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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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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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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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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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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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맹세는 바스러지니

DUMMY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흐른다.


선명한 파육음과 골통을 관통하는 광경이 뇌리에 생생히 각인되었다. 깊은 인연이 없더라도 하나의 소속감으로 묶인 이들이다. 동요는 불가피했다.


‘죽인다.’


실력을 숨긴다? 이젠 무의미했다. 천겁흑뢰도의 흑색 벼락이 전신에서 새어나온다. 발바닥 용천혈에서 거친 회오리가 터지며, 흉흉한 도약이 펼쳐졌다.


능도(能到)

개극진입(開隙進入)


날파람에 머리칼이 격렬히 나부꼈다. 극상의 보법으로 한줄기 빛이 되어 질주했다. 길을 열어젖히는 초속의 접근. 지상을 가로질러 삽시간에 천흉의 앞으로 도달했다.


[발놀림이 제법이구나. 흥미가 동하는군.]


거만한 음성은 곧 당황으로 변질된다.


묵궁무애(墨穹無涯)


흑빛 궤적이 동작을 생략하며 그어졌다. 천흉의 옷 앞섶이 거칠게 찢어진다. 폭음과 함께 검격 경파가 후폭풍으로써 맹렬하게 요동쳤다.


쿠콰과과곽!


미간을 구긴 천흉이 손가락을 가볍게 뻗는다. 수비초였다. 수면을 때리듯 동심원의 기파가 탄생했는데, 열일곱 번의 칼질이 방해하려 들었다.


기막을 깨부순다. 경로를 틀어막은 검신에 희끗 곡선을 그린 손가락이 밀쳐졌다.


[기오막측하군. 반로환동인가.]


아직도 태연한 반응이다. 저 여유를 곧장 박살 내고, 방심이 끝남과 동시에 수급을 취해야 했다. 한소백은 회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전신에 내공을 운용했다.


단기결전의 각오다. 무리한 움직임에 근육이 파열된다. 패도적인 공력이 신체에 불벼락을 빚어, 바깥으로 꺼냈다.


극쾌(極快)

훼일참절(毀日斬截)


태양을 짓뭉개는 절초가 쏘아진다. 정신없는 난격이 호흡마저 분절하듯 쉴 새 없이 연속되었다. 하나 같이 극강의 파괴력을 지닌 공격. 칼질의 표적은 상체 근맥과 오장육부가 찢기며 넝마가 되어야 했다.


[고인께서는 누구신지. 대리국의 검공과 비슷한데 주된 결이 다르군.]


일방적으로 당하던 천흉이 평온하게 물었다. 그의 전신으로 반투명한 진기가 물결치고 있었다.


호신강기(護身罡氣). 저 방벽을 깨부술 최소한의 공격초조차 없다면 애당초 교전이 성립되지 않는다. 실로 불합리한 체급 차이.


잡스러운 범인들에게 상처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고고한 무결을 유지한 채, 천흉은 손을 치켰다.


휘릭.


손가락이 가볍게 허공을 들이긋는다. 붓질 같은 한 번의 움직임이, 예리한 실선을 새기며 모든 연격을 허물어뜨렸다.


───푸화아아악!


뚜렷한 상흔이 한소백의 흉부를 사선으로 지나쳤다. 그 치명적인 틈새는 곧 뜨거운 핏물을 게워냈다. 나가떨어진 몸이 땅바닥을 굴렀다.


[흠, 후환을 남기지 않는다는 신조를 관둬야 하나. 재밌군, 재밌어. 하나 같이 고매한 기예로다.]


저벅.


한순간의 격전이 빚은 여파로 지면이 속을 드러냈다. 급경사로 깎아진 돌 위를 가죽신이 즈려밟는다. 천흉은 뒷짐을 진 채 미상의 적을 내려다봤다. 산들바람이 불며 흑백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백절불요(百折不撓)의 기상도 대단하군. 그 몸으로 일어설 생각을 하다니.]


끼기긱, 뿌득.


