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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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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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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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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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령탄

DUMMY

임무가 명확히 주어졌고, 인원도 대규모다. 아쉽게도 자유로운 활동이 불가능하다. 이번 강호출행은 임무에 충실해야 했다.


─주군, 임무가 끝나면 복귀할 때 잠시 개인 정비시간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선이 남몰래 전음을 보냈다. 과연 검신교 출신답게 징후조차 없어서 눈치챈 이들이 없었다. 이후, 간단한 임무 계획이 수립되며, 곧장 경공 기동이 이루어졌다.


숲길을 가르는 바람 줄기. 모두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로 산개했다. 첩정대라는 조직 특성상 말을 탈 수 없었다. 경공에 집중하는 와중, 낯선 여인이 한소백 쪽으로 붙어왔다.


“안녕, 네가 바로 방계의 기린아라며. 그리고 그쪽은 우리 귀하신 도련님.”

“아, 네. 반갑습니다.”


쾌속으로 질주하는데도 말에 흔들림이 없었다. 산책이라도 하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여인은 자신을 소개했다.


“난 칠조장 홍연(紅緣)이라고 해. 누나처럼 대해줘. 거기 도련님도.”


고혹적인 미소가 한껏 만개했다. 농염한 어른의 향기. 첩정대 특유의 달라붙는 복장이 몸선마저 두드러지게 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누님!”


사공자가 헤벌쭉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노골적인 반응이었다. 홍연은 배시시 웃으며 곁을 달렸다.


‘그러고 보니 이놈, 여색을 밝혔지.’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검련성제의 망신이 커진 것도 사공자가 자초한 일이었다. 칼을 맞대기 며칠 전부터 시비에 휘말렸다. 약혼녀 앞이라고 꼴불견처럼 무게를 잡던 모습이 선명하다.


시답잖은 이유라서 진작에 잊었다. 한소백은 괜스레 기분이 언짢아졌다. 시끄러운 담소가 옆에서 계속 들려오니, 더더욱 못마땅해졌다.


“······하하, 너 재밌다. 우리 조에 왔으면 귀여워해 줬을 텐데 아쉬워.”

“누님, 제가 풍광이 훌륭한 주루를 아는데 언제 한번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 집 오리고기가 아주 별미입니다.”

“으흠, 고민되는데. 시간 나면 한번 갈게.”


타닷, 팟!


경신술이 계속되었다. 어느덧 대화거리가 줄어들었을 때쯤, 한소백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넌 첩정대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내가 들어오라고 시키긴 했지만, 전음과 경공. 두 시험 다 만만치 않았을 텐데.”


특히나 무명천 쟁탈전 같은 경우는 미숙한 소년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시간제한이 있었으려나. 내가 특이하게 시험을 통과한 것 같은데.’


사공자는 달리기만 해도 힘에 부쳤는지, 숨을 불안정하게 내쉬며 말했다.


“전음을 쓸 순 있는데 능숙하진 않다. 그래서 첩정대에 소속되는 동안 수련받기로 했고. 그리고 경공은 왜? 적당히 속도와 지구력만 확인하지 않았나.”


그 대답에 한소백이 인상을 썼다.


“무명천을 지키라는 건 없었나.”

“아, 그런 것도 있었지. 순식간에 뺏기긴 했는데, 그거 신고식 아닌가.”

“뭐?”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러자 주변에서 엿듣던 첩정대원들이 동요를 보였다. 청선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음, 골려주기 위한 거였는데 네가 너무 쉽게 통과했어. 원래 첩정대는 늘 인력난에 시달리거든. 전음만 쓸 줄 알면 됐지···.”

“숙부님께 따져야겠군요.”

“아, 저기. 도착했다!”


청선이 화제를 돌리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자락 너머로 변변찮은 외관의 집터가 아주 작게 보였다.


백랑무관(白狼武館)


삼류 무인을 양성하는 무관이었다. 인구가 적은 소규모 마을에는 이런 동네 도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흉마전에 습격받은 곳이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청선이 첩정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자, 나와 소백, 하진은 무관을 조사하도록 할게. 남은 이들은 미리 정해둔 역할을 수행하자.”


주민 탐문과 흔적 수색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는 외지인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은밀하게 조사하기보다는 적당히 신분을 속여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한소백과 청선, 사공자는 폐허가 된 백랑무관 쪽으로 향했다. 그때 홍연이 등허리에 손을 모은 채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넌 왜 따라오는 거야.”

“어차피 다들 알아서 잘할 텐데 뭐. 우리 잘생긴 꼬꼬마들 보면서 눈 호강도 하고.”

“됐다, 말을 말자.”


수색이 시작되었다.


한차례 불타버린 무관에는 시체나 무덤 하나 없었다. 사공자가 의아해하며 묻자, 홍연이 친절하게 답해줬다.


