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유휘.
작품등록일 :
2024.07.11 11:26
최근연재일 :
2024.09.16 13: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1,671
추천수 :
520
글자수 :
291,945

작성
24.09.04 23:48
조회
421
추천
6
글자
13쪽

명검주 승단

DUMMY

묵직하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한결 풀린다. 소년의 도발은 너무나 호기로웠기에 도리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하, 후배한테 제대로 얕보였구만.”


검신대주의 혼잣말에 곧장 타박이 들어왔다.


“당연하지. 우리도 이루지 못한 검기성강의 고수다. 너처럼 십수 년째 지지부진한 둔재와 격이 다르지.”

“뭐라는 거냐, 넌 젊어서 좋겠다. 무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군.”

“삼 년이면 널 두들겨 패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지. 아니면 지금 붙을까?”

“오냐, 붙자!”


두 대주가 으르렁거리며 싸웠다. 벌써 칼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격장지계는 내가 펼쳤는데 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지···?’


이해하기 어려운 자들이었다. 장난스러운 때와 진중한 때가 혼잡했다. 그나마 비교적 정상인 검파대주가 슬그머니 다가와 물었다.


“대단한 자신감이십니다. 그 나이에 벌써 무력대주를 역임하려 하시다니. 하긴 검강의 성취를 이룩했다면 단주를 맡아도 이상하지 않긴 하죠.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바탕 격전이 벌어지는 뒤편을 슬쩍 흘겨본다. 피곤한 날숨이 흘러나왔다.


“저희 중 한소백 대협께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갈 고수는 없는데 말이지요.”

“뭐라는 거냐, 칼자루 놈아!”


한창 칼을 휘두르던 검신대주가 반발했다.


“솔직히 자신 없긴 하지만 그래도 상승고수의 체면이 있거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않나!”

“맞아! 그러니까 네가 그 나이 먹고도 단주 직위는커녕 우리랑 동급인 거지. 약한 소리 지껄일 거면 칼 대신 방패나 들어라!”

“하하, 겁보마냥 방패 뒤에서 숨으라고!”


고성의 비웃음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하늘을 쩌렁 울리게 할 크기였다.


“···저 연놈들이.”


검파대주가 얼굴을 구겼다.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역시나 명검주 승단부터 해야 할 겁니다. 무력대주를 맡으려면 명검주여야 하니까요.”

“총관부에 가서 문의하면 되는 겁니까.”

“예. 본래는 승단 시험의 자격으로 큰 공적을 쌓아야 하는데, 대협께서는 별문제 없으실 겁니다. 워낙 지난 업적이 업적인 만큼···.”


말을 흐린 검파대주가 눈치를 보며 접근했다. 이내 멋쩍은 귓속말이 들려왔다.


“혹시나 천검단주가 되신다면 저도 어여삐 여겨주셔야 합니다? 대협이라면 시간의 문제일 뿐 충분히 도달할 직위지요.”



* * *



한씨세가 총관부.


두개골 안에 칼만 가득한 바보천치 사이에서 높은 학식과 품위를 갖춘 이들의 조직이다. 호광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무림세가인 만큼, 다방면으로 살림살이를 맡았다. 한대명도 총관부 휘하에서 파벌 정쟁을 벌인 전적이 있었다.


‘대총관 때문에 조금 껄끄러운데···.’


다행히 안내하러 온 사내는 부드러운 격식을 갖췄다.


“총관부 도현웅이라고 합니다. 한씨세가 신예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검주 승단시험을 신청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되도록 이른 시일로 부탁드립니다.”


스르륵.


도현웅은 문서를 꺼내 일필휘지로 붓질을 거듭했다. 빠른 손놀림과 동시에 입술이 연신 달싹거린다.


“명검주 승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선 일정 이상의 공적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능설께서는 단기간이지만 이미 차고 넘치는 공적을 쌓으셨죠.”