한소백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응급조치를 위해 점혈로 피를 멎히고, 어긋난 뼈와 근육을 돌려놓았다.


천흉은 지법으로써 정상의 자리에 오른 존재. 저만한 이적을 선보이려면 내가기공에 당연히 통달해야 했다. 참격에 내가중수법의 묘리마저 섞였다.


그 가공할 무위에 한소백은 피가 섞인 침을 퉤 내뱉었다.


“하, 육시랄. 평범한 초고수였으면 해볼 만했는데, 하필 절세고수를 앞두고 있네.”

[안목이 좋군. 네 말대로다. 최근 육신과 의념이 완숙히 일체화되는 감각을 느끼는 중이지.]


인간의 한계인 절정(絕頂)마저 깨부수어,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자들을 초고수라고 불렀다.


남궁묵경, 명현진인 같은 존재들이 그러했다. 평범한 재능으로는 한평생을 다 바쳐도 도달하지 못할 경지. 천흉은 그마저 벗어나, 마인 주제에 오기조원(五氣朝元)을 앞둔 괴물이었다.


미래에 흉마전을 이끌 마귀는 벌써부터 될성부르었다.


‘방심할 때 목을 베어내야 했는데 끝났나? 아니, 아직 가망은 있다. 저놈은 여전히 안일한 상태야.’


다음이 마지막 기회가 되리라.

시간을 건너 과오를 되돌리기 위한 여정은, 어쩌면 이곳에서 끝날 수도 있었다.


푹.


칼이 지면에 꽂히며 휘청거리던 몸을 잠시 지탱했다. 한소백은 다시 뽑은 채,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아직도 헛된 희망을 품은 건가. 격차는 실로 여실하다.]

“그래, 승산은 없을지도 모르지. 아무리 대단한 기예와 경험을 가져봤자, 경지를 돌파하며 얻는 공능은 기술의 영역을 탈피하니.”


광범위하고 정밀한 감각.

존재 자체만으로 탄탄한 육신.

순간에 뻗히는 내공수발력.


어른과 아이의 차이였다. 아무리 계란이 매서운 기예를 퍼부어도, 바위를 결코 부술 수 없는 이치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은 필승이다. 그리 맹세했다.”


고양감에 적셔지며, 줄곧 잠자고 있던 검마의 기량이 일순간 깨어나기 시작했다.


[정녕 불가능한 적수에 맞서는 건가. 이해가 안 되는군. 싹싹 울며 빌어도 모자랄 판이건만.]


천흉은 오연하게 내리깔았다. 소년의 신형이 어느새 어렴풋해졌다.


파앗.


좌측 상단으로 떠오른 채, 전사경을 실은 검격이 휘돌았다. 대응은 간단했다. 천흉이 왼손가락만을 담담하게 뻗었다. 오른손을 등허리에 있었다.


그 순간, 한소백의 걸음은 허공을 점했다. 수많은 전투 갈래 속에서도 무조건적으로 유리할 위치였다.


무흔사보(無痕四步)


첫 번째 걸음이 밟은 건 춘(春)의 방위. 그와 동시에 변검의 줄기가 확장된다. 찰나에 이른 수싸움이 미세한 동작으로 조율된다.


콰강.


왼허벅지로 충격이 닿았다. 뼈를 부러트리는 듯한 검력. 천흉이 눈살을 찌푸린다. 반보 물러나고 지풍을 날릴 때, 두 번째 걸음 하(夏)가 또 다른 길을 열어젖혔다.


[같잖은 짓거리를 하기는. 어차피 무용하다.]


조롱 섞인 음성. 수명을 대가로 바친 막대한 파괴력이 손끝에 뭉쳤다. 금강석과 같은 손가락이 움직임에 검법을 담아냈다.


그리고 칼 그림자가 어수선하게 펼쳐졌다.


유검(柔劍)

천화난측(千化難測)


무수한 변초의 향연이, 화경과 섞이며 상대에게 예측불허의 동작으로 전해졌다. 모든 투로를 밀어내는 검로였다.


