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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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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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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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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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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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가르침 (2)

DUMMY

“유감스럽게도 배후를 색출하긴 어려울 걸세.”


간밤의 암습 이후, 율법당주가 한 말이었다.


“치밀한 침투였네. 사전에 한씨세가의 순찰 경로와 교대 시간, 위치 등 보안 정보를 입수한 뒤에 들어왔어. 증거가 될 만한 꼬리를 전혀 남기지 않았네. 계속 고문해도 입을 도통 열지 않고.”


한씨가주의 출수였다. 찰나의 순간에도 살수의 목숨을 붙여놨다. 그렇게 의뢰인을 알아내기 위해 심문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가문 내 한소백의 입지가 날이 지날수록 커지니 그만큼 신중하게 준비한 듯했다.


‘그래도 조금 이상하군. 누군가가 중간에 개입해서 정보 발설을 막고 있나.’


남궁세가, 검신교, 한씨세가. 어느 쪽이든 충분히 능력이 되었다. 상단전의 직감도 불규칙적인지라 맹신할 수는 없었다.


“정말 미안하네. 가문 내 경비와 순찰은 굴강전(掘江殿)에 단단히 일러주도록 하겠네. 당분간은 경계가 삼엄해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굴강전은 한씨세가의 장원을 수호하는 곳이었다. 연이어 일어난 소란에 꽤나 곤욕을 치르고 있으리라.


‘어쩌면 한 패일 수도 있겠지.’


괜히 한대명이 가문의 암투에 질색하는 게 아니었다. 굳이 직계혈족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지지 세력이 언제든 독단적인 행동을 벌일 수 있었다. 종문이면 모를까, 아무리 정파일지라도 무림세가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특히나 암중세력까지 끼어있다면 파벌 구도는 더욱 복잡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주.”

“항상 자네를 응원하고 있네. 몸조심하게나.”


율법당주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한소백을 배웅했다.


‘저놈도 수상하단 말이지.’


칼을 갖다 대고 협박하고 싶었으나, 확신은 없었다. 이들은 가규와 율령을 수호하는 이들답게 어느 조직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다. 유사시 일개 무력대 정도는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로원 휘하의 세력이기도 했다.


조사를 마치고 연무장으로 갈 때였다.


“지난밤 동안, 네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돌연 사공자가 찾아왔다. 그는 아직까지 남은 자존심 탓인지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말문을 뗐다.


“미흡한 점이 많고, 자질도 보잘것없지만··· 너한테 가르침을 받아도 되겠나.”

“탁월한 결정이다.”


한소백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껄끄러운 사이였을 텐데, 선뜻 도와준다니 정말 고맙다.”

“나야말로 놀랐어. 너한테 그런 고민이 있을 줄은. 직계라면 다 오만하고 권력 놀이에 취한 줄 알았거든.”


재미없는 옛날 이야기였다. 직계는 방계를 뛰어넘어선 안 된다. 그 말이 가진 족쇄며 편견은 꽤 질겼다.


막상 동등한 눈높이에 도달하니 별것 없었지만 말이다. 오히려 조그마한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진짜 강호무림은 더욱 악랄하고 음흉한 술수가 비일비재하니.


“그리고 너무 부정적인 마음으로 살지마. 넌 주변인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으니.”

“뭐?”


사공자의 자격지심과 다르게, 그의 아버지는무심한 듯하면서도 늘 보호하고 있었다. 어젯밤의 갑작스러운 등장도, 광범위한 기감 이전에 아들 걱정으로 지켜보던 것이리라.


사공자는 무슨 말이냐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단, 조건이 있다.”

“조건?”

“네 재능은 인정하나 가르치는 건 별개의 문제지. 일단 오늘 교육을 겪어본 뒤에 재고하겠다.”

“참 까다롭게 굴기는.”


한소백은 눈을 찡그리며 반박했다.