“흉마전의 마인들은 단명하거든. 삼년차를 넘는 이들이 극히 드물어. 그래서 늘 무인을 수급해야 하는데, 자질 있는 자를 납치해서 강제로 입문시키는 경우가 많아. 여긴 시골이어서 아예 문파째로 납치한 것 같은데?”

“나쁜 놈들이군요. 그래도 강제로 입문을 요구하면 반항하진 않나요.”

“마공에 입문하면 머리가 맛이 가더니 결국 훌륭한 마인이 되고 말아. 그게 아니더라도 세간에서 마공을 익혔다고 추궁받게 되니 돌아갈 자리도 없지.”


씁쓸한 일이었다. 강호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곁에 두지 않는다. 한 번 마공을 익히면 끊임없이 편견에 시달린다.


반강제적으로 익힌 이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그 처지를 익히 잘 알기에, 한소백은 속으로 슬며시 공감했다.


“역시 흉마전이었나요. 정말 끔찍한 날이었습니다. 까불거린다 싶은 동네 아이들은 죄다 백랑무관을 다녔거든요. 낯익은 얼굴이 많았죠···.”


백랑무관의 근처 민가에 사는 사내가 우울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듣기로는 지근거리에서 목격까지 했다고.


“그래도 당신은 운이 좋네. 근골이 꽤 단단한데? 무공을 익혔다면 장성할 오성이야. 같이 납치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야.”

“그게 어떤 분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도움을? 협의지사라도 다녀갔나.”


청선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 덕분에 살았지요. 그놈들은 눈에 띄는 양민한테도 무자비하게 굴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 마인들과 같은 편처럼 보였거든요.”

“마인인데 도왔다고? 다른 특징은 없었나.”

“음, 도끼 두 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습니다. 외모는 삼십대 후반 정도? 그분께서 뭐라고 하시면서 양민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자루의 도끼. 모순적인 의협심.

청선이 즉각 고개를 돌렸다.


─주군.

─귀월객이다.


사마외도를 아내로 삼은 자. 그로 인해 한씨가주에게 복수심을 품고,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무인.


‘어쩌면 이번 임무 도중 귀월객의 마지막을 볼 수도 있겠군.’


꺼림칙한 일이었다. 하지만 술잔을 나누며 이미 약조했다. 서로의 복수에 방해된다면 망설임 없이 베겠다고.


그날이 너무 이르게 찾아온 듯했다.


“마인들은 북서쪽으로 향했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납치된 문하생들도 부디 구출해주십시오···.”



* * *



한씨세가는 경서남로와 형호북로에 자리잡은 세 곳의 거대 방파 중 하나다. 그곳에서 육성한 첩정대는 몹시 유능했다.


“납치된 문하생들을 발견했다네. 어서 그곳으로 가자.”


흉마전의 마인들 때문에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됐다. 청선과 한소백이 속한 삼조는 조금 떨어진 집결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칠조의 인원들도 보였다.


먼저 도착한 홍연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팔조장이 혈령탄의 흔적을 찾아냈다네. 그 후로 아직 연락이 안 왔어.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최악의 경우도 상정해야겠지. 혈령탄은 우리 같이 발만 빠른 이들한테 상성이 좋지 않으니까. 전음을 보내기도 전에 당했을 수 있어.”

“작전에 차질이 생기겠네. 지원을 부를 때, 다른 조장도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 십이혼이 상대라면 거리 유지는 필수니까.”


그때 한소백이 입을 열었다.


“그 역할, 제가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여차하면 저를 상정하시죠.”

“정말? 네가 조장급 실력이 된다고?”

“내가 보증하지. 한소백의 개인 기량은 이미 조장급을 넘어섰어.”

“와, 대단하네. 그 나이에 벌써.”


홍연은 기뻐하며 재잘거렸다.


“조장급 인력은 늘 귀하거든. 십리전음과 백리지청술에 능해야 해. 언제든 광범위하게 소통할 수 있게 말이야.”

“별거 아닙니다.”


한소백이 겸손하게 대꾸했다. 그 모습이 되려 오만불손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홍연이 연이어 감탄을 남발했다.


“혹시 혜광심어(慧光心語)라고 들어봤니. 너라면 언젠가 그 경지에 이를 것 같은데. 벌써 이만한 자질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혜광심어 말입니까?”


모르는 척하며 묻자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말이 아닌 뜻 자체를 전달하는 고매한 수법이야. 우리 대주님도 고작 상승고수인데 비슷한 이적을 사용하시지. 물론 초고수를 앞두고 있지만, 한평생 전음기예를 연마해서 가능한 일이야.”

“수양이 깊은 스님들만 해내는 전설적인 경지라고 들었습니다. 불가에 뜻을 두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겁니까, 누님?”


사공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러자 홍연이 낭랑한 어조로 말했다.


