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1화
1211년 7월 18일.
네헬브는 피의 권능으로 시안의 관자놀이를 우선 닫았다. 그 안에서 추출해낸 것은 푸른 색의 잘 갈린 탄자.
“ ···마탄인가. ”
자연적으로 생성된 고농도 마석의 핵, 그것을 가공하고 나면 대개 이러한 새파랗고 은은하게 빛나는 빛을 띈다. 그것을 탄자로 이용하게 되면 수 천 가지의 마술 회로를 겹칠 수 있어, 그야말로 마탄이 된다.
“ ···델쉬비타, 퇴역한 줄로만 알았는데. ”
“ 본래는 그랬어야 했지···하, 옛 친구에게 저격 당하다니, 이녀석도 참 지지리도 운이 없어. ”
“ 시안의 의식은 어때? ”
“ 아주 깊이 잠들었어. 다행히, 녀석이 내 경고에 반응을 한 건지 관자놀이를 완전히 관통하기 전에 근육을 경화했더군.
그 덕에 뇌 전체가 터져 나갈 것을 측두엽 부분 5%의 손실에 그쳤다. 하지만 당분간은 기억과 인지, 판단 기능에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겠어. 지금은 내 뇌를 일부분 포팅해서 버티곤 있다지만··· ”
“ 크론드로 간다는 건···행정부 직원의 등록된 생체 정보를 얻기 위함이겠네. 당신 정도라면 뇌 조직의 재생은 무리도 아니겠지. ”
“ 유감이야. 무리다. 뇌의 완전한 재생은 내가 활동하던 시대에서도 완전히 개발하지 못했어. 자네와 한 판 할 때도, 뇌 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이유가 있지.
그곳만 멀쩡하다면, 기억에 있는 나머지 기관을 분석하여 재생하는 건 가능하지만, 이녀석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거든. ”
“ ···제기랄. ”
“ 완전품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복제품을 이식하게 되겠지만···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거다. ”
—
그 시각, 시안은 공허와 빛이 휘몰아치는, 어부를 가둔 새장. 아가타의 이공간에서 꿈을 꾸고 있다. 그것은 오래되지 않은 옛 기억. 본세계에서의 친우들과의 여정이 끝나가던 시점.
그들이 켈브의 남부 지방에서 잠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날, 7명이나 되는 파티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허름한 여관을 찾아, 둥글고 큰 테이블이 놓여진 로비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시점이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
독실한 아리안트교의 신자, 그리고 레나의 친우이기도 하였던 순금발과 벽안을 가진 여성. 아녜스는 같은 종교를 가진 이들과 함께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 ···당신은 참여하지 않는 건가요? 시안 군. ”
여정의 초반에 처음 만난 델쉬비타는, 소소한 의문을 던진다. 아직까지 종교의 영향이 강한 시대에는, 부부가 같은 종교를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 전, 그닥 독실한 신자는 아니라서요. 델쉬비타 씨는요? 레샬로스교에는 기도가 따로 없나요? ”
“ 저희 종교는, 생명의 나무에서 태어난 모든 것들에게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죠. 그러니 기도를 올리는 건, 그들을 받아들인 이후인 식후에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지금 해봤자 기도가 닿지 않을 테니까요. ”
“ 아하··· ”
“ 오늘은 먼 길을 다니느라 지쳤을 테죠. 시안 군 먼저 식기 전에 드셔도 될 겁니다. 아리안트의 고위층이 읊는 진또배기 기도문은 상당히 길거든요. ”
아리아의 아녜스, 세이켈의 릴리에, 베뉘우의 사네리아, 동레스프의 에이하, 크론드의 리에르까지. 아리안트교가 주교로 자리 잡은 곳에서 살아갔던 이 여성들은 저마다의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건실히 기도 드리고 있었다.
“ ···그럼, 먼저. ”
시안은 숟가락을 들었다. 은으로 된 식기가 달그락거리고, 진하게 우러난 스튜를 한 입 삼킨다.
“ ···? ”
무언가 이상한 맛, 돌덩이를 씹어먹는 듯한 내음이 퍼져오고.