“무당파 제자한테 못 들었나. 내가 그의 깨달음을 이끌어줬는데. 증인도 많아. 노을이 지는 때, 머리 위로 태극의 형상이 너울거렸지. 그걸 목도한 것만으로 다른 이들도 깨달음을 얻었고.”

“그건 인정하지만 네 교육법이 내게 맞을지와는 다른 문제지. 그리고 심득은 훈련과 무관하다고 본다.”

“참 신중하기도 하군. 난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인데.”


턱이 까닥거리고 칼끝이 사공자를 겨눴다.


“일단 덤벼.”






털썩.


흙먼지가 일며 사공자가 쓰러졌다. 신음을 앓으며 고개를 들자 짙은 음영이 위로 덧씌워졌다.


‘괴물 같은······.’


어젯밤과 다르다. 일부러 상대의 수준을 맞추는 일 따위 없었다. 철저하게 농락하고 기예적으로 압살했다.


“첫 번째 문제다. 검기를 너무 쓸데없이 오래 쓰고 있어.”

“무슨 문제? 검기는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사공자는 바짓단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그러자 한소백은 검을 치켜올렸다. 낯익은 검이었다. 대공자가 줄곧 쓰던 것이 왜 저기에.


스르르.


검날을 희미한 아지랑이가 휘감겼다가 다시 사라졌다.


“검기는 비효율적인 공부다. 순간의 절삭력과 위력은 훌륭하지만, 공력 낭비가 심하지. 차라리 다른 절초를 펼치는 게 장기전에서 더 효율적이다.”


반발이 섞인 의문이 일었다.


“검기를 아예 쓰지 말라는 건가? 하지만 다른 검객들도 잘만 사용하는데.”

“자질과 공부가 부족한 이들의 고질적인 문제지. 요령껏 사용해야 해. 최적의 시기에 최소한으로.”


한소백은 땅을 짓누르며 발에 무게 중심을 실었다. 이내 경쾌하고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분명 아무런 광채도 없던 검.


별안간 짧게 발광했다.


스앗─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몹시 살벌했다. 동시에 잠깐 피어났던 흰빛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놀라울 정도의 내공 통제력이었다.


“봤나. 검기는 이런 식으로 짧게 쓰는 거다. 이마저도 전조 현상을 숨길 수 없어, 피하거나 막아내는 고수들이 많지.”

“······그 정도 수준까지 갈고닦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군.”

“당장 해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게 불가능하다면 웬만해서는 검기를 쓰지 않는 게 좋지. 공력 낭비니까.”


사공자는 자조적으로 한탄했다.


“하아. 검기도 이만치 어려운데, 검강의 영역은 아득히 멀겠군.”

“맞아, 한참이나 먼 이야기지. 내공 소모가 막심한 건 물론 의념에 숙달되어야 하니까. 검기는 제쳐두고, 일단 단기적으로 성취를 끌어올리는 수련을 해볼까.”


실전적인 가르침을 직접 시연해주는 것. 확실히 와닿는 교육법이었다. 다음은 또 무엇일까. 사공자는 기대감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그때 한소백이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검흔도의 개념은 이미 알겠지?”

“검흔도라, 기초적인 건데 모를 리가 있나.”


검흔도(劍痕圖).


검의 궤적을 기억하는 방식을 통틀어 말한다. 자신이 쓰는 검법의 경로, 범위, 변초, 응용초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체화해내는 일종의 도식화.


검흔도에 숙달될수록 자신은 물론, 타인의 검로를 저장, 해체, 분석, 재조립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파해법(破解法)을 짜내거나, 개량하여 자신의 검법 공부에 녹여내기도 한다.


특정한 무공을 일컫는 게 아닌, 어디까지나 스스로 깨우치고 느껴야 하는 개념이자 기술이었다. 검객이 아닌 일반 무인들은 무예도(武藝圖)라고 불렀다.


