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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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작품등록일 :
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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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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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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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집결

DUMMY

뜨거운 핏물이 요란하게 터진다.


하수들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무적의 내공방벽이었다. 귀월객조차 내가중수법마냥 호신강기 너머로 타격하는 식으로 상대했다.


헌데 초고수의 육신이, 고작 열다섯 소년의 검격에 베였다. 모욕감을 느꼈는지 천흉이 외쳤다.


[하찮은 잡것이 나를 상처 입혀!]


손가락이 곤봉처럼 휘둘러졌다. 금강석과 같은 표면에 얻어맞은 순간, 넝마가 된 한소백은 멀리까지 날아갔다.


콰아앙, 쿨럭.


울혈을 한껏 토했다. 수차례 기침할 때마다 몸이 들썩였다. 검강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무리한 반동마저 올라왔다.


실로 무방비한 상태. 이대로 천흉이 출수를 가하면 무조건 죽는 순간이었다.


[네까짓 게··· 너를, 씹어 삼켜······ 끅!]


서서히 다가오던 천흉이 비틀거렸다. 흉부 깊숙이까지 그어진 검흔. 평범한 무인들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절세고수를 목전에 둔 천흉에게는 목숨을 잃을 수준의 중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부상이 지속해서 쌓인 상태에서는 몹시 치명적이었다.


“하하··· 오만방자하게 굴더니 꼴이 좋아.”


검기성강은 단순히 절삭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무인의 의념으로 빚어진 상승의 힘.


적중하는 순간 막대한 고열을 동반하며, 끊임없이 상처를 후비는 신묘한 공능을 지녔다.


[널 찢어 죽이겠다.]


천흉이 눈매에 힘을 주며 으르렁거렸다.


[편히 죽을 생각 마라. 본 마전으로 끌고 가, 고문하고 눈알을 도리고, 기혈을 지지며 그렇게 처참히 최후를 맞이하게 해주마!]


살벌한 협박이 울려 퍼졌다. 줄곧 여유로웠던 모습은 전혀 없다. 그만큼 한소백의 공격은 천흉에게 위협이자 수모로 다가왔다.


‘한 번의 요행이다. 여기서 또다시 만전이 되어도 저 괴물을 이길 수 없겠지. 제상단을 삼켜 회복할 찰나의 시간도 저놈이 줄 일 없고.’


휘우우웅─!


무지막지한 기운이었다. 감정에 반응하여 마공이 저절로 일어나, 소슬바람을 발생시켰다. 천흉이 재차 처형을 선언하자, 한대명이 황급히 외쳤다.


“···소백아, 으윽!”


제상단을 이미 섭취한 뒤였다.


허나 의맥의 비전영단도 만능은 아니었다. 내상에 특히 탁월한 효력을 보이는 것이지, 찢기고 부러진 외상의 회복에도 한계가 있었다.


[···네게, 으흐윽··· 죽음보다 잔혹한 벌을 내릴 거다. 헌데 왜, 웃고 있는 거지?]


탓, 타탓.


손가락이 가슴팍을 꾹꾹 눌러댔다. 검강의 잔재가 출혈을 멎는 걸 방해해, 계속 점혈을 거듭해야 했다.


“멍청하긴···. 처음부터 승산은 없었다.”


한소백이 뒤편을 가리키며 외쳤다.


“대신 시간을 끌면 이기는 건 이쪽이라고.”


일몰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황폐화가 된 숲으로 한 무리가 접근해왔다.


“전 영위각 부각주가 제상단을 세 알이나 훔쳤길래 추격해왔건만······.”


사납게 생긴 사내가 혼잣말했다. 눈썹을 구부러트리며 어이없어하는 모양새였다.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상황이지?”


율법당 부당주.


한씨세가의 가규를 수호하는 집단의 이인자였다. 필요시 무력 제압이 필요했기에, 율법당은 가문 내 일반적인 무력조직보다 최소한 반 수 이상의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잡것들이, 몰려오긴.]


