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기위한 몸부림
나는 온종일 쉬지 않고 검을 내 몸처럼 다루기 위해 좀비를 베고 또 베어나갔다.
어느덧 하동시 시내는 고요할 정도로 깨끗하게 좀비들이 청소되었다.
사람들이 없어진 도시는 을씨년스러웠고, 가끔 들리는 새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는 메아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이제 변이 좀비 3마리 잡았는데. 벌써 지쳤어?"
차헌터가 옥상에 편하게 누워 좀비를 잡으라고 재촉했다.
'밑에 좀 보고 말하지? 좀비가 없는데 뭘 잡으라는 거야!'
"업딱!"
"아놔 저 새끼가 또 반말 찍찍하네?"
차헌터가 옥상에서 바닥으로 뛰어 내려와 검으로 내 머리를 가격했다.
[딱!]
너무 순식간에 날아온 검에 나는 미처 방어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꺄~악! 뭐 하는 거죠?"
저 멀리서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성은 급하게 뛰어와 나를 뒤로 감추며 차헌터를 노려봤다.
"당신이 뭔데 찬영 씨를 때리는 거죠?"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나영이었다.
"난 저놈에게 전투기술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고나영의 분노에 찬 얼굴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찬영씨 이분이 찬영씨의 스승님 같은 건가요?"
나는 차헌터에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너는 뭐지? 우리를 따라온 건가? 헌터인가?"
고나영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찬영씨가 없어졌길래 찾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저도 헌터예요."
차헌터가 어이없다는 듯이 여성과 나를 번갈아 가며 보고 말했다.
"찬영이 저 녀석 재주도 용하군~ 만나는 여성 헌터마다 감싸고 돌고!"
나는 재빨리 스케치북을 들었다.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로 해라! 비꼬지 말고!'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좀비였다.
[왜 저를 찾으셨나요?]
스케치북을 확인한 고나영이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오늘 원정을 하러 가실 것 같아서 같이 가자고 올라갔는데, 이미 떠나고 없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좀비들이 죽어있는 길을 따라왔어요. 왠지 찬영씨가 그랬을 것 같았거든요!"
[하실 말씀이 있나요?]
"아니요. 그저 찬영씨를 돕고 싶어서요. 그동안 찬영씨 집에 신세 졌던 것도 있고요."
고나영은 대놓고 차헌터에게 눈치를 주면서 말했다.
"방해가 안된다면 찬영씨와 같이 가고 싶어요."
인상을 찌푸리며 우리 둘을 번갈아 본 차헌터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방해만 안한다면 상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차헌터가 허락하지 않아도 고나영은 따라올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파티를 이루게 된 우리 셋은 최하사의 무전이 올 때까지 밥부터 챙겨 먹기로 정했다.
물론 차헌터는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다.
나는 어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었기 때문에 가방을 새로 준비하지 못했다.
고나영도 아무 생각 없이 급하게 따라와서 그런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일단 근처에 마트를 찾아보죠]
내가 솔선수범 앞장서서 마트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10분쯤 갔을 때 창고형으로 되어있는 농업인 마트에 도착했다.
"찬영씨 우리 작은 마트로 가요..."
고나영은 좀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듯 벌벌 떨었다.
[제가 들어가서 먹을 걸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자신 있게 스케치북을 들었다. 내가 느낀 감각으로는 마트 안에 변이 좀비는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해치우면 그만 이었다.
차헌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고민영은 내가 걱정돼서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내가 마트로 들어가는 내내 주시했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차헌터의 검을 들고 마트 정문 앞에 섰다.
마트 입구는 누군가 둘러싸놓은 가벽으로 단단히 봉쇄되어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건가?'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사람이 있으면 구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문 앞에 세워진 가벽을 힘껏 밀었다.
그리고 그 안을 확인했을 때, 끔찍한 광경에 두 눈을 감고 말았다.
마트 안은 사람 시체로 가득했다. 그것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시체들이었다.
이 정도로 많이 죽어있었다면 냄새가 났을 건데, 사람들의 시체는 묽은 점액질에 파묻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온전한 상태였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뒤에 앉아 있는 차헌터와 고나영에게 외쳤다.
"돕 황 쳑!"
내가 소리 지름과 동시에 창고가 미친 듯이 흔들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차헌터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바로 일어나 방어 자세를 취하며 고나영을 보호했다.
두 눈으로 둘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빠르게 마트 문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차헌터와 합류했을 때 창고 지붕이 날아가면서 시체들이 날아와 쏟아져 내렸고, 곧이어 커다란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긴 혀를 날름거리며 시체들에서 보았던 끈적한 점액질을 질질 흘려댔다.
변이 좀비는 아니었다. 괴물에게는 그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차헌터가 자신의 애 검을 빼앗으며 말했다.
"저건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순식간에 무기를 빼앗긴 나는 거대한 괴물을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내 옆에서 고나영이 벌벌 떨며 말했다.
"저거예요... 우리 쉘터 사람들을 잡아먹었던 비 오는 날의 괴물!"
고나영이 공포에 질려 하얗게 된 얼굴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차헌터가 처음 보는 괴물의 등장에 오래간만에 긴장했는지 애 검을 고쳐 잡고 괴물을 향해 내달렸다.
"조심하세요! 저 괴물은 꼬리로 사람을 잡아서 통째로 입에 넣어 먹어요!"
고나영의 외침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차헌터 혼자 저 괴물을 상대할 순 없어! 내가 도와야 해'
나는 적당한 무기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주차장 차단기가 보였고, 나는 온 힘을 다해 차단봉을 뽑아냈다.
건물로 뛰어오른 차헌터가 애 검을 들어 괴물의 몸통을 향해 내리찍었다.
안타깝게도 차헌터의 애 검은 들어가지 않았다.