혈령탄 척살 및 천흉을 상대로 선전, 팔을 잘라내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천검단이 지원 오기까지 시간을 벌어 흉마전 정예 및 지흉을 척결하는 데 큰 일조를 보탰고.


공적 정리를 마친 도현웅은 감탄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후에는 세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안목과 비무전, 그리고 인성 평가라고 할까요. 장로급 인사와 면담해서 통과하면 끝입니다.”

“평검주보다는 좀 오래 걸리겠네요.”

“한씨세가를 대표하는 막중한 위치니 응당 그래야 하지요. 이중 유의해야 하실 건 비무입니다. 현역 명검주를 상대로 승리하지요. 무려 십연전(十連戰)! 그중 칠승(七勝)을 쟁취해야 합니다.”


까다로운 승단 조건이었다. 일반 평검주에게 통과하라고 내리는 건지 의문일 정도다.


“전 딱히 상관없는데, 다른 수험자에겐 가혹하군요. 명검주에 막 승단하려는 입장인데 명검주를 이겨야 한다니.”

“보통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손속에 사정을 두는 편입니다. 대상도 수험자가 직접 지목할 정도로 자유롭고요. 대개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만전을 다해 준비하는 편입니다.”


언뜻 보기엔 비리가 벌어지기 쉬운 구조였지만, 호승심에 미친 한씨세가 검객들한테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완전한 자격 없이 명검주에 오른다면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할 테다.


“마지막으로 시험에서 떨어지면 반년간은 응시가 불가능합니다. 마음의 준비는 전부 끝내셨습니까?”


도현웅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장난스러운 어조에 한소백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원한 선언이 울려 퍼졌다.


“늦장 부릴 것 없이, 한 호흡 안에 끝내도록 하지요.”



* * *



첫 번째 시험은 안목의 평가다.


대리국에서 공수해온 석재가 바닥에 깔렸다. 연무장에는 젊은 사내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몹시도 날카로운 기도였다.


낯익으면서도, 어색한 모습. 한소백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입니다, 교관님.”

“반갑구나.”


수습검주 시절 담당하던 교관, 백무영이었다.


“제 승단 시험, 교관님이 맡으시는 겁니까.”

“교관직은 관둔 지 오래됐다. 애당초 요양 때문에 임시로 담당하던 거라서.”


백무영은 웃으며 한소백을 내려다봤다. 대견하다는 표정이 만개해 있었다.


“두 달 전만 해도 수습검주 수료를 마치는 처지였는데 이젠 명검주를 바라본다니. 그조차 네겐 잠시 거쳐 가는 겉치레겠지. 본 교관은 네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앞으로 더욱, 폭풍같이 나아갈 겁니다. 계속 지켜봐주시지요.”

“훌륭한 포부로군.”


해후의 덕담은 곧장 끝났다. 한소백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물었다.


“그래서 안목을 본다 함은 무엇입니까. 검흔을 보고 타 문파의 검법을 유추하는 겁니까?”


백무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한씨세가는 검(劍)의 요람이다. 강호의 보편적인 검법에 높은 이해도를 지녀야 하지. 명문구파나 팔대세가의 무공은 필수다. 다만 꼭 정답을 맞춰낼 필요는 없지.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하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넌 내가 펼치는 검법에 대책을 강구하기만 하면 된다.”

“교관님께서 타 문파의 검법을 전개하신다니. 그것도 구파와 팔가의 것을요? 그들이 알아챈다면 죽어라 달려들 텐데 말이죠.”


문외불출(門外不出)이라는 성어는 강호에서 지니는 무게감이 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무공 탈취와 파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바.


고명한 대방파는 무공 유출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했다. 다만 완벽히 지킬 순 없는 법이다.


“흠, 나야말로 묻고 싶군. 수백 년 동안 검법 유출이 없는 걸 바란다? 너무 양심 없는 짓거리 아닌가.”