육합전성의 울림이 율법당 무리를 매섭게 겁박했다. 어깨를 저절로 움츠리게 하는 압도감이 있었다.


“부당주, 저거 천흉 아닙니까?”

“처, 천흉···? 우리 전부 다 죽은 거 아니야?”


웅성거림에는 두려움이 깃들었다.


고강한 무사들을 징계하는 역할이었기에 숱한 공포감에도 굴하지 않는 율법당 무사들이었지만, 강호에 저명한 대마인의 출현은 정도를 넘어섰다.


“천흉이라. 우리 실력으로 상대할 순 없지.”


부당주가 중얼거리자 천흉이 대꾸했다.


[그래. 본좌의 행차에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 미천한 놈들. 오늘은 자비를 베풀도록 하겠다.]

“아니지, 아니야.”


당찬 눈웃음이 천흉을 매끄럽게 훑어봤다. 바지 부근은 헐어져 멍투성이의 다리를 드러냈다. 가슴팍에는 피딱지 틈으로 선명한 핏물이 아직도 꿀렁거렸다.


“얘들아, 오늘 승진하는 날이다!”


약 스무 명의 무사가 모두 만전 상태. 전원 명검주의 직위를 딴 고수들이었다. 특히나 소수의 죄인을 합공하는데 능했다.


파아앗!


부당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율법당 무사들은 즉각 뛰쳐나갔다. 날개처럼 펼쳐진 검진이 맹금의 접근마냥 거리를 좁혔다.


[하, 본좌를 물로 보는군···!]


금빛 안광이 악독스럽게 번뜩였다. 천흉의 손가락이 국소적으로 장풍을 빚었다. 목표는 오직 한소백.


눈엣가시부터 확실하게 처리하려는 모양새였다. 빛살과 같은 속도로 지풍이 쏘아졌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솟구친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세 명의 검객이 한소백의 앞을 철통같이 지켰다.


“절대로, 내 아들은 건드릴 수 없다···!”


한대명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선언했다. 좌우로 청선과 사공자가 섰다. 겨우 몸을 움직일 상태는 되었다.


[소용없는 반항이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감히··· 감히!]


우웅, 파아아앗!


별안간 지풍이 수십 번 쏘아졌다. 제대로 된 조준도 힘의 배분도 없이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몸이 꿰뚫리며 한소백의 호법이 쓰러질 때, 율법당의 합격이 지척까지 도달했다.


검격이 측면을 짓쳐 오자, 천흉이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을 뻗었다. 빛무리가 흉부를 관통하며 폭음이 터진다.


콰아아앙!


[내게 닿을 줄 알았느냐!]


참으로 허망한 죽음. 응당 초고수란 생사의 고비 와중에도 하수들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마냥 절망적인 격차는 아니었다. 상처 입은 호랑이를 이리 떼가 사냥하는 것도 집단의 힘이었다.


“개잡놈이, 내 부하를!”


새파란 쾌검초가 햇살을 일그러뜨렸다. 손가락으로 무심히 튕겨내자, 여러 날붙이의 궤적이 사위에서 찔러 들어왔다.


푸콰악!


핏방울이 꽃잎마냥 비산한다. 대부분 율법당 무사들의 것이었지만, 희뿌연 검로가 천흉의 살갗 곳곳을 스쳐 지나갔다.


쐐애액, 쩌저저정!


굉음이 불규칙적으로 번졌다. 차례차례 교대하며 가세하는 율법당 무사들은, 다소 고전할지언정 천천히 마인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합공의 효용이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공격이 몹시 능숙했다. 천흉이 바로 오늘의 사냥감이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저 괴물을 잡아낼 수 있는 건가?”

“분명 주군, 아니 소백이의 공적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검강과 궤가 달라서, 더 치명적이었을 거고. 아마도 영성이 담겨서겠지.”


바닥에 쓰러진 사공자과 청선이 나눈 대화였다. 중상이 심각한데도 천흉이 낭패하는 모습에 굉장히 고소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은데···.’