“초고수 정도가 되면 혜광심어가 아니어도 비슷한 일이 가능해. 의념이 저절로 새어 나오거든.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초식명을 들을 수 있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지.”

“초식명이 유출되니, 별로 안 좋은 건 아닌가요? 왜 그런 짓을.”


명문가의 자제일지라도 모를 만한 정보였다. 일정 경지에 오르지 않은 이상, 전수하지 않는 암묵적인 비밀. 그것을 한소백이 누설했다.


“물론 본인 의사에 따라 숨길 순 있는데, 집중력과 수고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방치하는 편이지. 그게 아니더라도 경고의 의미기도 하고.”

“경고의 의미?”

“초식명을 들었으면 살아서 돌아갈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지. 또 그만한 경지의 고수들은 자기 과시의 성향이 크기도 하고.”


순간 주위의 이목이 한소백에게 집중되었다. 거듭 말하듯, 절세고수는 자기 과시의 성향이 강했다. 어차피 대단한 기밀은 아니었다.


“너 비밀스러운 지식에 능통하구나. 아는 사람도 적을 텐데···.”

“자, 자. 잡다한 이야기는 됐고.”


청선을 서둘러 입을 열었다.


“감시는 우리 삼조가 할게. 칠조는 본가로 가서 무력대를 불러. 가는 김에 팔조와도 연락을 시도하고.”

“네, 네. 알겠습니다.”


고음의 목소리가 울렸다. 홍연이 씨익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우리 귀여운 아가들도 근시일 내에 다시 보자.”


붉은 입술이 몹시도 탐스러웠다. 유혹적인 몸가짐이었다. 넋이 나간 사공자를 보며 한소백은 헛웃음을 흘릴 때였다.


돌연 미묘한 기척이 감각에 잡혀 들었다.


‘···은밀한 접근. 경계를 속이고 언제 이곳까지!’


즉각 외쳤다.


“습격입니다! 모두 피해!”


그 말에 모두가 일단 몸을 움직였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했다.


타앗.


홍연이 공중으로 크게 뛰더니, 땅바닥에 착지하였다. 뒤늦은 의문이 일어났다.


“습격? 그게 무슨 소리니. 여기 첩정대원이 몇인데 감시를 뚫고 왔을 리가-”


푸, 쾃─!


끔찍한 관통음이 들렸다. 진원지는 그녀였다. 새하얀 미간 위로 동그란 구멍이 생겨났다.


뚝.


쇠구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따뜻한 시신도 앞으로 축 늘어지며 엎어진다. 실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땅이 핏물을 게걸스럽게 마셨다.


“누님···?”


사공자가 멍하니 중얼거릴 때였다. 불현듯 적나라한 웃음이 들려왔다.


하, 하.


홍연이 쓰러지며 시야가 탁 트였다. 뒤편으로 갑작스러운 암습의 흉수가 보인다.


“명중이오, 명중!”


나뭇가지 위에 새하얀 다리를 늘어뜨린 여인. 자연을 벗 삼아 노니는 듯했다. 매혹적인 용모였다.


허나 섬뜩한 미소와 함께 쾌활한 고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팔다리는 일 점, 복부는 삼 점, 흉부는 오 점, 얼굴은 팔 점, 정중앙 미간은 십 점!”


최소 백이십여 장은 넘은 거리였다. 너무 멀어서 얼굴을 자세히 확인할 순 없었지만 다들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즉각 전방위로 광역 전음이 뻗었다.


─혈령탄(血零彈) 현현!


흉마전 칠년차 마인, 천흉의 제자.

그리고 탄지신공(彈指神功)의 상승고수.


“마침 바람도 잔잔하네. 벌써 십 점도 얻었고, 오늘은 가뿐하게 백 점에 도전해보도록 할까!”


섬섬옥수의 사이사이로 쇠구슬이 가득 끼워졌다. 양손이 교차하며 손등이 보였다. 돌연 어렴풋해진다.


팡!


공기가 크게 터졌다.

단순히 쇠구슬을 던진다고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극강한 파괴력의 마공이 탄지신공과 합쳐져 상승효과를 낸 것이다.


탁! 타닷, 탓···


숲속으로 흩뿌려진 쇠구슬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일직선이 아니었다. 나무에 부딪혀 궤도가 꺾인다. 그야말로 신들린 도탄. 굉장한 공간 인지력과 순간적이고 정확한 계산 능력이 필요했다.


혈령탄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일대에 죽음을 선고했다.


“자, 살아있는 과녁들아. 마음껏 발버둥 치렴. 내 탄지신공의 숙련도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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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격전 24.08.31 467 6 16쪽
32 집결 24.08.30 453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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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6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6 7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6 9 16쪽
» 혈령탄 24.08.24 500 8 13쪽
25 가르침 (2) 24.08.23 560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52 11 14쪽
20 살생부 (2) 24.08.18 67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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