“그래도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들키면 곤란하겠지만 우리만 입 다물면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다른 곳에서도 이미 비일비재하고. 소림의 장경각을 뒤지면 온갖 문파의 비급서가 튀쳐 나오지 않을까.”


백무영이 콧방귀를 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 한소백도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를 보였다.


천하 모든 검법의 총망라를 시도한 검신교가 아니더라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다만 단순한 검형(劍形)이 아닌 운기 경로와 창안자의 의념까지 알아낸다면 심각한 문제긴 하겠지만.


“자, 그러면 일단 한 수를 받아라.”


휘우웅!


강맹한 기운이 칼날 전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화려한 발동작마저 활력이 넘쳤다. 한소백은 수비초를 펼쳐 가뿐하게 받아냈다.


캉!


일수를 막아내고 곧장 물었다.


“복마검법입니까?”


백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공동파 복마검법 칠초식 군마압정(群魔壓頂)!”


이름을 들은 한소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좀 이상한데.’


다소 위화감이 들었지만 아직 확신의 영역은 아니었다. 검흔도를 통해 분석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다음 검법이 준비되었다.


채애앵!


장중한 검세였다. 특히나 하체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순간의 방향 조율을 통해 여러 방위를 선점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종남파군요.”

“천하삼십육검 십이초, 천지광압(天地廣壓)! 힘의 배분만큼은 교보재로 삼을 만한 검법이지.”


역시나 이상했다.

단순히 타 문파의 검법을 따라 펼쳤다고 볼 수 없었다. 설마 하며 추측에 도달하는 순간, 백무영이 재차 기수식을 취했다.


‘잠깐 이건···.’


칼날이 쾌속하게 뻗친다. 화사하게 잔상을 남기는 검로가 마치 한 편의 춤과 같았다. 동시에 어기충검으로 주입된 진기가 서서히 사위로 흩뿌려진다.


사아아─


은은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뚜렷한 후각은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세 번의 합으로 초식을 막아냈다.


그리운 검법에 한소백이 멍하니 물었다.


“제가 생각하는 그거입니까···?”


백무영은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였다.


“이십사수매화검법 십오초, 현매불망(現梅不忘)이다.”

“하지만···.”


경악 섞인 의문이 제시되었다.


“이건 단순히 검형을 베낀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의 육신으로 펼치는 동작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무공의 형(形)이 겹치는 건 흔하게 있다. 이때 위력과 기예로써 차이를 주는 것이 내공운용법.


거기서 더 나아가, 내공에 특별한 공능을 불어넣는 게 바로 인간의 의지, 의념이었다.


“내가 언제 검형만 펼친다고 했지? 무릇 진정한 견식을 위해선 최대한 동일한 조건으로 맞춰야 하는 법.”


태연스러운 목소리에 헛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검향지경(劍香之境).


매화의 심상을 바탕으로 한 화산 무학이 대성에 도달했을 때 나타난다는 이적.


백무영은 검형이 아닌 검의(劍意)마저 베껴 낸 것이다. 그것도 앞서 펼친 모든 검법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안목은 끝났다. 넌 강호의 유명한 검법에 대응할 수 있다는 역량을 증명해냈다.”

“···교관님, 정체가 무엇입니까. 설마 검신교에서 오신 건가요.”

“그래, 용케 거기까지 짐작이 닿았군.”


비밀스러운 이름이 숨김없이 튀어나온다.


“검신교 사대가문.”


백무영은 납검하며 나직이 말했다.


“검법 분석과 파해 및 연구를 맡은 천무백가(踐武白家)의 일족, 백무영이라고 한다.”

“그래서 타 검법의 진의까지 성취를 마치신 거군요.”

“뭐, 본가에서 지내다 보면 강제적으로 터득하는 수법이지. 각 검법의 핵심 장점만 뽑아내서 새로운 검법을 창안하는 것도 우리 역할이니.”


생각 이상의 거물이었다.