그리고 하나의 검초로 집약된다. 초식 망운의 원형이자 준비식이 펼쳐졌다. 빛무리가 구름처럼 환하게 번진다.


육운폐광(六雲閉光)


진기의 잔상 속에 몸을 숨긴 채, 한 줄기 검격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호신강기를 베어버릴 최선의 수단이었다.


칼 하나에 전념과 독기를 쏟는다. 한소백이 가슴에 대고 조용히 비명을 지를 때였다.


[상승(常勝)의 무학이로군. 잘 견식하였다. 본 마전으로 데려갈까 아직도 고민되는구나.]


우웅.


손끝에 모인 광채가, 여섯 줄기로 갈라진다.


콰아아아!


개세적인 위력의 지풍이 도래했다. 오직 순수한 파괴력 앞에서 약자의 발버둥은 무가치했다. 검초가 완전히 파훼되며, 광풍의 여파에 한소백은 튕겨나갔다.


사라락.


옷자락이 날개처럼 펄럭였다. 멀리 날아가는 한소백. 그 뒤를 천흉이 따라갔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인다.


[여흥은 여기까지다.]


휘릭, 휙. 파파팟.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파문이 신체에 일었다. 팔괘(八卦)에 해당하는 혈자리를 핵심으로, 스물여덟 번의 타혈이 두 호흡만에 연속되었다.


세 점의 순환은 철저히 끊기니 구궁(九宮)마저 항상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상승의 양기는 억제되어 음양의 부조화는 필연으로 벌어지리라.


절세무학, 원월천양지(圓月天壤指)


현자의 손끝은 둥근 달을 가리키나, 절대자의 의지는 하늘과 땅마저 말초 부위에 담아낸다.


대리단가의 일양지(一陽指)에 버금간다는 마도의 지법. 천흉이 속한 무맥에서 내려오는 비전(祕傳) 무공이었다. 상승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사사가 허락되지 않았다.


[널 최고의 마인으로 길러주-]


신체의 봉쇄가 끝나는 순간, 천흉은 경악했다. 흑빛 벼락이 반사적으로 뻗쳐오며, 고열을 내뿜었다. 감겨야 할 눈이 떠지며, 살벌한 안광이 그와 마주했다.


[설마 했거늘, 검흑제?]


동요가 생긴다.

그리고 찰나의 방심을, 웬 인영이 비집었다.


월법요령기(鉞法搖鈴技)

벽개목두(劈開木頭)


본디 하나처럼 자유롭게 휘둘리는 두 자루의 도끼. 발경의 파도가 기막을 밀어내며, 천흉의 다리를 짓쳤다.


[잡것이.]


우웅, 콰아앙!


손끝에서 피어오른 빛무리가 별안간 쏘아졌다. 두 도끼를 교차하여 막아냈음에도 귀월객은 후방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덮쳐오는 한소백의 그림자.

세 번의 손짓이 보란 듯이 튕겨냈다.


“제길.”


착지한 한소백이 피를 닦으며 일어설 때, 귀월객이 다급히 외쳤다.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 도망쳐라.”

“헛소리하지 마라.”


귀월객이 횡포한 기백을 뿜어내며, 바스러진 몸으로 전진했다.


“난 이미 틀렸다. 하지만 넌 여기서 죽어선 안 돼. 복수에 눈이 먼 이후로, 오랜만에 내린 합리적 판단이다.”

“당신, 지금···.”


선천진기(先天眞氣)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는 진기. 달리 말해 생명의 힘.

목숨을 불사르며 꺼내는 순간, 남은 일생에 필적하는 무지막지한 힘을 선사해준다.


허나 쓰고 싶다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죽음을 앞둔 고양감 속에서, 필사의 각오를 한 채 운까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 힘을 지금 귀월객이 소모하는 중이다.


─시간이 없다, 어서!


도끼 위로 반투명한 회오리가 몰아쳤다. 한소백이 갈팡질팡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천흉이 싸늘하게 외쳤다.


[누구 마음대로 보내준다는 거지?]


우웅.


