62화 +2 24.08.20 216 13 12쪽
61 61화 +2 24.08.19 262 10 17쪽
60 60화 +2 24.08.17 281 19 16쪽
59 59화 +2 24.08.16 298 22 17쪽
58 58화 +3 24.08.15 329 24 11쪽
57 57화 +1 24.08.15 366 17 14쪽
56 56화 +4 24.08.13 387 24 15쪽
55 55화 +2 24.08.13 396 20 13쪽
54 54화 +1 24.08.11 412 22 12쪽
53 53화 +2 24.08.10 422 21 11쪽
52 52화 +2 24.08.09 455 24 16쪽
51 51화 +4 24.08.08 478 22 13쪽
50 50화 +4 24.08.07 483 29 12쪽
49 49화 +2 24.08.07 502 26 16쪽
» 48화 +3 24.08.05 523 27 11쪽
47 47화 +4 24.08.04 565 22 15쪽
46 46화 +2 24.08.03 571 28 14쪽
45 45화 +3 24.08.02 620 28 13쪽
44 44화 +3 24.08.02 633 34 14쪽
43 43화 +5 24.07.31 673 31 14쪽
42 42화 +4 24.07.30 708 34 14쪽
41 41화 +2 24.07.29 763 35 15쪽
40 40화 +4 24.07.28 756 37 13쪽
39 39화 +6 24.07.28 808 3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