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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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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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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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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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

DUMMY

흉악하기로 손에 꼽힌다는 이들만 모인 곳이 바로 흉마전이다. 그곳에서 이십 년을 버틴 거악이 현재 궁지에 몰렸다.


언제 구명절초를 꺼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냥하는데 신중히 임해야 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기공의 여파로 세 명의 대주는 벌써 녹초가 된 상태였다. 방심하면 같이 저승길 행이었다.


“새파란 후배님께 벌써 하나를 빼앗겼군.”


허나 막대한 변수가 전장에 파고들었다. 본디 내공운용이란 인체 전반을 아울러야 하는 법. 외팔이가 된 것만으로도 평생 익힌 모든 공부가 엇나가고 만다.


이제는 압도적인 필승이었다. 대주들이 웃었다. 잔뜩 구부려진 입꼬리가 하나 같이 서늘했다.


“무려 건곤지황(乾坤指皇)의 팔 한 짝이다. 검객으로 따지자면 평생 칼을 못 쥐는 격이지. 너무나 확실한 공적이로다.”

“검강(劍罡)? 지학의 나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던가. 내 눈에 이물질이라도 낀 듯하다. 나도 못 해낸 걸 저 꼬맹이가 어찌···.”

“내 아버님이시다. 공대해라.”


그놈의 아버님 타령에 한소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생까지 통틀어 저리 장성한 아들을 둔 기억이 없었다.


헌데 언짢은 마음과 다르게 피식 웃음이 뱉어졌다. 줄곧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고전이었다.


이제야 심중에 여유가 생겼다.


“선배님들, 도주하게 둬선 안 됩니다. 마공 탓에 발놀림 하나는 잽쌀 테니 당장은 저자를 죽이는 데 집중하시죠.”

“감각이 꽤 무뎌졌나 보군.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저길 봐라.”

“예?”


은은한 현기증에 정신이 아찔했다. 심신 양면으로 피로가 쌓인 까닭이다. 한소백은 불안정한 호흡을 진정시켰다.


[손가락에 짓뭉개질 개미 주제에···.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 너희 같은 하수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내가 오늘날까지 어찌 살아남았거늘···. 제길, 제길!]


쿨럭, 살덩어리가 섞인 핏물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입마(入魔)까지 찾아온 듯했다.


“마인은 주화입마를 달고 사는 족속이다. 내면의 열불에 적응을 이미 끝마쳤지. 헌데 저 정도 반응이라면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그래도 구명절초는 경계해야 한다. 특히나 흉마전이라면 제 목숨과 함께 자폭해도 이상하지 않아.”


생명줄을 억지로 붙잡은 귀월객도 그랬다. 그보다 수십 수는 위인 대마인이기에 무슨 기오막측한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자, 검극대주. 어서 가라.”

“네놈께서는 왜 날 보채시는지?”

“응당 칼끝이 닿는 게 먼저 아니던가.”

“겁보가 따로 없군. 뭐가 그리 조심스러운지.”


활시위에 장전된 칼과 같았다. 당장이라도 쏘아질 것처럼 첨예한 기운이 일며, 검극대주가 발을 내디디는 때였다.


부우우웅──!


공기가 찢기는 소리. 산자락 너머에서 웬 거뭇한 점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거대한 암석의 투척.


“맙소사···.”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전장의 소음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깨진다.


콰아앙!


깊은 고랑이 파였다. 운석이 한차례 주변을 휩쓴 모양새였다. 끝이 아니었다. 숲속을 초토화하며 무언가가 급속으로 달려온다.


쿵─ 쿵─ 쿠웅─


[형 님 께 떨 어 져 라.]


어찌나 고성인지 순전히 성량 때문에 목소리가 분절되었다. 그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괴인의 외양이었다.


팔 척(尺)을 뛰어넘은 우람한 거인. 정황상 천흉을 가리키는 호칭과 더불어 반사적으로 별호가 떠오른다.


지흉(地凶).


더군다나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곁에 있어 비교적 초라했지만, 충분한 거구의 여성이 마찬가지로 달려왔다. 우락부락한 근육의 결이 몹시 단단해 보였다.


[명색이 초고수 중 필두(筆頭)인데 거, 동생들한테 너무 추레한 꼴 보인 거 아닙니까.]


인흉(人凶).


흉마전 서열 사 위, 오 위의 초고수. 갑작스러운 출현이었다.


천흉까지 합쳐 삼흉재(三凶災)가 전부 모인 것이다. 흉마전 전력의 사 할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제길, 하필 단주께서 부재하셔서.”

“성위단은? 그 자식들 안 오냐! 이 위기의 순간에!”

