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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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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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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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 (2)

DUMMY

“검흑제라. 어우, 그분 찾아서 뭐 하시게요. 위험해요. 괜히 정보가 적은 게 아니에요. 천의맹 무사들도 못 잡는 사파의 거물인데.”


점소이가 질겁하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한소백의 스승, 그는 하오문조차 질색할 정도로 저명한 악인이었다.


정말로 검흑제의 위치를 못 알아냈거나, 혹은 보복이 두려워 알고도 쉬쉬하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문파 차원의 기밀 정보에 접근하기에는 아직 자격이 없었다.


‘역시 독자적인 정보조직을 창설해야 하나. 할 일이 참 많군. 지금부터 시작해도 몇 년은 걸릴 테고.’


첩정대 소속이라지만, 청선도 함부로 들쑤시고 다니기 어려웠다. 천천히 작업을 시작하는 게 다였다.


대신 한소백은 소재지가 적힌 종이를 펼쳤다.


화르륵.


연기가 번지더니 순간에 종이를 태웠다. 삼매진화의 불꽃이었다. 상승의 경공이 몇 시진이고 땅을 가로질렀다. 곧 외진 장소의 집채에 도착했다.


“당신, 일급 낭인 묵룡도(墨龍刀). 맞나.”


용모파기는 필요 없었다. 기억 속 얼굴은 매우 선명했다. 이미 한 번 죽인 자였어도 말이다.


“···누구냐.”


경계는 당연했다. 소년의 외관을 지닌 자가 바람처럼 다가와 신상을 캐묻는다. 묵룡도라는 별호를 지닌 낭인은 한껏 긴장한 채 병장기를 만졌다.


그때 득달같은 공세가 이뤄졌다.


콰아앙, 퍼헉!


복부를 후려치고 안면을 연타하기까지 별안간이었다. 낭인의 무장은 해제되고, 점혈로 몸이 굳어졌다. 목 윗부분만 간신히 움직일 뿐이다.


“나,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오! 난 그저 한낱 낭인일 뿐··· 크윽.”

“그저 고용관계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켰다. 뭐 그리 변명할 순 있는데, 내 알 바인가. 미래의 너를 탓해라.”


십이혼의 소속은 아니다. 단지 일급 낭인으로서 삼 년 후, 한씨세가 습격에 참여했다. 살생부에도 적히지 않은 잡것인데, 불운하게도 눈에 띄고 말았다.


복수에 잡다한 사연이 필요한가.


한소백은 낭인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목뼈가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서늘한 혼잣말만 자리에 남았다.


“의뢰는 가려 받았어야지.”


바깥으로 나온 한소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십이혼에 소속된 원수들은 위치를 찾아내는 것부터 까다로웠다. 하잘것없이 홀로 활동하는 무인을 제거하는 게 다였다.


뻐근한 몸을 살살 풀 때였다. 불현듯 일어난 바람결이 옷자락을 굽이치게 했다.


“주군, 귀월객(鬼鉞客)의 소재지를 찾았습니다.”


첩정조장 청선이었다.


한소백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그간 강호를 누비고 다녔다. 워낙 빈약한 환경인지라 별 소득이 없었는데, 기어코 살생부의 무인을 발견했다.


“왜 그러십니까, 주군.”


다만 문제가 있었다.


‘하필 귀월객이라. 꺼림칙하군.’


한때 정파의 협객이었으며, 기구한 사연으로 유명한 자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었다.


‘타락한 협객, 귀신 같은 도끼술의 달인, 사마외도의 남편. 그리고······.’


이 모든 수식어를 제외하고, 한소백에게도 여러모로 뜻깊은 자였다.


‘내 첫 복수 대상.’


이따금 나타나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다. 심하게 다친 여인을 구하고 사랑에 빠진 정파의 무인. 헌데 그 대상은 흉마전의 마인이었다.


아내를 비호한 도주 과정에서 무림공적 취급까지 받았다. 그리고 한씨가주가 귀월객의 아내를 죽였다, 라고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악의적인 계략이나 명령이 아닌, 순수하게 본인의 의사로 한씨세가 멸문에 참여한 자.


그 끝은 비참했다.


─한씨세가라. 내가 복수를 갈구했듯 자네도 나한테 복수하러 온 건가. 그래, 언제고 각오했던 바다. 내 목을 가져가라.


텅 빈 왼발과 오른팔. 사지근맥은 진작에 찢겼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몸은 앙상했다. 케케묵은 독방 속 폐인은, 마른기침을 연신 토했다.


─넌 독불마검 한대명을 기억하는가.