“지고의 검객일수록 머릿속에 이 검흔도의 형상이 선명해야 하지. 즉흥적으로 깨닫고 짜내는 직감은, 비체계적이고 흐리멍덩하여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해.”


힘 있고 명료한 목소리가 울렸다.


“우선 자신의 검을 뚜렷이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타인의 검을 받아들인다. 특징, 강점과 약점, 함의된 무리(武理), 전투 구도, 검형(劍形)의 가짓수, 필요한 내공 운용. 한 땀 한 땀 재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견식이 있고, 분석이 있으며 복습이 있고 성찰이 있다. 끊임없이 되새기고 골똘하라.”


“그렇기에 검이란 곧 적공. 네 얕은 검의 지론(持論)을 깨부수고, 발상의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地平)을 열어라. 수억 가지 조합 속에서 너만의 답을 찾아내는 거다. 요는 직감의 구체화지.”


긴 논설이 끝났다. 멍하니 듣던 사공자가 고개를 휘저었다. 정신을 일깨우고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거창하지만 순 당연한 말 아닌가. 그걸 해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데.”


그 말에 한소백이 수상쩍게 웃었다.


“그럴 리가. 흑도제일검의 교육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흑도? 설마 검흑제를-”


반문은 받지 않았다.


후웅─


직선 궤적이 대기 중으로 길을 만들었다. 반투명한 진기가 서리서리 휘감기기까지 했다. 사공자는 즉각 반응했다.


캉!


손아귀로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막대한 검력에 뒤로 밀려난 것이다.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별안간 바람줄기가 사납게 이어지며, 서늘한 조언이 들려왔다.


“너무 정직하게 수비했다. 뒤로 물러나며 발경력을 덜어냈어야지.”


퍽.


검면이 턱을 가격했다. 극심한 통증에 사공자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짧은 읊조림이 곁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수련은 시작되었다. 사공자는 이를 악물며 검파를 고쳐 쥐었다.



* * *



팟.


칼끝이 점으로 수렴한다. 찌르기 경파가 가뿐한 소리를 냈다. 그야말로 빛살과 같은 속도였다. 인지하기 전에 옆구리로 도달했다.


‘좌측으로 반보, 사선으로 내리벤다. 타격점은 허리에서 한 치 아래 부근으로.’


캉!


요란한 굉음이 터졌다. 쾌재를 부르기엔 섣불렀다. 늘 이다음이 고비다. 지금까지 당한 공세의 가짓수만 해도 열이 넘는다. 파해식을 터득해도 새로운 변초를 선보이리라.


스아앗─


도깨비와 같은 신형이었다. 한소백은 다리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무게 중심을 옮겼다. 칼 궤적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손목 내관혈에서 터진 공력 폭발이 추진력까지 담았다.


‘이미 배운 투로다. 한 걸음 내딛고, 오른쪽 늑골에서 세 치 아래. 도달하기 전에 횡격을 끊어야 한다. 단, 검극의 마지막 방향에 유심해야 하고.’


챙!


다시금 막아냈다. 허나 기뻐할 수 없다. 이제는 미지의 영역이다. 몸으로 당하고 파해법을 전수받아야 한다. 때마침 칼날이 짓쳐 온다. 탈력감이 들며 검을 쥔 손이 느슨해질 때였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돼. 가르침 이전에 내가 먼저 고민하고 정답을 유추해야 해!’


후으읍···


들숨이 폐부를 꽉 채웠다. 팔 근육이 경직되며 어깨 부근 견정혈로 공력이 단번에 질주했다. 왼발이 작게 반원을 그린다. 이내 순간의 검격이 좌측 하단으로 내질러졌다.


카아앙!


‘됐다.’


성취감이 전신에 퍼질 때였다. 역시나 환호하기에는 일렀다. 이쪽이 먼저 공세를 가하기 전, 한소백의 칼날이 일시에 회수되며 반격초를 내질렀다.