엄석궁처럼 기껏해야 유파의 전인 따위가 아닌, 검신교의 중축에 가까운 자.


그가 살갑게 입을 열었다. 가까워졌던 거리를 다시 벌린 채, 매서운 예기(銳氣)를 흘리며 말이다.


“명검주와 십연전을 벌여야 하지? 내가 바로 그 시작이다. 네 수준이 수준인 만큼 진심으로 임하도록 하마.”


검끝이 한소백을 가리켰다.

백무영 역시 명검주의 무인이다. 승단 시험의 대상으로서 합당한 자격을 지녔다.


“저도 바라던 바입니다.”


저벅.


검파를 쥔 손이 가벼워진다. 쾌검수의 파지법이었다. 비어있는 반대 손은 검지와 중지를 모았다. 그 유명한 검결지(劒訣指)였다.


“음···?”


백무영은 눈썹을 구부러트렸다.


화아아─


봄날의 미풍이 슬며시 불어온다. 동시에 산뜻한 향기 또한 피어오른다. 지나칠 정도로 과하지 않은, 음미하기에 딱 좋은 매화의 내음.


“너, 정체가 대체 뭐냐.”


본능적인 경계는 당연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굉장히 선명했다. 방금의 한소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소년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별 건 아닙니다. 화산파 검법을 견식할 기회가 있어서요. 그때 조금 성취를 이룬 바가 있습니다.”


옛 신상 내력을 떠올린다. 아마 개방이나 하오문에서 전생의 검마를 파악했다면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었을 거다.


화산 백연(白演) 장문진인 사사(師事).

매화검법(梅花劍法) 대성(大成) 성취.

도호(道呼) 유현(流炫).

천매망검(天梅亡劍) 한소백.


화산파의 기린아가 비릿하게 웃었다.


“교관님의 매화검법, 한 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 * *



[능설 한소백.

명검주 비무전.

십전(十戰) 전승(全勝).


최종 승단시험을 위한 검릉도(劍陵島)의 출입을 허가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2 k4******..
    작성일
    24.09.05 00:01
    No. 1

    이해가안되는게 주인공 전생검마 시절 무위가 천흉이나 흉마전주 한씨세가주 다 발라버리는 경지였던거 맞나요 다구리에 무너진거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유휘.
    작성일
    24.09.05 10:17
    No. 2

    작품 외적으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순수한 경지는 절세고수급+마공을 통한 비약적인 강함을 지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1화에 나온 다구리와 최후는 별개의 일입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마회귀(劍魔回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오늘은 휴재입니다 24.09.02 38 0 -
공지 오전 중으로 두 편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24.08.29 347 0 -
45 원영신 NEW 22시간 전 222 4 20쪽
44 수련동 (2) 24.09.15 311 5 21쪽
43 수련동 24.09.13 336 4 17쪽
42 초감각 24.09.11 378 3 16쪽
41 한씨가주 (2) +1 24.09.10 407 6 12쪽
40 한씨가주 24.09.08 408 5 13쪽
39 삼공자 (2) 24.09.07 378 4 14쪽
38 삼공자 24.09.07 391 6 16쪽
37 명검주 승단 (2) +1 24.09.06 399 6 14쪽
» 명검주 승단 +2 24.09.04 422 6 13쪽
35 벌과 나비 24.09.03 445 4 14쪽
34 별빛과 칼의 노래 24.09.01 467 7 12쪽
33 격전 24.08.31 467 6 16쪽
32 집결 24.08.30 453 6 16쪽
31 그래도··· 24.08.29 448 9 16쪽
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6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6 7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5 9 16쪽
26 혈령탄 24.08.24 499 8 13쪽
25 가르침 (2) 24.08.23 560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51 11 14쪽
20 살생부 (2) 24.08.18 673 12 12쪽
19 살생부 24.08.17 663 13 13쪽
18 대공자 24.08.16 673 1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