“본래라면 천검단만 나서도 충분해야지요. 초고수를 셋이나 맞이할 줄은 몰랐으니.”


전장의 규모가 갑작스럽게 커졌다. 직접적으로 닿진 않지만, 독살스러운 마공의 기파에 식은땀이 배출되었다.


[본 전의 위상을 떨어트린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투쟁에 미친 칼잡이들이여.]


공포스러운 으름장. 상대의 무력과 격을 알기에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악랄한 눈초리가 공기를 짓눌렀다.


허나 절망적인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겁먹을 것까진 없어 보이는데.”

“얕볼 자가 아니다. 그러다 네 귀한 목숨, 오늘까지다 검신.”


검신대주의 중얼거림에 핀잔이 들려왔다. 말과 다르게 그도 사뭇 긴장한 상태였다. 동시에 간질거리는 호승심이 얼굴 위로 비치었다.


“할 수 없지. 방계의 기재여, 받아라!”


손을 품 안에 넣었다가 빠르게 뒤로 무언가를 날렸다. 한소백은 곧장 주머니를 낚아챘다. 굉장히 낯익은 상황이었다.


“제상단이다. 내가 예비로 들고 있던 거지. 더 설명은 필요 없겠지?”

“한참이나 선배인 우리가 네게 염치없이 하는 부탁이지만···.”


검파대주가 우스운 호칭마저 관두고 진중하게 물었다. 마치 희망을 일컫는 것처럼.


“검강, 다시 피울 수 있겠느냐?”


그 질문에 흉마전 마인들이 먼저 반응했다. 급하게 천흉에게 진기를 불어넣고 있는 와중에,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허, 우스운 만용이다. 초고수 하나 없건만, 우리를 상대하려는 건가.]


초고수 이상부터는 맞서기 위해선 동격의 고수가 필요했다. 하다못해 바로 아래 경지, 최상위 실력자가 셋은 모여야 대적이 가능했다.


이마저도 모든 변수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계산법이었다. 하수를 떼 무더기로 앞세운다는, 어설픈 수적 논리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론 해답이기도 했다.


“천흉은 이미 전투불능이나 다름없고, 천재 소년에다가 율법 부당주까지 가세하면···. 뭐야, 둘만 조지면 되는 거 아니야?”


검신대주가 손아귀를 쥐락펴락하며 물었다. 그러자 어느새 회복을 끝마친 한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양옆으로 두 명의 대주가 나란히 튀어나왔다. 삼흉재를 난폭하게 노려보며 호기롭게 말한다.


“초고수라고 여태껏 오만하게 굴었던 모양인데, 아직도 상황 파악 덜 됐나.”

“뒤를 한번 봐라. 너네가 그렇게 업신여기던 하수들이다.”


발이 반 바퀴 돌며 후방의 전경을 들춰냈다.


[쓸모없는 것들이, 고작 저거를 감당 못 하고.]


전장의 소음이 그쳤다. 강풍처럼 흉포하게 사방으로 뻗치던 마기의 흐름마저 사뭇 가라앉았다. 거뭇한 핏물이 곳곳에 튄 폐허.


“검극대, 적의 심장을 찔러냈습니다.”

“저희 검신대의 공로가 가장 지대했습니다”

“검파대, 임무 완료했습니다.”


각 무력대의 부대주들이 승전보를 전했다.


혈향이 실로 짙다. 전장의 열기는 잠잠해지지 않고, 도리어 승리에 도취하여 적수를 부르짖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기운. 일종의 거룩한 군기(軍氣)와 진배없었다.


천검단의 집결이었다.


타의로 부러지기 전까지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 집단적인 투지가 삼흉재에게로 쏘아졌다.


[천검단이라. 확실히 껄끄럽다.]


인흉이 미간을 찌푸리며 뇌까렸다.


대주급 인사들은 상승고수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최상위권의 실력자들이다. 검강의 사용자인 한소백까지 합치면 그만한 괴물들이 모두 넷.


천검단이 초고수 하나를 붙들어놓기만 해도 승리는 충분했다.


“초고수를 셋이나 잃다니 뼈 아프겠군.”

“오늘이 바로 흉마전 멸문의 날이다.”


구우우우─!


내공이 동시다발적으로 끄집어진다. 공명음이 번지며 삼흉재를 압박해왔다. 하늘의 검이 전투 태세를 마쳤다.


도주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분명히 그래야 했다.


「흥미로운 광경이로군.」


불현듯 들려온 음성. 그 발원지는 까마득히 높은 상공이었다. 춤추듯 고아하게 내려온다.


「본 전의 초고수가 도망이라니. 마침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괜한 수모를 당할 뻔했다.」


허공답보의 경지를 넘어선, 천상제(天上梯)의 영역이다. 운신에 어떠한 발판도 필요 없는 극상의 경신술.


