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좀비가 살아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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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묵향
작품등록일 :
2024.07.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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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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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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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필요에 의한 협조

DUMMY

[꽈~직]


정문 셔터에 붙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마지막 좀비의 머리에 도낏자루를 박아 넣었다.


그대로 스르륵 쓰러진 좀비의 머리에서 도낏자루를 빼내고, 앉을 곳을 찾아 정문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정문으로 가는 길은 내가 죽인 좀비 시체가 산처럼 쌓여 구토를 유발했다.


한참 구토하고 겨우 진정됐을 때,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정문 끄트머리에 시체가 없는 자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앉고 나니 손가락 한 마디도 꼼짝할 수 없었다. 시체들이 즐비한 앞도 볼 자신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휴식을 취했다.


끝없이 울리던 총성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한 자세로 기절하듯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김택현이 소리쳤다.


"찬영아! 괜찮은 거냐? 죽은 거 아니지?"


그러자 김한석이 말했다.


"이미 죽었는데 뭘 또 죽어?"


김택현은 김한석에게 그만 좀 하라며 타박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정확하게 들렸지만, 나는 반응할 수 없었다.


'내가 오늘 죽인 사람의 숫자가 몇 이지? 셀 수는 있나...?'


마음이 깊은 심해로 가라앉자, 몸도 함께 축 늘어졌다.


그런 내 앞에 사람의 신발이 보였다.


나는 그 신발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원망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왜! 이제야 온 거야? 왜... 왜 내 말을 안 믿고... 한빛으로 날 찾으러 간 거야? 안 갔으면 형도..."


고개를 살짝 들어, 내 앞에 서있는 차헌터를 바라봤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원망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차헌터가 테라스와 처참한 광경이 펼쳐진 정문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임찬영 고생했다."


차헌터 입에서 나오는 위로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이 모든 게 그의 탓이 아니라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차헌터는 선의를 베풀어 부모님에게 약을 전달할 수 있게 도와줬는데... 나는 배신으로 보답하고, 나 살자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좀비들을 정리하는 동안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차헌터가 있었더라면... 차헌터가 있었다면...'


막상 차헌터를 대면하자, 알 수 없는 감정 기복에 휩싸여 눈물만 흘렀다.


하지만 나에게는 고개를 드는 힘조차 사치였다. 힘없는 고개는 곧 떨궈졌다.


"온몸에 피 칠갑하고 널브러져 있다니, 널 보면 부모님이 거품 물고 쓰러지실 거다. 들어가자, 찬영아"


차헌터가 좀비가 아닌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누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울기만 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힘이 없어 일어날 수 없었다. 차헌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좀비 새끼가 눈물만 많아서는..."


눈물을 뚝 그쳤다.


'내 감동 내놔! 이 다정한 개새끼야!'



차헌터는 날 둘러업고 있는 힘껏 테라스로 점프해 올라갔다. 그리고 내 몸을 짐짝처럼 테라스로 던졌다.


[슈~~~웅~ 쾅!]


나는 테라스 벽에 메다 꽂혔다.


"쿨룩,쿨룩"


엄청난 고통과 함께, 기침이 쉼 없이 터져 나오면서, 각혈을 시작했다.


'이제 날 죽이려는 건가?'


차헌터가 땅에 착지한 후 다시 힘껏 뛰어올라 테라스로 착지했다.


테라스 구석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나를 보고, 김택현이 뛰어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차헌터님 애를 던지면 어떻합니까!"


차헌터도 곤란하다는 듯이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문들은 다 막혔고, 들어는 가야겠고, 생각나는 게 테라스로 올려놓는 거였다. 근데... 힘 조절하는 걸 깜빡했네."


미안한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복수했네! 뺑뺑이 돌린 거 복수한 거네...'


차헌터를 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김택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에게 다가와 내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김택현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차헌터가 던진 덕분에 나의 의식은 점차 사라졌다.





내가 의식을 차렸을 때, 내 방안 내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공간에서,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익숙한 남자들이 빙 둘러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헌터님 큰일입니다!"


"나도 알고 있어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야!"


그때 최정민이 머리에 무언가를 붙이며 말했다.


"아앗싸! 쓰리고 !! 못 먹어도 고! 인 겁니다!"


최정민의 머리에 붙은 건 똥 쌍피였다.


그렇다. 그들은 지금 남의 집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형이 죽고, 자식이 죽은 초상집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나는 서둘러 부모님이 계신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과일을 깎고 계셨고, 아빠는 음료수를 준비해 나르고 있었다.


'아놔! 이런 개념 없는 그레이 십팔 색연필들을 봤나!'


나는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가 스케치북을 들고나왔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지금 여기서 화투 칠 땝니까?]


화투에 집중하던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눈치 없는 김한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깨어났냐? 어떻게 이틀을 내리 자냐? 죽은 줄 알았다."


김택현이 혹시라도 말실수할까 봐. 김한석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내가 깨어날 거라고 기다리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봐요. 멀쩡히 일어났지."