후웅─!


허점이 완벽히 노출되었다. 무자비하게 뻗힌 칼질은 애꿎은 공기만 밀어냈다. 사공자는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한 수 배웠다.”


자질구레한 격식은 필요 없었다. 곧장 조언과 대응법이 들려왔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견정혈에서 추진력을 받기보다는 허리에서부터 팔까지,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의 혈자리로 공력을 가로지르는 게 나았을 거다. 그 뒤, 정면으로 초식을 이었다면 내 반격도 무용해졌겠지.”


과연 대종사의 재능이었다. 순식간에 타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타개책을 제시했다. 사공자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덕분에 개안하였다, 스승. 그럼 다시 시작하도록 할까.”

“아니, 오늘은 이쯤 하지. 벌써 자시말(子時末: 01시)이다.”


아침부터 시작했던 수련이 어느새 새벽까지 이어졌다. 몸이 흥분감에 간질거렸지만 적당한 휴식이 필요했다.


사공자는 포권례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 은혜를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갈피조차 제대로 못 잡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크나큰 성취감에 수련이 재밌을 따름이다. 정말 잘 가르치는군. 다른 이들은 날 때려서 가르치던데 말이야.”


하루 사이의 수련을 되짚어본다.

별세계의 연속이었다.


한소백의 검공은 가히 초월적이었다. 상리를 벗어나는 움직임과 기묘한 기예가 면면히 펼쳐졌다.


허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사공자의 성장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막아낼지 막막했던 검로. 그것의 파해식을 한소백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이후 스스로 대응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에는 다시 새로운 공격이 이어졌다. 때로는 약간의 변초가 가미되었고, 때로는 의외의 초식이 전개되었다.


그때마다 사공자는 홀로 고민했다. 다시 도전해보고 거듭 실패하면 한소백이 답을 알려주었다. 이 과정이 수백 차례 반복되자, 어느 순간 일초식으로 끝났던 비무는 백(百) 번의 합이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작 하룻밤 사이의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사공자가 경탄하며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러자 한소백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피식, 웃음마저 입술 밖으로 살짝 새어 나왔다.


“몸으로 깨우치라는 무식한 방법을 쓰는 놈들은 육성자로서 실격이다.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주고, 뚜렷한 해결법을 제시해줘야 한다.”

“난 무한정 비무만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론적으로 가르쳐주니 신기하더군. 애매모호한 설교보다 훨씬 나아.”

“교육이란 본디 그렇다. 가르치는 자의 역량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지.”


명철한 분석과 객관적인 접근.


천겁흑뢰도의 입문자라면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이었다. 마공의 부작용 때문에 감정적으로 변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다잡기 위한 이성적 시야를 얻어야 했다.


짧은 수련 탓에 결국 마공을 극복하진 못했으나, 검흑제의 교육법은 분명히 한소백에게 도움이 되었다.


“호오, 그런가. 고작 열다섯밖에 안 됐는데 이런 지론을 어떻게 수립했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사공자는 멋쩍어하며 말했다.


“거듭 감사를 표하지. 이렇게 일대일로 딱 붙어서 맞춤형 교육을 하니 너무 미안할 지경이다. 네 수련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염려되는군.”

“음? 전혀 방해될 건 없는데.”

“···뭐?”


눈살이 찌푸리며 저절로 반문이 나왔다. 정면에 서 있던 한소백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타인을 가르친다고 수련을 못 할 이유가 있나.”

“가르치면서 배웠다는 거냐.”

“그건 아니고.”


스륵.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어깨를 흔드는 밤바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분명 텅 빈 연무장이다. 하지만 한소백에게는 몹시도 요란했다.


챙, 채앵─


존재하지 않는 칼울림이 뚜렷하게 들린다. 어렴풋한 인영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리운다. 칼의 궤적이 수없이 그려진다.


슬며시 칼을 겨누는 자는 옛 검객의 환상.