저벅.


자줏빛 그림자가 하늘에 방만히 서 있었다. 보름달을 등진 탓에 드러난 용모가 어렴풋했다. 그러다가 언뜻 보인다.


“저, 저자는 설마···.”


검파대주가 경악했다. 그의 눈동자에 흉측한 광경이 비쳤다.


귀 아래까지 길게 찢어진 입가, 혼탁한 눈동자와 비틀린 팔다리. 살갗은 불경스러울 만큼 거무스름한 색채로 물들었다. 아마도 마공의 부작용 때문이리라.


중원 땅에 존재하는 모든 마를 압축시킨 듯한 괴인. 존재감만으로도 일대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누구도 입을 열 수 없다.


사상최악의 마(魔).

지독한 악의가 응집된 마굴의 주인.


흉마전주, 망흉악신(亡凶惡神).


십이혼의 수장이 직접 나타난 것이다.


「···헌데 이번만큼은 우리의 불찰이로군.」


존재만으로도 불쾌한 특유의 음성. 마귀가 속삭이는 듯하다. 흉마전주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한 말을 내뱉었다.


「형주 땅에서는 무당과 제갈보다 더 위험한 자들이다. 이 땅에서는 행동거지에 조심하라고 누누이 경고했건만, 결국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건가.」


악귀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검종(劍宗), 저 녀석의 목으로 당신의 노여움이 풀렸으면 하구려.」


시선의 끝에는 지흉이 있었다. 자신을 눈짓으로 지목하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워낙 비대한 덩치 탓인지 바보 같았다.


그리고.


───스가악!


불현듯 실선이 그어지며, 지흉의 목이 상공으로 치솟았다. 확실한 죽음이었다.


사박.


낯익은 목소리는 가히 고압적이었다.


“허락 없이 땅을 디디길래, 대가를 받아냈다.”


격렬한 칼질의 여파로 반투명한 장막이 벗겨진다. 움직임이 일어날 때마다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한씨가주, 한군악.


언제부터 당도했던 걸까. 타인의 인지에서 유유히 벗어나는 그는,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소개했다.


“가주···.”


진정한 힘의 편린에 한소백은 경악했다.


특별한 기세가 없는데도 전율이 등줄기를 탄다. 수없는 칼날의 그림자가 군단처럼 첨예하게 기립한 분위기. 절대자의 위엄이었다.


“여긴 내 땅이다, 사마외도 잡것들아.”


쐐애애액─!


출수에 거침이 없었다. 압도적이면서도 흐릿한 검격이 어느새 인흉의 상체에 치달았다. 신체를 터트릴 듯한 풍압이 담겼다.


[미친···!]


단말마 같은 비명이 터진다. 일수에 서른 번의 변초가 누적된 발경력으로 화해, 내장까지 잔혹하게 강타했다.


동시에 검은 빛줄기가 한씨가주를 스친다. 엄한 위치로 빗맞았다. 직후, 나무줄기가 쩌저적 부서지고, 땅바닥이 뒤집혔다.


콰가가가강!


이내 흉마전주가 다소 아래로 내려왔다.


「지흉의 목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과하다.」


휘우웅, 웅웅─


흑빛 구체가 초속으로 회전한다. 몇 갑자의 공력이 깃들었는데, 자그마치 총 다섯이었다. 그조차 한계라고 도저히 볼 수 없었다.


그 위협적인 광경에도 한씨가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살벌하게 반박했다.


“값을 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다.”


손이 희끗해진다. 칼질의 속도를 가늠할 수 없다. 속전속결의 응수였다.


스가가가각─!


해일처럼 밀려오는 칼날의 궤적. 날카로운 경파가 휘몰아치며 인흉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댔다.


살갗이 붉은 꽃잎으로 흩뿌려진다. 가죽이 벗겨져 불그죽죽한 몸만 남았다. 피해자는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꽈드득, 퍼퍼퍽!


다섯 손가락이 다방향으로 꺾임과 동시에 천흉의 안면이 터져나갔다. 마지막 쾌검식이 목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흑빛 구체가 별안간 추락했다.


쿠르릉─!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굉음이다. 팔방 이백여 장 일대가 들춰진다. 간접적인 여파만으로도 천검단 대부분이 뒤로 튕겨 나갔다.


「나와 동수(同手)로군.」


마굴의 주인이 짧게 감탄한다.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가 내려앉으며, 적빛의 장포가 고고하게 펄럭였다. 홀로 모든 충격을 감당하였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훗날 천하오대검수의 일좌로 등극하는 지고의 검객.