불안한 예감이 어렴풋이 올라왔다. 율법당의 연격에 결국 천흉이 후퇴하는 광경이 보임에도 사라지지 않는 찝찝한 기분.


그리고 적중하고야 말았다.


[시간이 너희의 편이라고 했었나? 그거 참 유감이로군.]


허장성세로 치부하기 어려운 목소리. 천흉의 입꼬리가 올라갈 때, 불현듯 큼지막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쿵.


지면이 우그러들며, 독살스러운 기도가 가시처럼 뻗어왔다. 갑작스러운 가세에 좌중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십 년 차, 괴흉살(怪凶殺)이 본 전의 이십 년 차 대선배님께 문안드리옵니다.”


어울리지 않는 격식이었다. 날카로운 치아가 씨익 드러나며, 곧 수십의 음영이 뒤따라 착지했다.


쿵, 쿵쿵.


사마외도 사이에도 수직관계가 명확한 걸까. 사나우면서도 일말의 공손함이 섞인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이었다.


“팔 년 차, 망사갈귀(亡蛇蝎鬼)가 본 전의 대선배님께 인사드리옵니다.”

“오 년 차, 묵월마(墨鉞魔)가 대선배님을 뵙습니다.”

“오 년 차, 권마환(拳魔幻)이 존경스러운 대선배님께······.”


흉마전 마인들의 등장이었다. 뒤바뀌었던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다. 수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저쪽이 훨씬 우월했다.


“육시랄. 웬 청천벽력 같은 일이···.”


사내 대장부마냥 쾌활한 인상의 부당주마저 곤혹스러워했다. 끝장이다. 그런 생각만이 들었다.


그렇게 강제적인 소강상태가 일어났다. 더 이상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이 순간부로 율법당의 생사는 저들의 손에 온전히 달렸으니.


사박, 천흉이 입꼬리를 올리며 반겼다.


[후배님들께 못난 모습을 보여 부끄러울 뿐이로군. 하잘것없는 것들에게 괜한 수모를 당했다.]


그의 시선이 한소백에게 향했다.


[거대한 운명에 항거한다고 했나? 네 마지막 희망은 모조리 짓밟혔다. 결국 강호는 강자존. 넌 경악스러울 정도로 자질이 우수했으나, 안타깝게도 목숨은 여기까지다.]


꽈악, 한소백이 억세게 노려봤다.


“천흉, 수치심을 알면 이만 물러나라. 더 이상 추한 꼴을 보이지 말고.”

[끝까지 혀가 길군. 호승심만큼은 인정한다. 별호가 뭐지? 없다면 망설검(亡舌劍)이라고 지어주마.]

“그딴 별호 필요 없어.”


천흉은 웃음을 흘리며 나직이 고했다.


[재능을 찬란히 빛내지 못했음에도 원통해하지 마라. 강호는 잔혹하단다.]


우웅.


손가락의 빛무리가 한소백을 노렸다. 몸이 바스러지도록 무리한 상태. 저 공격을 피할 수도, 막을 힘도 없었다.


“피, 피해야···!”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우려 섞인 비명과 무모한 저항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죽음은 여지없어 보이는 때였다.


부우우웅─!


불현듯 상공을 관통하는 웬 물체가 천흉의 바로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람을 찢는 막강한 힘이 실렸기에, 처형은 잠시 불발되었다.


쿠쿵!


그렇게 칼이 땅바닥에 꽂혔다. 일시에 커다란 고성이 뒤늦게 들려왔다.


─무릇 칼이란!


아수라장이 된 숲이다. 나무가 부러져 밑동만 남고, 풀잎은 새까맣게 그을린 광경. 경천동지할 전투의 여파로 인해 일대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그 탓에 시야가 확 트였다. 저 건너편의 야트막한 언덕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지축이 멀리서부터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때마침 낮이 끝나가는 시각이었다. 지평선 너머로 주홍빛 색채가 찬란히 펼친 순간, 먼지바람이 몰아치며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무정하여 그 쓰임을 스스로 아는 법이 없고, 타인을 베고자 태어났기에 온전히 책임을 물을 순 없다.