귓가를 두들기는 소음은 전장의 아우성.


“내가 말했지 않나. 검흔도란 뇌리에 심는 도식화다. 지금껏 접하고 섞은 모든 검로(劍路)를 기억하고 분석하고 해체하고 되새기는 것.”


사공자는 목도하였다. 아니, 관측을 허락받았다는 것이 옳았다. 저것은 본디 홀로 간직해야 할 심상의 잔재.


무수한 칼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칼의 형상인 저것은, 때로는 칼잡이 그 자체이며, 때로는 타 무공의 전승자들이기도 했다.


검극마신(劍極魔神), 귀천존(鬼天尊), 검흑제(劍黑帝), 투뢰운주(投雷雲主), 적화검존(赤花劍尊), 일련종주(一聯宗主), 진요검종(振搖劍宗)······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들과의 숱한 격전이 재구성된다. 이미 끝난 전투를 수천, 수만 번 반복하며, 해체하고 분석하고 다시 도전한다.


그렇게 복기(復棋)하여, 승률을 거듭 올린다.

이 미력한 육신으로도 감히 대적할 수 있도록 무한한 싸움을 벌인다.


한소백은 지금도 강해지고 있다.


한 호흡 뒤, 하루 뒤, 한 달 뒤, 일 년 뒤, 십 년 뒤. 상관없다. 정해진 기한도, 기약도 없다. 매 순간 강해진다. 앞으로도 이전의 자신보다 한 걸음 더 강해지리라.


“내 수련은 상시적이다.”


이것이 바로 검흔도.

검마의 일생이자, 투쟁의 기록.


경지를 뛰어넘는 강함의 근간이다.



* * *



“자, 새로운 임무가 왔다네.”


공개적인 선상이다. 이 자리에서 청선은 한소백의 하수인이 아닌, 첩정대의 조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모습대로 살갑게 외쳤다.


“음, 천흉의 소재가 어느 정도 파악되었어. 그의 제자인 혈령탄(血零彈)도 찾아냈고. 우리의 임무는 그녀를 추적 및 감시하는 거야.”


청선이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한소백을 제외하고도 그가 속한 삼조(三組)의 조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대적인 작전인 만큼 칠조와 팔조까지 공조했다. 청선의 곁에 선 여인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그리고 특이사항도 있지. 신참이 왔는데, 실력적으로는 곧장 투입되어도 문제없어. 이미 대주께 인가받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른손을 살짝 펼치자, 웬 소년이 사뿐히 나타났다. 그는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한하진이다. 잘 부탁한다.”


건방진 태도에 한소백이 웃으며 물었다.


“선배님들 앞에서 말이 짧다?”

“미, 미안하다.”


사공자가 얼굴을 잔뜩 구기며 대답했다.


“하하, 귀여워!”


누군가가 외쳤다. 두 막내의 대화는 무거웠던 장내를 잠시 화기애애하게 바꾸었다.


그 순간, 분위기에 초를 치기라도 하듯 한 사내가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긴장 풀지 말도록. 임무는 장난이 아니다. 특히나 이번은 더더욱, 무려 천흉과 혈령탄이 연관되었지.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다.”


팔조의 조장이었다. 그는 묵직한 목소리로 간절히 빌듯 읊조렸다.


“그럼, 다들 살아서 보지.”


찰랑, 강호의 수면 위로 다시금 발을 내디뎠다. 어떠한 파란이 일어날지는, 늘 예측불허다.


작가의말

사랑니 빼는 게 미뤄졌네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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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격전 24.08.31 467 6 16쪽
32 집결 24.08.30 453 6 16쪽
31 그래도··· 24.08.29 449 9 16쪽
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7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6 8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6 9 16쪽
26 혈령탄 24.08.24 500 8 13쪽
» 가르침 (2) 24.08.23 561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52 11 14쪽
20 살생부 (2) 24.08.18 674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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