─모르지. 내 복수의 대상은 오직 한군악. 그 빌어 처먹을 놈뿐이다.


스륵.


검을 겨눈 한소백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토록 고대하던 복수의 첫걸음. 헌데 그 표적은 너무나 형편없이 초라했다.


비정한 대화와 치열한 혈전. 그리고 복수의 성취에서 오는 감격 따윈, 있을 리 없었다.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무르군. 복수를 일일이 따져가며 할 셈이냐. 복에 겨운 고민이로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한소백에게, 귀월객은 회한을 담으며 채근했다.


─난 복수조차 해내지 못한 채, 이곳에서 처량하게 죽어가고 있다. 흉마전과 협력하여 손에 피를 묻힌 결과가 이 꼴이지.


침묵이 불편하게 돌 때, 귀월객은 광기를 머금으며 크게 울부짖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지 마라. 확실한 복수가 네 눈앞에 있다. 자, 가여운 복수자여. 내 목을 거두어 떠나간 이와 너 자신을 위로하라!


귀월객은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몇 번이고 헐떡였다.


한평생의 숙원을 실패했다. 짙은 미련에 자결조차 하지 못한 복수의 지박령이 여기 있다. 누군가가 이 삶을 끝내주길 원하며.


─알겠다.


한소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질감에서 빚어진, 어수선한 마음을 접는다. 귀월객의 목에 칼날을 걸쳤다. 한탄 섞인 목소리가 암울하게 들려온다.


─부럽군, 부러워. 자네라도 해내서 다행이야.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흐릿하구나···.




탁.


회상이 끝나갔다. 정신을 차린 한소백은 탁자에 놓인 술을 바라봤다. 주문하지 않은 술을 내준 건, 몹시 익숙한 얼굴이었다.


“소협이 술 하나 없이 궁상맞게 앉아있구려. 어른이 사주는 거니 받아먹으시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침묵이 잠시 일었다.


귀월객은 복수를 위해 현재 흉마전과 협력하는 상태. 작은 현의 반점에서 문지기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소협도 내게 볼 일이 있는 건가?”


흑빛이 두 눈에 섬찟하게 맺혔다. 귀월객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자들. 이미 몇 번이고 겪은 듯했다.


탁.


한소백은 술잔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독기를 태울 준비를 마쳤는데 다행히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익숙하신가 봅니다.”

“늘상 겪었고, 아직 용케 살아있네.”


에둘러 표현한 협박이다. 이자의 목을 지금 당장 거두어야 하는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물었다.


“귀월객께서는 복수를 어찌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은 낯선 걸까. 의외의 물음에 귀월객은 흠칫했다. 그리고 잠깐 주저하다가 짧고 굵게 답했다.


“한평생의 숙원. 기필코 해내야 하는.”

“복수의 끝이 만약 허망하다면요.”


흉흉한 눈초리와 함께 단호하게 반박한다.


“그럼. 복수하지 않는다고 이 공허한 가슴이, 충만해질 것 같나. 원수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라고?”


목소리에 분노가 담긴다.


“어질고 고상하신 선인들께서는 늘 말하지. 복수는 무가치하다. 다른 삶의 목표를 찾아라. 그게 먼저 간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다.”

“그저 정석적이고, 형식적인 위로죠.”

“옳거니, 잘 아는군! 이 가슴에 번지는, 사무칠 정도로 저릿한 통증을 어찌 해소한단 말인가. 공감도, 이해도 못 한 자가 늘어놓는 허황한 이상일 뿐이다.”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매. 동시에 올곧은 선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전 더 이상 복수에 매몰되지 않을 겁니다.”

“복수하지 않겠다는 건가?”


목울대가 잘게 떨린다. 한소백은 안타깝게 바라보며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설파했다.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전 당신과 다르게 아직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기에, 이 행복을 누리며 분노를 최대한 절제할 것입니다.”

“······.”


귀월객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느슨하게 폈다. 경직된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술을 들이켜고 한결 편안해진 어투로 말했다.


“···부럽군, 부러워. 지당한 말이로다. 허나 나는 이룰 수 없는 방식이군.”

“당신이 복수를 바라듯, 복수의 과정에서 탄생한 피해자가 당신을 원망할 겁니다.”

“각오한 일이었다. 그날이 찾아온다면, 내 목을 기꺼이 내줄 용의가 있다.”


술을 다시 들이켠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복수에 성공하기 전까지 난, 몹시 이기적이지만 오직 나만을 위해 살겠다.”

“응원의 말밖에 드릴 수 없겠죠.”


한씨가주가 죽든 말든 한소백은 별 상관없었다. 다만 습격에 참여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어쩐지 소협에게서 동질감이 느껴지는군. 한 잔 같이 나눌까.”