누군가 선두에서 고함을 크게 지르자, 뒤따르는 이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외쳤다.


─핏물에 번지는 칼울림은 우리의 심장 고동. 품위 없는 칼질을 별밤이 영원토록 지켜보는 와중에.


서서히 진풍(塵風)이 걷힌다. 칼을 찬 무인들이 한 손으로 말고삐를 쥔 채 빠르게 접근해왔다.


─비정한 외인으로 추악히 남을 텐가, 혹은 다정한 벗으로 떳떳이 기억될 건가.


강호에서 매우 저명한 일종의 선언문(宣言文)이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칼잡이들의 뜨거운 심장을 울리는 저 외침은, 개전을 알리는 함성이기도 했다.


무수한 인마(人馬)의 군집이 발구름을 흩뿌리는 와중, 거센 질주에 커다란 깃발이 격하게 펄럭였다.


휘리리릭───!


한 단어가 용사비등한 형태로 쓰여있었다.


검극劍極.


섭섭하게 하나가 끝이 아니다.


최선두에 선 기수의 뒤로 두 개의 깃발마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날파람에 강렬히 휘날리며 말이다.


휘릭, 휘리릭─


검신劍身.

검파劍把.


깃발의 글씨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누군가 허공답보를 펼쳤다. 칼을 한 번 크게 내둘러 진기의 불꽃을 휘감는다.


이내 대기를 도화지 삼아 붓질이 이루어진다. 휘갈긴 불꽃이 글자를 남기며 사그라들었다.


천검天劍.


한씨세가 최강의 무력단을 일컫는 단어다.


한군악의 가주 등극 이후, 가문이 최전성기를 맞이하는 시기. 천검단은 여지껏 백전불패의 명성을 쌓아왔다.


그들이 위기의 순간 별빛처럼 날아왔다. 지친 심신을 단번에 고무시키는 등장과 함께 말이다.


─자랑스러운 칼잡이들이여, 칼과 삶을 노래하라!


처음 고성을 터트렸던 자가 목이 쉴 정도로 외쳤다. 칼끝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폭력적인 위엄을 퍼트린다.


그러자 모든 검객이 따라 외쳤다.


““자랑스러운 칼잡이들이여, 칼과 삶을 노래하라!””


하나의 문장이, 무수한 목소리가 섞인 거대한 고성으로 화했다.


열기를 머금은 검객의 의지가 일대 공기를 후끈하게 뒤바꾸었다. 그들이 몰려왔다. 동료 칼잡이의 위급에 지체없이 달려오며 말이다.


구구구구······


제일 선두에 선 이들은 검극대. 칼끝으로써 적의 전열을 무너트릴 의무가 있었다. 이들의 제식무공인 참열검법은 언제나 집단전에서 빛을 발휘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엄숙하게 울렸다.


“검극대, 전원 돌격.”


어수선한 와중에 한유백의 얼굴도 언뜻 보였다. 가족의 비보에 잔뜩 경직된 모습이었다. 그 분개의 심정에 호응하듯 검극대도 흉흉한 기운을 억누르다, 끝내 분출했다.


“적의 살갗을 철저히 후벼라.”


타앗, 탓. 타탓!


달리는 말의 등 위로 불현듯 도약이 일었다. 무수한 인영이 동시적으로 상공에 솟아, 지상을 빠르게 줄달음쳤다.


이내 섬뜩한 칼질이 흉마전 마인들을 도륙 냈다. 살점과 핏물이 부스러기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천불과 같은 거침 없는 전진에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도 질 수 없지, 검신대.”


중앙에 열을 갖춘 무리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검신대주가 허공에 칼날을 휘두르며 부르짖었다.


“사마외도 무리를 난도질하라!”

“검파대, 오늘만큼은 최전방에 선다.”


최후방에 선 검객들도 전열을 잊고 정방으로 힘 있게 달려 나갔다.


칼끝, 칼날, 칼자루.