빛이 모여든다. 한소백도 걸음을 내디뎠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죽인다.”


파앗.


강제적인 합공이었다. 격렬한 진기를 발산하는 귀월객을 방패로 삼은 채, 예리하게 반격의 기회를 엿봤다. 칼날이 검기를 두른 채 휘둘러진다.


그리고 허망하게 튕겨 나갔다.


콰아아앙!!


초고수, 천흉.

그와 대적하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일렀다.


─마지막 기회다. 괜한 객기는 부리지 말고, 제발 어서!


강렬한 힘의 파장이 폭풍처럼 불어닥쳤다. 매 순간, 생명을 갉아먹으며 귀월객은 오랜 한을 토로했다.


─난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복수는 미숙했고, 애꿎은 자를 원수 삼아 독선적으로 맹세했지. 그렇게 합리화를 일삼으며 악의에 물들어갔다.


푸콰아앙.


─사랑 때문이라고 탓하지 않겠다. 오직 내가 못났기에 벌어진 일평생의 죄지. 네 덕분에 깨달았다. 오늘만큼은 수치스럽기 싫어.


거룩한 기치다.

허나 마인이 찬사를 보내는 일 따윈 없었다.


[곧 죽을 벌레가 멋을 부리긴.]


희생을 비웃고자 하는 걸까. 천흉은 귀월객이 아니라 한소백에게 달려들었다. 도끼가 그를 막아서도 붙잡을 수 없었다.


손가락에 내력이 담긴다. 마혈을 점한 심산으로 보였다. 허벅지에 닿는 순간, 신형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무슨?]


칠허신(七虛身)


일곱 번 자유자재로 세상을 노닐 수 있는 몸놀림이다. 좌측으로 한소백이 홀연히 위치를 옮겼다.


“너, 복부가 불편해 보여.”


격전 와중에도 입술을 달싹여 말할 수 있는 수법을, 순음술(脣音術)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칼질이 천흉의 명치 아래로 이미 닿았다.


타악!


베기보다는 강타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고등한 내가중수법이 한껏 실렸다.


‘분명 무당파 흑송진인한테 쫓겼다고 했지.’


은은한 공력의 자취가 아직도 느껴졌다. 십단금(十段錦). 천흉의 복부에는 분명 커다란 손자국이 새겨진 게 분명했다.


이대로 천흉을 압박할 수 있었으나, 승산은 매우 낮았다. 재촉이 곁에서 들려왔다.


─복수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아내가 곁에서 날 지켜보고 있다. 어서 오라고 말이야.


귀월객이 굳센 고성을 터트렸다.


─이것은 나, 월협객(鉞俠客) 유소경이 선택한 죽음이다.


오명은 지워지고, 버린 지 오래였던 이름을 다시금 떠올린다.


맹세보다 우선인 건 협객의 신념이었다.

무덤 앞의 맹세는 희생으로써 바스러졌다.


“귀월객···.”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한소백이 무언의 눈짓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 옆구리에 청선과 사공자를 끼웠다. 현 상황에서 다른 첩정대원은 차마 시체라도 회수할 수 없었다.


콰과과광!


선천진기의 불꽃이 천흉의 개입을 막아낸다. 오직 파괴에 중점을 둔 마공이었기에, 생명의 힘으로 잠시간 대적할 수 있었다.


[제까짓 게 도망가봤자 코앞이지.]


천흉의 호언장담은 들리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안심한 귀월객은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아직 선명한 때라서 다행이구나······.”


내게로 오라.


미숙했던 복수귀는, 그릇된 맹세 대신, 철혈의 의지를 새롭게 각오하였다.



* * *



파아앗─


경공 질주가 숲속을 갈랐다. 흔적을 지울 여유는 없었다. 잠깐의 격돌에도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청선, 한하진. 정신 차려라.”

“으으···.”


운마저 좋았다. 청선은 검신교의 고수이며, 사공자는 검혼을 쥐고 있어서 그나마 반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였으리라. 혹은 천흉의 변덕이나 확인 사살에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여긴··· 으윽. 야, 내려줘.”