“좋지요.”


빈 술잔이 채워진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 복수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 벨 테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복수자는 평화롭게 술잔을 들어올렸다.


“우리의 복수를 위하여.”


탁, 술이 찰랑거렸다.



* * *



귀월객의 처분은 잠시 뒤로 미뤘다. 그는 옛적의 한소백이며, 또 다른 검마였다. 그의 처지와 심경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알기에, 동질의 인간으로서 동정했다.


저자의 삶은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소백은 살생부 속 명단을 떠올리며 뒤숭숭한 마음으로 걸었다. 그때 낮고 작은 소리가 귓가를 두들겼다.


청선이 보내는 신호였다.


“무슨 일이지?”


전음의 파동이 은밀하게 울렸다.


─첩정대주의 긴급 호출입니다. 천흉(天凶) 현현(顯現). 위치는 강릉부(江陵府) 지강현(枝江縣). 근방의 전 대원은 즉각 집결하라고 했습니다.


탈선은 여기까지였다.


한소백의 신분은 첩정대. 청선의 조력으로 외부 활동을 그나마 자유롭게 할 수 있다지만, 계속 게으름을 피워선 안 됐다.


공력이 발치로 내리달았다. 지반이 순간에 움푹 파이고, 날파람이 전신을 지났다.


파앗!


쾌속의 경공 질주가 산자락을 갈랐다. 전력을 해방한 청선조차도 따라가기 버거울 지경이었다.


─잠시만요, 주군. 이쯤에서 다시 전음을 수신해야 합니다.


청선이 납작 숙이며 땅바닥에 귀를 댔다.


촘촘한 짜인 전음 연결망. 십리(十里)까지 전해지는 광역 전음을 일정 장소마다 보낸다. 광활한 중원 땅에서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한 체계였다.


곧 고개를 들어 올려 다급하게 외쳤다.


─새 급보입니다. 현재 흉마전과 무당 도사들이 격돌. 흑송(黑松) 진인이 천흉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빠른 경공이 다시금 이뤄진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첩정대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강호인들의 지명으로 호광 땅.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씨세가는 전부 꿰차야 했다.


청선이 다시금 전음을 수신하였다.


─무당파 도사 중 명현 진인의 직전제자가 있습니다. 현재 몹시 위급한 상황. 한씨세가 소속임을 알리고 개입하라는 명령입니다.


명현 진인은 한씨세가에 초청된 검사부였다. 일전에 일공녀와 관련해서 인연이 있었다. 또한 무당파 도사들에게 은원을 입힌다는 건 좋은 기회였다.


쑤우우웅─!


대기가 휘어지는 소리가 굉장히 요란했다. 마침 가까운 곳이어서 흉마전과 무당의 격전지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진 정도 걸렸다.


채앵, 챙!


금속음이 곳곳에서 울려왔다. 도복 위에 태극 무늬를 단 자들과 통일되지 않은 복장의 세력이 격돌하고 있었다. 걔 중에는 첩정대로 추정되는 무사들도 보였다.


“좌방(左方), 수세(守勢)! 검진을 견고히 하라!”

“한씨세가에서 지원이 왔다! 인원이 더 올 테니 조금만 더 버텨라!”


긴 전투 탓에 지친 걸까. 다들 호흡이 불안정했다. 뒤편에서 은밀하게 뻗어오는 손길조차 감지하기 늦었다.


“현료(玄料), 피해라!”

“네?!”


누군가 황급히 외쳤다. 호명된 소년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흉마전의 마인. 사나운 기파가 단검에 맺혀 불현듯 찔러온다.


그 순간, 웬 검날이 끼어들었다.


쨍! 스걱─


급습이 가로막힌다. 검의 궤적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흰빛이 적의 목을 훑듯 지났다. 소년이 창백한 안색으로 물었다.


“누, 누구···?”


스륵.


교전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걸까. 동년배의 사내는 방립을 벗으며 수려한 외모를 뽐냈다. 전장으로 뛰쳐나가는 와중, 무심한 목소리를 별거 아니란 듯 남겼다.


“한씨세가 한소백입니다.”


첫 강호 등단을 알리는 소개였다.


작가의말

음, 1화를 수정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각오는 했는데 많이 별로인가 보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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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7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6 8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6 9 16쪽
26 혈령탄 24.08.24 500 8 13쪽
25 가르침 (2) 24.08.23 560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52 11 14쪽
» 살생부 (2) 24.08.18 674 12 12쪽
19 살생부 24.08.17 663 13 13쪽
18 대공자 24.08.16 67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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