"껍질이 단단하다. 뚫을 수 없어!"
나에게 괴물에 대한 정보를 준 차헌터는 괴물의 몸통 타고 머리 부분으로 뛰어올라 다시 한번 괴물의 눈을 향해 검을 내리찍으려 할때였다. 이번에는 괴물이 반 박자 빨리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차헌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역시 눈인가?"
나를 바라보며 신호를 보냈다.
"내가 공격할 수 있게 괴물을 유인한다."
차헌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괴물 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차단봉을 들고 내달렸다.
괴물 뱀의 시선이 다행히 내 쪽으로 쏠리자, 차 헌터는 괴물의 등을 타고 머리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괴물 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괴물 뱀의 꼬리에 맞아 뒤로 쭈욱 밀려났고, 차헌터 또한 머리를 흔들어 떨쳐냈다.
고나영이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쇠사슬을 꺼내 뱀의 머리에 둘러 고정했다.
"지금이에요!"
나는 모든 힘을 다해 고나영의 앞으로 뛰어가서 포효를 내지르는 괴물 뱀의 입을 차단봉으로 고정했다.
괴물 뱀은 입 사이에 낀 차단봉이 불편했는지 온몸을 뒤틀었다.
괴물의 입을 피한다고 피했는데 하필이면 꼬리가 날아와 정통으로 얻어 맞았다.
내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올라와 쏟아졌다.
'쳇 젠장 시작됐어!'
나는 재빨리 조끼 지퍼를 열어 구슬을 꺼내 먹었다.
내 몸은 곧바로 회복을 시작했다.
그리고 차헌터는 몸부림치는 괴물 뱀을 잡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차 헌터가 조끼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괴물 뱀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곧 괴물 뱀의 몸통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고, 사방팔방 살점이 튀어 비처럼 쏟아졌다.
'잡았다!'
우린 승리를 예감했다. 하지만 내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 없었다.
괴물 뱀은 몸통 한쪽이 터져있었지만, 붉은색 액체들이 꾸물거리며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괴물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건 몸통이 아니었다.
차헌터의 표정은 난감함 그 자체였다.
분명히 수류탄을 맞고 죽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멀쩡히 고개를 들고 있는 뱀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내가 꽂아놓은 차단봉이 아직 괴물 뱀의 입에 있어!'
나는 차헌터에게 뛰어가 차헌터의 애 검을 빼앗아, 괴물 뱀의 입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차피 쓰러뜨리지 못하면 죽는다.
괴물의 입속에 들어가 괴물의 턱 아랫부분을 깊게 상처 내고, 차헌터의 애검 손잡이를 넣어 고정했다.
그리고 차단봉을 있는 힘껏 발로 차버렸다.
차헌터와 고나영이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내 괴물 뱀의 입은 나를 삼키듯 가뒀다.
그리고 곧 괴물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는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전달됐다.
"임찬영!"
"찬영씨!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뱀의 입에 들어온 후부터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짓누르는 뱀의 근육에 온몸이 짓눌려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한빛 쉘터 병실 안이었다.
내 옆에 고나영이 내 손을 잡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찬영씨? 괜찮아요? 일어났어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나영은 고양된 표정으로 병실을 나가 복도에서 소리쳤다.
"찬영씨가 깨어났어요!"
소란스럽게 나의 생환소식을 알렸다.
'아 제발요... 조용히 있고 싶어요.'
소리 없는 외침이 고나영에게 들릴 리 없었다.
복도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 편히 쉬기는 글렀구나.'
병실 문을 열고 첫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이헌터였다.
"야 임찬영 당당하게 나가더니 왜 다 죽어서 돌아와!"
이헌터는 글썽이더니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두 번째 들어온 사람은 안대위였다.
"찬영아! 우리 찬영이 어디 이상한 데 없고?"
나는 대답할 기운도 없어서 그저 안대위를 향해 살짝 미소 지어 줬다.
세 번째 들어온 사람은 차헌터와 동료들이었다.
그중 김택현이 나에게 달려와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네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김소령과 강할아버지였다.
강할아버지가 채근하듯 말했다.
"얘끼 이 녀석아! 아무리 가는데 순서 없는 세상이 됐다지만, 이 할애비보다 먼저 가려고 했냐? 고얀 녀석"
다들 걱정한 티가 팍팍 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차헌터가 눈치채고 스케치북을 나에게 던졌다.
'좀 좋게 건넬 순 없나? 내가 생명의 은인인데!'
투덜거리며 스케치북에 글자를 채워 넣었다.
[전 괜찮아요. 조금 기운이 없는 것 빼고는 다친 데 없어요.]
내 스케치북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다들 안심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부모님도 이 상황을 알고 계신가요??]
김소령이 나서서 내 질문에 답해주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모르신다. 여기 있는 인원 외에는 비밀에 부쳤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강할아버지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차헌터랑 김소령이 나눌 대화가 있으니 다들 잠시 나가서 기다리게! 꾸물거리지 말고! 아~언능언능!"
다들 미련이 가득한 시선을 나에게 보냈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차헌터와 김소령이 나에게 할 말이 있는지 표정이 매우 진지해 보였다.
모두 나가자, 차헌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가지고 온 괴물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셨습니까?"
김소령이 차헌터와 나를 쳐다보면서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뗐다.
"숨기려 했네만 말할 수밖에 없겠군... 자네들이 만난 존재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동물이라네..."
김소령은 괴물 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생태 유전자연구소]라는 단체가 있다네. 얼마 전까지 그들과 교신하고 있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경고했어! 오염된 좀비의 시체를 먹은 동물들중에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괴수화 되는 개체들이 생겼다고..."
- 작가의말
오늘의 찬영언어!
"없다!"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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