“내리긴 뭘 내려.”


상황 파악을 서둘러 끝낸 사공자가 조리 있게 말했다.


“천흉을 죽였을 리는 없고···.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는다. 난 귀식대법으로 숨을게···.”

“치료가 시급하다. 버리고 갈 순 없어. 천흉이 지나가는 길에 죽일 수도 있어.”

“···주군, 저희를 두고 가십시오.”


체내에 주입한 진기가 효력이 있는 듯했다. 몸이 조금 멀쩡해졌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일 체력이 됐으니.


한소백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분명 약조하지 않았나. 나와 함께하면 누대의 영광을 영원토록 누릴 거라고.”


늘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열정과 충심만으로 부려 먹지 않는다. 무모한 싸움에 함께할 동료들. 그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주어야만 했다. 허망하게 떠나보낼 순 없었다.


최악으로 끝낸 건 이전 생으로도 충분했다.

검마의 맹세에 더 이상 희생은 없었다.


“그럼··· 전음이라도 보내겠습니다.”


청선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리고 열 호흡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시 멈춰 섰다.


십리전음.


온갖 자연물을 매개로 삼는 전음기예. 그렇게 필사의 구원 음성을 파동으로 멀리까지 퍼트렸다. 누군가가 전해듣길, 늦지 않게 도움이 찾아오길 간절히 빌며.


그리고 일각이 넘는 시간이 지날 때쯔음, 정말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저벅.


“운이 좋군. 손쉽게 발견하다니 말이야.”


불행히도 흉마전의 마인들이었다. 애당초 혈령탄만 독자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었다. 줄곧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아마도 천흉의 명령에 따라 우선으로 추적해온 듯했다.


“넝마가 된 병신이 셋이나 돼. 흐흐, 공적을 너무 편하게 쌓는 거 아니야 우리?”


복부에 구멍이 났다. 오랜 출혈 탓에 피부가 창백한 지는 오래다. 그러나 하잘것없는 잡놈들을 일도양단하는 데는 문제 없었다.


“전부 꺼져.”


스가각─!


바닥으로 목이 우수수 떨어진다. 상처입은 맹수는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됐다. 한소백은 다시금 청선과 사공자를 들고 경공을 펼쳤다.


시간 낭비가 심했다. 체력도 조금이나마 아쉬울 때였다.


─들리는가.


불현듯 전음의 파동이 느껴졌다. 황급히 집중하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조장님?

─살아서 다행이군. 천흉한테 걸려서 우리도 위험했다. 산개한 덕분에 살았지. 그나저나 경공 한번 엄청 빠르군.


연락이 끊겼던 첩정대 팔조장이었다. 그는 희망의 소식을 알렸다.


─청선이 보낸 전음을 들은 건 물론, 너희네 쪽에서 살아남은 조원들한테도 진작 사정을 다 들었다.

─정말입니까.

─우리 조원들이 간격을 두고 서 있어. 전음 연결망이 되어줄 거다. 이미 한씨세가로 지원 요청을 보냈다. 조금만 더 버텨라.

─감사합니다, 조장님.


장거리를 뛰어넘은 탓일까. 전음은 드문드문 목소리가 끊기며 들려왔다. 팔조장의 안내에 따라 도주를 계속 이어 나갈 때였다.


─이백여 장 정도 남았다. 내가 따라갈 테니 일단은 계속 달려라. 응급 요상약이 있으니 그걸로 치료를 마치면-


돌연 목소리가 끊겼다.


─조장님?


이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콰아앙!


정확히 한소백으로부터 이백여 장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커다란 불꽃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며, 숲 한가운데가 무너졌다. 탄 내와 함께 짙은 연기가 하늘로 상승한다.


그리고 극강의 초고수는 전음의 방향을 바로 추적하였다. 씨익, 환희가 진기 파동에 섞인다.


[거기구나.]


소름 끼치는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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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귀월객 24.08.25 485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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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가르침 (2) 24.08.23 560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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