아직 그의 전성기가 찾아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네 배후가 심상치 않다는 건 익히 알았으나, 여태껏 본 실력을 숨겼던 건가. 강호를 뒤엎고자 줄곧 초야에 숨죽이고 있었군.」


꽈가각.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인흉의 팔다리가 비틀거렸다. 막대한 증기를 내뿜으며 섬뜩하게 일어섰다. 야차와 같은 옹골찬 외관이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한씨가주가 북새풍처럼 고했다.


“목을 두고 가라.”


타협 없는 외침이다. 그 역시 한씨 성을 단 이들 중 최고봉에 선 자답게, 언행에 적당한 선이 없었다.


확고한 뜻에 흉마전주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실실 비아냥거렸다.


「그대는 지켜야 할 것이 많다. 반면 난 운신에 제약이 없지.」


그러자 한씨가주가 고개를 까딱였다.


쿠구구궁, 콰앙!


지진과 같은 울림이 퍼지며, 하늘로 솟구치는 용오름과 함께 신형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직후, 강줄기만 한 크기의 검격이 떨쳐졌다.


압도적인 검기(劍氣).

그것이 흉마전주의 등허리를 덮침과 동시에 불현듯 한씨가주가 질주했다.


흉마전주의 정면까지 정확히 다섯 보 거리까지 파고들었다. 이내 섬전과 같은 칼질이 대기를 요동치고, 피보라가 폭포수처럼 솟구쳐올랐다.


동시에 포탄에 직격당한 듯 커다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한씨가주의 어깨뼈 부근이었다.


콰과과과광─! 콰광, 쾅!


백여 장 넘게 튕겨 나간 그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사뿐히 착지했다. 괴력난신과 같은 눈동자가 흉마전주를 흘겨본다. 오싹한 안광이 몹시 초월적이었다.


“접대에 소홀함이 없도록 신경 썼다. 과분할 만큼 융숭한 선물이니 곤이 간직해라.”

「기껍게 받아들이지.」


인간의 용모를 빚은 거대한 마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줏빛 장포를 크게 펄럭이며 몸이 돌려졌고, 날파람을 몰아치며 이내 홀연히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수순이었다. 뒤늦게 깨어난 인흉이 어리둥절해하며 매우 경혹했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산송장을 끼운 채로 일어섰다.


“부족한데.”


섬뜩한 목소리. 한씨가주의 손이 검파에 살며시 얹어졌다. 인흉이 기겁하며 외쳤다.


“이 이상은 안 된다! 약조를 지켜라, 칼잡이! 그렇지 않으면 본 전은 모든 걸 다해 되갚아주리라!”


어찌나 당황했는지 육합전성마저 풀렸다.


한씨가주는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소 어색했다. 그 광경을 보고 화들짝 놀란 인흉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장딴지 근육이 비대하게 부풀어진다. 쿵쿵, 태산을 들썩일 듯한 발걸음. 거구의 여성은 빠르게 장내를 벗어났다.


“······.”


한차례 커다란 폭풍이 지난 뒤, 고즈넉한 침묵이 드리웠다. 생사를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르겠다. 전신을 경직시키던 긴장감이 몰리듯 풀렸다.


그때 절제된 기도가 접근해왔다. 한씨세가의 지고한 주인이었다.


“천흉을 상대로 접전을 벌였다. 넌 일개 소년의 역량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가주···.”

“의문 이전에 네 공적을 치하하겠다.”

“공적, 말입니까···?”


한씨가주가 칼자루에 손을 갖다 댔다. 별안간 어렴풋하게 사라졌다.


“일단은 본 가주의 성취이니라.”


스아앗─!


칼날이 절개된 가슴팍을 희미하게 지나쳤다. 막대한 진기가 한차례 몸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깃든다.


활검. 전대미문의 칼질이었다. 아직 미완성에 그쳤지만, 신체 전반의 활력을 북돋아 주는 공능이 있었다. 몇 년은 요양해야 할 부상이 한순간에 태동을 멎었다.


“오랜만에 축하연을 준비해야겠군.”


목소리가 점차 멀어진다. 눈꺼풀에 자꾸 힘이 풀리는 걸 몇 번이고 참아냈다. 짙은 피로가 몰려온다.


그때 한대명의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

“고생 많았다. 잠시 쉬거라.”


기나긴 격전의 연속이었다.


멸문지화와 검마의 별호. 그 잔혹한 미래를 두고서 잠시 운명과의 전초전을 벌였다. 다행히 살아남았고, 끝내 승리마저 거두었다.


“내가 이겼다···.”


아버지의 품에서 안심하며, 한소백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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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명검주 승단 +2 24.09.04 422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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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전 24.08.31 468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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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7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6 8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6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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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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