세 부위가 모여 하나의 명검을 연성했다.

각 무력대마다 사십여 명씩, 휘하 약 백이십여 명의 칼잡이. 대주도 빠짐없었다.


바야흐로 한씨세가 천검단의 집결이다.


“마인들을 베어라, 찢어라, 뭉개라!”

“사파 잡것들이, 우리는 불철주야 수양하기 바쁜데 너희는 편법으로 강해져?”

“저기 십년차 마인으로 추정되는 놈은 내 것이다! 다들 비켜라!”


투쟁심 넘치는 목소리는 선명한 파육음에 점차 묻어졌다. 전장이 광기에 젖어 든다. 칼에 미친 바보들을 통제해야 할 수장들조차 광오하게 외쳤다.


“천흉의 수급은 내가 취할 거다.”

“헛소리, 공적을 홀로 독식하지 마라!”

“팔다리에 목과 몸통까지. 총 여섯 부위니 평화롭게 나누지. 물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타다닷, 스앙!


강맹한 도약이 대지를 요동치고, 검격이 망설임 없이 그어졌다. 반투명한 경파에 공간이 거칠게 너울진다.


[입만 산 것들이, 본좌를 두고 농락해···!]


일시에 치켜오는 칼날을 손가락으로 막아선다. 헌데 흠집 하나 나지 않던 피부가 불쑥 파였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베이지 않았다. 천흉이 호신강기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그러자 세 명의 대주가 광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옳거니, 차 한 잔 식기 전에 베겠군.”

“천흉 공. 어찌 목만 남기고 돌아오셨소!”

“모두 경망 떨지 마라! 대주의 품위를 지켜!”


쩌저저정!


희미한 내구의 호신강기가 쪼개지는 소리였다. 세 자루의 칼이 천흉을 격타할 때마다, 진기의 파편이 사정없이 바깥으로 튀었다.


[버러지들이, 감히. 감히···!]


천흉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금빛 마기(魔氣)가 새카맣게 오염되며, 마혼단명결의 극성 위력이 무시무시하게 요동쳤다.


무거운 호흡이 대기를 달구는 격전의 순간, 돌연 앳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선배님들, 제 몫도 남기시죠. 원수입니다.”

“음? 아버님?”


칼날과 손가락이 어지럽게 얽힌다.

장난스러운 대화와 다르게, 하수들은 빈틈을 보지도 노릴 생각도 못 하는 혈투.


헌데 어찌 된 영문일까.


약관도 안 된 소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고, 섬뜩할 정도의 살의를 품었다.


그렇게 자줏빛 색채로 세상이 어두컴컴하게 물들어가며, 밤하늘의 시작을 알리듯 새하얀 천체가 하나둘씩 존재감을 발광하는 때.


지상 위로 웬 별빛이 솟구쳐 올랐다.


다시 한번.


“검기성강(劍氣成罡).”


일섬(一閃).


───푸콰아아악!


새하얀 곡선과 함께 대마인 천흉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네 놈!]


검의 궤적을 뒤따르는 기다란 별빛의 꼬리가 가라앉으며, 땅 위로 불그스름한 물기가 흩뿌려진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세 명의 대주가 모두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일그러진 눈매가 부릅 노려보자, 한소백은 턱을 까딱거리며 응했다.


“이제 반쪽짜리 지법을 써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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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명검주 승단 +2 24.09.04 421 6 13쪽
35 벌과 나비 24.09.03 445 4 14쪽
34 별빛과 칼의 노래 24.09.01 467 7 12쪽
33 격전 24.08.31 467 6 16쪽
» 집결 24.08.30 453 6 16쪽
31 그래도··· 24.08.29 448 9 16쪽
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5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5 7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5 9 16쪽
26 혈령탄 24.08.24 499 8 13쪽
25 가르침 (2) 24.08.23 560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0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51 11 14쪽
20 살생부 (2) 24.08.18 671 12 12쪽
19 살생부 24.08.17 662 13 13쪽
18 대공자 24.08.16 67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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