“ 읍, 우윽··· ”
곧이어 뱉어낸 그것은, 분명히도 피의 색깔을 띄고 있었다. 또한 뱉어내도 뱉어내도,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 이상했다. 약간의 양이었던 그것은 이윽고 주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채우기 시작한다.
“ 시안 군, 기억하고 있는지요? ”
델쉬비타는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한다. 시안은 당황스러움에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혈액이 목구멍을 가득 채우는 탓에 목소리가 나올 틈이 없었다.
“ 제 고향에 벌어진 사건의 진실, 그리고 제 동생을 찾아주겠다고. 당신이 그리 약조했죠. ”
“ 우헥, 우흑, 우웨엑··· ”
“ 그 한 마디가, 제 주박을 풀고 다시금 걸을 수 있도록, 그리 만들어 줬어요.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히 같을 테죠.
그러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시금 그 맹세를 들을 날을. ”
그의 오른쪽 의수에는 작은 권총이, 총구는 분명히도 시안의 관자놀이를 향해 조준하고 있다. 무언가를 저항할 새도 없이,
‘ —! ’
들리는 소리도 없이, 무언가가 피부를 관통했다는 감각만이 전해져 온다. 진한 화약과 휘발성 마력 물질의 냄새. 머금은 피의 냄새. 여관 안에 놓여진 자그마한 꽃병 안 흙의 냄새.
안개꽃이 자라나 있다.
—
“ 레나?! ”
그리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흩어져 간다. 시안은 갖가지 장비에 둘러 쌓인 채로 깨어났다.
“ 오, 오랜만이군. ”
“ 네ㅎ···그···이름이··· ”
“ 네헬브다. 기억과 인지 쪽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제이드 그 양반이 말하던데, 진짜네. ”
“ 아···난···어떻게 된 거지···? ”
“ 델쉬비타, 기억하나? ”
“ 델···아, 윽··· ”
“ 떠올리려고는 하지 말고, 대충 알아만 둬. 녀석이 금기 집행관 쪽의 의뢰를 받아, 연설이 끝나자 마자 널 저격했어. ”
“ ···그런가. 역시. ”
“ 시간이 많이 없어. 지금 너도 강제로 의식을 깨운 탓에 좀 찌뿌둥 하겠지만, 지금 당장 이동하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해질 거야. ”
“ 그래, 가면서 말하자고. ”
둘이 설비실의 문을 열고 나오자, 바로 옆쪽 기기 조작실에서 나온 가운과 셔츠를 입은, 붉은 포니테일의 여성.
“ 시안! ”
“ 어···리, 에르··· ”
“ 맞아! 나는 기억 하는구나! ”
“ 와, 나 좀 많이 섭섭한데. ”
“ 누나가 얼마나 놀랐는 지 알아?! 갑자기 축 늘어진 채로 와서는 뇌 시술이 필요하다고 말하길래···! ”
“ 누님, 그···반갑긴 한데. 지금 많이 급해서··· ”
“ 금기 집행관 말이지? 응, 아직 오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내가 팀원들이랑 최대한 시간– ”
‘ 쩌–엉–!! ’
푸른 마소에 감싸져 나온 인간의 형태.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자태는 분명히도, 금기 집행관의 상징과도 같은 기다란 제복이었다.
“ 아, 역시 여기였나. 뇌 과학 시설동··· ”
“ 시안, 어서 뒤로. ”
네헬브는 앞으로 나선다. 그의 현재 상태에서는 조금 벅찬 정도의 기백을 가진 이었으나. 독에 빠져 궁지에 몰린 이상 별다른 수가 없었다.
“ 마르티노 마도공화국, 금기 관리청 집행부···동부 관할 2급 행동 대장. 아, 더럽게 기네. 네스티아라고 한다. ”
“ 혈마법 몇 번 쓴거 가지고, 2급씩이나 출동할 일인가? 여전히 그 나라는 째째하기 그지 없네. ”
“ 누가 아니래. 현자라는 녀석들이 절차가 그렇다니까 뭐, 암튼 간에. ”
네스티아는 로브 안쪽에서 보틀을 꺼내 열고 조금 홀짝이려다, 텅 빈 것을 알아버리고 인상을 찌뿌리고 다시 집어 넣었다.