차헌터가 스케치북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너 그게 생명의 은인에게 할 말이냐? 내가 거기 그냥 뒀으면 너는 죽었다."


나는 차헌터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뀌며 생각했다.


'네 당신이 던진 덕분에 일찍 세상 하직할 뻔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 분위기가 화투를 칠 분위기는 아닌데요.]


이번에는 차헌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꼬맹아 원래 초상집에 가면 화투 치고 술판을 벌이는 거란다. 그래야 망자가 미련 없이 떠나지."


차헌터가 농담이라고 던진 말에, 우리 집에 있던 모두가 얼음이 돼서, 차가운 눈빛으로 차헌터를 바라보았다.


따가운 시선이 오랫동안 자신에게 꽂히자, 차헌터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긴 지금 이런 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김택현 임찬영 따라와."


차헌터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현관문을 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내내 조용하던 최정민이 외쳤다.


"차헌터님!! 피박에, 광박에 쓰리고라고요! 계산은 끝내고 가셔야죠~~오!!"


나는 조용히 현관문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아... 이런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 자신이 수치스럽다.'




우리는 조용한 곳을 찾아 옥상으로 올라왔다.


깨어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봤다.


[형은 어떻게 했나요?]


차헌터는 내 질문을 예상했는지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저기서 편히 안식에 들었다."


차헌터가 가리킨 곳은 대로변 가로수였다.


무성하게 자라있어야 할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봉분과 함께 나무로 된 비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헌터님이 해주신 건가요?]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는 내 동료들을 구했고, 쉘터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의 은인이다. 편히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김택현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맞아 일반인들이 낼 수 없는 용기였다. 쉘터에 군인들이 모두 모여 한뜻으로 너희 형을 저 자리에 모셨어"


[감사합니다.]


나는 허리를 깊숙이 굽혀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나에게 김택현이 비장한 얼굴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찬영아, 우리가 지켜오던 쉘터 사람들이 전멸했다."


택현의 첫 마디에 가슴이 철렁하며 충격을 받았다. 표정을 숨길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헤어지고 쉘터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거나 끌려갔다."


나는 차헌터가 급히 자신의 쉘터로 돌아갔고, 내가 아는 차헌터라면 다이너마이트 놈들 정도는 무난히 막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내 탓 같아서... 날 돕다가 사람들이 죽은 것 같아서... 내 마음속에 자책하는 마음이 꿈틀거렸고, 비통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었다.


"죽은 이들을 수습하다가 쉘터에 있던 여자들이 얼마나 끌려갔는지 숫자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8명이 끌려갔다. 우린 그들을 구해야 해, 그래서 급하게 널 찾아다녔다."


점점 어두워지는 택현의 표정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들을 구하는 걸 도와달라는 말인가요?]


"그래 파괴자 놈들은 우리 얼굴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는 알려지지 않았지... 네가 쉘터로 잠입해 끌려간 여인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고, 다이너마이트의 정보를 가져다주었으면 한다."


택현의 설명이 길어지자, 마음이 급했던 차 헌터가 일본도를 내 목에 겨눴다.


"지금 죽을래? 우리를 돕고 하찮은 목숨 건질래?"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끌려간 여자들의 걱정으로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기로는 여자들은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다 비참히 죽는다고 했다. 내 마음속에 분노도 같이 끓어 올랐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나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무서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이너마이트는 끼리끼리 모인다고 잔혹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첩자라는 것을 들키면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리고 살기 위한 일이지만 사람을 헤쳐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차헌터는 실시간 변화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내 목에 겨눠진 일본도를 거두며 김택현처럼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파괴자 놈들에게 끌려간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야. 지금도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부탁한다."


좀비는 없애야 할 인간의 적이라던 차헌터가, 좀비인 나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부탁하듯 말한다. 그가 얼마나 간절한지 가슴으로 와닿았다.


'뭐 어차피 선택지도 없잖아? 거절하면 바로 죽이겠지... 어휴"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허락의 고갯짓을 본 차헌터와 김택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차헌터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역시 우리 정의로운 좀비 새끼! 착하기도 하지!"


타이밍은 이때다. 나는 부모님의 안전을 확실하게 못 박을 생각으로 스케치북을 들었다.


[제가 첩자로 가있는 대신 우리 부모님을 꼭 지켜줘야 합니다. 약속하시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차헌터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한 김택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차헌터님 찬영이가 이제 우리를 돕는다는데, 이제 이름으로 불러 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차헌터는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그래도 좀비 새끼는 좀비 새끼다."


나는 차헌터의 독설에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했다.


'이 꼴 저 꼴 안 보고 그냥 튈까?'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차헌터가 한마디를 보탰다.


"죽고 싶으면 무슨 생각인들 못 할까?"


나는 급하게 표정을 갈무리하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우리 일단은 안대위님부터 뵈러 갑시다. 찬영이의 생환 소식은 알려야죠"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통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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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미모의여인! +1 24.08.15 6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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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새로운 보금자리 +1 24.08.13 6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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