“ 하아···귀찮은 일 생기지 않게, 잘 좀 부탁한다. 거기 있는 언니는, 다치기 싫으면 다른 데로 가 있는 게 좋아. ”
“ 미안하게 됐네···! 이 녀석이 좀 밉상이긴 해도, 내 소중한 후배거든? ”
크론드 공업국, 기술의 발전을 모토로 둔 국가에서 일하는 이들의 개인 무장 수준은, 절대 무시할 수준은 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곧바로 리에르가 소규모 아공간에서 꺼내든 마공학 펌프식 샷건만 해도, 직격만 한다면 한 탄창으로 바위를 부술 화력을 자랑하니.
“ 아주 질척거리면서 귀찮게 해줄 테니까, 오늘 집에 돌아갈 생각은 접어 둬! ”
“ 미치겠네 정말··· ”
‘ 우웅— ’
그러나 저들 앞에서 마법, 그리고 마공학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그들은 마법의 한계를 넘어선 자들을 제재하는 역할이니까, 그에 대응할 수단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 첫번째이자 대표적인 수단. 세이켈 성 지하 격리소처럼, 근방의 마소를 제어하여 모든 마법과 마동 장치를 무력화 하는 파장, 그것이 네스티아의 로브 단추에서 퍼져 나오며, 샷건은 단박에 전원이 꺼지며 고물 덩어리가 되고 만다.
“ 어, 어라? ”
“ 저항하지 말랬지. 거기 즈레아르 씨도. 혈마술도 못 쓸 거고, 쓸데 없이 저항하면 때려눕혀서 끌고 간다. ”
네헬브는 아무 말 없이 등에 매고 있던 머스킷을 리에르의 손에 쥐어주었다. 화약만 들어간 구식 머스킷이, 지금의 상황에선 그 고물보단 나을 테지.
“ 먼저 가라, 시안. 에시스 선착장에, 30분 뒤 출항하는 배가 있을 거다. ”
“ 배···? 네헬브 넌 어떡하고··· ”
“ 내 걱정은 됐어. 그 배는 엘리크로 가지만, 선장에게 미리 너한테 여권을 주라고 연락해 뒀거든. 그걸 받고 남쪽으로 쭉 계속 내려가면 메이그다. 그곳에서 합류하자. ”
“ ······ ”
네헬브가 작게 시안에게 말을 전달했다. 리에르와 그에게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괜한 분함이 밀려오지만, 모든 마법과 마도구가 봉인된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 시안이다. 그의 직장이었던 만큼 확실히 파악해 둔 출구를 향해, 그는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아–아, 놓쳐버렸네. ”
“ ···목적은 그게 아닐 텐데. 내 마왕의 심장, 그것이 숨겨진 곳을 찾는 거 아닌가? ”
“ 그래. 엉뚱한 곳을 가는 것 같길래, 내가 개미집을 쑤시러 왔지. ”
“ 성격 더러운 녀석. ”
둘은 동시에 스텝을 밟아 서로에게 돌격한다. 마체테와 주먹이 맞닿기 직전, 시안은 지하에 숨겨진 연구소를 빠져 나가며, 구구궁 거리는 진동을 느꼈다.
—
크론드 공업국 북동부, 에시스 선착장.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곳으로, 무거운 몸을 겨누며 도착한 시안은, 출항을 기다리는 거대한 배에 몸을 실었다.
“ 신분증. ”
“ ···네헬브가 보냈다. ”
“ 아. 바로 선장실로 가십쇼, 다음. ”
짙은 안개와 어둠이 드리운 바다가 보인다. 잠시 고향을 떠나, 그는 새로운 곳을 향해 움직여야만 했다
“ 다음, 다음···아, 레시어잖아. 이름이··· ”
“ 델쉬비타. ”
“ ···! ”
“ 아, 맞나 보네. 다음. ”
불편한 옛 인연과 함께하는, 목숨을 건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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